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사들 그래픽 노블 : 그림자족의 추방자 전사들 그래픽 노블
에린 헌터 외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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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어린이 신간, 에린 헌터 판타지 소설 <전사들> 시리즈의 그래픽 노블 <그림자족의 추방자>는 무자비한 그림자족 지도자 브로큰스타의 폭정에 맞서는 나이트펠트와 원로 고양이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다루고 있어요. 천식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원로가 된 나이트펠트는 젊고 강한 고양이만 우대하는 비정한 규칙 탓에 진영 밖으로 쫓겨나게 된답니다. 그는 척박한 변두리에서 쫓겨난 늙고 병든 동료들을 이끌며 배고픔과 굶주린 여우의 습격 속에서도 결코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아요. 반면 브로큰스타는 너무 어린 새끼 고양이들(~포)마저 훈련병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게 만들고, 종족의 충실한 치료사 옐로팽에게 살해 누명을 씌워 쫓아내는 등 참혹하고 비정한 상황으로 내몰아요. 부당한 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약자를 돌보며 끈끈하게 연대하는 나이트펠트와 원로들의 모습은 진짜 리더의 자격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요.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용기,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전사들 시리즈를 사랑하는 기존 팬들은 물론 새롭게 판타지 세계에 입문하는 어린이 독자 모두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저자 그룹 에린 헌터가 창조한 광활하고 야생적인 고양이들의 세계를 비주얼한 카툰으로 재탄생시킨 <전사들> 그래픽 노블 <그림자족의 추방자>는 텍스트로만 상상하던 그림자족의 암흑기를 손에 잡힐 듯 생생히 그려낸 특별한 작품이에요. 추방당한 원로 나이트펠트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제임스 L. 배리의 역동적인 작화가 이루는 훌륭한 조화가 돋보여요.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종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브로큰스타의 잔혹한 통치 이념은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투영하며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요. 특히 힘이 빠지고 병든 원로들이 차가운 눈밭으로 밀려나 여우의 위협에 맞서 동료 풀클라우드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소외된 자들의 연대를 드라마틱 하게 보여준답니다.


종족 고양이들이 마침내 폭주하는 지도자에게 맞서며 그가 친아버지인 래기드스타를 비롯한 동족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대목은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요. 책 말미, 동족을 위기로 내몬 전쟁광 브로큰스타가 래기드스타와 별족의 인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되는 전개는 놀라우면서도 다소 부당하게 느껴진답니다. 반면 핍박받는 그림자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정의를 행사한 나이트펠트가 정작 별족들에게 완전한 승인을 받지 못하는 애매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은 아쉬움과 억울함을 자아내요.


과연 큰 상처를 입은 그림자족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나이트펠트는 시련을 딛고 동족의 온전한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브로큰스타는 클로페이스 등과 힘을 합쳐 훗날 어떤 방식으로 끔찍한 복수를 향해 움직일까요? 그래픽 노블 <그림자족의 추방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남기며 화려한 액션 장면 위주로 흘러가기 쉬운 만화의 한계를 넘어 등장인물들의 갈등, 투쟁을 탄탄한 서사로 엮어냈어요.


텍스트의 장벽을 낮추고 속도감 있는 연출을 더해 평소 글밥이 많은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단숨에 빠져들 수 있는 매력적인 판타지 도서랍니다. 잔혹한 폭력, 온갖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트펠트의 조용한 카리스마를 통해 참된 리더십의 가치를 깨닫게 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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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엄금 엄금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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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이자 추리 소설가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치넨 미키토 메디컬 미스터리를 넘어 모큐멘터리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저자는 <가면병동>이나 아메쿠 타카오 시리즈 등 전작에서 보여준 치밀한 의학적 지식과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신간 <열람 엄금>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무너뜨린다. 출간 전부터 일본 독서 미터 '읽고 싶은 책'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신문 기사, 진단서, 범행 현장 지도, 기괴한 스케치 등 시각적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취한다. 이는 독자가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실제 엽기적인 범죄의 1급 기밀문서를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며 텍스트가 주는 공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덕분에 실제 사건을 취재하고 조사하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며, 끝까지 팽팽한 텐션을 느끼며 술술 읽을 수 있다.


작품의 중심에는 대낮 도쿄 다마시 축제 현장에서 도끼를 휘둘러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프리랜서 작가 야에가시 신야가 있다. 이야기는 정신 감정 전문의 우에하라 가스미가 나흘에 걸쳐 그를 면담하는 인터뷰 기록으로 전개된다. 야에가시가 남긴 진료 기록과 극단적인 발언들은 그가 앓고 있는 극심한 피해 망상과 환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계속 감시당하고 있다", "곳곳에 있었던 눈"이라는 야에가시의 증언과 수많은 눈알이 그려진 기괴한 스케치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선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한다.


