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사는 섬
다니구치 도모노리 지음, 봉봉 옮김 / 미운오리새끼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가람어린이 미운오리새끼 그림동화 시리즈 신간 <괴물이 사는 섬>을 읽고 소개하려 해요. 다니구치 도모노리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표지만 보아도 호기심을 한껏 자극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랍니다.


오해와 진실이 교차하는 이야기

<괴물이 사는 섬>의 배경은 커다란 초록색 괴물이 살고 있는 어느 외딴 섬이에요. 사람들은 폭우, 가뭄, 쓰레기, 미사일이 섬을 덮쳐도 모두 괴물 탓이라며 원망하지요. 하지만 섬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진실은 전혀 다르답니다.

가뭄으로 메마른 섬에 괴물이 슬그머니 일어나 물뿌리개로 촉촉한 비를 내려 주는 장면이 있어요. "'와! 비가 내린다!' 섬사람들은 기뻐했지만 가뭄이 끝난 게 괴물 덕분이라는 걸 몰랐어요. 또한 괴물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온몸으로 막아 내며 남몰래 주민들을 지켜 주고 있었어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커다란 덩치와 초록 악어를 닮은 무서운 겉모습만으로 괴물을 미워하고 배척할 뿐이랍니다. 실제로는 천재지변이나 인간들의 이기심 때문에 생긴 문제들인데 말이지요.


마음을 울리는 인상적인 장면

시선을 사로잡은 부분은 괴물이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불붙은 미사일들을 맨몸으로 막아 내는 모습이었어요. 온몸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뜨겁고 아플 텐데도 묵묵히 섬을 지키는 희생적인 태도가 뭉클하게 다가왔거든요.

커다란 입을 벌려 아기를 위협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그림책의 다음 장을 넘기면 사실 아기는 괴물을 보고 울음을 뚝 그치며 환하게 웃음 짓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요. 어른들의 굳어진 편견과 달리 순수한 아이의 눈에는 괴물의 다정한 본심이 보였던 모양이에요.


편견을 넘어 다름을 이해하는 마음

우리는 종종 단편적인 현상이나 겉모습만으로 대상을 쉽게 판단하곤 해요. 섬 주민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환경 오염이나 전쟁의 책임마저 애꿎은 괴물에게 떠넘기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비춰 주는 듯해요. 진정한 원인은 외면한 채 희생양을 찾는 어른들의 태도를 꼬집는 셈이지요. 무서운 외모 속에 숨겨진 따뜻한 진심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커다란 교훈을 얻게 된답니다.


아이와 부모님 모두에게 권하는 추천 이유

주변 엄마 아빠들에게 그림책 <괴물이 사는 섬>을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 겉모습만 보고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미워하면 안 된다는 소중한 가치를 자연스럽게 가르쳐 줄 수 있어요.

  • '우당탕탕', '덜커덩덜커덩'처럼 리듬감 넘치는 의태어와 의성어가 풍성해서 아이들과 소리 내어 읽기에 참 좋아요.

  •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섬의 풍경이 미묘하게 변하는 과정을 찾아보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가득하답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처음에는 표지의 낯선 괴물을 보고 흠칫 놀라다가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괴물이 아파 보여요", "괴물은 참 착하고 불쌍한 친구네요"라며 금세 푹 빠져드는 반응을 보였어요.

무서운 존재라는 선입견이 섬을 지키는 다정한 수호신이라는 긍정적인 호감으로 바뀌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지요. 아이와 함께 나란히 앉아 <괴물이 사는 섬>을 펼쳐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과 따뜻한 마음에 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 보시기를 바랄게요.


다니구치 도모노리 작가의 다른 베스트셀러 그림책

다니구치 도모노리 작가는 이번 신간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그림책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기 좋은 대표적인 작품들을 몇 권 더 소개해 드릴게요.

  • <청개구리의 노래>: 작가 특유의 따스한 감성과 다채로운 색채가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전해 주는 매력적인 동화책이에요.

  • <카멜레온의 빙수 가게>: 알록달록한 색감과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크게 키워 주는 인기작이지요.

