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함께한 진균의 역사 - 곰팡이, 버섯, 효모가 들려주는 공생의 과학
니컬러스 P. 머니 지음, 김은영 옮김, 조정남 감수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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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균의 역사가 궁금해서 읽게 된 책이다. 표지 아랫부분에 있는 '곰팡이 없이 인류는 생존할 수 없다!'라는 기존의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반하는 문장은 책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야기시킨다. 이 책은 곰팡이를 단순한 부패나 질병의 원인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시선을 넘어 진균이 인류의 생존과 문명 형성에 얼마나 깊이 관여해 왔는 지를 과학적·역사적 맥락에서 풀어내고 있다. 인류보다 오래된 생명체인 진균은 생태계의 분해자이자 순환의 축으로서, 의학과 식문화, 종교와 사회 제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삶 전반에 흔적을 남겨 왔다.

저자 니컬러스 P. 머니는 세계적인 균류학자로서 효모와 곰팡이, 버섯이 인간의 호흡계, 면역계, 소화계, 신경계와 맺는 관계를 구체적인 연구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장내 생태계의 핵심 요소인 마이코바이옴과 항생제와 면역억제제 개발에 기여한 진균 연구의 역사, 발효 식문화와 정신의학적 논의까지 폭넓게 다루며 그동안 의학과 생명과학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진균 연구의 의미를 재조명하여 더욱 흥미롭고 인상적이다.

책은 제일 먼저 1장에서 저자의 개인적 경험(곰팡이 포자로 유발된 심각한 천식 발작)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인간과 진균의 공생관계로 확장하여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어린 시절 거의 죽음에 이르렀던 사건은 트라우마로 남았지만, 동시에 저자를 균류학자로 이끌었고, 훗날 치료 과정에서 위대한 분해자(진균)와 죽음 집착이 연결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통해 인간과 진균 관계를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즉, 진균은 공포의 원인이면서도 연구와 이해의 대상으로 다시 돌아오는 존재로 제시되며 독자들의 시선 역시 여태껏 가졌던 것과는 다른 시선으로 유도한다.

