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에 선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3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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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든 린덴나무, 젊은 나이에 시들었다네.

마른 나뭇잎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지. 내 머리에 달렸던 것들을..

_<생명과 푸르름을 주오>_구스타프 프뢰딩, 스웨덴 서정 시인_334p



마르틴 베크 세 번째 시리즈. 무대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이다. 스칸디나비아 최대 도시답게 횡행하는 범죄는 잔혹하고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원에서 노약자들을 노린 흉악 범죄가 발생한다. 노인들이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한 후 소지물을 절도 당하고, 무방비 상태의 아동을 노린 성폭행 교살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다. 대도시는 두려움에 떨고 경찰 치안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친다. 시민들이 자경단을 꾸려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순찰을 하다가 잠복 형사를 구타하는, 웃지 못할 사건도 터진다. 연쇄적으로 터지는 강력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연일 밤을 새우는 형사와 경찰들은 피로에 찌들어 무기력한 모습이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동료 콜베리, 군발드 라르손, 멜란데르는 별개의 건으로 보이는 강도/강간 사건의 용의자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지 오래다. 악인은 다른 악인을 본능적으로 알아본다고 했던가? 노상강도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검거하여 그를 통해 아동 강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보려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허나 이 사건들의 시작과 끝을 서술한 책을 펼쳐본 우리는 알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사건 발생 전, 어느 골함석판 발코니에 서성이는 사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독자들은 그가 아동 강간 사건의 피의자임을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다.



유능한 형사들은 헛물만 켜고 있고, 사건의 핵심에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범인을 놓칠 수밖에 없어. 또 다른 아동 피해자가 생길지도 몰라. 스톡홀름의 모든 시민들과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애정 하는 독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하는 가운데.. 형사들은 드디어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를 움켜쥐고는 범인의 은신처에 접근한다. 최초에 수상한 용의자의 신원을 제보한 어느 부인을 찾는 과정은 지난하기 그지없다. 막강 논리력에 피지컬을 겸비한 베테랑 형사의 종횡무진 활약을 마르틴 베크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런 히어로물은 셜록 홈스 시리즈에서 찾아야 한다. 어느 이름 모를 말단 경찰이 순찰 도중 들른 빵집에서 주위를 관찰하고 주의를 기울인 덕분에, 발코니에 선 남자를 쌍안경으로 스토킹 한 부인을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다.



삼엄한 봉쇄를 벗어나 으슥한 변두리 지역에서 다음 피해자를 물색하던 범인을 체포하는 과정 또한 우연함을 가장한 순찰 경찰의 노상 방뇨 덕분이었다. 일종의 횡재 아니면 운명적 연행/체포라고나 할까. 천재적인 히어로 형사의 활약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천인공노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불철주야 반복 업무를 하는, 평범한 경관들의 협력과 포기를 모르는 의지 덕분에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현장에서 발로 뛰고 음지를 살피는 그들 덕분에 사건을 해결하고 그리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이 셰발 & 페르 발뢰가 그리는 경찰들은 그렇게 서로 빚을 지고 신세를 지는 가운데, 어떻게든 사건을 해결하며 대도시의 안녕을 책임지고 있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위험 지역을 순찰하고 치안을 책임지는 모든 경찰들 또한 그럴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범죄 소설 <발코니에 선 남자>를 읽으며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다.





#발코니에선남자 #마르틴베크 #마르틴베크시리즈정주행멤버 #경찰형사소설 #문학동네 #엘릭시르 #마이셰발 #페르발뢰 #김명남번역 #서평단 #책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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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 유쾌발랄 사기꾼의 복권 당첨금 수령 프로젝트
마리사 스태플리 지음, 박아람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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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기만과 사기가 가득하다.

그러나 기만과 사기를 경계하느라 세상의 미덕을 놓쳐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고귀한 이상을 위해 싸우고 있고

선한 용기와 영웅적 행위가 곳곳에 가득하다._맥스 어만_<간절히 열망하는 것들> 중..




