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자랐고요 아직도 종로에 삽니다
심이안 지음 / 크루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루 신간 <종로에서 자랐고요 아직도 종로에 삽니다>는 1999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한 심이안 감독의 첫 에세이다. 저자는 단편영화 <빼고>로 제16회 광주여성영화제 작품상, 제6회 서울 여성독립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신예 영화인으로, 현재 어머니인 김소연 감독과 자전적 장편 다큐멘터리 <자바커피 다이어리>를 제작하며 자신만의 솔직하고 담백한 작품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세상을 관찰하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유년 시절을 보냈고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6년을 지낸 뒤 다시 돌아와 14년째 정주 중인 종로라는 공간을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해 낸다. 엄혜정, 남궁선, 오유경 등 문화계 인사들이 추천사를 남겼듯.. 이 책은 잊고 지냈던 자신의 동네를 새롭게 발견하고 싶은 독자나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유대감, 성장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이들에게 충실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유년의 기억을 필름처럼 재생하다

책장을 넘기면 1999년생 저자 심이안이 어린 시절을 보낸 안국역 일대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가회동, 계동, 소격동 등 창덕궁 주변의 여러 동네를 누비며 쌓은 기억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운현 초등학교로 향하던 등꿎길, 대동세무고등학교 앞 내리막길에서 눈을 감고 달리다 주차된 자전거에 부딪혀 입술을 꿰맨 일화는 미소를 자아내면서도 어린 시절의 무모한 용기를 돌아보게 만든다. 안국역 3번 출구 지하에 있던 드림디포 문구점에서 친구 유나, 동연과 함께 우정 반지를 맞추며 서운함을 달래던 장면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순수한 시절의 풋풋한 기억을 자극한다. 우리는 저자의 손을 잡고 종로의 좁은 골목을 함께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야기 도깨비가 자란 다정한 공간

가족과의 애틋한 일화는 책 전반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주최한 가을 음악회에서 가족과 남산에 올라간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앨범 <할머니 가방 (열 손가락의 신나는 나들이)>에 담았던 추억은 단연 흥미롭다. 충무로 방송국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아빠가 거실 양털 카펫 위에서 들려주던 이야기를 들으며 저자는 이야기 도깨비로 성장했다. 부모님의 헌신과 애정 덕분에 저자가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영화감독이자 작가로 자라날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3학년 여름,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지 못해 수영장 앞에서 멈춰 섰던 아이를 위해 엄마가 하던 일을 멈추고 데리러 온 대목은 애틋한 여운을 남긴다.


이방인에서 다시 단골이 된 학창 시절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서 6년을 보낸 저자는 중학교 3학년 무렵 다시 종로로 돌아와 낯선 환경과 마주한다. 유명 드라마 <도깨비>, <겨울연가>, <여신강림>의 단골 촬영지일 만큼 고풍스러운 중앙중학교 교정에 서서히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잔잔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후 중구 명동에 위치한 계성여자고등학교로 진학한 저자가 안국역과 낙원상가를 지나 등교하며 자신만의 일상을 개척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특히 학창 시절의 든든한 아지트가 되어준 정독도서관에서의 추억이 돋보인다. 어문학 족보실에서 옛사람들의 뿌리를 상상하며 단어를 외우고, 구내식당 소담정에서 돈가스와 우동으로 학업 스트레스를 달래던 장면은 입시를 거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하다. 나 또한 소담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간식을 함께 나눈 추억이 있기에 그 추억을 소환할 수 있었다. 또한 아빠의 손에 이끌려 명륜2가로 자리 잡은 단골 LP 바 더 도어스 II에 방문해 분홍색 장식이 있는 초코 케이크를 받으며 생일을 축하하던 에피소드는 어느덧 부모와 취향을 공유하며 훌쩍 자란 저자의 성장을 실감케 한다.


