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 인류의 삶을 뒤바꾼 공진화의 힘
피터 J. 리처슨.로버트 보이드 지음, 김준홍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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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으로 진화한 귀중한 정보에 접근이 용이하다면 그 정보를 습득하고 이용하는 데 향상된 능력이 선택될 것이다. 언어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중략)

유전자-문화의 공진화는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당한 유전자의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_318p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탄생부터 시작 출발선을 앞으로 옮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공백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선대가 켜켜이 남긴 지식과 정보를 전수받고 습득하면서 동세대의 원숭이와 오랑우탄 등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진화론의 핵심 이론 가운데 하나인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대표 저서인 피터 J. 리처슨, 로버트 보이드_<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과학계와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을유문화사는 2009년에 출간되어 절판된 동서적 <유전자만이 아니다>를 새로이 개정하여 재출간했다. 국내 대표적인 공진화론 학자인 김준홍 교수가 상세한 주석을 포함해 번역하고 서문을 실었다. 이대 최재천 석좌교수가 추천사를 썼다.


근대 철학자 '존 로크'는 인간의 본성이 '빈 서판(tabula rasa)'와 같다고 말했다. 이후 유전자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식이 부모의 유전적 기질을 타고 태어난다는 '이기적 유전자' 개념이 등장했다. 유전적인 우월성이 우열을 가리는 모든 것이라면, 출발선이 다른 우성 유전자를 지닌 이를 뒤처진 이가 극복하고 역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의 계층과 계급화는 인도의 카스트 제처럼 고착화되고, 후천적 재능과 노력 따위는 무시되어 인류 발전은 더디게 진행될 것이다.


공진화론은 인간이 기나긴 시간 동안 쌓아온 지식 체계와 문화가 후대 인간의 진화적 특성과 행동 발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치열히 경쟁하며 끝내 생존하는 우성 진화론과 더불어 인간은 우월한 언어적 능력과 이를 활용해 과학/문화/예술 등 폭넓은 분야에서 폭발적 진화를 돕기 위한 이정표를 세웠다. 인간의 후손들은 일상에서 접하는 무수한 문헌 장서들과 예술 작품, 웹 페이지, SNS 영상/이미지 등 살아 숨 쉬는 문화 양식으로부터 자신의 진화 속도와 방향, 행동 방식을 결정지을 수 있다.


<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는 상세한 실례를 제시해 공진화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인간이 우유 락토오스 성분의 소화력을 갖추기 위해 젖소를 사육하는 낙농업 문화 확대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말한다. 이는 일부 지역집단이 락토오스를 소화하기 위한 진화적 특성을 지닌 것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다.



"문화는 인간의 파생된 특질이다."_182p



책을 읽으며 한국인이 유독 '양궁'에서 특별하고 우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 탓에 우리는 북방의 기마 민족과 열도에서 침략하는 해적에 대항하기 위해 활쏘기를 연마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를 이어 피를 타고 내려오는, 생존 전술로 특화되어 우리 유전자에 새겨졌다. 각종 세계 대회와 아시아/올림픽 대회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뽐내는 한국의 양궁 실력은 해외 학계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과연 타고난 선대의 유전자 만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양궁 실력이 수 세대를 뛰어넘어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 조상은 예부터 국궁 교련을 위한 활 제작, 활쏘기 기술 연마, 정신 수양 등 다양한 필수 요소들을 정리해 교본집으로 정리했다. 일상에서 활쏘기는 원거리의 적을 물리치고 사냥하는 기술이 아닌, 자신을 다스리고 정신을 수양하는 전통문화 양식이었다. 우리는 선대가 체계적으로 집성한 국궁 문화 양식을 흡수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업그레이드하여 지금의 양궁 신화를 이룩한 것이다. 활쏘기 인재를 발굴하여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대표를 선발하고, 컨디션을 끌어올려 국제 대회에 참여하는 노하우는 우리 한국인이 두터이 쌓아 올린 문화 양식이자 집약된 지식 체계이다.


이처럼 인간이 집대성한 문화가 유전적 진화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공진화론'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피터 J. 리처슨, 로버트 보이드_<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는 공진화론을 처음 접하는 입문자 뿐만 아니라, 현대진화론 학자들에게도 그 기원을 파악하고 이후 연구 방향을 바로잡기 위한 고전으로 읽히기에 손색이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함께 살고 행동하는 인류의 미래를 엿보고 싶다면 마땅히 이 책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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