1982년 뉴욕시, 어느 수녀원 앞에 요란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삶의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누군가 버리고 간 아기일까. 주위를 지나던 사기꾼 '존 암스트롱'은 생면부지의 아기를 데려다 키우기로 작정하고는, 밖으로 나온 어느 수녀의 금목걸이를 협잡질을 통해 적선을 받는다. 그의 혀는 뱀처럼 거짓으로 가득하고 진실을 찾을 수 없다. 그는 아기에게 '럭키 암스트롱'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어린 시절부터 온갖 사기 수법을 가르치며 미국 전역을 방랑하기 시작한다.


'럭키'는 어릴 적부터 정체성이 흔들리고 혼란이 가득하다. 난 대체 누구일까. 엄마는 날 홀로 두고 어디 있는 거야? 난 왜 수시로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감춰야 하지? 아버지 존은 두루뭉술한 거짓으로 그녀의 마음을 다독이고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뚜렷한 정착지 없이 이곳저곳 발 닿는 대로 정처 없이 부유하는 삶. 자연스레 럭키는 외톨이가 되고 외로움을 면하기 위해 아버지 곁에서 사기 행각에 동조한다. 급기야는 그 안에서 자신을 감추면서 남을 기만하고 속이는 쾌감에 탐닉하게 된다. 하지만 럭키는 혼탁한 수면 아래 잠겨 숨이 막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감옥에 갇힌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여 대학에 진학했고, 남자 친구 케리를 만나 독립하기에 이른다. 그녀의 굴곡진 생은 여전히 험난했고 긴 터널의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케리는 아버지와 같은 류의 사기꾼이었고, 결국 그녀를 등치고 야반도주하고 만다. 설상가상, 사기 범죄로 지명 수배범으로 몰린 럭키는 좌절하지 않고 턱 밑까지 차오르는 진흙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한다. 그녀의 노력이 가상해서일까. 아니면 럭키라는 이름대로 무지갯빛 천운이 그녀를 휘감은 걸까. 복권 당첨으로 거액의 상금을 거머쥐게 된 럭키는 자신의 생모의 행방을 찾고, 무사히 거금을 수령하기 위해 좌충우돌, 로드 트립을 감행하게 된다.


책은 럭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저자 마리사 스태플리는 아버지 존을 통해 100% 칠흑 같은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록 사기에 농간을 즐기는 잡범이지만, 생판 모르는 딸을 위해 평생 헌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는 졸부의 돈을 교묘히 가로채고 자신의 정체를 감추는 것이 유일한 재능인지라, 럭키에게 그 재능을 물려줄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럭키를 버리거나 학대하지 않았고, 사기꾼으로서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성장시켰다. 저자가 서문에서 인용한 대로 기만과 사기에 물든 악인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숨은 온정과 미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수녀원에서 맺어진 부녀의 연은 우여곡절 끝에 질기게 이어졌다. 수감된 아버지와 달리 럭키는 파국을 맞지 않고 진탕에서 벗어나 낙원에 발을 들이는 데 성공했다.


우주의 모든 기운이 럭키에게 복을 몰아주어 그녀의 험난한 방랑 여행은 해피 엔딩을 맞은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녀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버지가 명명한 이름과 전수받은 달란트에 따라 사기와 협잡을 계속 일삼을지.. 생모의 이름을 따라 개과천선하여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을 따를지는 오로지 그녀의 선택에 좌우되리라.



"모두가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어요.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결국 모두 혼자가 될 거예요."



럭키가 읊조리는 저 깨달음과 신조를 잊지 않는 한, 그녀는 삶의 문턱에 걸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올바른 방향을 찾아 걸어가리라. 

그녀의 선택에 신중함과 현명함이 깃들기를.. 그 앞길에 벅찬 행운이 동행하기를..



