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아픈 마침표를 위하여 - 좋은 안녕을 위한 어느 이혼전문판사의 마음
정현숙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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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향기 신간, 정현숙 부장판사 에세이 <덜 아픈 마침표를 위하여>는 베스트셀러였던 전작 <오늘도 이혼주례를 했습니다>에 이어 관계의 종결을 마주한 인간의 민낯을 파고든다. 저자는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5년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임관하여 현재 부산지방법원에서 근무 중인 22년 차 법관이다. 동시에 22년 차 아내이자 세 아들의 어머니로 살아오며 2017년부터 가사 전문법관으로 수많은 이혼, 양육, 가족 분쟁을 다루어왔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비롯해 <세바시 인생질문>, <어쩌다 어른> 등에 출연하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해 왔다. 이번 책을 통해 저자는 이혼을 단순한 서류상의 결별이 아닌 한 인간의 세계가 재편되는 치열한 과정으로 조명한다. 파탄에 이른 부부뿐만 아니라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자녀 양육의 책임을 짊어진 모든 어른에게 권할 만한 관계 성찰서라 할 수 있다.


타인의 불행을 섣부르게 소비하지 않고 객관적인 법의 잣대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나약함을 보듬는 저자 특유의 온화한 문체가 독자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냈다. 다수의 인터뷰에서 판결문을 쓰는 일 못지않게 남겨진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도록 돕는 것이 법관의 역할이라고 역설한 저자의 철학은 이 책의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부부 갈등으로 밤잠을 설치는 성인 남녀는 물론 인간관계의 피로감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도 삶의 지표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도서다.


어쩌다 일어나는 이혼은 없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세상에 어쩌다 일어나는 이혼은 단 한 건도 없으며 찰나의 결단처럼 보여도 마침내라는 긴 시간의 숙고가 동반된다는 것이다. '1장 왜 이혼은 이렇게 아픈가'를 읽다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부부관계를 가리켜 본래 비혈연 관계로 시작하지만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 그 어떤 핏줄보다 진한 연대로 밀착된다고 통찰한다. 그렇기에 이혼은 단순한 계약 해지가 아닌 부부관계의 사망과 같으며 죽음과 맞먹는 극심한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법정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하게 된 남녀의 심리를 그 어떤 심리학 서적보다 냉정하게 해부한다.


법이 포착하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

인상적인 대목은 '2장 법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 담긴 날것 그대로의 에피소드들이다. 이혼 법정에 선 인간들의 변명과 기만은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경찰이 출동한 현장에서 아내의 내연남과 남편이 대면해 실랑이를 벌이는 녹취록 원문은 관계의 파탄이 얼마나 참담한 촌극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간통죄 폐지 이후 벌어지는 적반하장의 사례는 독자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유책 배우자인 남편이 이혼소송 항소심이 진행 중인 와중에 버젓이 다른 여자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본처와 자식들에게 돌아갈 몫을 뺏기 위해 수백억 원대의 자산을 증여해 버린 사건은 현행법의 한계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만든다. 법은 양육비를 산정하고 재산을 분할하는 산술적인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판사의 무력감 속에서 오히려 인간성 회복을 향한 지독한 갈망이 묻어난다.


단절된 관계 속 아이의 시간은 계속된다

이 책의 백미는 단연 4장 아이의 시간에 있다. 저자는 부모의 혼인 관계는 깨지더라도 아이의 삶은 온전히 지속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자녀가 셋이나 있는 부부의 이혼 재판에서 아내가 갑자기 사라지는 충격을 아이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 남편에게 제발 부부 상담을 받아보라며 애원하다시피 부탁하는 판사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아이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는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고립감이라는 지적은 부모라는 이름의 막중한 책임을 다시금 가늠하게 만든다. 부모의 갈등 한가운데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충성갈등의 늪에 빠진 아이들의 사연을 읽을 때는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되돌릴 수 없는 아이의 시간과 어른의 책임