1장에서 말하는 인간과 진균의 공생관계에서의 핵심은 가깝지만 보이지 않는 동거라는 거다. 진균은 피부, 두피, 구강, 호흡기, 소화관, 생식기 등 인체 거의 모든 부위에 존재하며, 박테리아·바이러스와 함께 인체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을 이루는데, 그중 진균의 영역이 마이코바이옴이다. 대부분은 숙주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지만, 면역이 약해지면 기회감염을 일으켜 무좀 같은 흔한 증상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공생을 무조건 선한 협력이 아니라, 이익과 위험이 함께 공존하는 기브 앤 테이크 관계로 정의하며, 인체 면역체계가 이 균형을 관리하는 조절자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인간과 진균의 공생은 단지 출생 이후만의 이야기은 아니다. 태변 분석 등을 근거로 진균과의 만남이 출생 이전부터 시작될 수 있으며, 출산 방식(질 분만/제왕절개), 모유 수유 여부, 생활환경과 식습관 변화는 아기의 초기 미생물 정착에 영향을 준다. 더 나아가 인류의 농경 정착, 저장 곡물과 도시화는 진균 노출 양상을 바꾸며 천식과 피부질환 같은 문제를 역사적으로 확대하기도 했고, 반대로 발효(빵, 맥주, 와인, 치즈), 의약(항생제, 면역억제제, 생명공학 생산물), 정신의학(환각버섯 연구)처럼 인간이 진균을 의식적으로 활용하는 공생의 방식도 커져 왔다. 마지막에는 죽음 이후의 분해 과정까지 포함하여 인간이 생태계의 영양 순환 속에서 결국 진균의 작동에 기대어 존재한다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이런 흐름은 앞서 말한 '곰팡이 없이 인류는 생존할 수 없다'를 생물학적으로 구체화한다. 1장이 보여주는 인간과 진균 공생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자궁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상시적 상호작용이며, 그 핵심은 균형인 점이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진균은 우리의 몸을 황무지로 만들지 않게 지탱하는 파트너이지만, 조건이 바뀌면 즉시 위협으로 전환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공생을 좋게만 포장하지 않고, 면역, 환경, 문화가 맞물린 현실적인 관계로 제시하며 지금이야말로 이 내밀한 동거의 규칙을 과학적으로 알아야 함을 강조하여 다음으로 올 내용들을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책의 2부에서는 인간의 몸을 벗어나 환경과 문화 속으로 확장된 진균과의 공생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신석기시대 암각화에 등장하는 버섯을 통해 인류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진균을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치료와 의례, 기억과 의식의 변화에 관여하는 존재로 인식해 왔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약과 마법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시대부터 버섯은 치유의 도구이자 초월적 경험의 매개로 기능해 왔고,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까지도 약용버섯과 기능성 식품 담론의 밑바탕을 이룬다. 더불어 기억과 인지 기능 회복 가능성으로 주목받는 노루궁뎅이버섯 사례는 신경세포 성장과 면역 반응을 둘러싼 실험 결과와 상업적 과장이 어떻게 엇갈리는지를 보여주며 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와 함께 2부는 야생버섯과 재배버섯이 형성한 식문화에서 출발하여 마이코프로틴 기반 대체육처럼 식품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현대적 활용으로 시야를 넓힌다. 전통 의학과 유전자변형균을 활용한 현대 의약품 생산, 과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버섯 추출물 마케팅과 독성 버섯·곰팡이독의 위험성, 우울증과 정신 질환 치료에 활용되는 마법의 버섯 연구와 이를 종교의 기원과 연결하려는 논쟁까지 폭넓게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생태계에서 진균이 수행하는 분해자이자 순환자로서의 역할을 짚으며 진균과 인간의 관계가 개인의 건강을 넘어 문명과 자연의 차원으로 얼마나 멀리 확장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인류와 함께한 진균의 역사가 도달하는 지점은 아주 명확하다.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진균을 비롯한 수많은 미생물과 함께 구성된 하나의 생태계라는 사실이다. 진균은 때로는 질병과 공포의 이름으로, 때로는 약과 음식, 치료의 이름으로 등장하지만 그 모든 모습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결과이다. 저자는 진균을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단순화하지 않고, 조건과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역할을 바꾸는 동반자로 그려낸다. 이 시선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생명을 관계망 속에서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 책의 매력은 진균을 둘러싼 과학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이 우리의 삶과 선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지까지 질문하게 한다는 것이다. 진균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강박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공존의 균형이 무너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논지는 현대 위생 관념과 의료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동시에 약용버섯과 환각버섯을 둘러싼 과장과 희망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태도의 중요성도 분명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에게 곰팡이를 혐오의 대상에서 이해의 대상으로 새로이 바라보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생명체가 인간의 몸과 문화, 환경을 어떻게 빚어왔는 지를 따라가다 보면 생명이란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책은 곰팡이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로 이끌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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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 청진기
김보라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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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과 제목에 끌려서 일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어린이의 일상을 그려 온 김보라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이다. 전작 <조용희 청소기>에 이어 같은 주인공 조용희의 또 다른 하루를 담은 이 작품은 유쾌한 발명과 사건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책은 만들기를 좋아하는 여덟 살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배려와 공감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는 반려견 돌돌이의 달라진 모습에 눈길을 주는 용희의 세심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예전처럼 활기차지 않은 돌돌이를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답을 찾지 못한 채 고민하던 용희는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마음을 먼저 이해해 보려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등장한 속마음 청진기는 문제 해결의 도구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에 다가가기 위한 상징적 매개로 작용하며 이야기의 방향을 이끈다.


이야기는 갑자기 축 늘어진 돌돌이의 모습을 마주한 용희가 단순히 기운을 북돋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 지를 알아보겠다고 마음먹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평소와 다른 반려견의 태도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그 변화의 이유를 찾으려는 용희의 선택은 이 책이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는 이야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며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축 처진 돌돌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용희의 걱정은 점점 커져가고 돌돌이를 다시 웃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난감도 내밀고 간식도 챙겨 보지만 기대했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 속에서 용희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다. 바로 돌돌이의 마음을 직접 들어 보기 위한 속마음 청진기를 만드는 것이다. 상자와 끈을 잇고 상상력을 더해 완성한 청진기를 손에 쥔 순간 용희의 얼굴에는 해냈다는 기쁨이 또렷이 번진다. 이 장면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의 진지한 태도와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보여 주며 이야기에 활기를 더한다.


