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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사계절 동시집 19
박혜선 지음, 백두리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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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jinick77/222321073962


<바람의 사춘기>라는 제목과 표지 속에 흐날리는 민들레 꽃씨들이 내 마음도 같이 흔들리게 하는 책이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왠지 답답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루 종일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이 책의 시들이 위로를 보내는 듯하다.


표제작인 <바람의 사춘기>는 지금 사춘기에 빠져있는 아이들도, 사춘기를 겨우 지나온 아이들도,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 사람들도 모두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사춘기 때 마음이 바로 딱 이렇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서 자고만 싶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던지 다 잔소리처럼 들린다.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한 비난 같다. 짜증이 난다. 하지만 뭐 하나 하기가 귀찮은... 그 마음들을 어쩜 이리도 잘 표현했는지..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서 더 답답한 그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렇게 그 마음들을 너무 잘 표현해서, 나무에 누워 있는 아이의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받는 듯하다. 그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 마음을 어루어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리고 <집에만 있으려니>는 코로나로 인한 가정에서의 모습이 딱 이렇지 않을까 싶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지치고 힘들다. 올해는 그나마 작년에 비해 나아진 것에 오히려 감사해지는 요즘, 언젠가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 하고 희망의 끈을 잡아 본다.


힘들고 외롭고, 속상한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나에게 사과하기>. 선생님께 혼나서 속상하고, 오답 노트 쓰느라 팔 아프고, 피구에서 공을 맞아 아프고, 친구들한테 비난 받아 속상하고, 학교에 혼자 가고 혼자 와서 외로고 힘든 나의 마음에게 누구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탓하기 보다는 먼저 사과하고 위로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을 다독인다. 이 시를 통해 나도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사과해본다. 그렇게 나를 같이 다독여본다.



<나는 세탁소에 간다>에서처럼 구겨진 마음을 다리고, 쫄아든 가슴을 펴고, 얼룩덜룩 묻은 눈흘림을 닦아내고, 여기저기 달라 붙은 말 먼지를 털어내며, 깊어진 한숨과 늘어난 걱정을 맡기는 세탁소가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하다. 그 곳이 어디든 나의 마음을 세탁해 줄 수 있다면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 괜찮다는 말로 포장하며 구겨진 체로, 쫄아든 체로, 한숨과 걱정을 마음 속에 쌓아두지는 말자. 


맨날 밟기만 하던 신발이 다른 신발에게 찍힌 자국을 이야기한 <세상의 쓴맛>.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다른 이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이 바로 그 입장에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신발 등에 선명하게 찍힌 자국이 왠지 도장 같아서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는 아이의 말에 마음에 맴돈다. 혹여라도 내가 다른 이에게 그 도장을 찍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바람의 사춘기>는 십여 년간 어린이들이 직접 쓴 시를 읽고, 동시 교실을 운영하며 어린이와 시로 소통해 온 박혜선 시인이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시기이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지는 않다. 각기 다른 이유의 이야기를 시인은 잘 담고 있으며 가르치기 보다는 소통하며 불안정하고 힘들고 외로운 그 마음들을 다독여준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지만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 누구에게도 하기 싫은 말들, 마음 속에 간직한 그 말들을 이 책은 시로 하나씩 하나씩 담고 있다. 그렇게 마음 속에 담겨진 말들이 시가 되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마음의 어루만짐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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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된 아이 사계절 아동문고 99
남유하 지음, 황수빈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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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푸른 머리카락>으로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남유하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동화집이라고 한다. 총 6편의 동화가 실려 있는 이 책 속의 아이들은 제각각 마음 속에 그림자를 드리고 있다. 어쩌면 기묘하기도 하고, 어쩌면 신박하기도 하며 감동적이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이 책에 나는 폭 빠져버렸다. 물론 우리집 아이들도 함께.


