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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된 아이 ㅣ 사계절 아동문고 99
남유하 지음, 황수빈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푸른 머리카락>으로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남유하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동화집이라고 한다. 총 6편의 동화가 실려 있는 이 책 속의 아이들은 제각각 마음 속에 그림자를 드리고 있다. 어쩌면 기묘하기도 하고, 어쩌면 신박하기도 하며 감동적이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이 책에 나는 폭 빠져버렸다. 물론 우리집 아이들도 함께.
남들과 똑같아 지기 위해 나의 일부를 없애고자 하는 아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교실 한가운데에서 차라리 나무가 되어 버린 아이, 원통 안에 분홍색 뇌만 남은 엄마와 함께 춤추기를 꿈꾸는 아이, 마녀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에게 불타버리는 아이, 아빠와 엄마의 불화로 아빠, 엄마의 가슴에 난 구멍을 발견하고 점점 커져가는 구멍을 감추어주고 싶어하는 아이, 가장 사랑받는 단 한 명이 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아이. 총 6편의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아이들 마음 속에 숨은 외로움과 불안, 편견,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남유하 작가는 특유의 상상력과 예민한 시선을 바탕으로 독특한 환상 동화로 만들어내었다. 차별과 혐오가 나은 참혹한 현실을 비극적이면서도 서늘하게 묘사하여 더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하며 놀랄 만큼 아름답게 이어가는 이야기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6편의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무서운 것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편견과 차별, 혐오들로 만들어지는 현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6편 모두 신박하면서도 정말 인상적인 이야기지만 그 중 제일 가슴에 콱 박혀버린 <온쪽이>와 <나무가 된 아이>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습관처럼 거울 모서리에 서서 오른쪽 반만 비춰봤다.눈 하나, 귀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나. 그제야 나도 남들처럼 보였다.
"수업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
반장이 내 옆에 지나가며 말했다. 한 다리로 바닥을 짚는 소리가 통통, 경쾌하게 울렸다. 반장은 오른쪽 반만 있는 사람, 오른사람이다. 나는 두 개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저벅저벅 두 다리로 걸어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 무리 지어 떠들던 아이들도 콩콩, 가볍게 걸어 착지하듯 자리에 앉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열일곱 명, 나를 제외한 열여섯 명의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앉아 있다. 짝이 없는 나는 항상 뒷자리에 앉는다. 그래서 내 책상은 교실 뒤편에 떠 있는 섬 같다.
p8
<온쪽이>속 세상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눈 하나, 귀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난. 반쪽만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인공 수오는 윰쌍둥이로 태어나 양쪽이 다 있는 온쪽이다. 그래서 늘 수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달리기는 잘하지만 반쪽이 아니라 온쪽이라서 결코 '한 쌍'이 될 수 없고 결혼도 할 수 없다. 그런 수오를 아무런 편견없이 그저 수오로 바라보는 사람은 오직 엄마뿐이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아빠는 수오를 특수학교에 보내길 주장하지만 엄마의 주장으로 수오는 일반학교에 다니게 된다. 하지만 수오는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했다. 어쩌다 생긴 친구마져 멀어져 버리고 혼자로 생활하는 수오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반쪽을 잘라버리는 수술을 결심한다.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게 된 수오. 정작 오른손 잡이지만 심장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왼쪽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 앞에 수오는 이상했다. 엄마 처럼 오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빠나 형처럼 왼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그것은, 슬픔이었다. '정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남들에게 비정상으로 느껴지는 내가 내게는 정상이었다. 수술을 통해 남들에게 정상으로 보이는 내가 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잘라 내고 싶지 않다. p23
다른 사람들 눈에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반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니. 수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정상으로 보일지 모르나 스스로 자신을 비정상으로 느낄 생각할 하니 수오는 너무나 슬프다. 과연 수오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자신의 반을 잘라내고 정상으로 사는 게 수오의 최선이었을까. 결론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반쪽이 세상에 온쪽인 사람이 비정상이라는 이야기의 설정이 뒷통수를 팍 때리는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수오가 겪게 되는 그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너무나 세밀하게 담고 있어서 수오 마음 속의 외로움과 슬픔이 절절하게 전해졌다. 그래서 수오가 정상을 생각할 때마다 슬펐다는 말이 자꾸 울컥하게 만들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
필순이가 나무가 됐다.2반 현오는 무당벌레가 되어 날아갔고,
3반 수아는 청설모가 됐다던데,
우리 반 필순이는 나무가 된 것이다.
p26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무가 된 아이>에서 화자인 나는 준서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필순이가 교실 한가운데에서 나무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의 기이한 변신은 오직 아이들의 눈에만 보인다. 어른들은 변신한 아이들의 존재마저 잊은 듯이 생활한다.
안 그래도 하얀 준서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연노란 빛이 돌 정도였다. 나는 가늘게 떨리는 준서의 턱을 보았다. 하지만 곧 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패거리를 보며 말했다.
"진짜 센스없네. 나무라니."
"코끼리로 변하지 않은 게 다행이잖아."
패거리 중에서도 준서와 특히 친한 도윤이가 말했다.
"차라리 코끼리면 밖으로 내보내면 되게."
은우는 준서보다 도윤이와 더 친하다.
"여러 명이 들어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지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 필순이의 발은 이미 바닥을 뚫고 단단히 뿌리를 내린 뒤였다.
p30
차라리 코끼리로 변하면 밖으로 내보내면 되지만 나무가 된 필순이는 교실에 뿌리를 내린다. 그 모습이 더욱 못마땅한 아이들은 가지를 꺾지만 나무는 핏빛 진액만 흘리면서도 무럭무럭 자라 창문과 천장을 뒤덮는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교실에는 어둡고 붉은 그림자만이 드리우게 된다.
<나무가 된 아이>에서 아이들이 나무를 훼손하는 장면은 세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 그동안 필순이가 겪었을 아픔과 외로움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렇게 필순이의 아픔과 외로움을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화자이자 관찰자의 나가 필순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필순이를 돕지 못한 슬픔이 담겨서가 아닐까.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유없는 폭력과 다른 아이들의 방관과 동조의 모습들은 아이들을 지켜야 할 존재가 아무도 없음이 안타깝게 만든다. 화자인 나는 아마 다음 폭력의 대상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저 지켜보기만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면서 작은 힘이라도 필순이를 돕고자 한 나의 행동에 필순이가 '고마워'라고 말한 것처럼 느꼈다는 마지막 부분이 외로운 아이에게 있어 자기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아이들 마음 속에 담긴 그림자들을 판타지 동화로 만들어 낸 이 책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어른들과 똑같은 감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6명의 아이들 마음속에 담긴 그 그림자들은 때로는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분노를 유발하기도 하며, 너무나 가슴 아파 안아주고 싶다가, 같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 속의 세상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앞으로 우리 어른과 아이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