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팝니다 - 사랑받는 매장의 여섯 가지 리테일 전략
김용일 지음 / 시공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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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신간, 제일기획 리테일 디렉터로 15년간 현장을 누빈 김용일 저자의 <기억을 팝니다>는 오프라인 매장의 생존 전략을 인지 심리학과 마케팅 관점에서 엮어낸 책이다. 화려하게 만든 매장은 잊히고 오직 기억되는 매장만이 사랑받는 시대다. 저자는 오프라인 매장이 단순히 물건을 쌓아두는 진열의 장소가 아니라 브랜드를 체험하고 기억하는 공간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매장을 예쁘게 꾸미는 방법 대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묻는다. 이 책은 진열의 기술이 아닌 저자의 실전 노하우를 통해 소비자 머릿속에 각인되는 리테일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한다.


도입부와 1장을 아우르는 핵심은 소비자가 매장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서울 외곽의 평범한 매장 방문 일화를 통해 특별할 것 없는 조명과 낡은 집기조차 어떻게 뇌리에 남는지 설명한다. 육중한 자동문 소리, 묘하게 낮은 온도, 고개만 살짝 숙여 인사하는 직원의 적절한 거리감은 튀는 요소 하나 없이 조화로운 인상을 형성한다. 소비자는 매장을 떠난 뒤 자신이 입어본 옷의 디테일보다 '편했다', '정신없었다'와 같은 단순한 한 줄의 감정을 남긴다. 사람들은 정보가 충분할 때보다 되려 모자랄 때 호기심을 느끼고 멈춰 선다.


2장이 다루는 소비자가 빈칸을 견디지 못하는 현상은 스스로 자기 이야기 & 맥락을 대입할 수 있는 '미완성의 여백'을 남겨두는 전략으로 이어진다. 긴 줄이 늘어선 식당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합류하는 '밴드왜건 효과'는 품질보다 확신의 분위기를 먼저 판매하는 행위다. 타인의 선택을 근거로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심리는 매장 앞 대기 줄마저 훌륭한 마케팅 도구로 탈바꿈시킨다.


3장에서는 기억을 고정시키는 감각의 법칙을 다룬다. 시각이 기대를 만들고 청각이 태도를 만든다면 촉각은 신뢰를 쌓아 최종 결정을 돕는다. 오프라인에서 신뢰는 고급 소재를 넘어선 물성으로 구축된다. 손에 닿는 순간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느낌이 직원의 그럴싸한 호객 행위보다 매장의 신뢰를 단번에 결정짓는다.

4장 & 5장은 심리적 기제가 실질적인 구매와 재방문으로 연결되어 브랜드로 완성되는 과정을 조명한다. 사람들이 진짜로 기억하는 것은 로고나 슬로건이 아니라 코너를 돌면 보이던 테이블, 계산대 앞의 리듬 같은 디테일한 장소다. 오프라인 리테일에서 브랜드는 이름이 아니라 좌표로 작동한다. 특정한 감정과 선택 방식이 결합된 공간적 표식은 소비자 입에서 "그 브랜드 가자"가 아닌 "거기 가자!"라는 말을 이끌어낸다. 자연스럽게 연장된 체류시간은 긍정적인 경험으로 치환되어 높은 재방문율을 만든다.


6장이 밝히는 오래가는 매장의 비밀은 화려함에 있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소비자의 선택 비용이 내려가는 곳이 살아남는다. 매번 설명하고 이벤트를 열어야 하는 곳과 달리 선택 비용이 낮아진 매장은 소비자가 더 빨리 이해하고 확신하며 적게 후회하는 디폴트 기본값이 된다. <기억을 팝니다>는 막연한 감에 의존하던 공간 기획을 기억하는 감정의 고정, 확신의 회로, 선택 비용이라는 논리적 언어로 풀어냈다. 