직접 만든 속마음 청진기를 통해 용희는 반려견 돌돌이가 기운을 잃게 된 이유가 소중히 아끼던 애착 인형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인형의 행방을 좇아 나선 길에서 용희와 돌돌이는 여러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인형을 둘러싼 예상치 못한 사연과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후 전개는 선택의 순간들을 통해 공감의 의미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용희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상대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방향으로 한 발짝 물러서며 주변의 동물 친구들과 다시 힘을 모으게 된다. 과연 이 과정 끝에서 인형은 어떻게 될지, 그리고 용희와 돌돌이가 마주한 선택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 결말은 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처럼 이 책은 특별한 교훈을 앞세우기보다 어린이의 일상적인 선택과 시선을 따라가며 공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차분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용희의 행동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고민과 망설임이 오히려 이야기를 현실에 가깝게 만든다. 덕분에 독자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거창한 결심이 아니 작은 관심과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은 어린이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연습의 기회를, 어른에게는 아이가 이미 지니고 있는 감정의 깊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관계를 바꾸고 일상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공감과 배려가 자라는 순간을 따뜻하게 담은 이야기들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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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문방구 3 : 껌딱지 친구를 찾아라! 아무거나 문방구 3
정은정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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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라서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로 요술 가게를 배경으로 친구 관계의 의미를 짚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를 모으는 도깨비 아무거나와 고양이 귀신 어서옵쇼가 아이들의 고민을 요술 물건으로 풀어 주는 기본 설정 위에 이번 책에서는 우정이라는 주제를 중점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특히 언제나 여유롭고 능청스러웠던 아무거나가 낯선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변화의 이유에 주목하게 된다.

혼잣말을 하거나 문방구를 뛰쳐나가는 아무거나의 모습은 그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단짝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친구를 찾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고 돕는 어서옵쇼의 시선이 교차되며 이야기는 요술보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 책은 특별한 사건보다 친구 사이에서 오가는 진심과 대화가 얼마나 큰 힘을 지니는 지를 보여 주며 친구 관계로 고민하는 어린이 독자에게 많은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앞이야기'에서는 평소와 달리 안절부절못하고 자주 자리를 비우는 도깨비 아무거나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를 수상하게 여긴 어서옵쇼는 아무거나의 뒤를 몰래 따라 나서고 그 과정에서 아무거나가 도깨비불로 변해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뒤쫓던 어서옵쇼는 뜻밖에 낯선 할머니와 마주치게 되고, 할머니는 어서옵쇼를 아무거나로 착각한 채 자연스럽게 말을 건넨다.

말하는 고양이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 할머니의 태도와 기억이 뒤섞인 듯한 엉뚱한 말들은 어서옵쇼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잠시 함께 시간을 보낸 뒤 할머니가 흔적 없이 사라지면서 어서옵쇼는 물론 책을 읽는 우리 역시 의문을 품게 된다. 이 할머니는 누구이며 과연 아무거나와는 어떤 관계인 것일까. 그리고 아무거나와 이 할머니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은 이야기의 다음 전개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고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발표 불안과 자신감 부족, 친구 관계에서의 질투와 오해처럼 어린이가 일상에서 겪는 현실적인 고민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기병이와 유나는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아무거나 문방구를 찾지만 요술을 통해 단번에 해결책을 얻기보다는 자신의 선택과 마음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두 아이는 스스로를 믿는 태도와 더불어 타인의 마음을 존중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경험을 통해 배워 간다.

두 이야기들은 용기를 내라거나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직접적인 훈계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실수와 후회를 포함한 과정을 차분히 보여 주며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 볼 수 있는 지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제시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이야기는 교우 관계와 자기 신뢰 사이에서 고민하는 어린이 독자에게 현실적인 공감과 함께 스스로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기는 서사로 완성된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아이들의 고민을 다루는 에피소드와 더불어 도깨비 아무거나의 오래된 단짝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서옵쇼는 골목을 누비며 냄새를 단서로 아무거나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친구를 추적하고, 마침내 앞이야기에서 마주했던 낯선 할머니와 다시 만나게 된다. 할머니는 아무거나와 어린 시절부터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였지만 기억이 흐려지는 병으로 인해 약속과 사람을 종종 잊어버리게 된 상태였다.

