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마지막 여름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음, 김현주 옮김 / 잔(도서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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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로마'는 화려하고 북적이는 대도시지만, 그 이면은 황량하고 혼탁한 데다 퇴색되어 가는 그림자가 기울었다. 그 도시에 머무르는 이들은 수많은 군중들에 둘러싸여 정처 없이 표류한다. 그들은 과장된 미소를 지으며 관심과 사랑을 갈망하지만, 도시가 내뿜는 어둑한 그림자에 온몸이 물드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외로움과 고독은 떨어질 수 없는, 그들의 절친이었다.




1973년 첫 출간 이후, 절판과 재출간을 거듭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으로 남은 컬트 소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출간되었다.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이어진 명성답게, 로마의 명소를 묘사한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의 문장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정교하기까지 하다. 커플의 애정 행위를 정밀 스케치한 문장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에로틱하게 들끓는다. 책을 읽다 보면 밀라노에서 로마로 건너온 '레오'가 되어 핀초 언덕의 테라스, 캄포 데이 피오리의 쉼터, 움베르티노 지구 등 한여름 로마의 곳곳을 방랑하듯 거닐 수  있다. 레오는 완벽한 혼자가 아니었다. 로마 상류층에 속하는 어느 부부와 가까이 지냈고, 뜻이 맞아 함께 영화를 제작하려 한 절친 '그라지아노'도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그와 사랑 비슷한 감정을 나누는 '아리아나' 또한 나비처럼 그의 곁에 머물다 사라짐을 반복하며 육체적 관계를 맺는다.


번잡한 도시 안에서 무의미하고 공허한 나날을 지속하던 레오는 곁의 모든 이들을 관찰한다. 어떠한 분석이나 냉철한 비판 없이 방관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끝 모를 고독의 중심으로 점차 끌려간다. 가혹한 운명은 무더운 도시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진심으로 교류하던 그라지아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의 시신을 수습하면서 레오는 도시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 존재의 의미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애써 숨기고 부정하면서 아리아나 곁에 머물려 했던 그는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헛된 허영심과 사치에 잠식당한 그녀는 결국 레오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 레오는 하이에나처럼 타인이 남긴 음식을 먹어치우고, 사랑하는 애인을 독차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절감하며, 도시에서 버림받고 추방당한 모든 이들을 받아주는 푸른 '바다'를 향해 다가간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영원을 향해 나아갔다.

 



50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이 대중들 사이에서 망각되지 않고 복간되는 데는 어떤 보편적 의미가 숨어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종 SNS로 촘촘히 연결된 인터넷/디지털 AI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레오가 느끼는 고독감과 허무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간관계는 이런 모순을 극대화하며, 무수한 팔로워에 둘러싸여 소외감과 외로움을 면치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량적인 숫자로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기간 고립되어 끝내 고독사할 처지에 몰리는 이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도심의 이면에 깔린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진심 어린 사랑과 우정을 나누지 못하는 '레오'들은 오늘날 대도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돛을 올리고 나아가야 할 뚜렷한 목적지 없이 떠도는 이들. 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존재 의미를 숙고하지 않은 채, 부유하는 이들이 여러 도시에 남아있는 한, 이 책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보편성을 획득할 것이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시대를 관통하는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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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6 - 터무니없는 거짓말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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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에 그린란드 탐사를 떠났다가 북극 생활을 시작한 작가. 허풍담(skroner)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진정한 탐험가. 요른 릴.. 그의 걸작은 자신의 원고를 몰래 출판업자에게 빼돌린 책 장수가 아니었다면 영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헀으리라.



덕분에 난 2012년 인쇄된 한글 초판본 3권을 가지고 있다. 이후 후속 출간이 요원하다가 열림원에서 이어 출간한다는 소식에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최신작 6권을 단숨에 읽어내린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북극 사내들의 폭풍 수다는 그칠 줄 모른다. 독한 화주에 취해 비틀거리는 순진남, 궤변가, 귀족, 전직 군인, 주정뱅이, 목회자 등이 모처에서 털어놓는 에피소드는 박수를 치며 포복절도하다가도, 때론 절벽 끝으로 떠밀리는 인간사 허무함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북쪽 끝에 처박힌 괴짜들이 다시 돌아왔다. 청산유수처럼 흐르는, 타고난 걸걸한 입담에 '아랫것'들은 두 손 모으고 귀 기울여 경청할 수 밖에 없다. 오늘은 또 어떤 기상천외하고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두 벌겋게 달군 석탄 난로 주위로 모여보자. 밤새도록 먹고 떠들다가 집 앞 철썩이는 얼음 바다로 뛰쳐나가 하의를 벗고 방광을 비우는 의식에 참여해보자. 소위 저 수평선을 높이는 거룩하고도 숭고한 의식 말이다. 절로 웃음이 터지고 온몸이 바르르 떨리리라. 이 맛에 <북극 허풍담>을 손에 쥐고 키득거리며 읽는다.

