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을 배웁니다 - 잘 익어가는 인생을 위한 강원국의 관계 공부
강원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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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작가의 관계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하여 읽게 된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자연히 정리되고 단순해 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관계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잦아진다. 이 책은 그런 경험을 이미 충분히 겪어온 어른의 시선에서 관계를 다시 배워야 하는 이유를 담고 있다. 관계를 잘 맺는 요령이 아니라, 관계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어 더더욱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대통령 연설관과 대기업 직장인으로 겪은 치열한 인간관계와 가족과의 가장 일상적인 관계까지 아우르며 사람을 대하는 자신의 기준을 정리해간다. 책에 담긴 여섯 가지 원칙은 삶의 경험에서 길어 올린 결과물에 가깝고,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다. 버티지 않기, 고이지 않기, 필요할 때 선택하고 거절할 줄 아는 태도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라기 보다 어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자세처럼 읽혀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책은 관계를 하나의 배움의 영역으로 놓고 있다.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흐름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부딪히고 돌아가며 관계를 건너온다. 저자는 오십이 되어서야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가까운 사람과 더 깊이 관계 맺는 법부터 불편한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과 멀어진 관계를 대하는 태도까지를 되짚는다. 이 과정에서 관계의 어려움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한 영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오랜 시간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며 관찰한 경험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정리한다. 관계의 양을 늘리는 데 집중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중요한 것은 확장이 아니라 상처를 견디고 회복하는 힘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관계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완벽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며 성장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막히지 않고 고이지 않는 관계와 필요할 때는 거리를 둘 줄 아는 태도가 어른다운 관계의 핵심임을 제시하며 독자 스스로에게 자신의 관계를 점검해볼 기준을 건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관계를 둘러싼 질문을 다시 현재형으로 불러온다. 이 책은 관계가 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어려운지,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의 관계는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 지를 차분히 되묻는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관통해온 다양한 관계의 장면을 통해 관계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이나 처세의 부족으로 돌리기보다 배우지 못한 영역으로 바라보고 있어 인상적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관계는 저절로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돌아보고 다시 익혀야 하는 삶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특히 눈에 남는 지점은 관계의 시선을 바깥에서 안쪽으로 돌리는 대목이다. 저자는 오래도록 자신을 낮추고 의심하며 살아온 경험을 솔직하게 말한다. 반복된 실패와 수치의 기억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었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기대게 만들었다. 그는 자기부정과 과도한 자기애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데서 비롯된 동일한 현상임을 짚는다. 이 인식은 관계에서 반복되는 피로와 불안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고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삶의 중심을 다시 자신에게로 가져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기대보다 내 상태를 먼저 살피고 나를 소모시키는 요구 앞에서 선을 긋는 태도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기 보존에 가깝다고 본다. 하루 중 잠시라도 나를 위해 시간을 비워두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작은 습관들이 쌓여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만든다. 이런 선택들이 반복될 때 비로소 관계는 부담이 아니라 균형 위에서 유지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책은 인간관계를 기술이나 요령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관계의 어려움을 개인의 성격이나 능력 부족으로 환원하지 않고 누구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영역으로 바라본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는 없으며 관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 가가 아니라 상처 이후에 어떻게 다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가에 있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다. 중심을 세우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필요할 때는 결단하고 회복하는 여섯 가지 원칙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처방이라기 보다 삶을 정리하는 기준에 가깝다고 본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나가며'에서 신영복 선생의 삶과 일화를 통해 배움이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임을 설명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만난 사람들, 늙은 목수의 집 짓는 방식은 머리로만 이해해온 삶의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사람에게서 배우는 일은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관찰하고 이해하며 반복적으로 따라 해보는 실천에 가깝다는 점이 이 부분에서 분명해진다. 이어지는 위기와 실패에 대한 정리는 관계 공부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초기화, 국면 전환, 초심으로 돌아가기, 그리고 함께하기라는 네 가지 방식은 혼자 감당하는 삶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다시 균형을 찾는 방법이다. 싫어하는 사람에게서도 배울 점을 찾고 뛰어난 사람 앞에서 위축되기보다 그 과정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배움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된다. 관계에서 생기는 열등감이나 시기심 또한 배움을 가로막는 감정으로 정리되고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 배우려는 자세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평생 다시 사람을 배우며 관계를 만들어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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