이후 문방구에서 다시 마주한 아무거나와 할머니는 서로를 향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솔직하게 나누고, 두 사람이 평생 쌓아 온 이야기가 여전히 둘을 이어 주고 있음을 확인한다. 특히 기억이 사라질지라도 이야기를 기록하고 함께 나누는 행위 자체가 관계를 지켜 주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은 앞선 아이들의 고민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작품의 주제를 확장한다. 이처럼 이 책은 어린이의 현실적인 고민과 더불어 시간과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우정의 의미를 함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책의 끝에 부록처럼 수록된 이야기 장부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이 단순히 한 편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동화가 아니라 시간과 관계가 켜켜이 이어지는 시리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 아이들의 현재 고민을 다루는 이야기와 아무거나와 희야의 긴 우정이 나란히 놓이며 이 책은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지탱하고 이어 주는 지를 보여주고 있어 아주 인상적이다. 특히 장부에 기록된 기억들은 우정과 신뢰가 한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여 온 결과임을 설득력 있게 드러낸다. 이렇게 <아무거나 문방구> 시리즈는 화려한 요술보다 관계와 이야기에 주목하며 다음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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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 글을 사랑한 프리랜서 편집자의 작업 세태에세이
유민정 지음 / 소도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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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사랑하는 프리랜서 편집자의 이야기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은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해 온 저자가 자신의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글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내었다. 이 책은 결과보다 노출이 우선되는 환경에서 문장을 다듬는 노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으며 언어의 선택과 배열이 사고와 인식을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편집 과정에서 마주한 고민과 판단을 통하여 언어의 기술과 글의 설계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사회적 역할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책은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상적인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미시성을 중심 개념으로 삼고 있어 인상적이다. 저자는 작은 어휘의 차이와 문장 구조의 변화가 의미의 범위를 어떻게 달리 만드는 지를 사례를 통해 보여 주고 이러한 세밀한 감각이 글쓰기뿐만 아니라 노동, 일상, 미래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과 출판, 앞으로의 일에 대한 논의까지 이어지는 이 책은 글을 완성된 산물이 아니라 사회와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책의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글을 업으로 삼아 살아오며 겪은 현실적인 어려움과 선택의 과정을 정리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며 글을 다듬고 대신 써주는 작업을 반복하는 동안 글이 삶의 중심이었기에 감내해야 했던 불안정함과 산업 구조의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완성도와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자 글을 쓴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글쓰기가 일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라 보편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행위임을 확인한다. 이러한 경험은 글을 결과물보다 과정과 태도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이 책은 글이 늘 낮은 자리에 놓여 왔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글은 일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지만 그만큼 가볍게 취급되고 쉽게 소모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저자는 그 보편성과 지속성 자체가 글의 핵심 가치라고 강조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신념과 타협해야 했던 경험과, 이름 없이 수행해 온 글 관련 노동의 현실을 숨기지 않는 태도 역시 이 인식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 책이 성취나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글을 어떻게 다루고 존중할 것인 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며 동시에 그 이야기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되면서 저자는 글을 사랑하게 된 과정과 그것이 직업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경로를 상세하게 말하고 있다. 소설가를 꿈꾸던 시절의 좌절과 생계를 위해 선택했던 다양한 일자리, 출판사 편집자로서 경험한 현실적인 한계는 글을 업으로 삼는 일이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유지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 준다. 출판 현장에서 효율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글이 다뤄지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문장을 충분한 시간과 책임을 가지고 다루는 일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경험 끝에 저자는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교정과 윤문자로서의 길을 선택한다. 책은 이 선택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교정과 윤문 작업이 요구하는 태도와 조건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의 선택을 반복적으로 검토하고 문장의 논리와 리듬을 점검하는 과정은 단순한 성실함을 넘어 언어에 대한 애정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미시적인 글 다루기 작업이 눈에 띄지 않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반임을 강조하며 글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일상과 함께 기능해 온 이유를 말한다.

