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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의 탐스러움 ㅣ 픽셔너리 2
정기현 지음 / 북다 / 2026년 5월
평점 :
낯선 다정함이 파고든 발칙하고 도발적인 세계
2025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정기현 작가의 신작 소설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현대인의 고립을 위로하는 흔한 힐링물의 공식을 영리하게 배반한다. 2023년 웹진 림(LIM)에 <농부의 피>를 발표하고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으로 주목받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지닌 아찔한 매력과 위험성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우리는 이웃이다. 그리고 나는 이웃 그다음이 있다고 자꾸만 믿게 되는 것이다"라는 문장처럼.. 이 책은 삭막한 도심 속 이웃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어떻게 가장 내밀하고 전복적인 관계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도발적으로 그려냈다.
705호와 706호, 경계를 지우는 사물들
2024년 마지막 날, 충주를 떠나 서울 반포의 아파트 705호로 이사 온 화자 기현은 706호의 이웃 기은, 준영과 마주한다. 철저히 고립된 1인 가구의 삶을 예상했던 기현의 원칙은 이들의 무람없는 다정함 앞에서 맥없이 허물어진다. 이사 과정에서 기현이 버린 가구들을 기은과 준영이 다시 706호로 들이면서 그들은 안면을 트고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창문을 통해 감자수프를 나누며 서로의 시공간을 침범하기도 하면서..
사물과 음식이 오가는 사이 세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이웃사촌을 넘어선다. 낯선 채로도 다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현에게 해방감을 주는 동시에 친해지고 싶어서 수상해지는 마음의 발단이 된다.
이야기의 폭력성 & 동장의 죽음
관계의 밀도가 짙어지는 가운데, 세 사람은 래미안 단지의 '한마을 한마음 대축제' 연극 무대를 준비하게 된다. 기현은 희곡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최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손턴 와일더의 <우리 읍내> 등을 읽으며 가상의 '동장 살인 사건'을 극본으로 엮어낸다. 하지만 축제를 전후로 실제 동장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소설은 서늘한 국면을 맞이한다. 강보원 평론가가 지적했듯.. 이는 '이야기가 지닌 위험성'이 발현되는 순간이다. 기현 일행은 자신들의 연극이 동장의 죽음에 불씨를 지폈을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부채감에 사로잡히며 허구의 이야기가 현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는 아찔한 경험을 겪는다.
우리는 '이웃 그다음'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이 도달하는 파격적인 지점은 기현과 기은, 준영이 꿈꾸는 새로운 연대의 형태에 있다. 기현은 혈연이나 법적 제도로 묶인 가족을 넘어, 세 사람이 성적인 만족까지도 공유할 수 있는 느슨하고도 급진적인 관계를 상상한다. 강보원 평론가가 언급한 "한 사람이 피곤한 날 다른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성적인 만족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발칙한 상상은..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당연함, 공공연한 미덕이 된 시대에 인간이 어디까지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는지를 묻는 도발적인 질문이다. 함윤이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배신하기에 너무 사랑스럽고 탐낼 수밖에 없는 매력을 지녔다. 동봉된 작가의 친필 편지에서 "글을 쓰고 바로 옆집 분과 이웃이 되었다"라는 고백은 소설의 힘이 현실로 침투하고 전이되는 기적을 방증한다.
<이웃집의 탐스러움>은 고립을 자처하는 현대인들에게 색다르고 이타적인 관계를 꿈꾸게 하는, 의미 있는 문학적 성취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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