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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미우라 시온 지음, 김은경 옮김 / 시공사 / 2026년 7월
평점 :
일본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서사 역량을 증명해 온 미우라 시온이 일상과 독서, 여행의 면면을 유쾌하게 담아낸 신간 에세이 <좋아하게 되었습니다>가 시공사를 통해 2026년 7월 출간되었다. 1976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한 저자는 2000년 자신의 구직 활동을 바탕으로 집필한 <격투하는 자에게 동그라미를>로 데뷔했다. 이후 2006년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으로 나오키상을, 2012년 <배를 엮다>로 서점대상을 거머쥐며 대중성과 문학성을 공히 인정받은 거장이다. 2015년 <그 집에 사는 네 여자>로 오다사쿠노스케상, 2018년 <노노하나 통신>으로 가와이하야오 이야기상, 2019년 <사랑 없는 세계>로 일본 식물학회 특별상을 연이어 수상하며 흔들림 없는 작품성을 입증했다. 특유의 위트와 해학이 가득한 이번 신작은 김은경 번역가의 손을 거쳐 국내 독자들을 만난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여러 잡지와 신문에 연재했던 단발성 작품들을 한데 모은 이 책은 코로나 시기를 전후하여 겪은 평범한 생활 속 자잘한 기쁨과 슬픔, 활자 속에서 길어 올리는 사색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보여 준다. 한수희 작가가 추천사에서 "침대 옆에 두고 친구와 대화하듯 매일 밤 조금씩 읽고 싶은 책"이라고 평했듯, 지친 현대인에게 따뜻한 위안을 전하는 도서다.
<좋아하게 되었습니다>는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일상, 여행, 독서, 삶의 다채로운 단면들을 세밀히 포착한다. 1장 '아름다움과 사랑은 곳곳에 스며 있다'와 5장 '너무도 소소한 행복과 불행'에서는 재택근무를 주로 하는 저자가 동네와 집 안에서 마주하는 일상의 풍경을 관찰하는 따스한 시선이 돋보인다. 베란다 창가에 파키라와 미니 장미를 내놓고 기르면서 식물들이 '이거 위험한 인간한테 팔려 왔네'라고 탄식할지도 모른다며 자조하는 '이름 없는 친구' 에피소드는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든다. '박정한 봄의 싸움'에서는 화분에 심은 딸기를 두고 까마귀, 비둘기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는 모습이 그려진다. 커튼 틈새로 망을 보며 새들을 쫓아내고 기어이 자그마한 초록 알맹이를 지켜내는 저자의 끈기가 흥미롭다. '고양이 네트워크'에서는 길고양이의 접근을 막으려고 창가에 물 담은 페트병을 잔뜩 늘어놓은 도테라 차림의 여자와 그 집 화장실에 볼일을 보며 앙심을 품는 고양이의 팽팽한 신경전을 한 편의 시트콤처럼 묘사한다.
2장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과 4장 '걱정스러울 때나 여행할 때나'에서는 일본 소도시를 유랑하며 겪는 기상천외한 일화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시가현 비와호와 지쿠부섬을 방문하여 호콘지 관음당에서 참배하고, 깎아지른 비탈에서 도리를 향해 질그릇 접시를 던지며 압박감에 패배하는 장면은 시원한 웃음을 선사한다. 시즈오카현 택시 기사와의 찰진 대화를 다룬 '후지산 사랑'에서는 다자이 오사무가 후지산을 가리켜 '저리 친한 산'이라 칭한 대목을 인용한다(295p). 매일 명산을 마주하는 현지인들이 아름다운 자연에 몰래 가전제품이나 쓰레기를 가득 채운 교복 바지 등을 버리는 얌체족들을 향해 쏟아내는 분노를 실감 나게 전한다. '즉신불 순회 여행'에서는 이른바 '디자이너스 료칸'의 지나치게 세련된 수도꼭지 작동법을 몰라 홀딱 벗은 채 추위에 덜덜 떨며 곤혹스러워하는 상황을 묘사해 폭소를 자아낸다. 또한 컴퓨터 작업으로 뭉친 몸을 이끌고 대상포진을 의심하다가 마사지 숍을 전전하는 '로보캅 재생' 에피소드는 중년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거창한 철학 대신 평범한 나날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작품 전반에서 밝게 빛난다.
3장 '활자의 늪에서 한숨 돌리기'는 탁월한 애서가로서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 주는 대목이다. 날이 추워질 무렵 하야시 노조무의 <해석 겐지모노가타리>를 욕조 안에서 펼쳐 들고, 기왕 뜨거운 물을 채웠으니 되도록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겠다는 가난뱅이 근성을 발휘하는 모습이 몹시 정겹다. 다양한 문헌 속 문장을 기발하게 인용하는 방식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단숨에 배가시킨다. 단조로운 일과에 지쳐 확실한 기분 전환이 필요한 사람이나 글쓰기 영감을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 더없이 적합하다. 책의 뒤표지에 적힌 "저녁놀을 바라보면서 '내일 날씨는 좋겠지?' 하고 친구와 이야기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무엇을 위한 날씨 점이었던가. 심장 고동이 멎을 때까지, 이 정도로 속 편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실수가 있더라도,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때가 있더라도, 별달리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라는 문장은 이 에세이를 관통하는 든든한 메시지다.
미우라 시온 특유의 무심하게 툭 던지는 듯하면서도 다정하고 통통 튀는 문체는 읽는 이의 마음에 진한 여운과 잔잔한 파동을 남긴다.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생활 곳곳에 숨겨진 보물 같은 찰나를 예리하게 낚아채는 작가의 감상이 든든한 위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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