남들과 똑같아 지기 위해 나의 일부를 없애고자 하는 아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교실 한가운데에서 차라리 나무가 되어 버린 아이, 원통 안에 분홍색 뇌만 남은 엄마와 함께 춤추기를 꿈꾸는 아이, 마녀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에게 불타버리는 아이, 아빠와 엄마의 불화로 아빠, 엄마의 가슴에 난 구멍을 발견하고 점점 커져가는 구멍을 감추어주고 싶어하는 아이, 가장 사랑받는 단 한 명이 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아이. 총 6편의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아이들 마음 속에 숨은 외로움과 불안, 편견,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남유하 작가는 특유의 상상력과 예민한 시선을 바탕으로 독특한 환상 동화로 만들어내었다. 차별과 혐오가 나은 참혹한 현실을 비극적이면서도 서늘하게 묘사하여 더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하며 놀랄 만큼 아름답게 이어가는 이야기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6편의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무서운 것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편견과 차별, 혐오들로 만들어지는 현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6편 모두 신박하면서도 정말 인상적인 이야기지만 그 중 제일 가슴에 콱 박혀버린 <온쪽이>와 <나무가 된 아이>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습관처럼 거울 모서리에 서서 오른쪽 반만 비춰봤다.

눈 하나, 귀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나. 그제야 나도 남들처럼 보였다.

"수업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

반장이 내 옆에 지나가며 말했다. 한 다리로 바닥을 짚는 소리가 통통, 경쾌하게 울렸다. 반장은 오른쪽 반만 있는 사람, 오른사람이다. 나는 두 개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저벅저벅 두 다리로 걸어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 무리 지어 떠들던 아이들도 콩콩, 가볍게 걸어 착지하듯 자리에 앉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열일곱 명, 나를 제외한 열여섯 명의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앉아 있다. 짝이 없는 나는 항상 뒷자리에 앉는다. 그래서 내 책상은 교실 뒤편에 떠 있는 섬 같다.

p8

<온쪽이>속 세상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눈 하나, 귀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난. 반쪽만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인공 수오는 윰쌍둥이로 태어나 양쪽이 다 있는 온쪽이다. 그래서 늘 수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달리기는 잘하지만 반쪽이 아니라 온쪽이라서 결코 '한 쌍'이 될 수 없고 결혼도 할 수 없다. 그런 수오를 아무런 편견없이 그저 수오로 바라보는 사람은 오직 엄마뿐이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아빠는 수오를 특수학교에 보내길 주장하지만 엄마의 주장으로 수오는 일반학교에 다니게 된다. 하지만 수오는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했다. 어쩌다 생긴 친구마져 멀어져 버리고 혼자로 생활하는 수오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반쪽을 잘라버리는 수술을 결심한다.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게 된 수오. 정작 오른손 잡이지만 심장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왼쪽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 앞에 수오는 이상했다. 엄마 처럼 오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빠나 형처럼 왼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그것은, 슬픔이었다. '정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남들에게 비정상으로 느껴지는 내가 내게는 정상이었다. 수술을 통해 남들에게 정상으로 보이는 내가 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잘라 내고 싶지 않다. 
p23

다른 사람들 눈에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반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니. 수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정상으로 보일지 모르나 스스로 자신을 비정상으로 느낄 생각할 하니 수오는 너무나 슬프다. 과연 수오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자신의 반을 잘라내고 정상으로 사는 게 수오의 최선이었을까. 결론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반쪽이 세상에 온쪽인 사람이 비정상이라는 이야기의 설정이 뒷통수를 팍 때리는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수오가 겪게 되는 그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너무나 세밀하게 담고 있어서 수오 마음 속의 외로움과 슬픔이 절절하게 전해졌다. 그래서 수오가 정상을 생각할 때마다 슬펐다는 말이 자꾸 울컥하게 만들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


필순이가 나무가 됐다.

2반 현오는 무당벌레가 되어 날아갔고,

3반 수아는 청설모가 됐다던데,

우리 반 필순이는 나무가 된 것이다.

p26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무가 된 아이>에서 화자인 나는 준서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필순이가 교실 한가운데에서 나무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의 기이한 변신은 오직 아이들의 눈에만 보인다. 어른들은 변신한 아이들의 존재마저 잊은 듯이 생활한다.