책을 읽을수록 어른들의 관계는 끝나지만 아이의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고 삶은 계속된다는 진실이 가슴을 먹먹하게 찌른다. 부모의 이혼 소송 중 양육자 지정을 위한 가사조사 과정에서 5살 딸 지연이가 이혼 사실을 이미 눈치채고 헤어지는 거 엄마 아빠가 슬퍼할 거 같아요(191쪽)라며 도리어 어른을 위로하다 눈물을 쏟는 장면은 비통하기 그지없다. 또한 시야협착증으로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아픈 아이의 막대한 치료비를 두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다투는 부모의 사연은 이기심이 아이에게 얼마나 잔혹한 흉터로 남는지를 보여준다. 생모가 교도소에 수감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사진과 서신으로 면접교섭을 허용하는 법원의 치열한 고뇌(121쪽)를 마주하다 보면 부모라는 이름이 지닌 책임의 무게를 다시금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관계의 단절이 남기는 상흔과 회복의 신호

면접교섭이 중단된 지 오래된 어느 아이가 아빠를 가리켜 그냥 옛날 사람이에요라고 덤덤히 내뱉는 장면(196쪽)은 어른들의 무책임이 얼마나 차가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아프게 보여준다. 부모는 아이가 애를 써서 믿고 싶은 대로 보려 했던 존재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아이의 애착은 결국 포기로 바뀐다. 저자는 비록 부부로서의 인연은 끝났어도 부모로서의 역할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음을 역설한다. 과거를 부정하는 대신 다시 시작하겠다는 어른의 결연한 태도야말로 아이의 평생을 바꾸는 회복의 신호(221쪽)가 될 수 있음을 거듭 당부한다.


덜 아픈 이혼을 위해 부부가 노력해야 할 점

그렇다면 덜 아픈 이혼을 위해 서로가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 저자는 가수 화사의 노래 가사를 빌려 실패를 인정하되 함께했던 시간마저 원망으로 물들이지 않는 좋은 안녕을 택해야 한다고 진심으로 조언한다. 당신들의 시간이 실패였다고 단정하지 말라고 그 시간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고(168쪽) 전하는 판사의 고백처럼 부부가 서로를 원수로 기억하여 아이에게 미움을 물려주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부일처제가 단순한 본능 억압이 아니라 인간을 더 막중한 책임의 자리로 초대하는 제도이듯.. 이별의 순간, 그 이후에도 부모의 역할은 유효하다. 부부 관계가 물리적으로 파탄 났더라도 상대방의 면접교섭권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고, 아이가 고립감을 느끼지 않도록 정서적 울타리를 지켜주기 위해 끝까지 협력하는 태도야말로 상처를 줄이는 유일하고도 필수적인 노력이다.


판결문보다 오래 남기를 바라는 간곡한 편지

에필로그에 담긴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는 법관이자 세 아들의 어머니인 저자의 진심이 짙게 배어나는 대목이다. 아이의 몸에는 두 사람의 피가 흐르기에 한쪽을 부정하는 말은 아이의 절반을 부정하는 말과 같다는 통찰(223쪽)은 매섭고도 타당하다. 이혼이라는 극한의 아픔 속에서도 부부는 자기 성찰과 책임을 통해 새로운 삶의 문을 열어야 한다. 저자는 당신들의 갈등과 결별이 아이의 정체성이 되지 않도록(225쪽) 노력하는 일은 법이 아닌 부모만이 해낼 수 있는 고유한 몫임을 선언한다. 오늘 내리는 법적 판결보다 이 다정한 편지가 남겨진 이들의 가슴에 더 오래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 책이 단순한 실용서를 넘어선 치유의 기록임을 증명한다.


<덜 아픈 마침표를 위하여>는 타인의 불행을 전시하는 자극적인 법정 에세이가 아니다. 관계의 밑바닥까지 추락한 인간들의 군상을 통해 역설적으로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가, 나아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인 질문에 가깝다. 부서진 관계의 파고 속에서도 기어코 남겨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저자의 다정한 시선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올곧게 관통한다. 섣부른 위로나 얄팍한 조언 대신 쓰라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덜 아픈 마침표를 찍을 힘을 길러주는 든든한 부부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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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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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중국 허난성에서 태어난 옌롄커는 1979년 등단 이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사서> 등 다수의 화제작을 발표하며 루쉰 문학상, 라오서 문학상, 프란츠 카프카 문학상 등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다. 그는 특유의 '신실주의' 기법을 통해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실험적인 문체를 선보이며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힌다. 북다에서 새롭게 펴낸 옌롄커 소설 <연월일>은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전 세계 22개국에 번역 출간된 그의 대표 소설이다. 서문에 따르면 작가는 1996년 심각한 허리 질환으로 고통받던 중, 시안 교외의 옥수수밭을 걸으며 느꼈던 생명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극심한 가뭄 속에서 발현되는 숭고한 휴머니즘과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척박한 현실을 꿋꿋하게 견뎌내는 현대인들이나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권할 만하다.