#서평단 #럭키 #마리사스태플리 #문학수첩 #신간추천리뷰 #복권당첨 #사기협잡 #부녀인연

#온정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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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 플레이어 투 - 가상현실 오아시스에 숨겨진 일곱 개의 조각을 찾아서 레디 플레이어
어니스트 클라인 지음, 전정순 옮김 / 에이콘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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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국내 출간된 <레디 플레이어 원>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저자 '어니스트 클라인'은 메타버스 & 가상현실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메시아로 거듭났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원작을 바탕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2018년 동명의 영화를 개봉했다. '오아시스'라는 가상 세계에 숨겨진 세 개의 열쇠를 찾는 모험을 그린 영화는 원작을 스크린 상에 훌륭히 재현했다. 전 세계의 대중문화 오타쿠와 메타 버스 신봉자들은 원작에 이어 영화에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대중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N 차 관람이 늘어나고 도서 판매량이 늘어날 즈음, 나 또한 서울 어느 극장에서 <레디 플레이어 원>을 감상했다. 빈민가의 10대 소년이 가상 현실에 우연히 뛰어들어 퀘스트를 완수하며 성장한다는 스토리는 장대한 스페이스 어드벤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처럼, 극적인 몰입감과 재미를 선사한다. 막판 거대한 건담과 메카 고질라와의 한 판 대결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영화 감상 후 접한 원작은 500페이지가 넘는 텍스트를 통해 가상세계를 세밀히 구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우정과 사랑,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저자는 평생토록 덕질을 통해 갈고닦은, 책과 영화/음악 등에 대한 고급 & 전문 지식을 사이사이 배치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유도한다. 독자들은 그가 숨겨 놓은 복선과 힌트를 해독하고 풀이하며, 주인공과 함께 미션을 완수하고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쾌감을 누릴 수 있다.


몇 년이 흐른 후, 저자는 자신이 창조한 오아시스라는 세계가 과거의 유산에 묻혀 망각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무한 덕질을 통해 습득하고 켜켜이 누적된, 오마주를 바쳐야 마땅한 무궁무진한 대중문화판이 그를 키보드 앞에 다시 앉혔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오엔아이'라는 헤드기어를 통해 인간의 뇌와 정신까지 컨트롤하는, 기존의 오아시스를 급진적으로 확장시키고 진일보시키는 변혁을 꿈꾸었다. 정점에 오른 주인공 '웨이드 와츠'는 오아시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지만, 디지털 아바타 빌런의 출현과 함께 그의 아성은 삽시에 무너진다.


세이렌의 영혼을 깨우고 최강의 가상 빌런을 격파하기 위해 일곱 개의 조각을 찾아야 하는, 흥미진진한 퀘스트가 펼쳐진다. 흘러간 대중문화에 경배하고, 미래 세계를 촘촘히 건설하는.. 어니스트 클라인의 특기이자 장기는 신작 <레디 플레이어 투>를 통해 보다 원숙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일련의 퀘스트를 통해 세가에서 출시된, 시대를 앞선 여성 닌자 아케이드 게임과 80년 대 코미디 영화의 대부 '존 휴스' 감독을 소환한다.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팝 장르를 확장하고, 파격적인 캐릭터와 다양한 성 역할을 시도한 '프린스'에 오마주를 바친다.