  • <못 말리는 먹보 고래>: 유쾌하고 엉뚱한 전개를 통해 아이들에게 큰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재미있는 그림책이랍니다.

이 밖에도 <100명의 산타클로스>, <고릴라 아빠의 숲속 구둣방>처럼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도서들이 가득하니, <괴물이 사는 섬>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꼭 한번 만나보시기를 권해 드려요!





#어린이그림책추천 #다니구치도모노리 #괴물이사는섬 #가람어린이출판사 #유아그림책후기 #그림책육아 #잠자리독서 #편견극복그림책 #인성동화추천 #환경보호그림책 #평화그림책 #4세그림책추천 #5세그림책추천 #6세그림책추천 #신간그림책리뷰 #그림책서평 #부모교육 #아이와함께읽기좋은책 #마음이따뜻해지는책 #초등저학년그림책 #유아독서습관 #책육아소통 #그림책읽어주는엄마 #독서교육 #베스트셀러그림책 #가람어린이 #그림책추천리뷰 #신간추천리뷰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미운오리새끼 #그림책 #봉봉옮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 한 권의 시집
나태주 지음 / 샘터사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5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43년간 교단에 머물다 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한 나태주 시인은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이후 1973년 첫 시집 <대숲 아래서>를 비롯해 54권의 창작 시집과 다수의 산문집을 출간하며 소월시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등 수많은 문학상을 휩쓸었다.

일상의 소박한 언어로 서정성을 건드리는 특유의 스타일은 세대를 불문하고 폭넓은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 공주에 위치한 풀꽃 문학관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그는 81세가 된 지금, 스스로 가장 아끼는 대표작들만 엄선하여 샘터 출판사를 통해 신간 <이,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시인이 직접 고른 정수만을 담아냈기에 나태주의 시 세계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물론 오랜 팬들에게도 소장용으로 권할 만하다.


단아한 장정과 응축된 시 세계

책을 받아 들면 먼저 금박 장식이 둘러진 브라운 컬러의 고전적인 양장본의 외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인은 프롤로그에서 김정아 번역가의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라는 책의 심플한 외모에서 영감을 받아 샘터사 김성구 대표에게 직접 연락해 출간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수십 권의 시집을 출간했음에도 오직 한 권의 묵직하고 단아한 대표 시집을 갖고 싶었다는 그의 오랜 소망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대목이다. 방대한 분량 속에 1부부터 3부까지 촘촘하게 배열된 목차를 살피면 한 시인의 평생에 걸친 시적 궤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겉모습은 견고하고 단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언어들은 여전히 세상을 향해 따뜻하고 유연한 시선을 던진다. 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자신의 문학적 발자취를 집대성한 이 기념비적인 저작은 한국 서정시의 커다란 자산이자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귀중한 선물이 된다.


그리움과 자연을 관통하는 시어들

수록된 시편들을 천천히 음미하면 지나온 시절에 대한 짙은 향수와 자연을 향한 경외가 배어 나온다. <외할머니>에서는 "시방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라는 구절과 함께 손자들을 위해 물렁감과 상수리묵을 준비해 둔 노년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생생히 묘사된다. 흰옷과 흰 버선을 신고 고갯마루에 올라 조마조마 기다리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한국인 보편의 원형적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등단작의 맥을 잇는 <등 너머로 훔쳐 듣는 대숲 바람 소리>는 타인의 집 대숲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어린 시절의 상실감과 아픔을 투영한다. 밤사이 놀던 초록 별들의 "퍼렇게 멍든 날갯죽지"나 "심봉사 혼자 앉아 날무처럼 끄들끄들 졸고 있는"과 같은 표현은 바람 소리를 시각적, 청각적인 심상으로 탁월하게 변주한다.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 절기를 노래한 <상강>은 쇠락해 가는 계절 속에서 마른 무덤을 떠올리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차분하게 관조한다. 특히 "열일곱 살 처녀귀신 대추나무 가지에 목을 매달면 우리도 여봐란 듯이 죽어 줘야 할 때"라는 서늘하면서도 체념 섞인 구절은 생의 유한함을 담담히 수용하는 시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삶의 궤적을 껴안는 따스한 시선