현업 마케터는 물론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라면 소비자의 뇌리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반드시 일독해야 할 책이다. 오픈런이 일상인 타인의 공간을 맹목적으로 벤치마킹하는 수준을 넘어.. 내 매장만의 고유한 서사를 설계하고 이를 기억시키려는 이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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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채식주의
김윤선 지음 / 루미의 정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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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의 정원 신간, 김윤선 작가 에세이 <오늘부터 채식주의>는 육식 위주의 식단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공존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안내서다. 저자 김윤선은 2006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자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도심 속 요가원인 '니콜의 비건 플로우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2000년부터 채식을 시작해 2009년 온전한 비건의 삶으로 접어든 그는 자연과 동물의 공존을 염원하는 고양이 집사이기도 하다. 앞서 출간한 <로맨스보다 예술>, <감정 상하기 전 요가>, 시집 <절벽수도원>, <가만히 오래오래> 등에서 보여준 특유의 담백하고 서정적인 문체는 이번 작품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내가 먹는 한 끼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단단한 식탁 철학을 다루며 무해하고 따스한 삶의 방식을 찾는 독자에게 훌륭한 통찰을 제공한다.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채식에 얽힌 일상, 역사, 실용적인 요리법을 아우른다. 1부에서는 식탁 너머의 생각들을 다루며 매일 마주하는 식재료의 추억을 짚어본다. 12쪽 '가지가지 귀한 가지' 편에서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던 매콤한 양념의 가지 찜을 회상하는 장면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2부에서는 피타고라스, 호아킨 피닉스, 톨스토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폴 매카트니 등 널리 알려진 채식주의자들의 궤적을 쫓는다. 88쪽 동물의 내장을 자신의 내장에 묻는 죄를 지적하며 살아있는 소 대신 밀가루와 꿀로 소 모양 케이크를 제단에 바친 피타고라스의 일화는 흥미를 돋운다.


3부 '오리 생각' 편에서 저자가 호숫가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요가 비틀기 동작을 할 때 오리 떼가 진지하게 쳐다보던 일화는 모성과 고통을 느끼는 생명의 신비함을 전한다. 4부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비건 레시피로 채워졌다. 메밀소바는 가쓰오부시 대신 백김치 국물과 간장으로 채수 쯔유를 만들어 여름밤의 식욕을 돋운다. '당근 하나로 김밥'은 채 썬 당근을 볶아 간장, 식초, 고추냉이 소스에 찍어 먹는 신선한 조합 & 맛깔나는 색감을 선보인다. 264쪽 '케일 쌈밥'은 데친 케일에 으깬 두부와 간 토마토를 섞은 쌈장을 얹어 건강한 감칠맛을 낸다.


<오늘부터 채식주의>가 제시하는 나와 우리, 지구가 평화로이 공존하는 법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고 다정한 발걸음에서 출발한다.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에 나가 제철 채소를 고르며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감각하는 일이 그 시작이다. 요리할 때는 식재료가 품고 있는 태양, 바람, 비, 농부의 수고로움을 헤아리며 버려지는 부분이 없도록 알뜰히 다듬어 식탁에 올린다. 유기농 채소 잎사귀에 붙어 있는 작은 벌레를 털어내며 미안한 마음으로 길가의 개미 한 마리도 밟지 않으려 발걸음을 조심하는 태도는 뭇 생명을 향한 존중을 일깨운다. 매끼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맹세보다는 일주일에 단 며칠이라도 동물성 단백질을 배제한 채소 위주의 식단을 꾸려보는 유연한 시도가 중요하다. 소박한 실천들은 내 몸을 맑게 돌보는 것을 넘어 과다한 온실가스를 줄이고 동물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아준다. 종국에는 지구라는 커다란 생태계 안에서 모든 생명체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연대로 이어진다.


비건이거나 비건이 아니더라도 이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이 책은 탁월한 길잡이가 된다. 무결점의 채식주의를 강요하기보다 생명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부드럽게 바꾸어 놓는다. 육식 위주의 현대 사회에서 환경과 동물을 배려하는 식습관은 결국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김윤선 작가가 다듬어 놓은 사려 깊은 문장들을 따라가며 스스로에게 건강한 한 끼를 대접하다 보면.. 어느새 일상에 스며든 건강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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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근쌤의 인생신당 - 가장 단단하고 따뜻한 삶의 응원
정호근 지음 / 김영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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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사 신간 <인생신당>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이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를 담은 에세이다. 저자 정호근은 198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선덕여왕>, <허준>, <광개토태왕> 등 이름난 사극에서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인 명배우였다. 2014년 11월 돌연 무속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현재 4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정호근쌤의 인생신당'을 운영하며 영적 카운슬러로 활동 중이다.


