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등장하는 범죄학자 엘메르와 마르셀라, 알프레도의 삼자 회동을 통해 뒤죽박죽 섞인 살인 사건의 조각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한다. 그들이 그토록 파헤치고 싶었던 사건의 진실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알프레도는 유서로 남긴 비밀 편지를 통해 진실과 대면하지 않은 채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거라고 고백하기까지 했다.
책의 후반부는 가해자들의 변명이 페이지를 채우고, 잔혹한 범행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들이 맹종하는 신이 선사했다는, 위선 가득한 가면과 포도주가 담긴 잔 뒤에 숨어 내뱉는 자기변호가 이어진다.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형벌을 피하기 위해 신을 방패로 내세운다. 그들이 믿는 신의 의지와 선택에 이끌려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라고, 아나의 죽음 또한 신의 계획에 따른 필연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미성년자인 아나가 최종 결정을 내리고 무책임하게 행동했을 뿐, 그들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강변한다.
은밀한 공간에 숨어 고해성사를 하고 신의 대리자에게 용서를 받은 이상, 자신들이 인간 세상에서 받아야 할 죄과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을 둘러댄다. 작가가 공들여 묘사하는, 아나의 시신을 토막 내고 그 일부를 불태우는 장면은 잔혹한 고어 영화를 방불케 한다. 가해자들의 광신적 종교관으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아도, 자의적으로 해석된 종교적 관용과 위선, 잣대에 기대어 사건이 유야무야 종결되고 무죄가 선고될 수 있는가? 피해자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잿더미 속에 파묻혀도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