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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없는 밤
서한나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4년 11월
평점 :
한국의 밤은 알코올에 잠겨 헤롱댄다. 알코올이 없는 한국의 밤은 상상하기 어렵다.
어느 미친 대통령이 계엄령 대신 금주령을 전국에 내린다면, 전국의 연말 회식 자리에서 알코올을 철폐, 단속한다고 공표한다면.. 그는 한 달 내로 탄핵되고 심지어 측근에게 암살될지도 모른다.
글항아리 신간 <술 없는 밤>은 알코올이 넘치는 한국 사회에서 "저는 술 안 마셔요."라고 당당히 외치는 작가들의 진솔한 글을 담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밤을 지새우며 필름이 끊기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술꾼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속 이야기. 페이지를 넘기며 지난날 알코올이 날 집어삼켰던 무수한 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난 술을 마실 수 있지만, 과음하면 안 되는 류의 인간이다. 과음하면 난 종종 괴물이 되곤 한다. 누구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아무 데서나 잠을 잔다지만.. 난 그런 얌전한 주사파가 아니었다. 족쇄에 갇힌, 쌓이고 쌓인 트라우마가 알코올의 힘을 빌려 폭발하곤 했다. 기억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돌변하여 욕지거리를 퍼부었고, 돌연 시비를 걸어 폭력적인 싸움에 휘말렸다. 술이 깬 다음 날 어색한 분위기 속에 당사자를 찾아가 연신 죄송하다고 머리를 굽히던 시절.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술 마시면 그럴 수도 있지, 은근슬쩍 용인하고 무마하는 느슨한 기류가 존재했다.
결국 내가 견디지 못해 알코올에 찌들지 않아도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삶으로 탈출했다.
간혹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떠오르고, 현실의 괴로움을 일시적이나마 희석하는 알코올의 몽롱함이 떠오를 때가 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술 대신 일상을 점유할 수 있는 여러 즐길 거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알코올을 찾지 않는다. 이제는 누구도 술을 마시라, 소맥을 원샷 하라! 강권하지 않기에, 애초에 그런 떠들썩한 술자리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기에.. 난 야심한 시간에 책을 읽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
마음이 동하는 시의적절한 책을 읽고, 이에 공감하면서 글을 쓰다 보면 점차 주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 자신만 남는다. 자연스레 시간은 내 발목을 놓아주고 몽롱하고 흐릿한 정신은 점점 맑아진다. 도중에 필름이 끊길 수도 있지만, 알코올 중독과는 엄연히 다르다. 술 없는 밤은 청정하면서도 쾌락적이다. 심신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어디로든 비행할 수 있다. 만취의 나날로 인한 온갖 기억들. 일체의 폭력, 폭언, 혼탁함, 치욕, 수모를 떨쳐낸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두통과 구역질을 겪지 않은 채, 다음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난 <술 없는 밤>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스쳐간 술꾼들, 최악의 주사를 떠올리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알코올 없이 취하는 기쁨을 누렸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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