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나카모토 - 비트코인의 창시자
벤저민 윌리스 지음, 이재득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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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레저 신간, 벤저민 월리스 <미스터 나카모토>는 2008년 비트코인 창시 이후 자취를 감춘 사토시 나카모토를 추적하는 15년간의 여정을 담은 논픽션 수작이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흡입력으로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 11개국 판권 수출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책은 추정 자산 150조 원에 달하는 110만 개의 비트코인을 남겨둔 채 사라진 천재의 흔적을 쫓으며 현대 금융과 혁신 기술의 교차점을 날카롭고 집요하게 파헤친다.


저자 벤저민 월리스는 <억만장자의 식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탁월한 탐사 저널리스트다. 와이어드, GQ,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적인 매체에서 활약한 그는 파편화된 디지털 단서들을 모아 거대한 역사적 서사를 구축하는 치밀한 작법 스타일을 자랑한다. 그는 2011년 여름 와이어드에 비트코인 첫 특집 기사를 기고한 이래..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끊임없이 관련자들을 인터뷰하고 초창기 코드를 분석해 왔다. 최근 매체 인터뷰에서 그는 사토시의 철저한 익명성과 부재가 역설적으로 비트코인 시스템의 거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통찰했다.


비트코인은 정부나 중앙은행의 통제와 규제를 벗어나 인터넷 기반으로 작동하는 최초의 성공적인 탈 중앙화 화폐다. 월리스는 사토시 나카모토가 초창기에 남긴 이메일의 문체, 타임스탬프, 고유한 C++ 코드의 구조적 특징을 실마리 삼아 크립토그래피 커뮤니티의 선구자들을 차례로 용의선상에 올린다. 암호화폐 초창기 핵심 멤버인 할 피니, 수석 개발자 개빈 안드레센부터 자신이 사토시라 강력히 주장하며 기술적 증거를 제시해 세상을 속이려 했던 호주 출신 컴퓨터 공학자 크레이그 라이트, 데이브 클라이만까지 숱한 인물들의 행적과 알리바이를 교차 검증하며 짙은 안갯속 미스터리의 실체에 한 걸음씩 접근한다.


<미스터 나카모토>의 방대한 서사를 따라가면 사토시 나카모토는 단순한 전설이나 허구가 아닌 실존했던 특정 천재 인물 혹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소규모 그룹으로 좁혀진다. 2011년 봄 돌연 자취를 감춘 그는 현대 과학 역사상 전례 없는 혁신적인 기술을 세상에 내놓고 막대한 부를 손에 쥐었음에도 철저한 익명과 침묵의 길을 택했다. 저자는 크레이그 라이트의 주장에 담긴 수많은 모순과 기술적 허점을 낱낱이 폭로한다.


사토시가 단순히 부와 명예를 좇는 인물이 아니라.. 탈 중앙화 시스템의 완벽한 독립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창조자인 자신을 지워버린, 사이버 펑크 철학의 진정한 완성자일 가능성에 강한 무게를 둔다.


향후 비트코인은 제도권 금융 편입을 가속하며 대체 불가능한 디지털 자산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다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적으로 실물 금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 비트코인은 하이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극 위험 자산이고, 골드는 대표적인 안전 자산이니 둘은 성격이 다르다. 양자컴퓨터의 비약적인 발전과 상용화는 비트코인 보안의 근간인 타원곡선 암호 체계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막강한 연산력을 지닌 양자컴퓨터가 공개키에서 개인키를 역산할 위험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업계와 개발자 커뮤니티는 이러한 잠재적 위기에 대비해 양자 내성 암호 기술 도입과 네트워크의 대대적인 하드 포크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와 대응은 비트코인이 급변하는 IT 환경 속에서도 영속적인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인 과제이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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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의 숲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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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드 출판사에서 새롭게 선보인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숲>은 과거 <마가>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어 호러 미스터리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걸작의 귀환이다.