마지막 퀘스트는 판타지의 영원한 대부, J.R.R 톨킨이 창조한 '실마릴리온'의 세계에서 궁극의 대적 '모르고스'의 왕관을 훔쳐야 한다. 저자는 마르지 않는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오아시스'를 탐험하는 이들의 좌충우돌, 혼란스러운 여정을 매끄럽게 촘촘히 구현했다. 텍스트로 차곡차곡 빚어지고 쌓아 올려진, 가상 우주에 떠다니는 온갖 피조물들은 손에 잡힐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실감 나고 생생하다. 어디 그뿐이랴! 저자는 머지않은 시기에 도래할 가상 세계에 대한 위험 요소를 포착하고, 현실 세계에 미칠 영향을 예견하여 소설의 주요 서사로 다루는데 성공했다. 리얼 월드와 가상 세계의 대립, 인공 지능/아바타의 체제 이탈과 반란, 마인드 백업과 이를 통한 디지털 환생과 멀티 유니버스 탐험까지.. 민감하면서도 복잡한 가상의 주제를 평생을 건 덕질과 탐구 정신으로 정면 돌파한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최근 어니스트 클라인은 레디버스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메타버스 플랫폼 'The ReadyVerse'를 선보일 예정이라 한다. "미래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다가왔다."라고 말하는 그는 진정한 덕후는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평단 #레디플레이어투 #어니스트클라인 #메타버스 #가상현실 #덕후덕질 #디지털환생 #에이콘출판사 #스티븐스필버그 #전정순옮김 #신간추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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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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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첫 출간된 이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200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른 더글라스 케네디_<빅 픽처>. 2024년 새로운 표지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출간되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당시에 이 책을 펼쳐 읽지는 않았다. 치열한 사회생활에 지쳐 허덕일 때였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이 책이 살아남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이 소설은 14년이 흐른 후에도 독자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거친 시간의 풍파에 밀려 수북이 쌓인 책 무덤에 묻히지 않고 신간 목록에 우뚝 선 <빅 픽처>. 난 책 표지를 열어 정독할 수밖에 없었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공들여 창조한 이 소설은 변호사 '벤자민'이 갈수록 꼬이는 현실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여정을 그린, 일종의 로드 스릴러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벤자민은 일찍이 사진작가를 꿈꾸지만 아버지의 강권에 굴복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작가를 꿈꾸는 아내와 결혼하여 어린 자식들을 돌보며, 남부럽지 않은 중상류층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아내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그와 충돌하며 불만을 표출하는데.. 결국 이웃 어느 사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벤자민은 그를 추적해 덜미를 잡지만, 말다툼 끝에 우발적으로 상간남을 살해하고 만다. 벤자민은 깊은 고뇌 끝에 완전 범죄를 꾀하며 치밀한 알리바이와 신분 세탁을 통해 2회차 인생을 작당하는데.. 과연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 행세를 한다는 서사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재능 있는 리플리>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접한, 익숙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또는 주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꿈과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의 로망을 자극하며 기존의 스릴러물과 차별화를 꾀했다. 저자는 벤자민(벤)과 주변 인물과의 밀고 당기는 갈등 구조와 이를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플롯을 치밀히 전개하며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 묘사와 사진 예술에 대한 감평은 디테일이 살아있고, 인물들의 대화는 생생하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 열광했고, 결국 <빅 픽처>는 밀리언 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만약 벤이 와인병을 들어 게리 서머스의 머리를 가격하지 않았다면, 맥없이 주저앉아 현실에 안주했다면 이후 소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었으리라. 또는 살인을 저지른 후 무기력하게 자수하거나 허술하게 행동했다면, 그는 잔혹한 살인자의 낙인이 찍힌 채로 감옥에 갇혔으리라. 그는 자신을 옥죄는 굴레와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생 필사의 몸부림을 쳤다. 그의 철두철미한 계획과 임기응변, 천운마저 그를 감싼 탓에 제2의 인생은 성공하나 싶지만, 운명은 그를 호락호락 놔주지를 않는다. <빅 픽처>, 이 소설은 비좁은 삶의 화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는 한 남자의 험난하고 기나긴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그 길은 온통 가시밭길이며 도중에 마주치는 이들은 협력자도 있지만 이빨을 드러내는 악인들이 부지기수다. 벤이 어떻든 역경을 돌파하고 사진작가로서 재능을 꽃피우면서, 그 과정을 지켜본 독자들은 그를 동경하고 응원을 할 수밖에 없다. 소설을 단숨에 독파하고 역자 후기까지 읽고 나서 난 궁금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조력자이자 애인 앤과 함께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았을까? 과연 이후 도래하는 프라이버시가 전무하고 사방팔방 관계가 뻗어가는 SNS 시대에 그는 신분을 감출 수 있었을까? 어찌했든 그는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자신의 인장이 새겨진 '큰 그림'을 그리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한 폭의 그림을 이루기까지 구상, 스케치와 세부 묘사를 하는 전 과정을 누리고 싶다면..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픽처>를 펼치시라. 한 편의 소설을 통해 맛볼 수 있는 최대치의 대리 만족과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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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처럼 사라진 남자 마르틴 베크 시리즈 2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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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부터 살인 현장이 펼쳐진다. 이미 시신은 감식반에 의해 실려나갔고, 하얀 묵필로 표시된 굵은 실루엣 만이 남아있다. 스웨덴의 노련한 형사 '마르틴 베크'는 동료 콜베리와 함께 용의자의 자백을 받는 데 성공한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그는 가족들과 함께 섬에서 휴가를 즐기지만, 그를 찾는 긴급한 전화와 함께 달콤한 휴식은 산통이 깨지고 만다.

