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위의 만찬
이용재 지음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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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 신간, 이용재 평론가 지음 <필름 위의 만찬>은 17년 차 음식 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과 해박한 지식이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흥미로운 안내서다.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미국 조지아공과대학교 건축 대학원을 졸업한 저자는 애틀랜타의 건축 회사에서 일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이후 음식 평론가이자 번역가로 전향하여 조선일보, 한국일보, 에스콰이어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며 전문성을 입증했다. <외식의 품격>, <한식의 품격>, <냉면의 품격> 등 한국 식문화 비평 연작을 비롯해 <조리 도구의 세계>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고, 세계적인 요리책 <실버 스푼>, <뉴욕의 맛 모모푸쿠> 등을 번역하며 자신만의 영역, 스타일을 구축했다.


최근 여러 채널을 통해 영화를 미식의 관점으로 해체하는 시도를 선보인 그는 이번 저서에서 음식을 매개로 명작을 기억하는 감상법을 제안한다. 잘 다듬어진 문장과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책은 독자에게 허기와 욕망, 불안과 공감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환기하며 익숙했던 장면마저 신선하게 되살려내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스크린에 깃든 욕망과 억압의 미학

책은 크게 욕망과 허기, 권력과 기만, 불안과 위로, 공감과 우정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 서사 속 식음료의 상징을 탐구한다. 1부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나홍진 감독의 2010년 개봉작 <황해>에 등장하는 처절한 먹방이다. 타향살이의 설움과 쫓기는 자의 본능이 응축된 구남(하정우 분)의 식사 장면, 특히 여러 장의 김을 한꺼번에 입에 욱여넣는 퍼포먼스는 단순한 섭취를 넘어 생존을 향한 맹렬한 욕망을 보여준다. 추가로 황해 편의점 정식, 감자 먹방에 대한 나름의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는다. 후반부 면정학 일당들이 빈집에서 커다란 뼈다귀를 뜯고 곯아떨어지는 장면은 이후 벌어질 잔혹한 칼부림 학살 이전의 정적이고 평화로운 잠시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음식은 때로 폭력과 억압의 도구로 변모하기도 한다. 박찬욱 감독의 2003년 작품 <올드보이>에서 오대수(최민식 분)가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영문도 모른 채 갇혀 먹어야만 했던 중국집 군만두가 그 적나라한 예다. 바삭함과 기름기를 머금은 튀김만두는 누군가의 일상을 통제하고 파괴하는 소름 돋는 장치로 작용하며 관객의 뇌리에 각인된다.


권력의 쟁취부터 따스한 연대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식음료는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지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2006년 새롭게 리부트 된 007 시리즈 <카지노 로얄>에서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 분)가 주문하는 '베스퍼 마티니'는 긴장감 넘치는 도박장의 주도권을 단숨에 가져오는 권력의 표상이다. 반면 2022년 화제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등장하는 '에브리씽 베이글'은 세무 조사와 이혼 위기라는 엉망진창인 현실 속에서 다중 우주의 막대한 짐을 짊어진 에블린(양자경 분)의 허무와 혼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독보적인 오브제다.

이러한 매개체는 계층과 인종의 벽을 허무는 연대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피터 패럴리 감독의 2018년 영화 <그린 북>에서 거친 이탈리아계 백인 운전사 토니(비고 모텐슨 분)와 엘리트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분)가 켄터키프라이드치킨(KFC)을 나눠 먹는 장면은 흑백 분리주의 시대의 편견을 가로지르며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따스한 분기점을 만들어낸다.


스크린을 장악한 관능과 기묘한 미식의 향연

책이 안내하는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나만의 영화 속 만찬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18년 개봉작 <어느 가족>에 등장하는 뜨끈한 나베 국수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비가 쏟아지는 날, 누추하고 허름한 집안에서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노부요(안도 사쿠라) 부부가 냄비를 마주하고 국수를 나눠 먹다 맹렬한 정사로 이어지는 신이다. 바닥을 뒹굴다 자칫 솥단지를 엎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 격렬하고 에로틱한 이 장면은 식욕과 성욕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절묘하게 교차하며 에로틱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가브리엘 액셀 감독의 1987년 작품 <바베트의 만찬>이 선사하는 기묘하고도 성스러운 정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금욕적이고 청교도적인 덴마크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프랑스 최고 셰프 출신인 바베트가 복권 당첨금을 모두 쏟아부어 차려낸 일생일대의 요리는 예술에 가까운 경지를 보여준다. 시각을 압도하는 미식의 향연이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을 사람들의 경계를 허물고 영혼을 구원하는 과정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반면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1989년 영화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는 요리를 가장 잔혹한 복수극의 도구로 비튼다. 폭력적인 남편이자 도둑인 알버트에게 연인을 잃은 아내 조지나가 요리사 리차드와 공모하여 연인의 시신을 거대한 오븐구이로 만들어 남편에게 먹이는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식탐과 탐욕, 인간의 추악한 이면을 기괴한 색채와 미장센으로 그려낸 이 인육 만찬은 미식이라는 행위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파괴적인 은유를 제시한다.