생의 감각을 일깨우는 처연한 사투

소설을 여는 첫 문장이 처연하면서도 비장하다. 과연 중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의 솜씨답다.

천고 이래 최악의 가뭄이 덮쳐 세월마저 타서 재가 되어버린 어느 해, 일흔두 살의 셴 할아버지는 피난길에서 돌연 발걸음을 돌린다. 음력 유월 열아흐레,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을 피해 동쪽 쉬저우를 향해 수십 일간의 험난한 이주를 떠나지만 그는 자신의 옥수수에 싹이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홀로 남기를 택한다. 물론 정든 고향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바람도 숨기고 있었다. 태양빛이 온 세상을 붉게 달구고 먼지가 구르릉거리는 적막한 바러우산맥 전체를 통틀어 남은 생명은 노인과 눈먼 개, 여린 옥수수 싹 하나뿐이다.


주인 말을 곧잘 알아듣는 눈먼 개의 사연 또한 비통하기 그지없다. 기우 제물로 바쳐져 햇빛에 눈알이 타고 말라붙어 앞을 보지 못하는 개.. 허나 이 개는 주인의 앞길을 내다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충견이다. 개는 주인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주인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타들어 가는 열기 속에서 텅 빈 마을을 지키는 노인의 선택은 어리석어 보일 수 있으나, 이는 곧 생명의 근원을 향한 원초적인 집념, 투쟁의 시작을 알린다. 이웃집을 샅샅이 뒤져 텅 빈 자루만 쥔 채 허탈감에 빠지면서도, 찾아낸 소금 단지에서 소금 한 알갱이를 입에 머금고, 장님 개의 입에도 넣어주는 장면은 극한의 빈곤 속에서도 친구, 가족과 같은 반려견과 온기를 나누려는 연대감을 자아낸다. 모든 것이 증발해 버린 폐허 속에서도 두 생명체는 서로를 온전히 의지하며 질긴 숨을 이어간다.


절망과 마주한 옥수수 한 그루의 의미

생존을 위한 여정은 곧 무자비한 대자연과의 투쟁으로 이어진다. 소중한 옥수수 종자를 훔쳐 간 커다란 쥐 떼들과 양식 쟁탈전을 벌이고, 핏빛 으스름이 깔린 서산 아래에서 쥐구멍 서른 군데를 파헤치며 파김치가 되는 셴 할아버지의 모습은 생을 갈구하는 인간의 끈질긴 민낯을 대변한다. 노인은 옥수수죽을 미끼로 항아리 모양의 흙구덩이를 파서 쥐 여러 마리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삶아 먹으며 버티고, 40리 밖에 있는 샘물 터까지 매일같이 걸어가 물을 길어 옥수수를 돌보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쥐 떼에 이어 우물가로 몰려온 늑대 무리와 대치하는 에피소드는 숨 막히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멜대 갈고리를 쥔 채 눈동자조차 깜빡이지 않고 알파 늑대의 두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순간, 물 떨어지는 소리와 서서히 짙어지는 산속의 냉기가 교차하며 빚어내는 회화적인 묘사가 일품이다.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 자신의 손목을 힘껏 꼬집으며 장님 개와 옥수수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밤의 시간들은 고독을 넘어선 경건함마저 느끼게 한다.


거룩한 희생이 잉태한 기적의 씨앗

옥수수를 살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점차 타자를 위한 거룩한 헌신으로 나아간다. 양분이 부족해 옥수수 잎이 누렇게 타들어 가는 것을 보며 통탄하던 노인은 마른 잎 가운데서 한 방울의 초록빛을 발견하고 다시금 투지를 불태운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녹슨 동전을 던져 자신과 장님 개 중 누가 먼저 옥수수의 거름이 될지 결정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은 정말 인간의 바닥을 뚫고 심연을 파고드는구나!" 허탈한 탄식을 자아낸다.