재기 넘치는 덴마크의 노작가 요른 릴의 후속작이 어서 출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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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투 서울홈스테이 - 60대 영알못 엄마와 30대 회사원 딸의 좌충우돌 외국인 홈스테이 운영기
윤여름 지음 / 푸른향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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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영알못 엄마와 30대 회사원 딸의 요절복통 좌충우돌 외국인 홈스테이 운영기를 한권에 담았다.
한류 열풍으로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여행오고 있다. 케이팝 아이돌에 빠져서, 한글을 배우고 싶어서, 누군가는 러닝맨 같은 예능 프로 덕후라서.. 너도 나도 한국 특히 서울 땅을 밟고 있다. 저자는 남편을 잃고 방황하고 쓸쓸해 하는 엄마를 설득해 홈스테이를 하기로 결심한다. 이 과정에서 어찌 시행착오가 없었겠는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 방귀와 트림을 연발하는 엄마, 여행객들을 친자식처럼 대한 나머지 시도때도 없이 시전하는 그녀의 무한 잔소리 등으로 트러블이 생기곤 한다. 외국인들 또한 인성이 좋은 이들도 있지만 혀를 내두르는 진상들도 그들 곁에 머무르곤 한다. 그럼에도 모녀는 포기하지 않고 외국인들과 어울리며 정성스러운 한식을 대접하고, 한가족처럼 진심으로 대하며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한다.
저자는 고백한다. 자신의 집에 외국인들을 받아들이며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한국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이전에는 정신 없이 바쁘고 미친듯이 서두르는 이 도시를 떠나려 했다면, 지금은 이방인들과 여행하는 기분으로 서울과 한국의 새로운 면을 나날이 발견하고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감히 홈스테이를 시도할 엄두는 못 내지만, 이 책을 통해 홈스테이의 장단점과 생생한 운영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대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값진 경험이라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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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상위 100%
김시훈 지음 / 덤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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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쏟아진 신간의 표지 디자인을 놓고 Top 10을 매긴다면 난 이 책을 원픽으로 밀어 몰표를 던지고 싶다. 저자의 자화상인지 누구의 타화상인지 모르겠으나 흑백과 컬러로 조각난 표지의 매서운 눈길이 부담스러운건 사실이다. 곁의 아이들도 좀비 아니면 괴물이라고 꺄악, 기겁하는 걸 보면.. 

급진적인데다 파격적이고 키치하면서 퇴폐적인, 온갖 금기 터부를 박살내려는 표지인의 따가운 시선을 마주하기 버겁다면 해결책은 하나 뿐이다. 그건 바로 책을 펼쳐 작가의 입담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문제는 얼핏 들으면 주사끼 다분한 어느 술자리의 장광설에 모순 섞인 궤변이 한바탕 휘몰아치는데.. 이를 상대 멱살 잡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일종의 뻔뻔함과 근엄 진지함에 나도 모르게 그래, 당신 말이 100번 옳고 맞다..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고 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게, 극적으로 논리적이다. 

밤새 이어지는 그의 입심에 절로 고개가 꺾이고 오늘도 틀렸구나 이대로 꼴딱 밤 새보자 엎드려 자는 척해도.. 귓가에 대고 끊임없이 술술 터지는 그의 수다에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첨언하자면 이 책을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펼쳐서 읽는다면 다수의 시선을 확 끌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앞뒤표지는 폭발하는 근자감과 관종끼 없이는 감히 타인에게 내보이기 어려운, 낯섦 & 부끄러움 지수 상위 1%를 자랑한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모든 것(몇몇 치부까지 포함해서..)을 속속들이 내보이기로 작정한 듯 싶다. 난 그렇게 이 책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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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놀이터가 생겼어요 - 오감발달놀이 아기 물고기 하양이 시리즈 11
하위도 판 헤네흐턴 지음, 서남희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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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온갖 감각을 끌어내 주위 사물과 어울려 흥겹게 노는 재주를 지녔다. 하양이와 친구들 또한 그렇다. 물밑 가라앉은 낡은 구두마저도 미끄러지고 숨바꼭질을 하는 놀이터로 활용한다. 화사하면서 단순한 캐릭터와 오감을 자극하는 놀잇감이 가득한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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