서로를 감시하도록 설계된 비밀 연구소의 도면이나 정체불명의 여자가 배달한 캔 커피 사진 등 중간에 삽입된 사진 자료, 기사들은 야에가시의 망상이 단순한 정신 질환의 산물인지 아니면 실재하는 기이한 현상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열람 엄금>의 가장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텍스트의 후반부에 도사린다. 엽기 살인마를 분석하던 정신 감정 전문의 우에하라 가스미가 어느 순간 니시아자부 상가 건물 방화 대량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전락하여 또 다른 정신과 전문의인 우카가미 하루코에게 심문을 받는 구조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관찰자와 피관찰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 기막힌 반전은 서사가 쌓아 올린 불안감을 단숨에 폭발시킨다. 광기를 들여다보던 이가 결국 광기에 전염되고 침해되는 듯한 묘사는 치넨 미키토가 짠 정교한 덫에 걸려들었음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열람 엄금>이 선사하는 공포의 핵심은 책을 읽는 이들마저 서사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영리한 설계에 있다. 책 말미.. 검은 배경 위로 선명하게 찍힌 "난 늘 당신을 보고 있어."라는 문장처럼 소설은 페이지 밖의 현실을 향해 섬뜩한 시선을 던진다. 타인의 광기와 비극이 담긴 비밀스러운 문서를 훔쳐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관음증적 작용을 일으키며 어느새 독자들은 수많은 눈알로 이루어진 괴물 즉 '도메키의 눈'의 일원이 되어버린다. 방관하는 태도로 페이지를 넘기던 이들은 자신이 이 기괴한 정신적 실험에 동참한 가해자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실감에 빠지게 된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가 금기를 깨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유희가 되는 작품이다. 책의 서두에 명시된 "이 기록은 여러분에게 예기치 못한 정신적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경고문은 가벼운 수사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불길한 테마 그 자체다. 누군가의 내면을 텍스트라는 안전한 매개체를 통해 엿본다고 믿었던 우리는 책을 덮는 순간.. 자신 역시 그 기이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여운에 사로잡힌다.


치밀하게 짜인 심리 스릴러이자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장르 소설을 찾는 이들에게 지체 없이 권할 만한 결과물이다. 권말에 예고된 대량 살인사건의 씨앗이 되는, 치넨 미키토의 다른 소설 <스와이프 엄금>에 대한 기대감 역시 이 책이 남기는 또 다른 흥미로운 떡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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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여행 을유세계문학전집 150
로런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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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18세기의 문제작

영문학사에서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로런스 스턴의 마지막 저작 <감성 여행>이 을유세계문학전집 150번째 도서로 출간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스턴은 우리의 관심을 외부 세계에서 내면으로 옮겨 놓는다"라고 평했으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아주 작은 사건 하나로도 인간 본성의 가장 은밀한 구석을 드러내는 비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라블레와 세르반테스로 이어지는 희극 정신의 계보를 이으며 토마스 만, 제임스 조이스, 살만 루슈디 등 후대 거장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 작품은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초역본이라는 점에서 출간 의의가 남다르다.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인간 심리에 대한 탐구서로서 소장 가치를 증명한다.


불완전성을 긍정하는 희극 정신의 탄생

저자 로런스 스턴은 1713년 아일랜드 클론멜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요크셔 지방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생 성공회 목사로 살았던 그는 1759년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를 발표하며 유럽 전역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연속성 있고 결말이 정해진 기존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자아 패러디를 동원한 파격적인 스타일은 당대의 엄숙한 계몽주의를 전복시켰다.

평생 폐 질환과 사투를 벌였던 스턴은 생애 마지막 1년을 앞두고 자신을 구원할 저작이라 명명한 <감성 여행> 집필에 착수한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희극 정신을 잃지 않았던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찰나의 유머와 따뜻한 인간애를 원고에 새겼다. 총 4권으로 기획된 이 여정은 1768년 2월 제1권과 2권을 출판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작가가 세상을 떠나며 결국 미완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 미완의 상태는 오히려 삶의 유한성을 긍정하는 스턴의 철학을 역설적으로 대변한다.


