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료시카의 밤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 / 리드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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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쓰가와 다쓰미의 두 번째 미스터리 단편집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마트료시카의 밤>.

책의 말미 작가 후기에서 소개한 기본 방침대로.. 네 개의 단편은 다양하고 파격적인 구성과 형식으로 짜이되 그 골격은 허술하지 않은, 치밀한 본격 미스터리를 지향한다. 또한 암울한 코로나 시대를 배경으로 삼기에 진지하고 딱딱한 내용보다는 유머러스하고 익살스러운 상황을 그리려 애를 썼다. 


서두를 여는 첫 단편부터 독자의 틀에 갇힌 상식과 예측을 사정없이 부수고 비틀어 버린다. 

내 이름은 아쓰가와 다쓰미.. 난 흔해 빠진, 식상한 미스터리 작가가 아니야. 동서고금의 미스터리 고전과 최신작을 고루 섭렵하고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인, 기존 작가와 궤를 달리하는 천재 미스터리 작가라고! 이렇게 소리 높여 외치고 선언하는 듯하다. 건조한 하드보일드 탐정물로 운을 떼는 <위험한 탐정>은 고서점 미스터리 물로 흐르는 듯하더니, 중반 이후 일대 반전이 휘몰아치며 독자의 멍한 정신을 흔들어 일깨운다. 이거 이거,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데.. 비스듬히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 미간에 힘을 주어 집중할 수밖에 없더라.


이어지는 단편은 브리콜라주 형식으로 짜였다. 미스터리 퍼즐을 풀어야 하는 대학 입시를 기획한 담당자들, 기자, 교수, 학생, 학원 전문가, 블로거, 인플루언서 등이 총출동하여 다양한 의견을 쏟아낸다. 한바탕 난장이 펼쳐진 듯하다. 판데믹 시절 줌(Zoom)을 통해 온라인 생일 파티를 하던 중, 친구가 살해됐다.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파행적인 대입 출제 지문이 제시되고, 이를 풀이하는 각계의 의견이 이어지며 독자의 흥미를 돋운다. 좀비 아포칼립스 물의 신경지를 개척한 맥스 브룩스의 <세계대전Z>와 비슷한 형식으로, 이전 미스터리 소설의 틀을 깨는 대담한 시도를 꾀했다고 평하고 싶다. 




장편보다는 단편에 최적화된 저자의 능수능란한 테크닉은 표제작에서 잘 드러난다. 연극적인 구성의 미스터리 단막극을 연출하면서, 치밀한 논리와 텐션을 시종일관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무대 위에서 심리전을 펼치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다가는, 이쯤이면 결말이 드러나겠지 하는 시점을 노려 반전에 반전을 거듭 선보인다. 심지어 액자 구성을 통해 이야기 속 이야기를 끌어내며, 무한 증식하는 미스터리 물의 '마트료시카 인형'을 꿈꾼다. 이쯤 되면 시공간을 무너뜨리는 평행 우주에서 동일한 범행이 일어나고 범인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아쓰가와 다쓰미의 수시로 바뀌는 공수 페이스 전환 속에서 팽팽한 서스펜스와 독자를 납득케 하는 필연성을 유지하는 입담과 필력은 대단하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밀도 높은 미스터리 단편은 Joseph L. Mankiewicz 감독의 1972년작 <sleuth 발자국> 또는 히치콕 감독의 초기작 <rope>를 보는 듯하다. 실제로 저자는 다수의 미스터리 스릴러 연극과 고전 영화, 애니를 통해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쉽게도 마지막이다. 낯설고 생경한 프로레슬링 오타쿠의 세계에 빠져야 한다. 소싯적 '타이거 마스크'와 박치기 기술로 이름을 떨친 '김일' 선수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그니처 마스크를 눌러쓴 레슬러들과 링 아나운서가 모인 가운데 동료 선수가 외부에서 살해됐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그들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과 틈을 파고드는 대화, 인서트로 삽입된 실제 레슬링 장면 묘사가 코믹하면서도 긴장감이 넘친다. 궁금한 이들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마트료시카의 밤>을 펼치기 바란다. 더불어 아쓰카와 다쓰미의 첫 단편집 <투명인간은 밀실에 숨는다>도 관심작 리스트에 올리길 추천한다. 미스터리 물 영토에 인상적인 발자국을 새긴 저자의 뒤를 쫓는 것만으로, 근사한 독서 경험과 번득이는 영감을 선사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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