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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 청진기
김보라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평점 :
표지 그림과 제목에 끌려서 일게 된 책이다. 이 책은 엉뚱하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어린이의 일상을 그려 온 김보라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이다. 전작 <조용희 청소기>에 이어 같은 주인공 조용희의 또 다른 하루를 담은 이 작품은 유쾌한 발명과 사건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책은 만들기를 좋아하는 여덟 살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며 배려와 공감이 어떻게 행동으로 이어지는 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는 반려견 돌돌이의 달라진 모습에 눈길을 주는 용희의 세심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예전처럼 활기차지 않은 돌돌이를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보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답을 찾지 못한 채 고민하던 용희는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마음을 먼저 이해해 보려는 쪽을 택한다. 그렇게 등장한 속마음 청진기는 문제 해결의 도구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감정에 다가가기 위한 상징적 매개로 작용하며 이야기의 방향을 이끈다.
이야기는 갑자기 축 늘어진 돌돌이의 모습을 마주한 용희가 단순히 기운을 북돋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 지를 알아보겠다고 마음먹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평소와 다른 반려견의 태도를 가볍게 넘기지 않고 그 변화의 이유를 찾으려는 용희의 선택은 이 책이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는 이야기보다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며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축 처진 돌돌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용희의 걱정은 점점 커져가고 돌돌이를 다시 웃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난감도 내밀고 간식도 챙겨 보지만 기대했던 반응은 돌아오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함 속에서 용희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린다. 바로 돌돌이의 마음을 직접 들어 보기 위한 속마음 청진기를 만드는 것이다. 상자와 끈을 잇고 상상력을 더해 완성한 청진기를 손에 쥔 순간 용희의 얼굴에는 해냈다는 기쁨이 또렷이 번진다. 이 장면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의 진지한 태도와 그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을 담담하면서도 따뜻하게 보여 주며 이야기에 활기를 더한다.
직접 만든 속마음 청진기를 통해 용희는 반려견 돌돌이가 기운을 잃게 된 이유가 소중히 아끼던 애착 인형과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인형의 행방을 좇아 나선 길에서 용희와 돌돌이는 여러 동물 친구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인형을 둘러싼 예상치 못한 사연과 마주하게 된다. 이야기는 단순히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데서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상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후 전개는 선택의 순간들을 통해 공감의 의미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용희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상대의 처지를 먼저 헤아리는 방향으로 한 발짝 물러서며 주변의 동물 친구들과 다시 힘을 모으게 된다. 과연 이 과정 끝에서 인형은 어떻게 될지, 그리고 용희와 돌돌이가 마주한 선택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 결말은 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처럼 이 책은 특별한 교훈을 앞세우기보다 어린이의 일상적인 선택과 시선을 따라가며 공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차분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용희의 행동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고민과 망설임이 오히려 이야기를 현실에 가깝게 만든다. 덕분에 독자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거창한 결심이 아니 작은 관심과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은 어린이에게는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연습의 기회를, 어른에게는 아이가 이미 지니고 있는 감정의 깊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태도가 관계를 바꾸고 일상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 책은 공감과 배려가 자라는 순간을 따뜻하게 담은 이야기들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