최근 MBN <특종세상>을 비롯한 인터뷰를 통해 무당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가슴 아픈 가족사와 남모를 고충을 털어놓으며 세간의 이목을 모았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뒤로하고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무속인이 된 그의 오랜 관찰과 통찰이 책 전반에 빼곡히 녹아 있다.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담담한 위로를 전하는 다정한 문장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한다.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흔들림 없는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인생신당>은 총 5부로 나뉘어 인생, 성공, 인간관계,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지혜를 전한다. 1부 시작부터 기러기 아빠로서 떨어져 지내며 겪었던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을 고백하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좁은 신당 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사연을 통해 얄팍한 성공의 잣대, 탐욕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인간 군상의 민낯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저자는 106쪽에서 어떤 일을 하든 기쁜 마음으로 대하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성공한 인생이라 정의한다. 돈이 넘쳐도 매일이 지옥인 자산가와 가진 것 없어도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살아가는 평범한 가족의 대비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기준을 묻는다. 인생이라는 홀로 걷는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진심으로 소중히 대하라는 조언은 각박한 일상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공허함을 다스리는 핵심은 과한 욕심을 줄이는 것이라며.. 사랑도 성공도 관계도 결코 영원히 내 손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함을 일깨운다. 183쪽 죽음 역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자연법칙일 뿐이므로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 정호근의 실제 삶은 한 편의 비극적인 드라마와 같았다. 친할머니부터 이어진 신의 굴레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과거 두 아이를 가슴에 묻는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복통과 어지럼증에 시달리며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었다. 노승의 입을 빌린, 쉰한 살 무렵 무당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가혹한 운명의 경고 앞에서 그는 좌절했다. 피할 수 없는 파도처럼 신병이 밀려오고 배우로서의 삶마저 한계에 부딪혔을 때 비로소 신의 부름을 받아들였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면 신의 바다에 기꺼이 몸을 던지겠다는 결단이었다.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사실은 오랫동안 외면해 온 내면의 목소리와 반복되는 신호가 있었다는 뼈아픈 깨달음은 그를 영적인 조언자, 카운슬러의 궤도로 이끌었다. 무속인의 운명을 함께 짊어졌던 여동생마저 작년에 먼저 떠나보내는 시련 속에서도 타인의 아픔을 달래는 일에 매진하는 그의 행보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신당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은 우리에게 분명하고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묻는다. 삶을 결정짓는 것은 정해진 팔자나 운명보다 그 인생을 어떻게 다루고 가꾸느냐는 본인의 굳건한 의지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것. 최고나 화려함만을 좇으며 자신을 볶아치는 어리석음, 분에 넘치는 욕심을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애초에 내가 통제하고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신경 쓰며 고통받는 대신 자신의 그릇에 맞는 '편안한 욕심'을 가져야 비로소 마음이 평온해진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처럼 인생은 결국 당신 손에 달려 있다. 절망의 늪에 빠져 홀로 웅크리고 있을 때조차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나의 단단한 마음가짐이다. 타인의 시선에 갇혀 길을 잃고 공허함에 빠지기보다 내면의 진실한 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늘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인생신당>이 우리에게 쥐여주는 생의 점사, 다정한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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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하는 남자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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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국민 작가, 스티그 라르손의 후계자 '요 네스뵈'는 노르웨이 프로 축구팀 몰데 FK의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꿈을 접고 경제학자, 록 밴드 디 데레의 보컬리스트를 거쳐 북유럽 스릴러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이색적인 이력을 지녔다. 전 세계 550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과 도덕적 모호함을 파헤치는 날카로운 통찰력, 치밀한 플롯 설정이 특징이다. 작가는 북유럽 복지 국가의 이면에 숨겨진 계층/사회 문제를 하드보일드 문체로 그려내는 스타일을 고수해 왔다. 그는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질투와 권력에 주목했다고 밝혔으며 신간 <질투하는 남자>는 그 주제 의식을 12편의 단편에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장편 소설과 달리 짧은 호흡 속에서도 극도의 긴장감을 조율하는 작가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기에 장르 소설 독자들에게 강력 추천할 만한 책이다.