안 그래도 하얀 준서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연노란 빛이 돌 정도였다. 나는 가늘게 떨리는 준서의 턱을 보았다. 하지만 곧 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패거리를 보며 말했다.

"진짜 센스없네. 나무라니."

"코끼리로 변하지 않은 게 다행이잖아."

패거리 중에서도 준서와 특히 친한 도윤이가 말했다.

"차라리 코끼리면 밖으로 내보내면 되게."

은우는 준서보다 도윤이와 더 친하다.

"여러 명이 들어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지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 필순이의 발은 이미 바닥을 뚫고 단단히 뿌리를 내린 뒤였다.

p30

차라리 코끼리로 변하면 밖으로 내보내면 되지만 나무가 된 필순이는 교실에 뿌리를 내린다. 그 모습이 더욱 못마땅한 아이들은 가지를 꺾지만 나무는 핏빛 진액만 흘리면서도 무럭무럭 자라 창문과 천장을 뒤덮는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교실에는 어둡고 붉은 그림자만이 드리우게 된다.


<나무가 된 아이>에서 아이들이 나무를 훼손하는 장면은 세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 그동안 필순이가 겪었을 아픔과 외로움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렇게 필순이의 아픔과 외로움을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화자이자 관찰자의 나가 필순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필순이를 돕지 못한 슬픔이 담겨서가 아닐까.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유없는 폭력과 다른 아이들의 방관과 동조의 모습들은 아이들을 지켜야 할 존재가 아무도 없음이 안타깝게 만든다. 화자인 나는 아마 다음 폭력의 대상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저 지켜보기만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면서 작은 힘이라도 필순이를 돕고자 한 나의 행동에 필순이가 '고마워'라고 말한 것처럼 느꼈다는 마지막 부분이 외로운 아이에게 있어 자기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아이들 마음 속에 담긴 그림자들을 판타지 동화로 만들어 낸 이 책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어른들과 똑같은 감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6명의 아이들 마음속에 담긴 그 그림자들은 때로는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분노를 유발하기도 하며, 너무나 가슴 아파 안아주고 싶다가, 같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 속의 세상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앞으로 우리 어른과 아이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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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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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신경숙 작가의 신작. 창비 사전 평가단으로 선정되어 가제본판으로 만나니 더 뜻깊다. 꽤 두꺼운 두께의 이 책에 며칠동안 나는 폭 빠져 있었다. 아버지와 꽤 가까운 딸이라서 더더욱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실을 통해 비로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들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는 내내 신경숙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력과 철학, 그리고 가족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가 자꾸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 냈을 뿐이라고.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책을 넘기자 마자 나오는 이 글귀 중 '살아냈을 뿐이라고'라는 아버지의 말이 책을 읽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야 말았다. 살아냈을 뿐이라는 그 말에 왠지 아버지의 고된 인생이 담겨 있는 듯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은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J시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보러 가게 된 주인공 '나', 헌이가 5년 만에 기차에 오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딸을 잃었다. 그 이후 나는 가족과도 거리를 두고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엄마를 배웅하고 나서 울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아버지의 안위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이 겹쳐서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속의 아버지는 보통의 한국 아버지가 가진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니다. 앞선 형제들을 전염병으로 모두 잃고나서 장손이 된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사서삼경을 손수 가르쳤으며 한국전쟁에 장손이 아버지가 전쟁에 참가해 혹여라도 목숨을 잃을까봐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의 손가락을 잘라내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그 트라우마는 아버지를 괴롭혔으며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서 당신이 책임을 져야할 자식들을 보며 간혹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살아갈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셋 아들 뒤에 처음으로 태어난 딸이 너무 좋아서 가족 사진을 찍고 유독 예뻐하였고 6남매 모두를 한명 한명 사랑으로 대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의 대학 졸업 사진을 하나씩 전시해 놓고서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이 책 속의 아버지 인생의 서사는 한국 전쟁부터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서 보게 된 4.19혁명, 자식 여섯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소 값이 폭락하자 그 소를 타고 참여했던 80년대 소몰이 시위까지, 그 자체로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몇 년만에 J시에 도착하며 펼쳐진 J시의 풍경은 주인공 나를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주인공 나가 회상하는 과거의 시간 속 아버지는 그 시절의 아버지들처럼 힘든 가정형편에도 자식들이 가난을 느끼지 못하도록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 또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여느 아버지와 다른 점은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친정 아빠를 오버랩시켰다. 딸을 유독히 아끼는 모습이 너무 닮아서.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아버지가 가만가만히 말하는 말씀들에 자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하는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자다가 자꾸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예전의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에 자꾸 나는 과거를 회상하고 아버지의 서사를 깊이있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주인공의 딸 이야기. '매일 죽을 것 같아도 다른 시간이 오더라.'라는 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혀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삶 역시 고되고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가 외출한 틈에 발견하게 된 폐가 방안 상자 속의 편지들. 특히 리비아로 파견하게 된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와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이 이 작품 속에 나와 있는데, 그 시절의 장남의 무게와 또 한 명의 아버지인 큰 오빠의 이야기가 자꾸 자꾸 뇌리에 남는다.