나태주 시인의 문학 세계는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생명력을 발견하는 데서 출발한다. 2007년 췌장염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이후.. 그의 시선은 살아있음 그 자체에 대한 커다란 감사로 향했다. <오늘의 약속>에서 덩치 크고 무거운 세상 이야기 대신, 길을 가다 멈춰 선 순간이나 매미 소리 같은 작고 가벼운 우리들의 이야기만 나누자고 속삭이는 이유는 그가 삶의 유한성을 뼈저리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가족과 타인을 향한 연민 또한 시집 곳곳에 묻어난다. <아버지에 대하여>는 거칠어진 손마디와 구릿빛 피부에 잠든 "식물성의 분노"라는 표현을 통해 평생 흙을 일구며 살아온 아비의 희생을 묵묵히 기린다. <공주>에서는 골목길을 걷는 소년 소녀들의 풋풋한 정경을 애틋하게 그려내며, <맥문동을 캐면서>는 하얗고 가여운 꽃의 고독을 외면하지 못하고 돌멩이 하나에도 무심할 수 없는 시인의 다정한 성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꽃으로 피어난 사랑과 위로의 미학

'풀꽃 시인'이라는 애칭답게 이번 시집에서도 꽃을 매개로 한 사랑과 위로의 시편들이 돋보인다. 그에게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유약하지만 고귀한 생명이자 사랑을 투영하는 대상이다. <사랑에 답함>에서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 주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정의하는 대목은 화려한 겉모습보다 내면의 진실을 품어주는 포용의 미학을 보여준다.

나아가 <바로 말해요>에서는 "내일에는 꽃이 없어요 지금이에요"라며 사랑의 감정을 미루지 말고 현재에 충실할 것을 당부한다. 존재 자체로 이미 꽃이 되는 기적은 <꽃 피는 전화>의 "살아서 숨 쉬는 사람인 것만으로도 좋아요"라는 구절에서 절정에 달한다. <내가 꿈꾸는 여자> 역시 발가락과 발뒤꿈치가 맑은 사람을 꽃과 흰 구름에 비유하며 대상에 대한 지극한 경의를 표한다. 떨어지는 꽃잎 아래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꽃잎 아래>까지, 그의 시 속 꽃들은 우리 삶의 곁에서 지친 마음을 다독이는 다정한 힐링 치료제가 된다.


국민 시 <풀꽃>이 건네는 위로와 생명 존중의 철학

시집의 뒤표지를 장식한 <풀꽃>은 나태주 시학의 정수이자 대명사로 자리 잡은 작품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는 단 세 줄의 짧은 문장 속에는 작고 연약한 존재를 향한 애정 어린 시선이 응축되어 있다. 스쳐 지나가기 쉬운 길가의 풀꽃조차 시선을 낮추고 온기를 나눌 때 비로소 특별한 의미를 지니듯, 평범한 우리네 삶 역시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대상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가치를 발견하는 포용력은 개개인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안으로 확장된다. 화려함을 좇는 현대 사회에서 이 시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내재된 결핍을 고스란히 껴안아 주는 보편적 공감대가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삶을 관조하는 겸손함과 애틋한 통찰

책의 말미, 에필로그 <잘하는 일이 없기에>를 읽으면 평생을 시에 매달려 온 노시인의 숭고한 겸손함을 마주하게 된다. 스스로를 모자란 사람이라 낮추며 여전히 시에 목마르다고 고백하는 대목은 그의 문학적 원동력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겸허한 태도는 수록작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했다"라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보듬어 안으라는 구절은 무한 경쟁에 지친 이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또한 <돌아보니 그곳이 천국이었네>를 통해 서툴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이 곧 천국이었음을 깨닫는다. <휠체어 빌려 타고>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회고하며 사무치는 슬픔을 토해내거나, <사랑이거든 가거라>에서 찰나의 감정일지라도 후회 없이 꽃피우기를 응원하는 시편들은 생로병사의 궤적을 넉넉히 품어내는 거장의 원숙한 시선을 보여준다.


