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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감탱이가 아직 더 살겠다고
정성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0월
평점 :
위즈덤하우스 신간 정성기 작가 에세이 <이 영감탱이가 아직 더 살겠다고>는 치열한 노년의 일상을 유쾌하고 시니컬한 언어로 풀어낸다. 저자는 11년간 치매 노모를 간병하며 삼시 세끼를 차려낸 생생한 기록을 담은 전작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로 이미 많은 독자에게 먹먹한 울림을 전한 바 있다.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광고회사 임원으로 일했던 그는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아파트 경비원, 실버 택배, 벼룩시장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스스로 삶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해 냈다.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밥을 짓고 자전거를 타며 하루를 꼼꼼히 기록하는 성실한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가식 없는 언행과 꾸밈없는 생명력이 MZ 세대의 격한 공감을 얻으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고단함 속에서도 단단한 태도를 잃지 않으려는 청년층부터 늙어감을 고민하는 중장년층 모두에게 적극 권할 만한 책이다.
스머프할배의 사랑방과 세대를 초월한 소통
저자 정성기를 세상과 연결해 준 핵심 고리는 네이버 블로그 '스머프할배의 사랑방'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2008년 손녀에게 남겨줄 이야기를 정리하기 위해 시작한 이 공간은 어느덧 누적 방문자 수 500만 명을 돌파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5,000개가 넘는 포스트가 쌓였고 그 속에는 화려한 수사 대신 날것 그대로의 삶이 요동친다. 해가 떴는데 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향해 호통을 치다가도 정작 본인의 굽은 등과 쑤시는 어깨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노인의 고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숨김없는 감정 표현과 자기 객관화는 고약한 세상을 버텨내는 그만의 독창적인 무기다. 억지로 교훈을 주려 거들먹거리지 않고 그저 따뜻한 밥 한 끼 챙겨 먹으며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능동적인 일상이 독자들에게 묘한 위로를 안긴다.
책 속 문장으로 엿보는 늙음의 핍진성
책은 총 3장으로 나뉘어 노년이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중간중간 그려진 김푸른 작가의 파스텔 톤 삽화는 친근함을 더한다. 1장 '더 살겠다고 운동하고 빨래하잖아'에서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돋보인다. 새벽에 일어나 방구석에서 뒹굴면 찾아올 사람은 저승사자뿐이라 억지로 움직인다는 대목이나,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정신 차려 이제 넘어지면 즉사라고 되뇌는 늙은 마음의 소리는 서글프면서도 실소를 자아낸다. 낙엽을 보며 낭만을 외치는 것은 젊은 날의 치기일 뿐, 아파트 경비원으로서 빗자루질할 생각에 골머리를 앓는 장면에서는 노동하는 노인의 팍팍한 현실이 리얼하게 다가온다. 2장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와 3장 '어제는 잊고 내일 걱정 말고 오늘 제대로 살아'를 관통하는 정서 역시 통쾌하다. 비 오는 날 출근길에 말썽 부리는 몸뚱이를 탓하는 자신을 죄 없는 며느리 닦달하는 사흘 굶은 시어머니에 비유하는 문장은 번뜩이는 유머 감각의 정수를 보여준다.
낮은 자리에서 나를 바로 세우는 다짐
<이 영감탱이가 아직 더 살겠다고>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인간의 존엄을 놓지 않으려는 작가의 결연한 태도다. 정감 가는 푸근한 그림과 함께 배치된 저자의 다섯 가지 기도는 진득한 여운을 선사한다. 내 손으로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내 발로 이 땅에 서며 가족 안에서 은혜를 다시 깨닫고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겠다는 선언이다. 덧붙여 맑은 영혼으로 기도하며 낮은 자리에서도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나를 바로 세우겠다는 문장은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맞고 버텨낸 자만이 쓸 수 있는 진실한 고백이다. 요령 피우지 않고 매일 땀 흘리며 페달을 밟는 스머프할배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앞으로도 수많은 이들의 든든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악착같이 살아내는 생존기에서 배우는 삶의 태도 & 추천 이유
책의 말미에 수록된 '독자에게 전하는 편지'를 살피면 저자가 버텨온 험난한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다가온다. 치매 어머니를 십일 년간 간병하며 얻은 두 가지 선물 즉 요리와 글쓰기는 단순한 여가를 넘어 생존을 위한 절실한 동아줄이었다. 고단한 아파트 경비 노동 중에도 짬짬이 메모하고 새벽 퇴근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삶을 기록한 그 끈질긴 성실함은 핑계로 점철된 우리의 나태한 일상을 매섭게 꾸짖는다. 늘그막에 고생한다고 슬퍼하기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믿으며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스스로의 이름과 얼굴을 책임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저자의 고백은 벼락같은 자극을 준다. 밥 한 숟갈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은 세대를 불문하고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다. 가끔은 궁상맞아 보여도 훗날 돌아보면 희로애락이 담긴 한 편의 멋진 시가 될 것이라는 통찰은 팍팍한 현실을 견디는 모든 이에게 다정한 위안으로 다가온다. 스머프할배가 부디 앞으로도 튼튼한 두 다리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맑은 정신으로 기록하는 삶을 오래도록 이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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