미식 평론가의 눈으로 재구성한 시각적 체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마치 짜임새 있는 코스 요리를 대접받은 듯한 포만감이 밀려온다. 저자는 한 끼의 식사에 담긴 인간의 다층적인 심리를 건축학도 출신 특유의 정밀한 시선으로 해체하고, 미식 평론가의 풍부한 감각으로 다시 직조한다.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코끝을 맴도는 요리의 냄새를 텍스트로 맡고 싶은 독자와 시네필 모두에게 <필름 위의 만찬>은 스크린 위 이미지를 새로운 감각으로 번역해 주는 특별한 장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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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을 모으는 내 아이의 첫 ETF -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절세 효과 만점의 ETF 투자법
미즈쑤(김수연)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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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향기 신간, 미즈쑤(김수연) 저자의 <1억을 모으는 내 아이의 첫 ETF>는 자녀 경제 교육의 실질적인 지침을 제공하는 책이다. 저자는 23년 차 직장인이자 미국 회계사이며 현재 독일계 회사 재무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금융 전문가다. 전작 <이제 막 복직한 김 과장에게>, <직장인 연금저축으로 1억 모으기> 등을 통해 직장인과 부모의 현실적인 재무 관리를 조언해 왔다. 저자는 자신의 실패와 시행착오를 가감 없이 공개하며 읽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초등학생도 단숨에 이해하는 맞춤형 경제 용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어렵게 느껴지는 금융 용어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주식 시장의 다채로운 종목이 담긴 ETF를 사과와 바나나 등 여러 과일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과일 도시락'에 비유한다. 또한 지수(Index)는 '우리 반 전체 성적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는 성적표'로 설명하며 거래량은 '이 도시락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 알려주는 숫자'로 명쾌하게 정의한다. 아이에게 경제를 가르치고 싶어도 용어 설명부터 막막했던 부모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길잡이가 되어준다.


부자 DNA를 심어주는 구체적인 실천 사례

책은 이론에 머물지 않고 일상에서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다. 특히 무제한 신용카드를 쓰는 중학생 아이의 에피소드는 부모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무작정 돈이나 카드를 쥐여주는 것은 올바른 경제 교육이 될 수 없다. 저자는 한정된 용돈 안에서 스스로 소비를 통제하고 선택/결정의 주체가 되는 훈련이야말로 진정한 경제 교육임을 강조한다. 통장에 찍힌 87원의 이자를 보며 예금의 한계를 깨닫고 자녀 명의의 투자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 역시 생생한 실전 팁을 제공한다.


사교육 대신 머니트리를 키우는 과감한 결단

한국 사회에서 부모로 살아가며 사교육의 불안감, 압박감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다. 저자 역시 아이가 수학 학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 불안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학원비로 쓰일 돈을 투자금으로 전환하여 아이만의 머니트리(Money Tree)를 심어주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당장의 성적표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어떻게 일하고 자라고 순환하는지 눈으로 확인시켜 주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훨씬 가치 있는 유산이라는 것이다.


내 아이의 첫 투자로 ETF가 지니는 중대한 의미 & 목적

저자는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유산은 현금이 아니라 '돈을 다루는 감각'이라고 단언한다. 자녀 명의로 첫 ETF를 매수하는 행위는 돈을 단순한 소비의 수단이 아닌 성장의 도구로 인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아이들은 부모가 모아준 주식을 보며 시간이 누적되어 자본이 스스로 증식하는 복리의 마법을 리얼하게 체험한다. 개별 기업의 파산 위험을 피하고 시장 전체의 성장에 탑재하는 ETF는 긴 시간이라는 아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와 결합할 때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다. 결국 첫 ETF 투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계좌 잔고를 불리는 것을 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경제적 자존감 & 노하우를 길러주는 데 있다. 여기에 연금저축계좌와 ISA 계좌 등 절세 계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과세 이연 혜택까지 챙긴다면 아이의 미래를 위한 견고한 비빌 언덕을 완성할 수 있다.


