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좀 환상하는 여자들 4
라일라 마르티네스 지음, 엄지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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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은 어머니와 나처럼 몸속에 나무좀이 살고 있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 자신은 물론 남들에게도 쉴 틈을 주지 않는 가려움증에 시달리지도 않았다."_93~94p




은행나무 출판사, 환상하는 여자들 시리즈 4권은 라일라 마르티네스의 첫 소설 <나무좀>이다.

이 작품은 스페인의 한 독립 출판사에서 출간된 이후, 두 달 만에 16쇄가 매진될 정도로 호평을 받으며 '스페인의 휴고상'이라 불리는 이그노투스 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가부장적인 관습에 물든, 스페인 산골의 황야에 고립된 저택을 무대로 기이하고 음산한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어둠의 망령들이 점거한 이 집에 발을 들인 산 자는 저주에 걸린다. 남자들은 속이 말라 비틀어 죽고, 여자들은 결코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


이곳에 오랜 세월 거주한 할머니와 손녀는 집에 얽힌 비밀을 교대로 들려준다. 대대로 살아온 가족들의 삶, 마을 유력 가문의 하녀로 일하며 체감한 계급 차별과 두터운 장벽, 강자들의 비열함 등을 고발한다. 더불어 이를 관통하는 스페인의 험난한 역사를 아우르며 증언한다.


두 여성은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파먹으며 가려움과 고통을 유발하는 '나무좀' 같은 존재들을 향해 항변한다.

자신을 어둠 속으로, 그늘 속으로 밀어 넣은.. 가부장적인 권위자와 서민들을 박해하는 상류층에 대해 저주를 내린다. 이미 죽은 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여성들을 포함한 약자의 억울함을 풀고, 현 세상의 부조리함을 해소한다는 전복적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집의 모든 것은 음산한 저주로 물들어 있다. 아버지는 이 집을 통해 우리를 감금했고, 그 안에 영원히 유폐되도록 만들었다. 집 안 구석구석 이 세상 건너편의 죽은 자들의 손길이 묻어난다. 낡은 옷장을 열어보면 어둑한 그늘 속으로 미지의 유령이 드나드는 통로가 존재한다. 가까스로 잠이 들면 기척에 놀라 깨어나기를 여러 번.. 섬뜩한 마음에 침대 아래를 내려다보면 반짝이는 두 눈이 날 바라본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라! 대대로 누군가 거주한 해묵은 공간에는 망자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군데군데 나무좀이 슬은 낡은 가구와 그 밑 으슥한 공간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되뇌는 비밀스러운 주문을 엿듣고, 깜박이는 눈빛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비극적인 전생과 한 맺힌 사연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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