비채 신간 <질투하는 남자>는 작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단편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네스뵈는 <박쥐>, <스노우맨>, <레오파드> 등 베스트셀러 해리 홀레 시리즈를 비롯해 <헤드헌터>, <아들>, <맥베스>, <킹덤> 등 방대한 분량의 장편 소설을 집필해 왔다. 이번 단편집은 단 몇십 쪽만으로 독자의 숨통을 조이는 서스펜스, 스릴러를 구축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영국 범죄작가협회 대거상 단편 부문 최종 후보작과 조셉 고든 레빗 주연의 아마존 프라임 영화 <킬러 히트>의 원작 소설인 표제작 <질투하는 남자>가 수록되어 작품의 탄탄함을 뒷받침한다.


총 12편의 수록작은 1부 질투와 2부 권력으로 나뉜다. 1부의 문을 여는 <런던>은 런던행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숀은 옆자리 승객 마리아에게서 남편의 외도에 복수하고자 자살 에이전시와 계약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진 듯하지만.. 남자는 치명적인 비밀을 숨기고 있다. 표제작 <질투하는 남자>는 그리스 칼림노스섬을 무대로 치정 사건 전문가인 니코스 발리 경감이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다. 용의자인 일란성 쌍둥이 형 프란츠와 동생 줄리안, 그들이 사랑하는 여인 헬레나 사이에서 벌어진 기만극을 추적하며 감정의 파괴력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니코스 경감 또한 과거 암벽 타기를 즐기면서 삼각관계에 빠진 전력이 있는 듯한데.. 막판 서로의 비밀이 밝혀지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명시 <가지 않은 길>의 숨겨진 의미와 얼개가 맞춰지는 서사가 일품이다. 차 안 어디선가 낯선 향기가 나는데? 질투의 대상이 된 두 여자는 비밀을 이미 알고 있다! 가 키포인트.. <쓰레기>는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수거원 이바르가 새벽 거리를 돌며 흐릿한 지난밤의 조각난 기억을 서서히 맞춰가는 과정을 스릴 넘치게 포착한다. <귀걸이>는 택시 기사가 회사 사장의 차 안에서 아내의 귀걸이를 발견하며 전개된다. 우연한 단서 하나가 걷잡을 수 없는 의심으로 번져가는 심리 묘사가 압권.. 아내를 잃지 않기 위해 주인공이 내리는 처절한 선택을 그리며 집착의 서늘한 단면을 조명한다.


2부 권력에 수록된 <기억 파쇄기>는 노화를 멈추는 혁신적인 기술을 발견한 제약회사 연구원의 이야기를 통해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펼친다. 세븐일레븐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새치기하는 무례한 청년을 향해 자신만의 응징을 집행하는 <줄서기>, 팬데믹 이후 무법천지가 된 섬에서 무기를 든 변호사의 사투를 그린 <쥐섬> 등 추리물과 SF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장르적 변주를 보여준다. 총 700 페이지에 달하는 꽤 무게감 있는 분량이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단숨에 반 이상 질주할 수 있는 쾌감, 몰입감을 선사한다.


요 네스뵈 미출간작 중 한국 독자들에게 새롭게 다가갈 소설로는 호러 스릴러 <나이트 하우스>를 추천하고 싶다. 범죄물에서 한 걸음 나아가 호러와 미스터리를 결합한 작품으로 고립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사건과 십 대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추적하는 작가의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범죄 소설의 틀을 넘어 장르적 확장을 거듭하는 네스뵈의 진면목을 확인하기에 탁월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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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펼침면
이제야 지음 / 먼곳프레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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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시인은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2012년 등단했다. 이후 <진심의 바깥> <일종의 마음> 등의 시집과 산문집 <시가 되는 순간들>을 펴내며 2030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작가다. 최근 고아성, 카리나, 문상훈, 박정민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이 그의 작품을 언급하며 이른바 MZ 세대의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먼곳프레스 신간, 세 번째 시집 <슬픔의 펼침면>은 일상의 고단함 속에 숨겨진 서늘한 그늘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시인은 치열한 현실에 지친 이들에게 섣부른 위로 대신 슬픔을 새롭게 정의하고 재회하는 감각을 일깨운다.