<1억을 모으는 내 아이의 첫 ETF>를 읽고 나면 경제/투자 교육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필수적이고 진지한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다, AI/로봇/반도체 등 핵심 분야가 급속도로 팽창하는 현 경제 상황에서 아이가 표류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나침반을 쥐여주고 싶은 모든 부모에게 이 책을 강력히 권한다. 실질적인 행동 지침과 확실한 솔루션을 동시에 안겨주는 실용적인 가이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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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들 그래픽 노블 : 그림자족의 추방자 전사들 그래픽 노블
에린 헌터 외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람어린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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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어린이 신간, 에린 헌터 판타지 소설 <전사들> 시리즈의 그래픽 노블 <그림자족의 추방자>는 무자비한 그림자족 지도자 브로큰스타의 폭정에 맞서는 나이트펠트와 원로 고양이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다루고 있어요. 천식으로 인해 이른 나이에 원로가 된 나이트펠트는 젊고 강한 고양이만 우대하는 비정한 규칙 탓에 진영 밖으로 쫓겨나게 된답니다. 그는 척박한 변두리에서 쫓겨난 늙고 병든 동료들을 이끌며 배고픔과 굶주린 여우의 습격 속에서도 결코 삶의 희망을 놓지 않아요. 반면 브로큰스타는 너무 어린 새끼 고양이들(~포)마저 훈련병으로 내몰아 목숨을 잃게 만들고, 종족의 충실한 치료사 옐로팽에게 살해 누명을 씌워 쫓아내는 등 참혹하고 비정한 상황으로 내몰아요. 부당한 권력의 횡포 앞에서도 약자를 돌보며 끈끈하게 연대하는 나이트펠트와 원로들의 모습은 진짜 리더의 자격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요. 역경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용기,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 책은 전사들 시리즈를 사랑하는 기존 팬들은 물론 새롭게 판타지 세계에 입문하는 어린이 독자 모두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저자 그룹 에린 헌터가 창조한 광활하고 야생적인 고양이들의 세계를 비주얼한 카툰으로 재탄생시킨 <전사들> 그래픽 노블 <그림자족의 추방자>는 텍스트로만 상상하던 그림자족의 암흑기를 손에 잡힐 듯 생생히 그려낸 특별한 작품이에요. 추방당한 원로 나이트펠트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제임스 L. 배리의 역동적인 작화가 이루는 훌륭한 조화가 돋보여요. 강한 자만이 살아남고 종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브로큰스타의 잔혹한 통치 이념은 현실 세계의 비정함을 투영하며 우리들에게 의미 있는 화두를 던져요. 특히 힘이 빠지고 병든 원로들이 차가운 눈밭으로 밀려나 여우의 위협에 맞서 동료 풀클라우드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소외된 자들의 연대를 드라마틱 하게 보여준답니다.


종족 고양이들이 마침내 폭주하는 지도자에게 맞서며 그가 친아버지인 래기드스타를 비롯한 동족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대목은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요. 책 말미, 동족을 위기로 내몬 전쟁광 브로큰스타가 래기드스타와 별족의 인정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을 부지하게 되는 전개는 놀라우면서도 다소 부당하게 느껴진답니다. 반면 핍박받는 그림자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정의를 행사한 나이트펠트가 정작 별족들에게 완전한 승인을 받지 못하는 애매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은 아쉬움과 억울함을 자아내요.


과연 큰 상처를 입은 그림자족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까요? 나이트펠트는 시련을 딛고 동족의 온전한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살아남은 브로큰스타는 클로페이스 등과 힘을 합쳐 훗날 어떤 방식으로 끔찍한 복수를 향해 움직일까요? 그래픽 노블 <그림자족의 추방자>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남기며 화려한 액션 장면 위주로 흘러가기 쉬운 만화의 한계를 넘어 등장인물들의 갈등, 투쟁을 탄탄한 서사로 엮어냈어요.