'마르틴 베크'의 두 번째 이야기는 그가 휴가 중에 긴급히 경찰서로 복귀해야 하는 건으로 시작된다. 스웨덴의 발 빠르고 영민한 저널리스트 한 명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실종됐다. 외무부 관료, 실종 기자가 소속된 잡지사, 헝가리 현지 경찰까지 개입하여 복잡히 엉킨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갈수록 미궁으로 빠지는데..



마르틴 베크는 혈혈단신 부다페스트로 건너가 실종자의 족적을 쫓는다. 60~70년대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을 건너는 유서 깊은 다리들, 머르기트 섬, 페슈트 구역과 부더 구역 등 주요 시가지의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 생생히 묘사된다. 주의 깊고 신중한 형사와 마주치는 용의자들의 인상착의는 세세히 그려진다. 그의 오감을 동원하여 감지하는 현장의 특이점과 분위기는 담담하면서도 세심한 문장으로 다가온다. 동료들, 협력자들과 나누는 대화는 시니컬하면서도 위트가 흐른다. 공동 저자 마이 셰발, 페르 발뢰가 창조한 '마르틴 베크' 시리즈 2탄,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는 경찰 소설의 신영토를 개척할 만한, 완숙한 경지를 선보인다.


사건의 서사는 초반에는 차분하게 진행되다가, 변곡점에 이르러서는 긴장도를 끌어올리며 독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용의자로 마주친 여성이 마르틴 베크의 숙소를 찾아와 유혹하는 장면은 활화산처럼 끓어오르다가 차갑게 얼어붙는다. 대마초를 밀매하는 패거리가 그를 불시에 습격하여 난투를 벌이는 장면은 혈흔이 난무하고 아슬하기만 하다.


피날레까지 30여 페이지를 앞두고, 마르틴 베크는 스웨덴으로 돌아와 사건을 처음부터 되짚는다. 그는 냉철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행방이 묘연한 기자의 행적을 역으로 되밟으며 용의자를 절벽 끝으로 몰아간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숨 막히는 반전과 고밀도의 서사를 독자에게 선사하며 마지막 페이지와 문장까지 긴박감을 불어넣는다.

과연 마르틴 베크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사건을 마무리 짓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휴양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수사에 임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를 펼치시라.



우리는 유럽의 북적이는 구시가지와 낡은 선로를 운행하는 목재 열차, 썩은 달걀 냄새가 진동하는 유황 온천에서 어느 형사의 지친 얼굴을 마주할 것이다. 뿌연 안갯속에서 야광으로 빛나는, 형형한 두 눈동자가 어둠을 꿰뚫는다.

그의 발걸음은 느리지만 지칠 줄 모르니 부디 놓치지 말고 뒤를 따르라. 그는 자그마한 실마리도 놓치지 않고 사냥개 마냥 끈질기게 따라붙어, 짙은 그늘 아래 숨은 범인의 목을 조르고 수갑을 채울 것이다. 우리는 마르틴 베크,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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