카메라 렌즈로 재발견한 동네와 사람들

대학에 진학하여 영화를 전공하면서 종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야는 한층 다채로워진다. 종로 일대의 오래된 사진 현상소 우성상사에서 일회용 필름 카메라 퀵스냅을 현상하고, 예지동 시계골목의 세기사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에 매료되는 대목은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자아낸다. 영상 창작자로서의 열정은 2018년 초단편 영화 <아리에게 (Dear Ari)>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눈부시게 드러난다. 11월에 눈 덮인 창덕궁 후원을 배경으로 아리, 윤아, 예은, 혜원 등 동기들과 고군분투하며 촬영을 마친 뒤 엄마 김소연 감독의 옛 카세트테이프 목소리를 영화에 삽입하며 눈물을 흘렸던 일화는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나아가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인왕산에 오르거나 동대문역 근처 네팔 식당 뿌자에서 달밧과 모모를 맛보는 등 저자는 익숙한 동네에서 낯선 세계를 끊임없이 발견해 나간다.


낯선 곳에서의 성장과 다시 마주한 종로

혼자서 횡단보도조차 건너지 못하던 아이는 엄마의 결단으로 인도네시아 수라바야로 떠난다. 그곳에서 6년의 세월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종로에 자리 잡은 지 어느덧 14년이 흘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105킬로그램이 된 주인공을 다룬 판타지 단편영화 <빼고>로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저자는 이제 어엿한 프리랜서 감독이 되었다. 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걷는 저자의 시선은 남다르다. 익숙한 동네에서 여전히 새로운 찰나를 발견하며, 엄마 김소연 감독과 함께 장편 다큐멘터리 <자바커피 다이어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장소와 사람이 맺는 끈끈한 관계성을 증명한다.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며 저자는 자신만의 단단한 뿌리를 종로에 내렸다.


나만의 동네를 묻는 단정한 에세이

이 책은 담백한 문장으로 자신의 삶을 차분히 기록한다. 과장된 감정 표현 없이 골목길의 변화와 사람들의 체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점이 눈길을 끈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길어 올리는 관찰력은 시각 매체를 다루는 영상 창작자 특유의 감각에서 비롯된 듯하다. 사라져 가는 가게들, 새롭게 들어선 한옥마을의 관광객 무리 등 변해가는 종로의 모습 속에서도 변치 않는 추억의 가치를 짚어낸다.

책은 단순히 한 개인의 향수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이 인간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력을 탐구한다. 엄마와의 관계 역시 이 책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유년 시절 딸의 교육을 위해 낯선 타국으로 이주하는 과감함을 보였던 엄마는 이제 딸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든든한 동료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길이겠지만, 저자에게는 매일매일 자아를 형성해 온 든든한 기반이다. 저자의 글을 따라 안국동 골목을 걷다 보면 어느새 독자 역시 자신이 나고 자란 동네의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장소가 품은 기억이 어떻게 한 사람의 자아를 형성하고 성장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매력적인 글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를 만든 동네가 있다

<종로에서 자랐고요 아직도 종로에 삽니다>는 한 사람이 한 동네와 오래 지내는 방법을 진솔하고 다정하게 안내한다. 바쁘게 쫓기듯 살아가며 자신이 속한 터전의 소중함을 잊고 지내는 모든 이들에게 이 에세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화려한 명소 이면에 숨겨진 소박한 골목길의 온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 바래지 않는 유년의 추억을 다시금 꺼내어 보고 싶은 분이라면 필히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종로에서자랐고요아직도종로에삽니다 #심이안감독 #크루출판사 #신간도서리뷰 #에세이추천 #에세이베스트셀러 #종로데이트코스 #안국역가볼만한곳 #서촌나들이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독서기록장 #정독도서관 #영화감독에세이 #가을에읽기좋은책 #책추천 #서평단 #동네산책 #골목길여행 #창덕궁돌담길 #성장스토리 #가족에세이 #위로가되는글 #독서모임발제도서 #20대책추천 #서평단 #도서제공협찬 #신간추천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