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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 개정판 ㅣ 카프카 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한석종 옮김 / 솔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올해는 '프란츠 카프카' 사후 100주년이다. 각 출판사는 카프카의 대표작을 재해석하고, 몇몇 작품들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다시 번역하여 출간 중이다. 서점 신간 목록에 카프카의 개정판 출간 알림이 한가득이다.
솔 출판사는 카프카 전집을 10권으로 구성하여 개정판으로 선보였다.
전집 중 4권 <실종자>는 카프카가 1911년부터 3년 가까이 집필한 미완성 장편이다. <소송>, <성>과 함께 고독 3부작으로 불린다. 카프카의 친구인 '막스 브로트'가 저자의 사후에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엮어 출간했다고 한다. 문학계는 막스 브로트의 개인적인 입김이 반영된 <아메리카>보다는 원전에 가까운 <실종자>를 정본으로 대접하는 실정이다.
감정이 들쭉 날쑥 하던 사춘기 시절, 카프카의 <변신> 초반부를 읽자마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정체 모를 거대한 곤충으로 변신한 사실을 깨닫고 경악한다. 가족들은 그의 기괴한 모습에 처음엔 놀라지만,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하며 어떻든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려 애를 쓴다. 허나 잠자의 변신이 허구가 아닌 현실임을 깨달으면서, 일시적인 변화가 아닌 영구적인 탈피임을 알아차리면서 그는 버림받고 소외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방에 감금되고, 존재마저 부정당하고 은폐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고통이 점층적으로 쌓이고, 고독이 겹겹 누적되면서 그는 환각에 빠지고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잠자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것은 아버지가 홧김에 던진 붉은 사과뿐이었다. 그의 갑각류 등껍질에 단단히 박힌 썩은 사과 말이다. 30년 전 낡은 문고본으로 접한 <변신>은 '카프카'라는 이름을 내 뇌리에 각인시켰다. 어떤 이유로 난 그의 기이하면서 리얼한 판타지 단편에 끌렸던 걸까?
시간이 흘러 다시 복간된 카프카의 <실종자>. 17세의 카알 로스만은 인파가 운집한 뉴욕항에 도착했지만,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가족 공동체에서 추방된 신세다. 그는 외숙부를 통해 미국 상류층 사교계에 진입을 시도하지만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고도의 자본주의와 상업화가 견고한 성벽을 쌓아 올리는 미국 사회의 중심부는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카알은 방관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는 갈수록 외곽으로 추방당한다. 주류의 시선은 그를 사회 부적응자, 무력한 루저로 취급하며 은근히 무시하고 교묘히 따돌린다.
<변신>의 잠자와 <실종자>의 카알은 가족들에게도 버림받으며 갈수록 존재가 흐릿해진다는 면에서 닮은 꼴이다. 잠자는 어둑한 골방에 갇혀 강압적으로 은폐되는 존재이고, 카알은 거주지에서 추방되어 낯선 이국에서 떠도는 존재이다. 카프카가 창조한 인물들은 타의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면서, 고뇌를 거듭하지만 파국의 운명을 거스를 힘이 없다. 마침내는 자신이 실재하지 않은, 애초에 부재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혼돈에 빠지면서 비극적 최후를 맞거나 실종 처리된다. 현대 사회는 SNS와 가상 월드까지 포용하여 무한대로 팽창하는 상황이다. 격변하는 소용돌이에 튕겨져 나와 나선 바깥으로 흩어지는 개개인은 존재감이 혼미한 카프카적 인물상에 끌리고 동질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종자>를 읽으면서 카프카 작품 세계의 매력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더불어 깨달은 것은.. 방황이 극에 달하던 시절, 자의가 아닌 외압에 의해 '나 자신의 존재함'을 박탈당할 때마다, 카프카의 작품 특히 <변신>은 내게 극약 처방이었다. 끝도 없는 바닥을 차고 올라 다시금 사회로 복귀하는데 필요한 산소통이자 든든한 발판이었다.
동시대 다른 현대인들도 '프란츠 카프카' 작품에 대해 비슷한 연대감을 느끼지 않나 싶다. 그래서 우리는 카프카를 정기적으로 소환하고, 그의 작품 세계에 열광하는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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