나태주 시학의 결정체

샘터 신간 <이, 한 권의 시집>은 단순한 모음집을 넘어선다. 쉴 틈 없이 시를 써온 시인이 스스로 빚어낸 문학적 자화상이자 세상에 건네는 축복의 기록이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사회에서 그의 시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의 연약한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기교 없이도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진정성이 매 페이지마다 살아 숨 쉰다. 평소 시를 즐겨 읽지 않더라도 머리맡에 두고 마음이 지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기 좋다. 이번 특별한 양장본은 곁에 오래 두고 간직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을 발할 것이다. 솔직하고 따뜻한 나태주 시인의 숨결이 종이 위에서 오래도록 맴돈다.





#나태주시집 #이한권의시집 #샘터출판사 #샘터 #시집추천 #나태주시인 #나태주 #양장본시집 #베스트셀러도서 #도서리뷰 #책서평 #필독서 #풀꽃시인 #풀꽃문학관 #서정시추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기록 #소장용도서 #선물하기좋은책 #가을추천도서 #마음안정 #문학작품 #신간도서 #꽃시 #사랑시 #위로글귀 #나태주결정판 #시집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도서추천리뷰 #양장본추천리뷰 #소장가치최고 #평생소장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사과
박솔뫼 외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 시대 한국 문학을 접해야 하는 이유와 이효석문학상의 의미

범람하는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와 속도전의 서사 속에서 현대인들은 종종 타인의 고통이나 미세한 내면의 감정을 지나치기 쉽다. 명료함과 확실성만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오늘날, 한국 소설은 규정할 수 없이 유동하는 우리의 실제 삶을 환기시키는 훌륭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올해로 27회를 맞이한 이효석문학상은 한 해 동안 발표된 단편소설 중 가장 첨예한 성취를 보여준 작품들을 엮어,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모순과 소외된 목소리를 정밀하게 포착한다. 텍스트로 압축된 서사 너머에서 육박해 오는 실재의 질감을 마주하는 경험은 우리가 잃어버린 연대의 감각을 일깨우고,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될 타인의 삶을 끈질기게 상상하도록 이끈다.


정주와 이탈 사이, 비규정적 관계의 생생한 실재: 박솔뫼 <사과>

대상 수상작 박솔뫼의 <사과>는 거대한 사건 없이 인물들의 관계가 서서히 마모되는 과정을 그린다. 카페에서 일하는 애리는 출장을 떠난 선호의 식물에 물을 주며 그의 공간에 머문다. 두 사람은 한때 연인에 가까운 친밀함을 나누었으나 선호가 돌아온 후 점차 만남의 빈도가 줄어들며 낯선 타인으로 돌아간다.

김미정 문학평론가는 이를 두고 방금 지나쳐버린, 아주 짧은 '우리'였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평했다. 인상적인 대목은 애리가 아침에 사과를 깎아 먹으며 사과를 감자로 보는 사람에게 굳이 그것이 사과임을 증명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는 장면이다. 작가는 억지로 관계를 봉합하거나 오해를 풀려 애쓰지 않는다. 엇갈리는 궤도를 그대로 응시하는 특유의 시선은 찰나의 '우리'가 찰나이기에 더욱 반짝인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여운을 남긴다.


시선의 폭력과 가족의 재구성: 성혜령 <하악> & 임솔아 <나의 빈 묘에>

우수작품상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두 작품은 핏줄이라는 견고한 신화에 예리한 질문을 던진다.

성혜령의 <하악>은 임시 공휴일이자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 엄마 금옥과 함께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발달장애 동생 태인을 만나는 자인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조해진 소설가의 심사평처럼 엄마가 꺼내든 임신 테스트기의 시약지를 내려다보는 순간 장애인의 성욕은 이질적이고 끔찍한 현상으로 치부된다. 소설은 연애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보편적 믿음 뒤에 숨겨진 차별과 배제의 정당성을 서늘하게 파헤친다.

강동호 문학평론가가 무덤 이후의 우리라 칭한 임솔아의 <나의 빈 묘에>는 죽은 반려견 조아의 유골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의 문제에서 출발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두 여성의 여정은 혈통 중심의 가부장적 질서를 해체하며 애도를 넘어 가족의 경계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탐구한다.