그 눈 내리는 겨울밤,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엄마가 내놓은 구운 김에 밥을 싸서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차례로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여러번 글로 썼다. 그때그때마다 비유가 달랐겠지만 우리는 무슨 참나무 숲의 딱따구리 새끼들처럼 아버지가 싸준 김밥을 쏙쏙 받아먹었다고. 그때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김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으나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겨울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김에 싸준 밥을 받아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큰오빠가 그 글이 실린 지면을 패널로 만들어 내게도 보내주고 여기에도 가져와 작은방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아버지가 읽고는 그때 행복했냐?고 물었다.

- 예, 아버지.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 무서우셨어요? 뭐가요?

내가 의아해서 묻자 아버지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 그것이 설명이 되냐?

아버지가 말을 거두려 하자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 너그들이 먹성이 얼매나 좋으냐. 양식 걱정 없이 살 게 된 지가 얼마나 되간? 오늘 저녁밥 먹음서 내일 끼니 걱정을 하며 살었는디. 밥 지을라고 광으로 쌀 푸러 갈 때 쌀독 바닥이 보이는 때도 있었는디. 그 가슴 철렁함을 누가 알겄냐. 쌀독은 점점 바닥을 보이는디 먹성 좋은 자식 여섯이 마구 달려들어봐라, 안 무서운가......

아버지가 삼킨 말을 대신하는 동안 무거워진 생각을 털어내듯 엄마는 곧 생기를 되찾곤 했다.

- 무섭기만 했으믄 어찌 매일을 살겄냐. 무섭기도 하고 살어가는 힘이 되기도 허고......

<p194~p195>

먹성 좋은 6남매를 모두 키워내기 위해 농사짓고 소를 키우던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절절히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당신의 자식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했다는 그 말이 부모라면 다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끼니 걱정은 이제 하지 않지만 부모로 온전한 한 인간을 키워내는 일은 늘 무섭고 두렵지만 그 아이로 인한 행복과 뿌듯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아버지가 6명의 자식 한명 한명에게 남기는 말들에 나는 결국 펑펑 울고야 말았다. 당신 삶의 마지막이 오는 것을 체감한 아버지의 그 마지막 말들이 그 동안 자식들을 한명 한명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는지를 너무 잘 표현해서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아버지를 개별적인 한 명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의 늙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라는 이 책 속 큰 오빠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고 나 또한 부모가 되어서야 당신들의 마음을 그제서야 이해하고 그 시절의 고됨과 힘듦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그 어리석음이 당신들의 자식으로 우리를 살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국의 근현대사에 걸쳐 인간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그 고난과 상실을 같이 경험하고서도 그 순간순간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에 누구라도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나의 아버지를 자꾸만 생각나게 하여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온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오래 동안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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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식으로 출간하기 전에 가제본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이는 데, 이 책은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소설들의 외전들을 모은 것이라서 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었다. 답답하고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일상의 나날에 2021년의 첫 선물로 당첨된 창비 출판사의 사전서평단. 너무나 재밌게 읽었고 너무나 좋아하였던 작품들의 외전들을 모은 이 책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읽게 되어 무지 행복했다. 

