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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 -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박참새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3월
평점 :
난 시를 애정하고 아낀다. 종종 시를 끄적이기도 한다.
그동안 글을 쓰면서 시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몰입케 하고, 짧은 순간에 폭발적인 쾌감을 발산시키는 장르를 만나보지 못했다. 소설은 상상, 허구임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장면 연출과 인물 묘사에 기울이는 노력이 소모적인 면이 있다. 물론 제대로 쓴다면 자신이 전지전능한 신 또는 레전드 감독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에세이는 자기 주변사를 세밀히 서술하다 보면 부득이하게 누군가의(자신을 포함한) 흠결이 만천하에 노출되고, 과한 자기애 & 영웅심에 빠지는 경우가 잦다. 반면 자기 절제가 가능하다면 자신의 생을 돌아보고, 보다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도 있다.
시가 참 매력적인 요물이긴 한데, 진정 시를 써본 이들은 알 것이다. 시가 마음대로 의지대로, 매끄러이 써지지 않는다는 것을..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 전까지는 번득이는 영감에 도취되어 자신감이 가득하지만, 막상 첫 행을 끄적이고 나면 다음 구절이 막막하고 진도가 나가지를 않는다. 인내심을 발휘해 억지로 행갈이를 하고 끝맺음을 하지만, 영 개운치가 않다. 애초에 내리친 번개 같은 시상에는 결과물이 턱도 미치지 못함을 깨닫고 낙담하고 좌절하기를 수십 번..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겨우 깨닫는다. 시라는 것은 예측불허의, 종잡을 수 없이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언어유희라는 것을.. 또한 시는 삶과 근접한 장르 또는 그 자체라는 것을.. 그리하여 시를 단숨에 붙잡기는 어렵다. 기본적으로 일정 퀄리티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강인한 피지컬과 지력이 요구된다. 시는 짧지만 함축적인 의미와 불투명한 다층적인 이미지를 품어야 하므로, 어둑한 밤하늘에 각양각색 폭죽을 연달아 터뜨릴 만한 화력이 필요하다.
시에 비해 분명한 의미와 선명한 이미지를 전하는 산문이 진입 장벽이 낮고 기력이 덜 소모될 수 있다. 한 편의 시를 써내기 위해서는 본인 정신세계의 바닥을 봐야 함은 물론이고, 타인이 창조한 무언가를 오래도록 깊이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멍한 정신으로 커피 한 잔 뚝딱 마시고 단숨에 그럴듯한 시를 완성하는 이,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즉석에서 호탕한 시를 짓는 이는 진정한 언어 천재, 랭보와 이태백/두보의 후예라 칭할 만하다.
허나 일반적인 범주에 속하는 나 같은 이는 시의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 특정 루틴을 거쳐야 한다. 이를테면 곁에 놓인 시집을 들어 말미의 장황한 평론 전까지 완독한다든지(간혹 평론이 배제된 시집을 만나면 꽤나 반갑다)..
혹은 쇼미더머니 특정 시즌의 파이널 대전을 끝없이 재생한다든지 하는 일련의 입문 과정들(시와 힙합은 애매모호한 언어를 각자의 리듬으로 주절댄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화창한 날씨에 실내 감금이 답답하다면 밖으로 나가 산을 오르기도 한다. 사지를 움직여 다채롭게 변화하는 자연 풍경을 접하다 보면, 짙은 안개를 뚫고 흐릿한 시상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시력과 경험이 쌓이면 이런 지난한 과정이 생략될 수 있을까? 어찌했든 일상 틈틈이 태어난 한 편 한 편의 시는 소중하기만 하다.
등단이든 아니든 한 권의 시집을 낸 이는 대단하다. 전체 독자의 소수만 시를 읽는 척박한 환경에서 새싹을 틔웠으니 이보다 더한 경사가 있겠는가? 이에 더해 세 권 이상의 시집을 내고, 십 년 이상 시라는 업에 빠진 이는 금강불괴이자 철인이고 극강의 괴물이라 할만하다. 진심으로 존경하고 리스펙 한다는 의미다. 그토록 인생의 쓴맛을 보고, 창작의 고달픔을 겪었음에도 시업을 중도 포기하지 않는 자는 시인 중의 시인 아니 삶의 이치를 깨달은 도인이라 부를 만하다. 그만큼 평생을 두고 시를 갈고닦기는 어렵고, 죽음 직전까지 시를 밀어붙일 수 있는 자는 극히 소수이다.
헝형한 눈빛을 발하는 노회한 시인은 자신의 끝 모르는, 시를 향한 천착, 절차탁마에 하늘마저 감복한 귀인임에 틀림없다. 이토록 잔인하고 냉혹한 장르임에도 우리는 멋모르고 시에 빠지곤 한다. 시는 중독적이고 어마 무시한 쾌락에 젖게 한다. 제대로 심취하기만 하면 마약에 가까운 도파민을 분출케 한다. 절정의 시르가슴에 중독된 우리는 오늘도 시작이라는 무모한 행위에 뛰어든다. 문제는 시 쓰기라는 행위를 우리네 삶과 일상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해, 둘의 경계를 최대한 무너뜨리고 모호하게 지우는가 하는 것이다.
시라는 녀석은 진정 간사한 요물이란 말인가. 시에 도취되어 오늘도 사설이 늘어졌다. 밤이 늦어 기력이 딸리니 이만 각설하고.. 박참새 시인의 대담 인터뷰집 <시인들>은 여러 시인들을 밀착 취재하고 살갑게 대화하며 그들의 속 얘기를 끌어낸다. 우리는 책을 통해 젊고 유망한 시인들의 일상과 시 쓰기의 비결을 엿볼 수 있다. 혹시나 오랜 시 쓰기에 지쳐 시태기가 온 분들은 세미콜론의 신간 <시인들>을 통해 슬럼프를 능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띄는 서가에 두고 소장하기를 권하고 싶다. 부디 이 책에 실린 모든 시인들이 지속적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유지하고 확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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