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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평점 :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이희영 작가의 새로운 세계
이희영 작가는 2013년 단편소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로 제1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8년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페인트>와 제1회 브릿G 로맨스스릴러 공모전 대상을 받은 <너는 누구니>를 통해 현실의 날 선 단면을 환상적인 설정으로 버무려내는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왔다. <나나>, <안의 크기>,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꾸준히 독자들과 소통해 온 저자는 이번 신작 <이벤트> 출간을 즈음한 작가의 말에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페인트> 출간 이후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어른으로 성장한 당시의 청소년 독자들 그리고 현재 거친 세상의 파도 속에서 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소박한 위로를 선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필 의도는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2030 세대와 청소년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 타당한 이유가 된다.
과거와 미래가 조우하는 신비로운 공간, 담야
<이벤트>의 중심 배경은 고즈넉한 한옥 호텔 담야다. 손님이 뜸한 담야의 홍보 이벤트를 기획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주인공 조슬목은 어느 날 원인 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자신의 집에 모르는 이의 쪽지가 남겨져 있음을 알아채는데.. 매일 밤 침입자의 흔적을 느끼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던 서른두 살의 조슬목은 화면 속에 찍힌 낯선 남자가 스무 살의 어린 자신임을 알게 된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마주한 두 슬목은 담야의 동료 직원인 승아와 함께 다채로운 사연을 품고 호텔을 찾는 이들을 위한 포근한 행사를 준비한다.
상처를 보듬는 따스한 시선과 반전의 감동
2장 방문객에 등장하는 어린 이모 모모와 시각 장애인 조카 조조의 에피소드가 눈에 띈다. 나이 어린 비장애인 이모가 험난한 과정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나이 많은 시각 장애인 조카를 위해 깜짝 축하 이벤트를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가 은연중에 품고 있던 낡은 편견을 단번에 깨뜨린다. 타인의 아픔을 마음 다해 공감할 줄 아는 조카의 앞날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이모의 영상 편지는 억지스러운 감동을 배제하고 인물들의 온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더불어 3장에서 야간에 호출 당한 스무 살의 슬목과 승아가 엉성한 재료를 모아 떡 케이크를 만드는 호텔 주방 씬 역시 인상적이다. 쌀가루와 녹차 당근 즙만으로 정성스레 케이크를 찌며 '조어름'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두 사물이 맞닿은 곳을 의미한다고 담담히 고백하는 슬목의 모습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기적적인 현재의 찰나를 절묘하게 구현한다.
섣부른 조언 대신 건네는 묵묵한 응원
이희영 작가의 전작들이 지닌 매력은 <페인트>에서 보여준 날카로운 사회적 상상력이나 <너는 누구니>의 치밀한 서스펜스에 있었다. 반면 이번 신작 <이벤트>는 판타지적 설정을 차용하면서도 한결 온화한 시선으로 인물들을 관조한다.
"인간이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시간을 줄여서 인생이라 한다잖아요(154p)"라는 승아의 대사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미래에서 온 서른두 살의 슬목이 과거의 자신에게 섣부른 조언이나 결과를 발설하지 않는다는 규칙 역시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결과를 미리 알면 실패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를 배반하고 스스로 부딪히며 살아내야 하는 삶의 고유한 가치를 긍정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만남을 기약하며..
스무 살의 불안, 미숙함과 서른둘의 피로와 정체감이 맞닿은 신비로운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는 단조로운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어깨를 내어줄 뿐이다. 마지막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고 홀연히 해외로 출국해 버린 미스터리한 담야 대표의 행보는 묘한 꼬리표를 남기며 자연스럽게 후속작을 예고하는 듯하다. 소설 중간에 담야의 존재를 모르는 (척하는..) 그와 마주치는 장면이 스쳐가는데, 대표인지는 확실치 않다. 향후 차기작이 출간된다면 고즈넉한 한옥 호텔 담야를 무대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이벤트가 펼쳐질지 기다려진다. 팍팍한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속도를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이들이라면, 조슬목과 한승아가 정성껏 준비한 이 초대장에 기꺼이 응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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