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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바움가트너>는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 '폴 오스터'가 투병 중에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작품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주기에 맞춰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1968년 뉴욕에서 가난한 문인 지망생으로 만난 아내와의 40년 세월, 뉴어크 시절 어린 시절의 낯선 풍경, 혁명가였던 폴란드 출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다. 전면에 등장하는 '바움가트너' 교수는 10년 전 허망한 사고로 아내를 잃은 뒤 ‘기억의 정원’을 거닐며 삶과 글쓰기, 상실과 죽음의 의미를 곱씹는다. 이 작품은 오스터 문학이 평생 천착한 글쓰기, 허구, 우연의 미학을 진솔하게 집대성한 마지막 여정으로, 작가 자신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문학적 유언이자 작별 인사로 읽힌다.
소설은 바움가트너 교수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는 1968년 뉴욕에서 문인 지망생으로 아내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서서히 기억이 조각나기 시작하는 과정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 뉴어크의 거리를 누비던 장면, 폴란드 혁명에 뜻을 두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지며, 한 인물이 삶의 여러 지점, 단계를 어떻게 감당해 왔는지를 보여 준다. 각 장은 짧지만 강렬한 단편처럼 구성되어, 시간의 겹과 서사의 파편이 독자들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퍼져 나간다.
<바움가트너>는 오스터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대표 테마인 ‘우연의 미학’을 담담히 묘사한다. 세 시간 넘게 달걀을 삶다가, 물이 증발하고 까맣게 그을린 주전자를 다루다가 손을 데인 바움가트너. 이웃집 베테랑 목수 플로레스 씨는 회전 톱을 조작하다가 손가락 두 개를 잘린다. 결코 실수하지 않을 것만 같던 능숙하고 평범한 일상은 어이없는 균열을 내며 고통을 선사한다. 불시에 덮친, 불운한 사건들의 연쇄적 발생은 삶이 얼마나 작은 우연과 행운에 기대어 있는지를 역설한다. 폴 오스터는 <바움가트너>를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괴롭힌 글쓰기 작업에 대해 진솔하게 응답했다. 특히 그는 글쓰기 행위가 현실의 무작위성, 불완전함과 만나 어떻게 새로운 진실을 길어 올리는지를 주목했다.
‘바움가트너 Baumgartner’라는 이름은 독일어로 ‘정원사’를 뜻하듯, 그는 기억의 텃밭을 가꾸며 과거와 현재,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 여정은 오스터가 평생 탐구한 ‘자아와 타자, 현실과 허구의 관계’를 마지막으로 응시하는 순간이며, 작가에게는 스스로 남긴 문학적 고별사와도 같다. 고독한 교수의 내밀한 사유 속에 타인과의 관계를 향한 미묘한 그리움과 연대의 가능성이 함께 그려진다. 이는 곧 오스터가 우리에게 건네는 마지막 메시지이며, 독자 개개인의 삶 속에서 공명하며 어떤 깨달음을 줄 것이다.
<바움가트너>는 폴 오스터가 남긴, 가장 사적인 메시지가 극도로 응축된 작품이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관조하고, 우연과 기억의 파편의 낱알을 꿰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낸 그의 문학 세계가 이 책에 집대성되어 있다. 이 소설이 오스터 자신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에게도 긴 여운을 남길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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