<두번째 엔딩>은 김려령, 배미주, 이현, 김중미, 이현, 손원평, 구병모, 이희영, 백온유의 이름만 들어도 대표작이 바로 연상되는 각 작가들이 각각 전작의 외전을 그려내어 담은 아주 특별한 책이다. 8명의 작가의 전작을 너무나 재밌게 읽었던 터라 다 적고 싶지만, 적다보면 자꾸 8개의 이야기 모두를 스포하고 싶어질 듯해서 내 마음 속에 강렬하게 남은 두 작품만 언급하고자 한다.

제일 처음 실린 김려령 작가의 <언니의 무게>는 <우아한 거짓말>의 외전이다. 이제는 청소년 자살률 통계로 남아버린 천지를 보내고서 살아가는 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만지에게 미란의 문자가 오고, 만지가 미란의 집에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부모들의 일로 불쾌하게 동생들은 불행하게 엮인 관계. 어쩌면 만지는 미란과의 관계가 끊길지도 모른다 생각했으나 미란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잃고 싶지 않은 친구였다. 그래서 만지는 미란의 연락을 받고 미란과의 인연을 지속한다. 그리고 만지는 미란의 동생 미라의 공부까지 봐주기로 한다. 그러나, 사실 그러면서도 만지의 마음은 그리 편지 않다. 만지를 누르는 그 언니의 무게 때문에 말이다. 그런 만지를 이해하는 인물은 단 한 명, 바로 엄마다. 천지 몫까지 잘해 본다는 만지에게 "너는 네 몫만 하면 돼. 자기 몫만 하고 사는 것도 힘들어. 마음은 기특하고 예쁜데, 너는 너로만 살아. 엄마는 그랬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그렇게 언니의 무게에서 만지는 조금 자유로워졌을까. 그리고 만지 눈에 자꾸만 보이는 천지를 죽음으로 몬 아이, 화연. 만지는 자기 주위를 맴도는 화연에게 "힘들어도 꼭 이겨내라"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화연을 용서할 수는 없다. 동생을 죽음으로 몬 아이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만지를 누르는 그 언니의 무게를 너무 잘 알기에 읽는 내내 울컥했던 <언니의 무게>. 이 작품 때문에 만지와 천지를 더더욱 오래 오래 기억할 듯 싶다.

지금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몬드>의 외전인 <상자 속의 남자>는 아몬드의 주인의 엄마와 할머니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목격자다. 그는 자신이 상자 속에 살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주인공 남자는 택배일을 하고 있다. 그가 상자 속에 살게 된데에는 형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 언덕배기 꼭대기에는 여느 때처럼 파란 트럭이 하나 세워져 있고 젊은 부부가 길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 옆으로 서너 살 먹은 아이가 아장거렸지만 언쟁에 몰두한 부부는 아이가 혼자 도로 건너편으로 가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이 미끌어지기 시작한다. 부부는 아무것도 모른 체 싸우고 있고 아이는 어느새 트럭의 직선거리 아래서 놀고 있었다. 그걸 본 주인공의 형은 몸을 굴려 아이를 구한다. 그리고 형이 가진 많은 것은 사라지고, 형은 지금처럼 병원에 누워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사람들은 감사함을 너무나 빨리 잊어버린다. 형이 구한 가족은 평범한 일상을 살지만 형은 그저 병원에 누워있을 뿐이다. 그걸 곁에서 지켜본 주인공 남자는 지금처럼 상자 속에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남자는 횡단보도에서 아몬드의 소년의 할머니와 엄마가 죽게 되는 그 현장을 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그는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죄책감은 그를 장례식장으로 이끌고 거기서 소년을 만나게 된다. 소년과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소년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왠지 형이 구한 아이의 부부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뒤로도 남자는 상자 속에 산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오고, 그 때 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에는 아몬드의 사건에 대한 목격자의 이야기라는 자체가 놀라웠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에 변화가 되는 부분이 꽤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도 질문하게 된다. 선의를 당연한 줄 아는 사람들에게 과연 나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라고 말이다. 아몬드만큼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솔직히 이 책의 8명의 작품 모두를 이야기 속에 폭 빠져서 너무나 좋아했다. 그리고 몇몇의 작품들은 읽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작품 속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고 마음에 오래오래 남았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짧게라도 만나보니 오랜 시간동안의 그림움과 갈증이 조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떤 작품은 전작들을 통해 보지 못했던 다른 이면의 세계를 보여주어 더 깊숙이 작품의 여운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일까, 처음 전작을 읽었을 때보다 각각 너무나 짦은 이야기지만 <두번째 엔딩>이 더 깊숙이 파고 들고, 더 오래오래 여운을 남기며, 더 큰 감동을 가져오는 듯 하다.