이 작품은 작가 특유의 토속적 민속학 요소와 본격 추리가 완벽히 결합하여 숨 막히는 심리적 공포를 선사한다. 이야기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성이 세토로 바뀌며 낯선 환경에 던져진 열한 살 소년 유마의 시선을 따라간다. 고지식한 새아빠를 피해 유마는 쾌활한 도모노리 삼촌과 함께 기묘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사사 숲 근처의 별장에 머물게 된다. 숲의 존재를 의식한 첫날부터 시작되는 시선의 공포와 아이들 사이에서 은밀히 전해지던 금단의 괴담이 점차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침투하는 과정은 밀실 구조가 주는 서스펜스와 맞물려 독자에게 잊을 수 없는 공포를 각인시킨다.


저자 미쓰다 신조는 일본 나라현 출신으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호러와 미스터리 관련 기획을 진행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1994년 단편소설로 데뷔한 이래 2001년 첫 장편 <기관, 호러작가가 사는 집>을 발표하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2010년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으로 제10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며 일본 미스터리 문학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서양식 호러의 자극적인 연출을 배제하고 일본 특유의 토속적인 괴담을 논리적인 추리 서사 위에 덧씌우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자랑한다. 이른바 미쓰다 월드라 불리는 이 세계관은 작가 본인이 화자로 등장하는 작가 시리즈, 사상학 탐정 시리즈, 도조 겐야 시리즈 등으로 끝없이 확장 중이다. 최근 인터뷰와 대담을 통해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공간이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한순간에 낯설고 두려운 이계로 변모하는 지점에 깊은 흥미를 느낀다고 밝혔다. 거창한 무대 장치 없이도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과 의심을 끄집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괴담의 숲>으로 들어가면.. 소년의 시선으로 포착되어 더욱 기괴하게 다가오는 서늘한 장면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가슴을 옥죄는 인상적인 장면은 유마가 과거 학교에서 겪었던 기이한 이계 체험 에피소드다. 친구들과 놀며 덤불에 몸을 숨긴 유마는 갑자기 주변의 인적이 모두 사라지는 기현상을 겪는다. 정적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또각 소리가 다가오고 이를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유마의 모습은 일상이 순식간에 공포로 뒤바뀌는 서늘함을 안겨준다. 또 다른 압권은 한밤중 텅 빈 고무로 저택 1층에서 느껴지는 시선의 공포다. 갈증을 느껴 1층으로 내려간 유마는 자동으로 닫혀야 할 식당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발견한다. 열린 문틈 사이로 정체불명의 또래 아이가 자신을 엿보고 있다는 서늘한 직감은 고립된 별장이 주는 서스펜스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공포를 자아낸다. 하굣길 혼자 걷는 아이를 납치한다는 호박남자 괴담 역시 작품 전반에 깔린 불길한 기운을 증폭시키는 훌륭한 장치다.


책의 기이한 분위기를 가장 명징하게 보여주는 문장은 등장인물의 다급한 목소리를 빌려 등장한다.


"한시라도 빨리 이 집에서 떠나는 게 좋아. 집 뒤로 펼쳐진 사사 숲에는 절대로 가면 안 돼!"


이 서늘한 경고는 가지 말라는 곳에 더욱 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독자를 파멸의 숲으로 끌어들인다. 나아가 책등을 장식한


"너 정말, 그 숲에 들어가고 싶니……?"



라는 도발적인 문장은 안전한 일상과 괴이한 세계의 경계에서 머뭇거리는 우리의 내면을 날카롭게 응시하며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불길한 여운을 남긴다.