서두에 실린 짧은 시인의 말이 눈에 들어온다. 시인은 "우리를 길러낸 건 / 슬픔을 접는 능력이었을걸"이라며 삶의 고통을 대하는 시인들 고유의 태도를 제시한다. 팍팍한 삶을 견디기 위해 슬픔을 접어두는 행위는 현실 도피가 아니다. 언젠가 꼬깃하거나 단정하게 접힌 면을 펼쳐 다시 꺼내어 볼 날을 기약하는 다정하고 성숙한 유예다. "나의 슬픔이 / 너의 슬픔을 되오는 세계에서"는 시인의 내밀한 슬픔을 내보이는 행위를 통해 시집을 펼치는 모든 이들의 슬픔 또한 어딘가의 경계에서 우연히 재회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시집은 1부 '빛나는 존재들의 무게를 받아쓰려고'에서 시작해 4부 '한 이가 한 이를 되오는 세계에서'까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상실과 아픔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시인의 마음을 펼치기 시작하는 12쪽 <시소와 시>.. 아끼는 책과 일기를 시소 반대편에 두고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지 바라보는 시인의 담담한 모습이 떠오른다. 아슬한 수평을 유지할까? 아니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질까? 어찌했든 시인은 빛나는 존재들의 무게를 감각하며 받아쓸 것이다. "꼭 한 번은 슬픔을 펼친 면을 보고 싶다 / 아끼는 것들이 나란히 접히는 모양을"이라는 구절은 펼침면에 고인 아득한 슬픔, 아끼는 것들이 사라지는 두려움을 끌어안으며 읽는 이의 마음에 아릿한 잔상을 남긴다.


110쪽 <유예하는 기분>.. "여전히 우리는 슬픔을 경유합니다 / 백지에 적힌 이야기를 읽지 말아요 / 보이는 슬픔을 다그치지 않기로 해요"라고 고백하며 상실, 공허감에 잇따르는 슬픔을 극복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선명히 보이는 그 감정을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함부로 자책하지 않고, 나무라지 않으면서 작아질 때까지 접고 접어 저 바다로 흘려보내던가, 아니면 으슥한 골목길 담장 틈에 꽂아둘 수도 있겠지..

120쪽에 수록된 시 <동경과 망각>에서 시인은 동경을 가능케 하는 것은 망각의 능력을 믿어보는 것이라 말하며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 고단한 날마다 잊는 능력"을 청춘의 무기로 꼽는다. 불가역적인 시간 앞에서도 묵묵히 일상을 지탱하고, '잊음'을 통해 내일을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단단한 내면이 돋보인다.


150쪽 산문 '당연한 슬픔과 필연한 재회'에서 시인은 삶의 순간순간을 접고 펼치는 면이 유난히 해진 곳들은 어김없이 슬픔이 배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닳고 해진 이 면들은 석양이 물드는 수평선처럼 정의할 수 없는 색이 혼재하는, 일종의 경계와 닮아 있다. 시인은 이 시집이 밖으로 표출하는 고음이 아니라 안으로 절제하는 '저음의 혼잣말' 같다고 덧붙인다. 접어둔 곳들을 다시 펼치기 위해 격렬한 토로 대신 차분한 책갈피가 필요했음을 표현하는 대목이다.


김다솔 문학평론가가 짚었듯.. 오해의 능력으로 멈춘 것들이 되살아나는 영원한 제철을 살아내는 시어들은 각별한 울림을 지닌다. 156쪽 추천사에서 배우 고아성이 "햇빛에 색이 바랜 아주 화려한 찻잔처럼 슬픔에도 품위를 부여하는 글"이라고 찬사를 보냈듯 <슬픔의 펼침면>은 홀로 견디는 밤에 다정한 위안을 건넨다.


세상에 태어난 이들이라면.. 슬픔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굽이치는 삶의 경계마다 반복되는 고통, 상실, 외로움 속에서 우리에게 왜 시가 필요한지 이제야 시인은 의연한 목소리로 증명한다. 숨 가쁜 일상 속에서 미처 다듬지 못한 무너진 마음을 살피고, 다시 만난 슬픔을 주워 담담한 마음으로 펼쳐 바라보게 하는.. 기어코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귀중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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