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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평점 :
성적 욕망은 훈련할 수 없다. 훈련해 봤자 때로는 지나치기 마련이고, 때로는 너무 부족하다.
_나카야마 겐 역, <프로이트, 성과 사랑에 대해 말하다> 54p
아사이 료 작가.. 그의 2013년 출간작 <누구>를 읽은 적이 있다. SNS에서 소통하는 젊은 세대들의 자아도취, 이중성을 고발한 인상적인 사회 소설이었다. 취준생들의 은밀한 욕구가 칼날처럼 뻗어나가는 후반부 엔딩은 충격적이었고, 어린 작가를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다. <정욕>이란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시퍼런 호수의 심연 속으로 내리꽂히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인상적인 표지다. 아사이 료 작가의 데뷔 10주년 기념 출간작이란다. 일본에서 누적 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며 이나가키 고로, 아라가키 유이가 주연한 동명 영화가 올해 국내 개봉한다고 한다.
그의 책은 언제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가 말하는 정욕(正欲)은 바른 욕망이다. 바른 욕망이란 무엇인가? 바르고 바르지 않은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판단 주체는 누구지? 바르지 않은 욕구는 배척되고 처단되어야 하는 걸까? 과연 정욕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페이지를 넘길수록 연이은 질문이 가슴팍에 꽂히는 묵직한 직구로 날아온다.
<정욕>은 다양한 욕구를 지닌 이들이 등장한다. 평범한 이들이라면 상상도 못할, 마이너 한 욕구를 지닌 소수자들이 각자의 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대신에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겠다는 다이키. 그런 아들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일반인의 범주에 포함시키려는 검사 히로키. 사춘기부터 숨겨온 비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립을 택한 나쓰키. 같은 비밀을 공유하며 그녀 곁을 맴돌다가, 죽음 끝에서 다가오는 내일을 살고 싶어 동거를 택한 사사키.
그리고 서로를 겉도는 남녀가 눈길을 끈다. 마이너 한 욕망까지 기꺼이 포용할 수 있는, 소수자와 연대하는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야에코. 그녀가 좋아하는 다이야는 은밀한 욕망을 분출하려고, 같은 류의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그녀의 손길을 거부하고 반감을 표시하는데..
책의 초반부는 정온하지만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각자는 오해와 불만을 속으로 눌러 앉히고 가까스로 웃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쓰키의 동창이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호수로 다이빙해 익사하면서 소설은 점차 격정으로 치닫는다. 사회는 다수가 인정하는 욕망을 지닌 자들만 포용하려 하고, 그 길에 들지 못한 나머지는 영역 밖으로 떠밀려 결국은 벼랑 끝에 매달린 신세가 된다. 마지막 다수자의 입장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야에코와 이를 벗어나 난생처음 소수자와 연대하여 욕구를 분출하려는 다이야의 설전은 맑은 하늘에 내리치는 날벼락처럼 쇼킹하면서 신선하다. 서로의 입장이 대립각을 세우며 평행선을 달리고, 책이 던지는 무모하면서 난감한 질문들이 우리 뇌리에서 휘몰아친다. 포기를 모르는 야에코가 손길을 거두지 않고 "그럼 네 일이 끝난 후에 다시 이야기를 계속하자."라고 여운을 남겼을 때.. 나쓰키가 사회 통념과 법망에 사로잡혀 감금된 사사키에게 "난 당신 곁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야."라고 신뢰와 애정을 표했을 때 우리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책을 덮고도 혼돈한 마음을 누르기가 어렵다. 난 과연 순수하고 바른 욕망만으로 삶을 살아간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타인이 변태, 소수자라고 손가락질할 만한, 은밀하고 사적인 욕망이 마음 어딘가에 웅크리고 앉아 언제든 손을 내밀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서로의 유니크한 정욕을 엿보고 흠모하고 따라 하면서.. 때로는 비난하고 따돌리고 배척하면서 우리 삶을 살아갈 동력을 얻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사이 료 작가. 그는 우리에게 선명한 깨달음보다는 혼란하고 괴로운 번뇌를 선사한다. 그의 작품은 분명히 존재함에도 누구나 파고들지 않는, 생소한 영역에 메스를 들이대어 가차 없이 상처를 절개한다. 우리는 각자의 심장에서 흘러나와 고인 피웅덩이에 잠겨 허우적댄다. 저자는 10년이 지나도록 날 선 메스를 놓지 않은 채, 고통에 겨운 누군가가 신음하는 수술대를 마주하고 있다. 난 또 하나의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가 한 분야에 매진하여 성과를 쌓아 올리는 동안, 난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readb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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