텍스트의 장벽을 낮추고 속도감 있는 연출을 더해 평소 글밥이 많은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단숨에 빠져들 수 있는 매력적인 판타지 도서랍니다. 잔혹한 폭력, 온갖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나이트펠트의 조용한 카리스마를 통해 참된 리더십의 가치를 깨닫게 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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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 엄금 엄금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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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의사이자 추리 소설가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치넨 미키토 메디컬 미스터리를 넘어 모큐멘터리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에서 자신의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저자는 <가면병동>이나 아메쿠 타카오 시리즈 등 전작에서 보여준 치밀한 의학적 지식과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바탕으로 신간 <열람 엄금>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교묘하게 무너뜨린다. 출간 전부터 일본 독서 미터 '읽고 싶은 책'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은 이 작품은 신문 기사, 진단서, 범행 현장 지도, 기괴한 스케치 등 시각적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취한다. 이는 독자가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실제 엽기적인 범죄의 1급 기밀문서를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강렬한 체험을 선사하며 텍스트가 주는 공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덕분에 실제 사건을 취재하고 조사하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며, 끝까지 팽팽한 텐션을 느끼며 술술 읽을 수 있다.


작품의 중심에는 대낮 도쿄 다마시 축제 현장에서 도끼를 휘둘러 11명의 목숨을 앗아간 프리랜서 작가 야에가시 신야가 있다. 이야기는 정신 감정 전문의 우에하라 가스미가 나흘에 걸쳐 그를 면담하는 인터뷰 기록으로 전개된다. 야에가시가 남긴 진료 기록과 극단적인 발언들은 그가 앓고 있는 극심한 피해 망상과 환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계속 감시당하고 있다", "곳곳에 있었던 눈"이라는 야에가시의 증언과 수많은 눈알이 그려진 기괴한 스케치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선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을 자극한다.


서로를 감시하도록 설계된 비밀 연구소의 도면이나 정체불명의 여자가 배달한 캔 커피 사진 등 중간에 삽입된 사진 자료, 기사들은 야에가시의 망상이 단순한 정신 질환의 산물인지 아니면 실재하는 기이한 현상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열람 엄금>의 가장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텍스트의 후반부에 도사린다. 엽기 살인마를 분석하던 정신 감정 전문의 우에하라 가스미가 어느 순간 니시아자부 상가 건물 방화 대량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전락하여 또 다른 정신과 전문의인 우카가미 하루코에게 심문을 받는 구조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관찰자와 피관찰자,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이 기막힌 반전은 서사가 쌓아 올린 불안감을 단숨에 폭발시킨다. 광기를 들여다보던 이가 결국 광기에 전염되고 침해되는 듯한 묘사는 치넨 미키토가 짠 정교한 덫에 걸려들었음을 깨닫게 한다.


무엇보다 <열람 엄금>이 선사하는 공포의 핵심은 책을 읽는 이들마저 서사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영리한 설계에 있다. 책 말미.. 검은 배경 위로 선명하게 찍힌 "난 늘 당신을 보고 있어."라는 문장처럼 소설은 페이지 밖의 현실을 향해 섬뜩한 시선을 던진다. 타인의 광기와 비극이 담긴 비밀스러운 문서를 훔쳐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관음증적 작용을 일으키며 어느새 독자들은 수많은 눈알로 이루어진 괴물 즉 '도메키의 눈'의 일원이 되어버린다. 방관하는 태도로 페이지를 넘기던 이들은 자신이 이 기괴한 정신적 실험에 동참한 가해자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실감에 빠지게 된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가 금기를 깨는, 발칙하고 도발적인 유희가 되는 작품이다. 책의 서두에 명시된 "이 기록은 여러분에게 예기치 못한 정신적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경고문은 가벼운 수사가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불길한 테마 그 자체다. 누군가의 내면을 텍스트라는 안전한 매개체를 통해 엿본다고 믿었던 우리는 책을 덮는 순간.. 자신 역시 그 기이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여운에 사로잡힌다.


치밀하게 짜인 심리 스릴러이자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장르 소설을 찾는 이들에게 지체 없이 권할 만한 결과물이다. 권말에 예고된 대량 살인사건의 씨앗이 되는, 치넨 미키토의 다른 소설 <스와이프 엄금>에 대한 기대감 역시 이 책이 남기는 또 다른 흥미로운 떡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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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여행 을유세계문학전집 150
로런스 스턴 지음, 김정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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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린 18세기의 문제작

영문학사에서 시대를 앞서간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로런스 스턴의 마지막 저작 <감성 여행>이 을유세계문학전집 150번째 도서로 출간되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스턴은 우리의 관심을 외부 세계에서 내면으로 옮겨 놓는다"라고 평했으며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아주 작은 사건 하나로도 인간 본성의 가장 은밀한 구석을 드러내는 비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라블레와 세르반테스로 이어지는 희극 정신의 계보를 이으며 토마스 만, 제임스 조이스, 살만 루슈디 등 후대 거장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이 작품은 국내에 처음 번역되는 초역본이라는 점에서 출간 의의가 남다르다. 단순한 기행문을 넘어 인간 심리에 대한 탐구서로서 소장 가치를 증명한다.