"이건 다 하늘의 뜻이야. 나는 옥수수를 위한 거름이 되어야 하거든"이라고 읊조리며 자신의 남은 육신마저 기꺼이 바치려는 셴 할아버지의 태도는 생명의 존엄, 후대를 위한 희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훗날 비가 내린 뒤 돌아온 마을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할아버지와 개의 무덤 곁에서 자라난 옥수수 줄기에 맺힌 씨앗이다. 175페이지 "일곱 알만이 하늘의 별처럼 드문드문 잿빛으로 바짝 마른 알갱이들 사이에 자리하고 있었다"라는 문장은 척박한 땅에서 솟아난 일말의 희망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이 일곱 알의 씨앗이 일곱 가구의 새로운 모종으로 이어지는 결말은 유구한 세월을 관통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한다.


결연한 죽음의 수용과 철학적 사유

<연월일>은 잔혹한 기후 재난을 배경으로 삼고 있음에도 시종일관 유려하고 공감각적인 시어로 서사를 이끌어간다. 옌롄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포착하는 리얼한 신실주의 문법으로 말라비틀어진 대지 위에 희망을 파종하는 한 개인의 결기를 생생히 묘사했다. 김태성 번역가가 역자의 말에서 언급했듯.. 이 소설이 지니는 진정한 서사적 힘은 '다른 생명을 위한 죽음의 적극적인 수용'에 있다. 끝없는 공허함과 침묵이 짓누르는 환경 속에서 단 한 줌의 생명력을 보존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노인의 행보는 무모해 보일지언정 결코 헛되지 않다. 재앙의 한가운데서 피어난 이 고립된 사투는 결국 살아있음의 가치를 묻는 진중한 철학적 질문으로 맺음된다. 인류의 종말과도 같은 혹독한 위기 앞에서 문학이 어떻게 메마른 영혼을 적시고 고통을 뚫고 솟아나는 푸른 줄기가 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진정 경탄스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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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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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작가의 장편소설 <생가>는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을 거머쥐며 2026년 7월 북다에서 출간된 화제작이다. 1994년생 비디오키즈로 자라나 2025년 영화 <커미션>으로 데뷔한 감독 출신 작가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에서 시각적 묘사와 긴장감을 능수능란하게 직조한다. 작가는 최근 언론 인터뷰와 책 말미의 '작가의 말'을 통해 여전히 사과받지 못한 이들과 단죄받지 않은 자들이 남아 있는 한국 사회를 꼬집으며, 죽은 권력을 복원해 추종하는 시대의 공포를 직시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 소설은 한국의 뼈아픈 현대사와 전통 건축, 수목 신앙을 결합하여 오컬트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영화 기획 단계부터 주목받은 치밀한 서사와 역사적 비극을 융합한 지적 스릴러를 선호하는 독자에게 강력히 권한다.


망령을 부르는 건축, 욕망이 얽힌 저주의 공간

독재 권력을 휘둘렀던 대한민국 9대, 10대 대통령 이운암의 계류면 생가가 의문의 방화로 소실되며 서사가 출발한다. 당대 최고의 도편수 지범근은 생가를 절대 복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도끼 날을 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지범근에게 버림받아 원망을 품고 살아온 아들 재헌은 이운암의 손자 건승의 제안을 수락하며 금기를 깬다. 여기에 어머니의 참혹한 자살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 나선 20대 여성 대형 트럭 기사 시록이 이운암 기념관을 거쳐 합류한다. 파가부터 개기, 상량, 생가에 이르는 전통 한옥의 건축 공정을 목차로 삼아.. 집을 짓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주술적 의식처럼 다가오게 만든다.


유황과 천룡,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는 음산한 숲

유럽에서 인류학자 J.G.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를 인용하며 수목 신앙을 강의하던 재헌의 차가운 이성은 화재 현장에 진동하는 유황 냄새 앞에서 기묘한 균열을 일으킨다. 악령을 쫓기 위해 뿌려진 유황의 흔적은 복원 공사 내내 불길한 복선으로 작용한다. 특히 전북 패천의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공간, 이른바 섬가네 산으로 불리는 곳에서의 황장목 벌목 에피소드는 숨 막히는 몰입도를 선사한다. 영화 <파묘>의 긴장감을 능가하는 불길함, 음험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수백 년 된 금강송 황장이 품고 있을 천연 독가스를 우려해 가스 검침기를 동원하고, 백 일간 치성을 드린 태화와 지평이 동티를 막으려 고군분투하는 장면은 과학과 미신이 공존하는 이 소설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방증한다. 재헌과 시록이 동행하는 여정은 극의 긴장도를 극대화하며, 지리산 자락 끝의 습한 식물원 같은 풍경은 질감을 더해 생가를 둘러싼 악의적 기운을 경고한다.