충동적인 출발과 길 위의 다채로운 군상

소설의 서사는 즉흥적인 계기로 촉발된다. 주인공 요릭이 일상적인 대화 중 프랑스인들의 정리 방식을 칭찬하자 하인이 "프랑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p.9)라며 무심코 승리감에 차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도버 해협 너머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요릭은 하인의 말에 발끈하여 그 길로 셔츠 여섯 벌과 검은색 실크 바지 단 벌 만을 챙겨 도버행 역마차에 올라탄다.

이렇게 시작된 요릭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정은 명승고적 감상에 치중하는 일반적인 그랜드 투어와 궤를 달리한다. 그는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여행자 스멜펑거스(Smelfungus, 당대의 여행 작가 토바이어스 스몰릿을 풍자, 저격한 인물)를 경계하며 외부 세계를 비판적인 잣대로만 재단하는 편협함, 옹졸함을 거부한다. 대신 길 위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타자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감정적 교류에 주목한다.


타자를 향한 에로스와 연민의 시선

요릭의 여행은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한 버나드 맨더빌의 냉소적 세계관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파리의 상점에서는 아름다운 부인 곁에 앉아 능청스레 맥박을 짚어보고 여권이 없어 곤경에 처했을 때는 어느 백작에게 자신을 셰익스피어의 어릿광대 요릭이라 소개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물랭에서 만난 소녀 마리아와의 일화가 눈에 띈다. 실연의 상처로 정신이 무너져 내린 채 반려견 곁에서 피리를 부는 마리아를 보며 요릭은 그녀의 슬픔에 동화되어 함께 눈물을 훔친다. 고통받는 타인의 삶에 스며들어 정서적인 연대감을 쌓아가는 그의 시선은 현대적인 감수성을 자랑한다.


시대를 초월한 가장 자유로운 작가의 멈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죽음으로 파생된 돌발적이고 묘한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사보아의 한 작은 여관에서 방이 부족해 피에몬테 출신 숙녀, 그녀의 하녀와 부득이하게 한 방을 쓰게 된 요릭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약속하는 조약을 맺는다. 하지만 밤새 논쟁의 열기가 오르며 조약은 위태로워지고 혹여나 적대적인 상황이 벌어질까 두려워 좁은 통로로 기어 나온 하녀를 향해 요릭이 무심코 손을 뻗는다. "내 손에 닿은 것은 이 하녀의-"라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문장을 끝으로 이야기는 돌연 마침표를 찍는다.


당초 계획했던 이탈리아에서의 행보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진 이 절묘한 여백은 독자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한다. 역자 김정희의 해설처럼 이는 "완성도가 아니라 삶의 파편성을 수용하고 미완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 내는 겸허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스턴을 가리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유로운 작가라고 극찬했듯.. 인간 본성의 나약함과 따뜻함을 유쾌하게 그려낸 <감성 여행>은 진정한 소통, 여행의 의미를 묻는 고전 기록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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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탐스러움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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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다정함이 파고든 발칙하고 도발적인 세계

2025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정기현 작가의 신작 소설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현대인의 고립을 위로하는 흔한 힐링물의 공식을 영리하게 배반한다. 2023년 웹진 림(LIM)에 <농부의 피>를 발표하고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으로 주목받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지닌 아찔한 매력과 위험성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이 책은 삭막한 도심 속 이웃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어떻게 가장 내밀하고 전복적인 관계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도발적으로 그려냈다.


705호와 706호, 경계를 지우는 사물들

2024년 마지막 날, 충주를 떠나 서울 반포의 아파트 705호로 이사 온 화자 기현은 706호의 이웃 기은, 준영과 마주한다. 철저히 고립된 1인 가구의 삶을 예상했던 기현의 원칙은 이들의 무람없는 다정함 앞에서 맥없이 허물어진다. 이사 과정에서 기현이 버린 가구들을 기은과 준영이 다시 706호로 들이면서 그들은 안면을 트고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창문을 통해 감자수프를 나누며 서로의 시공간을 침범하기도 하면서..

사물과 음식이 오가는 사이 세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이웃사촌을 넘어선다. 낯선 채로도 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현에게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친해지고 싶어서 수상해지는 마음의 발단이 된다.


이야기의 폭력성 & 동장의 죽음

관계의 밀도가 짙어지는 가운데, 세 사람은 래미안 단지의 '한마을 한마음 대축제' 연극 무대를 준비하게 된다. 기현은 희곡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최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 등을 읽으며 가상의 '동장 살인 사건'을 극본으로 엮어낸다. 하지만 축제를 전후로 실제 동장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소설은 서늘한 국면을 맞이한다. 강보원 평론가가 지적했듯.. 이는 '이야기가 지닌 위험성'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기현 일행은 자신들의 연극이 동장의 죽음에 불씨를 지폈을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부채감에 사로잡히며 허구의 이야기가 현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아찔한 경험을 겪는다.