불완전성을 긍정하는 희극 정신의 탄생

저자 로런스 스턴은 1713년 아일랜드 클론멜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요크셔 지방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생 성공회 목사로 살았던 그는 1759년 <신사 트리스트럼 샌디의 인생과 생각 이야기>를 발표하며 유럽 전역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연속성 있고 결말이 정해진 기존 서사 구조를 해체하고 자아 패러디를 동원한 파격적인 스타일은 당대의 엄숙한 계몽주의를 전복시켰다.

평생 폐 질환과 사투를 벌였던 스턴은 생애 마지막 1년을 앞두고 자신을 구원할 저작이라 명명한 <감성 여행> 집필에 착수한다.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희극 정신을 잃지 않았던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찰나의 유머와 따뜻한 인간애를 원고에 새겼다. 총 4권으로 기획된 이 여정은 1768년 2월 제1권과 2권을 출판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작가가 세상을 떠나며 결국 미완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 미완의 상태는 오히려 삶의 유한성을 긍정하는 스턴의 철학을 역설적으로 대변한다.


충동적인 출발과 길 위의 다채로운 군상

소설의 서사는 즉흥적인 계기로 촉발된다. 주인공 요릭이 일상적인 대화 중 프랑스인들의 정리 방식을 칭찬하자 하인이 "프랑스에 가 보신 적이 있나요?"(p.9)라며 무심코 승리감에 차서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도버 해협 너머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요릭은 하인의 말에 발끈하여 그 길로 셔츠 여섯 벌과 검은색 실크 바지 단 벌 만을 챙겨 도버행 역마차에 올라탄다.

이렇게 시작된 요릭의 프랑스와 이탈리아 여정은 명승고적 감상에 치중하는 일반적인 그랜드 투어와 궤를 달리한다. 그는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가득 찬 여행자 스멜펑거스(Smelfungus, 당대의 여행 작가 토바이어스 스몰릿을 풍자, 저격한 인물)를 경계하며 외부 세계를 비판적인 잣대로만 재단하는 편협함, 옹졸함을 거부한다. 대신 길 위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타자들과의 우연한 만남과 감정적 교류에 주목한다.


타자를 향한 에로스와 연민의 시선

요릭의 여행은 인간의 이기심을 강조한 버나드 맨더빌의 냉소적 세계관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파리의 상점에서는 아름다운 부인 곁에 앉아 능청스레 맥박을 짚어보고 여권이 없어 곤경에 처했을 때는 어느 백작에게 자신을 셰익스피어의 어릿광대 요릭이라 소개하며 위기를 모면한다.

물랭에서 만난 소녀 마리아와의 일화가 눈에 띈다. 실연의 상처로 정신이 무너져 내린 채 반려견 곁에서 피리를 부는 마리아를 보며 요릭은 그녀의 슬픔에 동화되어 함께 눈물을 훔친다. 고통받는 타인의 삶에 스며들어 정서적인 연대감을 쌓아가는 그의 시선은 현대적인 감수성을 자랑한다.


시대를 초월한 가장 자유로운 작가의 멈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죽음으로 파생된 돌발적이고 묘한 결말에 다다르게 된다. 사보아의 한 작은 여관에서 방이 부족해 피에몬테 출신 숙녀, 그녀의 하녀와 부득이하게 한 방을 쓰게 된 요릭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약속하는 조약을 맺는다. 하지만 밤새 논쟁의 열기가 오르며 조약은 위태로워지고 혹여나 적대적인 상황이 벌어질까 두려워 좁은 통로로 기어 나온 하녀를 향해 요릭이 무심코 손을 뻗는다. "내 손에 닿은 것은 이 하녀의-"라는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문장을 끝으로 이야기는 돌연 마침표를 찍는다.


당초 계획했던 이탈리아에서의 행보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미완성으로 남겨진 이 절묘한 여백은 독자의 상상력을 무한히 자극한다. 역자 김정희의 해설처럼 이는 "완성도가 아니라 삶의 파편성을 수용하고 미완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매 순간을 온전히 살아 내는 겸허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스턴을 가리켜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유로운 작가라고 극찬했듯.. 인간 본성의 나약함과 따뜻함을 유쾌하게 그려낸 <감성 여행>은 진정한 소통, 여행의 의미를 묻는 고전 기록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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