군사독재의 잔재를 오컬트 호러로 직조해 낸 서늘한 통찰

<생가>는 단순한 원귀의 등장을 넘어 권력의 폭력성과 광신적인 숭배가 빚어낸 역사적 트라우마를 짚어낸다. 이운암은 누군가에게는 국부이자 영웅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군사독재자, 학살자이며 폭군이다. 소설은 무너진 독재자의 성역을 다시 세우려는 맹목적인 집착을 통해 오늘날에도 유효한 갈등의 축도를 보여준다. 생가 지하실의 은밀한 목욕탕에서 이운암이 자신의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혈육인 나희를 천룡이라는 괴물에게 제물로 바치는 참혹한 과거가 드러날 때.. 우리는 활자 너머로 번지는 섬뜩한 공포를 마주하게 된다. 무병의 저주 속에서 고통받던 시록의 사연은 개인의 불행이 어떻게 거대한 국가 단위의 폭력, 권력욕과 닿아 있는지 리얼하게 그려낸다. 선조의 시체, 두꺼비를 품은 당나무를 주술적으로 해석하는 무속적 세계관은 건축 자재를 넘어 인간의 탐욕이 깃든 기괴한 토템으로 기능한다.


단죄 받지 않은 자들을 향한 두 번째 도끼 & 영상화의 기대

가장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대목은 결말부의 핏빛 응징이다. 불타는 생가와 되살아난 천룡의 발악 속에서 재헌은 용의 이름이 새겨진 도끼를 아버지 지범근의 이마에 꽂아 넣으며 대물림되던 비극적인 사슬을 스스로 끊어낸다. 이후 베트남에서 차분한 갈색 머리로 탈바꿈한 채 눈을 뜬 시록의 모습은 이 지독한 악몽이 남긴 흉터와 여운을 동시에 보여준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여전히 사과받지 못한 이들과 단죄 받지 않은 자들이 남아 있음을 지적하며, 어쩌면 두 번째 도끼가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는 시록과 재헌의 복수극이 끝나지 않았으며 속편을 통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한 단죄가 계속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나아가 <생가>는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심사 당시 공동 주최사인 스튜디오 S와 쇼박스로부터 영상화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았다. 영화 <기담>, <곤지암>의 정범식 감독이 추천사를 남길 만큼 독보적인 미장센을 뿜어내어 머지않아 스크린이나 OTT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서스펜스 스릴러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만약 영화화된다면 장재현 감독 <파묘>와 같은 끈적한 기괴함, 인간의 대를 잇는 탐욕을 맛볼 수 있는 오컬트 호러 명작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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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최신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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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가 창조한 영혼의 순례기, 그 변치 않는 가치

194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태어난 파울로 코엘료는 2002년 브라질 문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고, 2007년 UN 평화대사로 임명된 문학계의 거장이다. 1986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를 마친 후 집필한 <순례자>에 이어 1988년 발표한 <연금술사>는 전 세계 170여 개국 89개 언어로 번역되며 1억 2천만 부 이상의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한국어판 출간 25주년을 맞아 2026년 7월 북다 출판사에서 최정수 번역가의 섬세한 문장으로 새롭게 단장한 이번 특별 증보판은 치우를리오니스의 몽환적인 스케치를 표지로 채택하여 원작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충실히 구현했다. 마돈나,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을 비롯해 나태주, 이해인 시인에 이르기까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찬사를 받는 코엘료 특유의 은유적인 문체는 복잡한 현실에서 길을 잃은 현대인에게 이정표 역할을 수행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필독서라 할 수 있다!