글쓰기의 윤리와 태연한 상상력: 장희원 <영주>와 정기현 <그거 점 된다>

장희원의 <영주>는 과거 학교 폭력을 당했던 영주가 성인이 된 가해자 무리 중 한 명인 우진을 찾아가며 시작한다. 안보윤 소설가는 검은 얼굴로 눈밭에 서서라는 평을 통해, 영주가 사과를 요구하는 대신 곡기를 끊고 고통받는 자신의 신체를 우진 앞에 집요하게 전시하는 장면에 주목했다. 서서히 말라 죽어가는 마지막을 목격하도록 강제하는 기괴한 제안은 타인의 삶을 짓밟은 우진이 현재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설정과 맞물려 문학이 지녀야 할 윤리를 날카롭게 묻는다. 정기현의 <그거 점 된다>는 최가은 문학평론가가 짚었듯 '왜'를 묻지 않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학원 강사 희정이 집 벽에 박힌 쇠갈고리에 두피를 걸어 허물을 벗는 초현실적 설정은 작가의 태연한 상상력으로 전개된다. 점을 지우기 위해 거죽을 벗을수록 몸집이 줄어드는 희정의 서사는 갈고리라는 내밀한 비밀을 통해 현실을 견뎌내는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블랙코미디로 승화한다.


처절한 생존기와 무가치한 노동: 황시운 <일일업무 보고서>

황시운의 <일일업무 보고서>는 비정한 기업 논리에 갇힌 하반신 마비 장애인 세진의 고통을 직시한다. 의무 고용률을 채우기 위해 고용되었을 뿐 아무도 읽지 않는 메일을 매일 전송하는 세진의 하루는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시작해 15분 간격으로 키워드를 입력하는 무가치한 노동으로 점철된다. 조해진 소설가의 심사평처럼 과장도 엄살도 없지만 그 자체로 처절한 일상이다. 오직 누룽지와 젓갈로 끼니를 때우며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느릿한 늙음에 도달한 노인들을 관찰하는 세진의 사투는 뼈아픈 현실을 고발한다.


2026년 한국 문학의 지형도와 새로운 과제

제27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들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자리에 미세한 개인의 상흔을 채워 넣으며 최근 한국 문학의 뚜렷한 지형도를 대변한다. 작가들은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실재의 감각을 밀도 있게 직조하며 학교 폭력, 장애, 노동 소외 등 외곽으로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증폭시킨다. 섣부른 위로나 인위적인 해피엔딩을 강요하지 않는 태도는 이 시대의 문학이 미화된 허구가 아닌 냉철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두어야 함을 대변한다. 북다 신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은 모순 투성이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만들며, 타인을 향한 연대의 마중물로서 값진 독서 경험을 제안한다.






#이효석문학상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2026 #박솔뫼사과 #한국소설추천 #단편소설리뷰 #성혜령하악 #임솔아나의빈묘에 #장희원영주 #정기현그거점된다 #황시운일일업무보고서 #신간도서추천 #현대문학트렌드 #책리뷰블로그 #독서모임발제 #소설읽기 #북다출판사 #베스트셀러소설 #문학상수상작 #요즘읽을만한책 #소외된목소리 #책스타그램 #독서기록장 #서평단 #한국문학의미래 #비규정적실재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소설추천리뷰 #한국문학추천 #북다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나무의 노래 -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
진재운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명의 본질을 묻는 진중한 기록

진재운 감독, 작가가 펴낸 <나무의 노래: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생각의힘)는 단순한 자연 에세이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 진중한 기록이다. 1995년부터 자연과 기후위기 문제를 취재해 온 진재운은 <물의 기억>, <한반도 환경대재앙 샨샤댐> 등 30편이 넘는 생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며 한국방송대상, 교보생명환경문화상 등을 휩쓴 베테랑이다. 그의 동명 다큐멘터리 <나무의 노래>는 최근 '2026 프리 이탈리아' TV 다큐멘터리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제적인 찬사를 받기도 했다. 작가는 31년간 물의 궤적을 쫓던 중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 3년간 그녀의 삶을 렌즈와 페이지에 담아냈다. 화려한 수식어를 배제하고 현장의 공기와 인물의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포착하는 그의 절제된 문장은 독자가 스스로 생명의 경이로움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이 책은 속도와 소음의 시대에 지친 현대인과 이타적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이름을 지우고 100만 그루의 숲을 내어주다!

