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니즘의 찬란한 빛 이면, 엇갈린 동아시아의 역사
일본의 우키요에가 유럽 화단을 뒤흔들고 서양 화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던 19세기 후반, 안타깝게도 당시 조선은 세계 미술사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다. 여기에는 뼈아픈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자리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과 적극적인 개항을 통해 파리 만국박람회 등에 자국 문화를 전략적으로 수출하던 시기..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서구와의 교류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다. 뒤늦게 문호를 개방했지만 제국주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가적 존립마저 위태로웠기에 예술을 통한 교류나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명작 수집은 불가능한 과제였다.
나아가 상업적인 대량 인쇄물로서 서민들의 일상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우키요에와 달리, 당시 조선의 미술은 정신적 수양을 중시하는 사대부 중심의 문인화와 진경산수화가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예술관의 근본적인 차이 역시 상업적 유통을 매개로 한 서양 미술계와의 접점을 형성하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했다. 찬란한 인상파 걸작들이 도쿄에 안착하기까지 일본이 누렸던 자본과 문화적 교류의 호사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동시대를 살았으나 철저히 고립되었던 우리 조선 근대사의 쓰라린 상흔이 번지고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