무화과나무 아래서 시작된 기적의 여정

안달루시아의 양치기 산티아고는 지붕이 무너진 낡은 교회의 무화과나무 아래서 양 떼와 함께 잠을 청하며 평온한 일상을 보낸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똑같은 꿈을 두 번이나 꾼 후, 익숙한 초원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긴다. 타리파에서 살렘의 왕 멜키세덱을 만나 우림과 툼밈을 받고 만물의 언어인 표지를 읽는 법을 깨우친다. 아프리카 탕헤르로 건너간 직후 낯선 문화 속에서 전 재산을 잃는 시련을 겪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는다. 크리스털 상점에서 찻잔을 닦으며 노동의 의미를 배우고 언덕 위 식당의 박하차를 담아 파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상점을 부흥시키는 일화는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단단한 의지를 보여준다.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에 합류해 영국인과 낙타 몰이꾼을 만나고 마크툽이라는 운명의 순리를 체득하는 과정은 단순한 이동을 넘어 영혼이 팽창하는 성장의 궤적을 그린다.


작가의 삶이 투영된 자아의 신화 & 만물의 언어

책의 서문과 작가의 말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 코엘료의 실제 삶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한다. 작가는 청년 시절 11년간 연금술을 연구하며 겪은 방황을 고백하며 진정한 위대한 업은 복잡한 비법이 아니라 일상의 단순함에 있음을 말한다. 무엇보다 1988년 브라질에서 처음 책이 출간되었을 때 첫 주에 단 한 권이 팔리고, 결국 출판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던 대목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마흔한 살의 나이에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했지만 자신의 마음과 영혼이 책에 담겨 있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작가의 고백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산티아고의 여정 그 자체다. 오스카 와일드의 나르키소스 전설을 각색한 프롤로그 역시 세상 모든 존재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비추고 있다는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포기하지 않은 저자의 뚝심을 대변한다.


1988년의 신화가 2026년의 우리에게 묻는 것..

1988년에 출간된 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최정수 번역가가 역자의 말에서 언급했듯 오늘날은 증오와 불안이 사람들의 마음을 잠식하고 끊임없는 비교에 지쳐 소망을 쉽게 포기하는 시대다. 이번 개정판 뒤표지에도 새겨진 무가치함을 빛나는 가능성으로 바꾸는 마법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영혼의 연금술사가 된다는 문장은 메마른 현실을 버텨내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숱한 고난 끝에 도착한 피라미드에서 마침내 진리를 깨닫고 처음 여행을 시작했던 장소로 돌아오는 결말은 벅찬 여운을 자아낸다.


에필로그의 "산티아고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다. 그가 버려진 낡은 교회 앞에 다다랐을 때는 날이 저물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며 목적지보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소중한 보물임을 일깨운다. 마지막 보물을 찾은 후 사막의 여인의 향기를 떠올리며 "기다려요, 파티마. 곧 그대에게 달려가겠소"라고 속삭이는 산티아고의 다짐은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는 이들에게 자아의 신화를 일깨우는 각성제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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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업은 여행입니다 - 여행 크리에이터의 꿈과 현실 사이, 그 진짜 이야기
강은빈(써니앤쎄이) 지음 / 푸른향기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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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향기 신간, 강은빈/써니앤쎄이 지음 <나의 직업은 여행입니다>는 막연한 낭만을 넘어 여행 크리에이터의 실체를 해부한 리얼 에세이다. 써니앤쎄이는 남편과 함께 활동하는 부부 여행 크리에이터로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마이리얼트립 등에서 강연을 진행하며 대중과 소통해 왔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다수의 기업과 협업을 진행하고 채널S 방송 프로그램 <다시 갈 지도>에 조지아, 엘니도, 가나자와, 코타키나발루, 후쿠오카, 하이퐁, 시즈오카, 프라하 편으로 출연하며 전문성을 입증한 저자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을 구축했다. 최근 매체 인터뷰와 공식 채널의 기록을 살펴보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자 고민하는 예비 창작자나 디지털 노마드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책으로 적극 권장된다.