책은 총 5부로 나뉘어 전개된다. 4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한 백발 여인이 중남미 니카라과의 거대한 밀림에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온 경이로운 생애를 좇는다. 조선의 왕가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고, 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예술가로 살았던 그녀는 맨해튼과 펜실베이니아, 니카라과를 오가며 홀로 거대한 숲을 조성한다. 놀라운 것은 한 사람의 생애라고 믿기 어려운 화려한 이력을 가졌음에도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기는커녕 철저히 이름을 지우고 자연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녀는 내가 보이기 시작하고 공명심을 내세우면 자연이 위축된다고 말하며, 영화와 책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부각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저 잠깐 머무는 지구에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매진할 뿐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이토록 거대한 숲을 일구어 전 인류에게 내어준다는 사실이 형언할 수 없는 경외감을 자아낸다.


자연 앞에 발가벗겨진 지성의 깨달음

새롭게 조명해야 할 지점은 거대한 숲을 일군 그녀의 지나온 궤적이다. 뉴욕에서 에이즈 환자들의 혈액과 타액을 채취해 원인을 규명하던 치열한 과학자는 왜 모든 이력을 뒤로하고 밀림을 택했을까. 그녀는 스스로 인간이 만든 과학과 지식은 세계를 덮는 임시 '천막'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나무는 가식이 없어요. 언제나 진실을 이야기해요."라는 책 속의 고백처럼, 숲의 파수꾼인 거대한 세이바 나무 앞에서 한 인간은 자신이 쌓아온 이름과 허울을 벗고 발가벗겨진 채 온전한 생명으로 마주하게 된다. 기후 위기로 계절이 뒤죽박죽 엉키고 묘목이 타들어 가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살 때까지 심어야지"라고 답하는 그녀의 단단한 의지는 인간이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숭고한 실천이다. 남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내 삶에 온전한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시적인 통찰은 타인의 기준에 휩쓸리는 우리에게 벼락 치는 듯한 각성을 안긴다.


가시 품은 세이바 나무와 묵시록 같은 현실

인상적인 대목은 그녀가 맹렬한 가시를 품은 거대한 포초테(세이바) 나무 아래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소변을 보고 500달러의 계약금으로 땅을 홀딩하는 장면이다. 엉뚱하면서도 대지와 직접 교감하는 그녀만의 순수한 본성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또한 나무마다 사투리가 다르다는 그녀의 시적인 통찰은 굳어진 사유를 단숨에 깨워버린다. 그녀가 들려주는 숲의 언어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다.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가뭄과 들불에 맞서고 잡초와 싸우며 백 그루 중 스무 그루만 살아남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나무 심기를 멈추지 않는 과정은 한 편의 처절한 묵시록과도 같다. 집에서 솟은 물이 대서양과 태평양 두 바다로 나뉘어 흐른다는 로맨틱한 설명과 빛을 이고 사는 버릇을 배우자며 침묵의 사랑을 실천하는 여인의 모습은 텍스트를 넘어 커다란 파동으로 다가온다.


무소유의 철학이 남긴 푸른 유산

작가는 관찰자로서 그녀의 곁을 묵묵히 걸으며 위대한 영혼이 자연과 어떻게 동화되는지를 섬세히 포착한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온전해지는 삶의 철학을 거쳐 마침내 숲의 호흡과 하나가 되는 에필로그를 읽고 나면.. 우리 각자가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지 뼈아픈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세상은 늘 이름을 알리고 성과를 기록하라고 부추기지만 이름 대신 무성한 가지와 잎을 남기고자 하는 그녀의 묵언 수행은 부끄러움과 함께 신선한 각성을 선사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타인과 지구를 위해 헌신하는 태도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절실하게 배워야 할 가르침이요, 유산임에 틀림없다. 무명의 주인공이 전하는 이 조용한 노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시들지 않는 푸른 자국을 새긴다.