미쓰다 신조의 촘촘한 세계관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노조키메>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노조키메>는 틈새를 통해 누군가 끊임없이 엿본다는 괴담을 모티브로 삼아 시각적 압박감을 극대화한 수작이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원초적인 불안을 다룬다는 점에서 <괴담의 숲>과 정서적인 맥락을 함께한다. 도조 겐야 시리즈의 대표작인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은 고립된 마을의 기이한 민속 신앙과 연쇄 밀실 살인이라는 고전적인 미스터리 플롯을 완벽하게 융합한 걸작이다. 미쓰다 신조가 구축한 호러 미스터리의 문법이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작품이므로 그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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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집밥 - 9인 9색 엄마의 밥상 같은36가지 집밥
권혁희 외 지음 / 스토리닷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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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닷 신간 <우리들의 집밥>은 권혁희, 김경민, 김부선, 김은경, 신지현, 유재숙, 유정임, 이현이, 정인숙 아홉 명의 저자가 의기투합해 펴낸 요리 에세이다. 9년 전 양주행 1호선 전철을 타고 닿은 도서관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오며 각자의 삶이 녹아든 36가지 집밥 레시피와 따뜻한 추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이 책은 단순한 실용 요리책을 넘어 엄마의 품처럼 포근한 위로를 전하는 힐링 에세이로 잔잔한 호평을 받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어 많은 이들의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아홉 명의 공동 저자가 참여한 만큼 책 속에 등장하는 레시피와 에피소드는 다채롭고 특색이 넘친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딸로 살아온 저자들은 매일 식구들을 위해 밥을 짓듯 정성스럽게 자신의 글을 지어 올렸다. 쓴 인생에도 살아갈 맛이 난다며 삶의 질곡을 덤덤히 담아낸 두릅숙회 이야기부터 할머니의 시원한 보루였던 미역 오이냉채, 잊힌 오빠의 계절을 가슴 아프게 떠올리게 하는 짜장면, 갑작스러운 위기가 만들어낸 뜻밖의 돼지갈비찜까지 각자의 희로애락이 식탁 위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화려하고 세련된 고급 식당 메뉴가 아닌 투박하지만 깊은 맛을 내는 우리네 엄마들의 진짜 밥상 이야기가 독자들의 미각과 감성을 동시에 강력하게 자극한다.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치밀하게 구성된 목차는 이 책의 문학적 묘미를 한층 살려준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는 쌉싸름한 돌나물김치와 쑥전으로 삶의 생기를 불어넣고 무더운 여름에는 토마토 달걀 볶음과 호박만두로 잃어버린 일상의 입맛을 되찾아준다. 가을 챕터의 고구마 줄기볶음과 엄마의 손길이 닿은 송편은 풍성한 수확의 기쁨과 진한 가족의 그리움을 전하고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장식하는 뜨끈한 손칼국수와 황태달걀국은 꽁꽁 언 몸과 마음을 든든하게 데워준다. 계절의 변화에 발맞춰 제철 식재료로 차려낸 36가지의 밥상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와 인생의 순환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읽는 내내 계절 특유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우리들의 집밥>을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고 나면 자연스레 부엌으로 향해 냉장고를 열고 싶어진다.

수많은 요리 중에서도 여름 메뉴에 정성스레 소개된 미역 오이냉채를 꼭 한번 따라 해보고 싶다. 오이, 양파, 홍고추에 건미역을 더해 새콤달콤한 냉국을 부어 완성하는 이 간단하면서도 매력적인 레시피는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단번에 달래주기에 제격이다. 얼음이 녹으며 국물이 맹맹하게 싱거워질 것을 대비해 처음 간을 볼 때 조금 진하다 싶을 정도로 맞추라는 저자의 세심한 팁은 실제 주방에서 수십 년간 쌓은 흔들리지 않는 내공을 엿보게 한다. 할머니의 내리사랑이 듬뿍 담긴 시원한 보루 같은 미역 오이냉채 한 그릇을 직접 만들어 먹으며 책이 온전히 전하는 다정한 온기를 입안 가득 느껴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마음속 깊이 각인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있다.


"매일 거르지 않아야 하고, 지극히 정성을 들여야 하며, 결국에는 소중한 누군가를 위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글쓰기와 밥 짓기의 숭고한 공통점을 날카롭게 포착한 프롤로그의 이 문장은 삶을 대하는 저자들의 진지하고 따뜻한 철학을 온전히 보여준다. 책 뒷면에 단정하게 적힌


"어쩌면 집밥이란 음식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라는 문장은 우리가 매일 무심코 먹는 집밥이 지닌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뭉클하게 일깨워 준다.