유튜브 채널 '써니앤쎄이'의 매력과 차별점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써니앤쎄이'는 화려한 연출보다 소박하고 진정성 있는 시선이 돋보인다. 남편의 본명에서 따온 '써니'와 아내의 과거 스타벅스 근무 시절 닉네임 '쎄이'를 합친 활동명처럼 두 사람의 끈끈한 유대감이 영상 전반에 흐른다. 이들의 기록은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의 분위기와 감촉을 선명하게 담아낸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시절 딸기 농장에서 겪은 일화나 조지아 카즈베기의 장엄한 자연 속에서 느낀 경외감 등이 인기 영상이다. 사진 촬영을 전공하지 않았음에도 남편이 피사체인 아내를 향해 쏟는 다정한 시선은 영상물에 특유의 온기를 부여한다. 비싼 장비나 자극적인 편집 없이도 잔잔한 서사와 진솔한 내레이션으로 팔로워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안정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여행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한 실무적 준비 & 노하우

책의 목차를 면밀히 살펴보면 여행 크리에이터로 살아남기 위해 준비해야 할 실무적인 지침이 상세히 담겨있다. 저자는 사진 및 영상 편집을 위해 어도비 라이트룸, 캡컷, 블로, 스노우 등 다양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특징을 분류하여 초보자도 쉽게 접근하도록 돕는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의 특성을 파악하고 피드의 색감을 맞추는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 4만 7천 명의 팔로워로 월 1,0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비결을 세분화하여 설명한다. 특히 협업 연락이 왔을 때 광고주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고 원고료와 제공 조건을 조율하는 대처 방법은 관련 업계 진입을 노리는 이들에게 유익한 지표가 된다. 렌즈를 깨끗하게 닦는 기본기부터 숙소 촬영 시 채광을 고려하는 세밀한 팁까지 실질적인 파이프라인 구축 방법과 촬영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한다.


부부 크리에이터의 강점과 창작의 고충

<나의 직업은 여행입니다>의 가치는 이면에 감춰진 창작의 고통과 번아웃을 솔직하게 고백한 대목에 있다. 조회수와 알고리즘이라는 숫자에 얽매여야 하는 피로감, 일과 휴식의 경계가 무너진 프리랜서의 무거운 일상을 담담히 서술한다. 밤낮없이 모니터 앞에서 기획안을 작성하고 편집에 매달리며 겪는 한계점은 겉보기와 다른 여행 크리에이터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부부 창작자로서 겪는 특수한 고충이 눈에 띈다.

부부가 함께 여행 채널을 운영할 때의 강점은 시너지를 통한 효율적인 업무 분담에 있지만, 생활과 업무의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 발생하는 갈등도 상당하다. 제주살이를 시작하며 스몰 웨딩을 올리고 부부이자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이중 관계 속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수입이 들쭉날쭉한 불안감 속에서 가장의 무게를 느끼고 이혼 위기에 처해 부부 상담까지 받아야 했던 솔직한 경험담은 그들의 업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한다. 서로 다른 성향을 조율하며 원팀으로 단단해지는 서사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크나큰 감동을 선사한다.


크리에이터가 꼽은 최고의 여행지와 잊지 못할 순간들

마지막 7장에서 저자는 전 세계를 누비며 마주한 최고의 여행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2022년 봄, 여행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떠난 조지아 카즈베기의 웅장한 대자연은 잊히지 않는 감동을 선사한다. 수도 트빌리시를 떠나 마주한 코카서스산맥의 풍경은 그 자체로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시절 치열하게 생존했던 밴프를 11년 만에 다시 찾아 모레인 호수를 마주하는 장면은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영하 30도의 맹추위를 뚫고 옐로나이프 오로라 빌리지의 전통 텐트 티피 안에서 기다림 끝에 마주한 초록빛 오로라의 춤사위는 텍스트를 넘어 생생한 시각적 황홀경을 전달한다.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캐나다 딸기 농장에서 다국적 친구들과 부대끼며 흘린 땀방울, 나이아가라 폭포와 뉴욕 야경을 보며 느낀 성취감 등은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삶의 궤적을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진정한 덕업 일치를 향한 고단한 여정..

<나의 직업은 여행입니다>는 크리에이터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자리한 치열한 노동과 불안을 직시하게 만듦으로써 덕업일치의 참된 의미를 묻는다. 이 책은 뻔한 여행 에세이를 넘어 1인 미디어 시대의 생존 전략을 탐구한 르포르타주에 가깝다. 여행하며 돈을 벌고 싶다는 막연한 환상을 깨고 철저한 기획력과 꾸준한 노력, 재치 넘치는 영상 구성 만이 생존의 필수 요건임을 역설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일어나 자신만의 브랜드를 구축해 나가는 저자의 궤적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실질적인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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