스크린으로 확장된 숲의 호흡, 다큐멘터리 극장 개봉

활자의 감동은 스크린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더욱 생생한 질감으로 대중과 만난다. 진재운 감독이 책 출간과 함께 선보인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나무의 노래>는 '2026 뉴욕 페스티벌 TV & 필름 어워즈'에서 금상 2개와 은상 1개를 거머쥐며 3관왕이라는 놀라운 진가를 입증했다. 작사가 김이나의 차분한 내레이션과 달시파켓의 번역이 더해져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인 공감을 끌어낸다. 2026년 9월 이후 극장 개봉을 확정한 이 영상 기록은 단순한 생태 관찰기를 넘어, 삭막한 현대 사회에 제대로 숨 쉬는 법을 일깨우는 구원과도 같다. 한 사람의 이타적인 행동이 100만 그루의 숲이 되고, 다시 한 편의 진솔한 영상으로 피어나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 곁에 굳건히 뿌리내릴 것이다.


시와 그림으로 남겨진 투명한 감수성, 평생 소장할 이유

책의 말미 부록으로 수록된 이름 없는 주인공의 자작시와 일러스트는 이 도서를 곁에 두고 오래 펼쳐봐야 할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세밀하게 묘사한 파인애플과 커피나무 잎사귀 그림 주변에는 그녀 고유의 필치가 돋보이는 육필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어, 대자연을 바라보는 다정하고 섬세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단정하게 그려진 나리꽃에 관한 시는 파도에 씻겨 바래진 붉은빛을 묘사하며 자연과 동화된 그녀의 맑은 시상을 고스란히 전한다.


3년간의 촬영, 120시간에 걸친 대화, A4 용지 1,300쪽 분량의 방대한 기록을 끈질기게 엮어내며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한 저자의 집념은 결국 한 인간이 우주, 자연과 교감하며 남긴 예술적 자취를 온전히 발굴했다. 자신의 성취를 과시하는 대신 조용히 숲의 일부가 되기를 자처한 숭고한 생애, 그녀가 남긴 서정적인 글과 그림 묶음은 속도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시들지 않는 위안을 건넨다.





#나무의노래 #진재운감독 #생각의힘출판사 #나무의노래서평 #다큐멘터리영화추천 #나무의노래개봉 #뉴욕페스티벌3관왕 #한국방송대상작품상 #김이나내레이션 #환경에세이추천 #자연다큐멘터리 #니카라과숲 #기후위기해결 #생태주의도서 #나무심기캠페인 #인문학베스트셀러 #책리뷰그램 #도서서평단 #독서기록장 #마음이편안해지는책 #삶의의미찾기 #이타적인삶 #환경보호실천 #추천도서목록 #평생소장각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책추천리뷰 #도서추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펫페페페
짐리원 지음 / 아작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작 신간, 짐리원 소설집 <펫페페페>는 다가오는 기후 위기와 비인간 생명체, 변형되는 인간의 신체를 낯설고 다정한 시선으로 조명하는 작품이다. 단편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으로 2023년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받으며 역량을 입증한 작가는 <과학동아>에 <엔딩의 발견>, <여름농장의 비밀>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 왔다. 저자는 소개 글을 통해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조금이나마 마음이 밝아지는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는 다짐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창작 배경은 멸망을 앞둔 세계 속에서도 일상의 평범한 순간들을 애틋하게 기록하려는 밀도 있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생태계의 붕괴나 신체 훼손 같은 디스토피아적 설정 앞에서도 거창한 영웅주의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작고 연약한 연대를 내세운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파국 속에서도 희망의 단초를 발견하길 원하는 독자들에게 권유할 만한 책이다.


상실을 애도하고 생명을 돌보는 다채로운 서사

<펫페페페>에는 총 10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무기여 안녕>은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공터에 서식하는 투명동네이무기를 지켜보는 노아의 고뇌를 다루며 폭력과 돌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짚어낸다.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은 기후 대격변 이후 서늘한 가을 날씨를 느끼기 위해 미래에서 온 여행자의 애틋한 여정을 그린다. <모든 코끼리가 아스팔트 길을 건너고 나서>는 과거 데니소바인이 지구 생태계 재구축을 위해 빌려 간 울리매머드 7만 마리와 털코뿔소 9만 마리를 호모 사피엔스에게 반환하려 하자 민지와 은수가 겪는 딜레마를 보여준다.

