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러 출판사 신간, 서계수 작가의 첫 단독 소설집 <머리 달린 여자>는 독특한 호러 환상 문학으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가부장제와 폭력이라는 현실의 억압을 날카로운 장르 문법으로 도려낸 수작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타인의 고통을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기괴한 복수극으로 승화시켜 압도적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서계수 작가는 주로 여성과 청소년을 내세운 판타지 호러 소설을 꾸준히 발표하며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해 왔다.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게임으로 우울함을 달랜다는 소박한 작가 이력 이면에는 현실의 모순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통찰력이 자리한다. 여러 앤솔러지 작품들로 독창성을 증명해 온 작가는 자신의 이름을 단 첫 단독 소설집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기괴하고 서늘한 세계관 안에 응축했다. 최근 장르 문학계에서 주목받는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예리함을 지니고 있다.
책을 손에 쥐는 순간,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 것은 강렬한 흑백의 표지 이미지다. 독일의 식물 사진가 칼 블로스펠트의 1928년 작품인 양귀비 씨방 사진은 그 자체로 기괴하면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극단적으로 확대된 식물의 일부분은 목이 잘려 나간 기괴한 신체의 단면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응시하는 괴물의 머리 같기도 하다. 일상적인 대상을 낯설고 공포스러운 오브제로 변형시킨 이 표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스며든 끔찍한 폭력을 비틀어 보여주는 소설의 방향성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머리 달린 여자>는 총 다섯 편의 서늘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첫 수록작 <지옥은 악마의 부재>는 인간과 악마가 공존하는 반인반마를 처단하는 기괴한 의식을 다루며 악의 근원을 지워버리는 텍스트적 처형을 감행한다. 이어지는 <산상수훈>은 타인의 목을 조르는 극단적인 폭력의 순간에 솟구치는 살의와 죽음의 감각을 건조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만회반점>은 냉동육 대신 갓 잡은 신선한 고기만을 고집한다는 중국집을 배경으로 호러의 고전적 모티프인 식인을 섬뜩하게 비틀어낸다. 마지막 수록작 <프로메테우스의 여자들>은 타오른다는 뜻을 가진 이름 연소를 통해 여성에게 지워진 운명과 이를 거부하려는 연대의 서사를 풀어낸다.
단연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은 표제작 <머리 달린 여자>다. 주인공 진성은 어느 날부터 세상 모든 사람과 동물의 머리가 보이지 않는 기이한 환각에 시달린다. 그가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도피하기 위해 매일 밤 탐닉하는 것은 다름 아닌 얼굴이 잘려 나간 불법 촬영물이다. 미쳐가던 그의 눈앞에 기적처럼 유일하게 머리 달린 여자 하늘이 나타나고 진성은 그녀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든다.
그녀의 정체는 2020년 6월 30일 서울 월곡산에서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된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다. 촬영한 가해자뿐만 아니라 영상을 돌려본 진성 같은 방관자들을 무작위로 골라 처단하는 하늘의 복수는 강렬하고 참혹하다. 진성은 자신의 비틀린 욕망을 직시하지 못한 채 폭력을 관망하고 조장하는 현대인의 비겁한 민낯을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