팍팍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따뜻한 위안이 절실하게 필요한 날 정성껏 차려준 온기 가득한 밥상 같은 이 책, <우리들의 집밥>을 반드시 펼쳐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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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의 진화 - 진화가 알려 주는 암 극복의 새로운 아이디어
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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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나 액티피스 지음, 김정은 번역, 열린책들 신간 <암세포의 진화>는 암을 무조건 박멸해야 할 외부의 적이 아니라 다세포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내재적 결함이자 얌체 행동으로 규정하며 의학계와 독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암이라는 질병이 단순한 돌연변이의 불운한 축적이 아니라 우리 몸이라는 거대한 생태계 내부에서 자원과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자연선택의 결과물임을 촘촘히 논증한다. 질병의 기원을 진화생물학적 렌즈로 파헤치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암 관리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저자 아테나 액티피스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심리학과 부교수이자 진화 및 의학 센터의 핵심 연구원이다. 진화 생태 암 학회를 공동 설립하며 암 연구에 진화생물학을 접목한 선구적인 학자로 꼽힌다. 세포 간의 협력과 갈등 구조를 분석하는 데 탁월한 식견을 지녔으며 인간의 협력적 본성과 그 이면에 숨겨진 얌체 행동을 교차 분석해 왔다.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암과의 전쟁이라는 호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메타포를 버려야 한다고 강변했다. 극단적인 약물로 암을 몰아붙이는 대신 암의 진화적 경로를 예측하고 조율해 통제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다루는 적응 요법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하며 학계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책의 서사를 관통하는 핵심은 암을 대하는 인류의 올드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것이다. 인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암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하고 융단폭격과 같은 독성 항암 치료를 퍼부어 왔다. 독한 약물은 가장 취약한 암세포를 일시적으로 죽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내성이 강하고 악독한 암세포 클론만 살아남게 만드는 치명적인 진화적 토양을 제공했다. 저자는 현재 인류가 지닌 의학적 능력으로 암을 완벽하게 절멸하는 것은 생물학적 불가능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암은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가 아니라 생존과 증식이라는 생명체의 원초적인 본능에 가장 충실하게 진화한 우리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속도를 늦추고 종양 생태계를 교란해 암을 길들이는 통제 방식만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철저한 박멸이 아닌 '적(분신?)과의 동침'을 받아들이는 과학적 통찰이 책 전반에 서늘하게 빛난다.


책의 서문을 여는 첫 페이지에는 "우리보다 앞서 나타났던 모든 아름다운 괴물에게"라는 짧고 강렬한 헌사가 적혀 있다. 오랜 시간 질병과 생명의 기원을 탐구해 온 저자 고유의 철학적 선언이다. 진화생물학의 렌즈로 바라볼 때 질병과 돌연변이는 박멸해야 할 악마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기이한 형태로 변모하며 진화의 계통수를 풍성하게 채워온 지적 생명체의 또 다른 모습이다. 생존과 증식이라는 본능에 지나치게 충실해 기형적으로 일그러진 암세포조차 생물학적 궤적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괴물'로 껴안는 태도다. 질병을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기존의 시선을 거두고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치명적인 변이의 역사에 바치는 묵직한 경의를 담고 있다.


이러한 거시적인 생명관의 이면에는 암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떠나보낸 수많은 이들의 깊은 상실과 애도가 짙게 깔려 있다. 그동안 우리는 암에 걸린 환자를 끔찍한 전쟁에서 패배한 나약한 희생자로 취급하며 남은 자들의 애도 방식마저 폭력적으로 왜곡하곤 했다. 저자의 따뜻한 시선은 암이 결코 투지의 부족이나 삶의 실패로 찾아온 개인적 형벌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수십억 년 전 단세포가 뭉쳐 거대한 다세포 생물로 진화하며 감수해야만 했던 숭고하고도 비극적인 진화적 계약의 대가일 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결코 투쟁의 실패가 아니라 다세포 생명체로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생물학적 숙명에 의한 것이다. 질병을 은유하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는 상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책의 말미에 다다르면 암과의 싸움에서 상처 입은 모든 이들에게 깊고 묵직한 위로가 밀려온다.



"우리가 암에 걸리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 몸속에서 살아남아서 더 빨리 증식하는 세포들이 더 많은 세포 자손을 남기는 자연선택의 과정이 몸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서늘하고도 명징한 문장은 역설적으로 환자와 가족의 어깨를 짓누르던 질병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죽음을 담담히 수용하게 돕는다. 우리는 암을 영원히 정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고, 격변하는 자연에 적응하려는 진화의 섭리를 겸허히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죄책감 없이 상실을 애도하고 우아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암세포의 진화>는 단순한 의학적 제언을 넘어 상처받은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숭고한 철학적 치유서, 길잡이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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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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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신간, 슬론 크로슬리 <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은 도난당한 보석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장 친한 친구라는 두 가지 상실을 겪으며 슬픔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회고록이다.