[창비 사전 평가단으로 선정되어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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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백단 야옹이의 슬기로운 걱정 사전 슬기사전 1
김선희 지음, 강혜숙 그림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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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걱정과 위로는 어른들에게만 필요한 것일까. 이 책 <참견백단 야옹이의 슬기로운 걱정 사전>을 보면 우리가 아이라서 잘 알지 못하꺼라 지례 짐작했던 것들이 아이들에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이 오히려 더 예민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힘들거나 걱정스러울 때 혹은 지칠 때,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 스스로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은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어렵다. 특히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들에게 딱 맞는 조언이나 위로를 하는 것은 더 어렵다. <참견백단 야옹이의 슬기로운 걱정 사전>은 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에서 느끼는 현실적인 고민과 걱정에 대하여 꼭 필요한 공감의 이야기와 조언, 위로를 담고 있다. 시크하고 도도한 참견백단 고양이 여여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50가지의 참견은 진짜 아이들이 바로 이해가능하고 바로 적용가능한 현실적인 조언들이다. 짧고 간결한 글과 귀엽지만 유머가득한 그림으로 어른들이 전하는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라 부담없이 따라할 수 있는 이야기로 아이들이 고민과 걱정으로부터 마음을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이 책은 김보배라는아이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주 귀하고 소중한 아이라서 김보배라고 이름 지었지만 보배에겐 자기 이름조차 순 거짓말 같다. 자신이 태어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든 보배의 앞에 나타난 한마리의 고양이가 나타난다. 자신을 참견백단 고양이 여여이고, 참견이 특기라고 말하는 참견백단 고양이 여여는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야 할 생명은 없다고 말하며 고민이 뭐냐고 보배에게 묻는다. 그러자 보배의 입에서 나온 수많은 걱정들. 선생님, 친구들, 엄마, 동생... 보배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 보배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서 참견백단 야옹이 여여는 보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하지만 보배에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신나게 사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과연 신나게 사는 법은 무엇일까?

참견백단 야옹이 여여는 이 책을 통해 더 멋진 내가 되고 싶고, 세상과 잘 어울리고 싶으며, 지식과 지혜를 더 많이 쌓고 싶으며, 야무지게 살고 자신만만하게 살며 신나게 살고 싶은 아이들의 고민 50가지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준다.

이 책 속에 담긴 참견백단 야옹이 여여의 말들은 어른인 내가 봐도 좋고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 참 많다. 어쩜 이리도 시원하고 명쾌한 답을 말할까 싶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삶의 지혜나 조언, 혹은 충고들을 솔직히 아이들에게 잘 다가가지는 못한다. 어른의 말로 표현하다보니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과 함께 걱정을 하나씩 들어주면서 들려주는 참견들이라서 더더욱 아이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참견백단 야옹이의 슬기로운 걱정사전>이 시리즈로 계속 나와서 아이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면서 힐링해 주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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