<목도리와 우주적 불행의 이야기>는 화재로 사망한 재현과 남겨진 견우, 아영의 사연을 통해 부분적 생명형 부정 상태의 영혼을 위로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특히 전생의 기억을 저장하는 'RnAD'라는 설정과 환생의 확률을 계산하며 다가오는 우주적 불행에 맞서는 인물들의 모습이 여운을 남긴다. 영혼이 풍선처럼 떠다니는 영혼철을 배경으로, 영혼을 곶감처럼 말려 먹는 기이한 식습관을 지닌 연우와 그를 지켜보는 해진의 이야기를 다룬 <연우의 레시피>는 기상천외한 설정 속에서도 십 대들의 불안한 심리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기억과 사회>는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기후 우울증을 피하고자 과거의 감각을 지우는 딥클렌징 시술의 역설을 서늘하게 포착하며, <수면예찬>은 생태계 파괴를 멈추고자 인류 전체를 무기한 수면에 들게 하는 극단적 처방을 다룬다. 인간의 노동 효율,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연 손을 절단하고 칩을 삽입하여 자동 수작업을 구사하는 기괴한 미래를 그린 <손>은 인공 핸드에 적응하여 변모하는 선오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비정한 이면을 비춘다. 몸에 돋아난 진짜 날개를 떼어내려는 영이와 이삭의 사투, 가짜 날개를 패션처럼 소비하는 '엔젤코어' 유행을 대비시킨 <날개주의보> 역시 타자의 신체를 규정짓는 사회적 폭력성을 통찰력 있게 고발한다.


통제를 넘어선 연대, 표제작 <펫페페페>의 공존 방식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표제작 <펫페페페>이다. 거대 기업 영생 바이오의 비밀 실험으로 인해 주요 플라스틱인 PET와 폴리에틸렌 등을 녹이고 분해할 수 있게 된 오리(펫페 & 페페)들을 구출하려는 예나와 보현의 분투가 중심을 이룬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생명을 도구화하는 어른들의 세계에 맞서 예나는 흰 오리 페페를 가방에 숨기고 달린다. 인간이 정해놓은 안전한 결말을 포기하더라도 새롭게 탄생한 생명체 스스로가 생존 방식을 결정짓도록 옥상 끝에서 오리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선택을 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통제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생명들을 기꺼이 놓아주는 두 소녀의 결단을 통해 드러난다. 안전한 실험실의 울타리를 벗어나더라도 오리가 직접 창공을 비행하도록 돕는 행위는 억눌린 자유를 되찾는 쾌감을 선사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빚어진 참상 속에서도 타자를 향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연대 의식이 잔잔한 파동을 남긴다.


종말의 문턱에서 마주한 눈부신 일상

아작 신간 <펫페페페>는 거대한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다루면서도 파괴적인 스펙터클에 의존하지 않는다. 뒤표지에 적힌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이유다"라는 문장처럼 멸망의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과 남겨진 사람들의 체온에 집중한다. "이런 날씨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해"라는 대사는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무력감을 느끼기보다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사소한 친절을 건네는 힘을 믿는 작가의 태도는 굳건하다. 일상적인 공간인 서울의 골목과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기묘하고 따뜻한 서사들은 서서히 끓어오르고 넘치고 무너지는 지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준다. 투명한 이무기와 플라스틱을 먹는 오리들이 펼치는 도시생태 SF를 통해.. 사라지는 계절을 지나 아직 오지 않은 여름으로 향하는 짐리원의 세계를 직접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펫페페페 #짐리원 #아작출판사 #SF소설 #SF소설추천 #기후위기 #디스토피아소설 #소설집추천 #한국소설 #신간도서 #책리뷰 #서평 #독서기록 #책추천 #환경소설 #문윤성SF문학상 #올림픽공원산책지침 #엔딩의발견 #과학동아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그램 #주말독서 #기후변화 #책베스트셀러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책추천리뷰 #소설추천리뷰 #생태환경SF #도시생태SF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