2019년 6월 27일 오후 5시 15분 저자의 뉴욕 아파트 침실에 도둑이 들어 할머니의 유품을 포함한 소중한 보석을 전부 훔쳐 가는 사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자가 빈티지북스 출판사에서 홍보 담당자로 일하던 시절 직장 상사이자 영혼을 나누던 절친한 친구 러셀 페로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다.


책은 이 두 가지 비극적 사건을 교차하며 우정과 상실의 의미를 세밀하고도 치열하게 파헤친다. 이 작품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타임 논픽션 톱 10, 리터러리허브 최고의 논픽션 1위를 차지했다. 타임, 워싱턴 포스트, 보그, 엘르, 오프라 데일리 등 수많은 유력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며 뛰어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저자 슬론 크로슬리는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뉴욕의 삶과 인간관계의 미묘한 결을 그려내는 저명한 작가다. <이 번호는 어떻게 얻었나요>, <케이크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룩 얼라이브 아웃 데어> 등의 에세이와 <컬트 클래식>, <더 클래스프> 등 장편소설을 출간하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 유머 문학상인 서버상 최종 후보에 두 차례나 올랐으며 구겐하임 재단과 예도 펠로를 지내는 등 작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컬럼비아대학교와 뉴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뉴욕타임스, 뉴요커, 보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이 단순한 추모록을 넘어 누군가를 상실한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 거대한 빈자리를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처절한 생존기임을 밝혔다.


슬픔은 정해진 공식대로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저자는 할머니의 유품이 사라진 물리적 상실을 시작으로 러셀 페로의 죽음이라는 거대한 정신적 상실의 심연으로 나아간다. 뉴욕 아파트라는 가장 내밀하고 안전한 공간을 침범당한 충격은 영혼의 안식처였던 오랜 우정의 파괴로 이어진다. 저자는 잃어버린 보석을 되찾기 위해 이베이와 전당포를 뒤지며 집착에 가까운 추적을 벌인다. 이것은 러셀의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통제하고 되돌려 보려는 무의식적이고 처절한 몸부림이다.


'부정, 협상, 분노, 우울, 이후'로 이어지는 책의 목차는 퀴블러 로스의 보편적인 애도 단계를 차용하고 있다. 저자의 감정은 그 정해진 틀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질서하고 맹렬하게 요동친다. 빈티지북스 시절 러셀과 함께했던 치열하고 찬란했던 출판계의 추억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상실의 고통과 극명하게 대비되며 독자에게 깊은 먹먹함을 안긴다.


엔딩에 이르러 저자는 잃어버린 보석을 완벽하게 되찾거나 깊은 슬픔을 극복하는 식의 작위적인 해피엔딩을 제시하지 않는다. 슬픔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서둘러 잊으려 하는 대신.. 그 거칠고 날것인 감정 자체를 곁에 두고 고요히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슬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해야 할 무거운 짐이나 숙제가 아니다. 상실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영원히 머무는 고결한 영토임을 저자는 깨닫는다. 떠난 이의 자리를 다른 무엇으로 무리하게 지우거나 채우려 하지 않고 그 서늘한 공백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길을 묵묵히 선택한다. 


슬론 크로슬리는 러셀 페로라는 대체 불가능한 친구이자 멘토를 잃은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을 통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보편적인 상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잃어버린 물건은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잃어버린 사람은 우리 내면에 지워지지 않는 영구적인 흔적을 남긴다. 작가는 그 흔적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직시함으로써 애도가 곧 삶을 향한 강력한 의지임을 증명해 낸다. 상실 이후의 삶이 여전히 가치 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묵직한 서사는 남겨진 자의 슬픔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역설한다.


결국 슬픔이란 갈 곳을 잃어버린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소중한 사람을 잃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삶이 기적인 건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매일 잠에서 깨어나 삶을 지키고자 싸우기로 한다는 사실, 꿈틀거리며 빠져나가려는 삶을 품에 꼭 끌어안는다는 사실이다. 그 정반대의 일이 더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기적, 순전한 기적이다."



책 속의 이 문장은 상실이라는 거대한 절망 앞에서도 기어코 삶을 껴안고 나아가야 하는 인간의 숭고한 의지를 서늘하면서도 아름답게 짚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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