메리언 엥겔 Marian Engel, 1933-1985

자신의 글쓰기를 "완벽함을 추구하도록 길러진 사람이 불완전한 세상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한 탐구로 여겼다. 

그녀는 두더지처럼 사무실 깊숙이 파묻혀 지도와 필사본을 헤집으며 겨울을 났다. 직장과 가까운 곳에 살았고 자신의 아파트와 협회를 오갈 때 장을 봤으며, 한순간도 어물쩍거리지 않고 피난처를 전전하듯 겨울의 터널을 허둥지둥 걸었다. 그녀는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는 느낌을 좋아하지 않았다. - P11

그녀는 조용히 서서 창턱 위에 놓인 놋쇠와 가죽으로 된 망원경을 만지작거리며, 망원경 양쪽에 놓인 지구본과 천체본의 먼지를 털어냈다. 만약 책들이 모두 신통찮은 보스턴 번연이라면, 아직은 그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북쪽 벽난로 옆 탁자로 가서 폐허를 그린 판화집 한 권을 펼쳤다. 피라네시다.
한참 동안 허물어진 기둥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뒤쪽 창으로 걸어가 빈 선반에서 죽은 파리 한 마리를 쓱 쓸어내고 밖을 내다보았다. 곰이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P48

그녀는 지시 사항을 두 번 연달아 읽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것을 하든 유의미할 것이었다. 그녀에겐 이제 삶의 허가가 존재했다. - P115

그들은 닷새 동안 그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그 없이 떠나야 했고 캐나다로 가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몇 달 후 그들이 형제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가 "그런데 우리 앤드루는 어디에 있지?" 물었고 이 말을 들은 우리의 가장은 위층으로 올라가 드러눕더니 죽어버렸다. - P119

갑자기 신문사 생활이 덧없고 궁핍하게 여겨졌고 그녀는 역사 서술에 관련된 직업 중 가장 덜 기생적인 일에 자리를 잡기 위해 진로를 바꾸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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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와 나무

식물은 동물의 자매다. 식물도 동물처럼 먹이를 먹고 자손을 낳으며 살아간다. 식물을 알고자 하면 동물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고, 동물을 이해하자면 식물의 본성을 살피는 것만큼 빠른 방법이 없다. 그런 뜻에서 나는 이 책을 어느 특별한 동물로 시작하려고 한다. 이 동물의 면면을 보아 식물의 밑바탕을 쉬이 가늠하는 것은 물론이고, 식물에 대한 더없이 값진 통찰을 얻게 되리라 믿어서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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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rodiversity vs neurotypical

이제 나는 요란한 소음과 밝은 빛을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사람들의 말이나 몸짓을 이해할 수 없으면 무슨 뜻인지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자동차를 몰거나 아이를 갖는 것과 같은 ‘어른‘의 관습적 기준에는 전혀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문제 될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면을 벗기 전에는 산다는 것이 거짓된 열정에 매달린 기나긴 행군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사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 있음을 놀랍도록 실감한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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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같은 일은 결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은 가해민족의 의식 속으로 아주 음험하게 파고들었다. 다시 말해 그 범죄 행위는 그것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독일인들의 집단의식에서 깡그리 배제되어 있었다. 선의를 가진 사람조차 자신들의 추방된 이웃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깊이 생각하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은 오늘날까지도 인간종에 대한 신뢰를 바닥부터 뒤흔들어 놓는다. 물론 다수의 동시대인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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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일기

그 무렵의 내가 찾던 것은 고요함과 순수한 몰두였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게끔 하는 쓸데없는 술자리와 허무한 연애로부터의 완전한 격리였다. - P12

남쪽에서

그 짧은 이야기가 너무 좋아서, 몸속에 흩어진 조각들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쓰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모르게 무언가를 쓰고, 사라진 여자들이 있다. - P75

숙희가 만든 실험영화

그건 숙희가 발명한 것도, 숙희만의 것도 아니었다. 어떤 사회적 의무와도 같은 선택지로서, 제대로 된 티켓을 구하지 못한다면 억지로라도, 심지어 절차를 어겨서라도 반드시 그 물결에 올라타야만 한다고 여겨졌던 길이었다. - P140

시차와 시대착오

그는 눈과 귀를 닫았다. 그편이 살기에더 편했으므로 그는 그렇게 하는 쪽을 선택했다. 누가 자신을 감시라도 하듯 그는 앞장서서 강한 쪽의 입장을 옹호하고 스스로를 그와 동일시했다. - P172

그녀는 스스로가 만든 정교한 함정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나도 깊숙이 들어와버렸다. 자신이 인생에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그녀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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