우리는 '이웃 그다음'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도달하는 파격적인 지점은 기현과 기은, 준영이 꿈꾸는 새로운 연대의 형태에 있다. 기현은 혈연이나 법적 제도로 묶인 가족을 넘어, 세 사람이 성적인 만족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느슨하고도 급진적인 관계를 상상한다. 강보원 평론가가 언급한 "한 사람이 피곤한 날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성적인 만족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발칙한 상상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함, 공공연한 미덕이 된 시대에 인간이 어디까지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는지를 묻는 도발적인 질문이다. 함윤이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배신하기에 너무 사랑스럽고 탐낼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동봉된 작가의 친필 편지에서 "글을 쓰고 바로 옆집 분과 이웃이 되었다"라는 고백은 소설의 힘이 현실로 침투하고 전이되는 기적을 방증한다.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고립을 자처하는 현대인들에게 색다르고 이타적인 관계를 꿈꾸게 하는,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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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다면
고사카 루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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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80만 명의 독자를 울린 베스트셀러 <남은 인생 10년>의 저자 고사카 루카의 미발표 유작 <살아만 있다면>을 펼쳤다. 어릴 때부터 소설 쓰기를 사랑했던 저자는 불치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는 중에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다. 문고본 출간을 앞둔 2017년 2월.. 향년 39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으나 이후 유가족이 컴퓨터에서 이 원고를 발견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시한부 삶을 살았던 작가가 생의 끝자락에서 길어 올린 치열한 의지를 담고 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도 삶을 향한 갈망을 놓지 않았던 저자의 자전적 고백과도 같은 이 작품은 절망 속에 웅크린 이들에게 어떻든 살아갈 이유를 건넨다.


블랙홀 같은 여자와 폐허 같은 남자가 빚어내는 로맨스

소설의 화자이자 이야기의 출발점은 초등학교 6학년 소년 지카게다. 부당한 학교 폭력에 시달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까지 하던 지카게는 심장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이모 하루카의 병실에서 수신인이 비어 있는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한다. 소년은 사랑하는 이모를 위해 신칸센을 타고 홀로 오사카로 향한다. 편지의 주인공인 하네다 아키하를 만나며 서사는 7년 전 하루카의 찬란하고도 아팠던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아키하 앞에 나타난 블랙홀 같은 여자 하루카.. 그녀 앞에 나타난 폐허 같은 남자 아키하는 미친 듯이 열렬한 사랑에 빠져든다. 작가는 봄을 뜻하는 하루카와 가을의 아키하, 겨울을 상징하는 언니 후유쓰키 그리고 휠체어를 타는 여름의 나츠메까지 사계절의 이름을 인물들에게 부여하며 얽히고설킨 가족애와 가혹한 운명의 굴레를 예리한 필치로 그려낸다.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처절한 사랑 이야기

인상적인 대목은 상처 입은 두 영혼이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며 처절한 사랑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방 안을 장식한 싸구려 형광 스티커가 은하수처럼 흘러내리던 밤..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경이로움 속에서 아키하가 처음으로 곁에 있는 사람의 체온에 가슴 떨림을 느끼는 장면은 섬세한 결을 지닌다. 화려한 외모 뒤에 죽음의 그림자를 안고 있던 하루카는 냉담한 아키하를 향해 맹목적으로 직진한다. 지켜야 할 것과 버릴 수 없는 것 사이에서 결국 서로를 놓아버렸지만, 끝난 줄 알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지카게가 찾아낸 편지를 통해 다시금 박동하기 시작한다. 죽음을 향해 걷던 12살 소년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추적하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아이러니는 짜임새 있는 구조 속에서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유일무이한 소장 가치를 지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걸작

고사카 루카의 미발표 유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책장을 넘기면 활자 하나하나에 깃든 작가의 숨결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작가가 병실에 갇힌 하루카의 입술을 빌려, 내일을 포기하려 했던 치카게의 발걸음을 통해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는 페이지 곳곳에 선명히 새겨져 있다.

"반드시 다시 이어질 수 있을 거야. 살아만 있다면."이라는 문장은 어떤 거대한 절망이 닥쳐와도 생을 포기하지 말라는 작가의 절박하면서 숭고한 유언이다. 이 작품은 시한부 소재의 단조로운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삶을 향한 눈부신 찬가로 승화시켰다. 생의 감각이 무뎌지거나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을 때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기에 개인 서재에 꽂아둘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탄생한 <살아만 있다면>..

쉽게 잊히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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