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듀런트 소설 <나는 나의 장례식에 초대받았다>는 전 세계 누적 판매 150만 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최신 심리 스릴러다. 서사원 출판사, 황성연 번역으로 출간된 이 책은 압도적인 몰입감과 속도감 넘치는 전개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3년 전 사채업자를 피해 본명 앨리스 앤더슨을 버리고 도나 슬레이드라는 가명으로 숨어 살던 주인공이 발신인 불명의 장례식 초대장을 받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인이 무언가를 남겼다는 말에 유산을 기대하며 찾아간 호화로운 장례식장 관에는 자신이 버린 이름 앨리스 앤더슨이 새겨져 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훔쳐 살다 의문사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한 주인공은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가짜 앨리스가 비서로 일했던 맥스 마스덴의 대저택으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
저자 헬렌 듀런트는 50권 이상의 범죄 스릴러 소설을 집필하며 영국 범죄 소설의 최전선을 지켜온 작가다.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랭커셔, 요크셔 경계의 페나인산맥 인근 마을에서 성장한 그녀는 자신의 고향을 모티프로 삼아 서늘하고 생생한 공간 묘사를 선보인다. 인물들이 품은 추악한 내면과 위태로운 비밀을 폐쇄된 공간 속에 가두어 극한의 서스펜스를 빚어내는 작가 특유의 서술 방식이 돋보인다.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의 심리적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묘사로 오랫동안 정평이 난 대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소설은 대저택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이중성을 밀도 높게 그려낸다. 주인공이 죽은 앨리스의 행적을 좇아 저택 주인 맥스, 아내 타라, 딸 한나와 부딪히는 과정은 매 순간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부유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감정 기복이 심한 맥스와 타라, 어딘가 불안정한 한나 등 저택 안의 등장인물 모두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을 따라가며 짙은 안개처럼 퍼진 속임수 속에서 진짜 가해자를 끊임없이 추리하게 된다.
후반부에 접어들며 앞서 무심하게 던져진 복선들이 치밀하게 회수되는 과정은 도파민이 터지는 강렬한 전율을 선사한다. 특히 인간의 추악한 본성이 물리적으로 형상화된 돼지우리 공간에 대한 묘사는 이 소설이 지닌 심리적 공포를 극대화한다. 자본이 배설한 맹목적인 탐욕, 정체성이 타인에 의해 쉽게 소비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현대사회의 근원적 불안을 예리하게 짚어낸 수작이다. 단순한 범죄 추리극을 넘어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게 만들며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찝찝함과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