책은 글을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을 지탱하는 과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저자는 글이 낮은 곳에 머문다는 사실을 소외가 아니라 보편성의 문제로 해석하며 누구나 접근하고 사용하는 언어이기에 오히려 더 정교한 태도와 책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AI 기술의 확산과 플랫폼 중심의 노동 환경 속에서 글이 값싼 기능으로 취급되는 현실을 짚으면서도 글의 아름다움과 세밀함이 이러한 구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책은 노동, 출판, 환경, 인공지능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글이 사회의 변화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보존하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감정의 미시성에 주목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글은 감정이라는 무수한 결을 통과해 의미를 형성하는 매개이며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록이자 역사라는 것이다.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을 잘게 나누어 들여다보고 그것이 문장으로 형체를 갖추기까지의 흐름을 따라가는 일은 글쓰기의 핵심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미시사로 정의하며, 글쓰기를 거창한 선언이 아닌 다정하고 집요한 관찰의 연속으로 설명한다. 결국 이 책은 글이 어떻게 인간의 감정을 통과해 사회로 확장되는지, 그리고 그 작은 움직임들이 어떻게 더 나은 방향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지를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좋은 글의 필요성은 결국 개인의 감정과 사고가 사회의 태도로 이어지는 지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고민하고 조합하는 과정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글을 탐구하는 일이 곧 세계를 탐구하는 일이라고 보며 사소해 보이는 언어 선택의 반복이 사고의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방향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더 나은 문장을 쓰려는 시도는 결국 더 나은 판단과 태도를 길러 내는 과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책은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글의 미시적 성격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가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지를 상세하게 정리하여 말한다. 감정의 미세한 결을 외면하지 않고 언어로 다루는 일은 빠르게 소모되는 정보의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기에 글을 쓰는 일, 그 자체를 되새겨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책은 글쓰기를 특별한 재능의 영역으로 격상시키기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할 감각으로 바라본다. 따라서 이 책은 글을 통해 어떻게 더 인간답게 살아가고 그 인간다움이 사회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어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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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 잘 익어가는 인생을 위한 강원국의 관계 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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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작가의 관계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자연히 정리되고 단순해 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관계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잦아진다. 이 책은 그런 경험을 이미 충분히 겪어온 어른의 시선에서 관계를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를 담고 있다. 관계를 잘 맺는 요령이 아니라, 관계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 더더욱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대통령 연설관과 대기업 직장인으로 겪은 치열한 인간관계와 가족과의 가장 일상적인 관계까지 아우르며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기준을 정리해간다. 책에 담긴 여섯 가지 원칙은 삶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결과물에 가깝고,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다. 버티지 않기, 고이지 않기, 필요할 때 선택하고 거절할 줄 아는 태도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라기 보다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자세처럼 읽혀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책은 관계를 하나의 배움의 영역으로 놓고 있다.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흐름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부딪히고 돌아가며 관계를 건너온다. 저자는 오십이 되어서야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가까운 사람과 더 깊이 관계 맺는 법부터 불편한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과 멀어진 관계를 대하는 태도까지를 되짚는다. 이 과정에서 관계의 어려움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며 관찰한 경험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정리한다. 관계의 양을 늘리는 데 집중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중요한 것은 확장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고 회복하는 힘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관계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며 성장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막히지 않고 고이지 않는 관계와 필요할 때는 거리를 둘 줄 아는 태도가 어른다운 관계의 핵심임을 제시하며 독자 스스로에게 자신의 관계를 점검해볼 기준을 건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관계를 둘러싼 질문을 다시 현재형으로 불러온다. 이 책은 관계가 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지,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의 관계는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 지를 차분히 되묻는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관통해온 다양한 관계의 장면을 통해 관계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이나 처세의 부족으로 돌리기보다 배우지 못한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어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관계는 저절로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돌아보고 다시 익혀야 하는 삶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특히 눈에 남는 지점은 관계의 시선을 바깥에서 안쪽으로 돌리는 대목이다. 저자는 오래도록 자신을 낮추고 의심하며 살아온 경험을 솔직하게 말한다. 반복된 실패와 수치의 기억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기대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부정과 과도한 자기애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동일한 현상임을 짚는다. 이 인식은 관계에서 반복되는 피로와 불안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삶의 중심을 다시 자신에게로 가져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기대보다 내 상태를 먼저 살피고 나를 소모시키는 요구 앞에서 선을 긋는 태도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보존에 가깝다고 본다. 하루 중 잠시라도 나를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작은 습관들이 쌓여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만든다. 이런 선택들이 반복될 때 비로소 관계는 부담이 아니라 균형 위에서 유지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를 기술이나 요령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관계의 어려움을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 부족으로 환원하지 않고 누구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영역으로 바라본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없으며 관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 가가 아니라 상처 이후에 어떻게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가에 있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중심을 세우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필요할 때는 결단하고 회복하는 여섯 가지 원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처방이라기 보다 삶을 정리하는 기준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나가며'에서 신영복 선생의 삶과 일화를 통해 배움이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임을 설명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 늙은 목수의 집 짓는 방식은 머리로만 이해해온 삶의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일은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관찰하고 이해하며 반복적으로 따라 해보는 실천에 가깝다는 점이 이 부분에서 분명해진다. 이어지는 위기와 실패에 대한 정리는 관계 공부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초기화, 국면 전환, 초심으로 돌아가기, 그리고 함께하기라는 네 가지 방식은 혼자 감당하는 삶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다시 균형을 찾는 방법이다.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고 뛰어난 사람 앞에서 위축되기보다 그 과정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배움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다. 관계에서 생기는 열등감이나 시기심 또한 배움을 가로막는 감정으로 정리되고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 배우려는 자세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평생 다시 사람을 배우며 관계를 만들어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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