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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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정하는 신경숙 작가의 신작. 창비 사전 평가단으로 선정되어 가제본판으로 만나니 더 뜻깊다. 꽤 두꺼운 두께의 이 책에 며칠동안 나는 폭 빠져 있었다. 아버지와 꽤 가까운 딸이라서 더더욱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실을 통해 비로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들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는 내내 신경숙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력과 철학, 그리고 가족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가 자꾸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 냈을 뿐이라고.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책을 넘기자 마자 나오는 이 글귀 중 '살아냈을 뿐이라고'라는 아버지의 말이 책을 읽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야 말았다. 살아냈을 뿐이라는 그 말에 왠지 아버지의 고된 인생이 담겨 있는 듯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은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J시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보러 가게 된 주인공 '나', 헌이가 5년 만에 기차에 오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딸을 잃었다. 그 이후 나는 가족과도 거리를 두고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엄마를 배웅하고 나서 울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아버지의 안위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이 겹쳐서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속의 아버지는 보통의 한국 아버지가 가진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니다. 앞선 형제들을 전염병으로 모두 잃고나서 장손이 된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사서삼경을 손수 가르쳤으며 한국전쟁에 장손이 아버지가 전쟁에 참가해 혹여라도 목숨을 잃을까봐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의 손가락을 잘라내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그 트라우마는 아버지를 괴롭혔으며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서 당신이 책임을 져야할 자식들을 보며 간혹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살아갈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셋 아들 뒤에 처음으로 태어난 딸이 너무 좋아서 가족 사진을 찍고 유독 예뻐하였고 6남매 모두를 한명 한명 사랑으로 대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의 대학 졸업 사진을 하나씩 전시해 놓고서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이 책 속의 아버지 인생의 서사는 한국 전쟁부터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서 보게 된 4.19혁명, 자식 여섯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소 값이 폭락하자 그 소를 타고 참여했던 80년대 소몰이 시위까지, 그 자체로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몇 년만에 J시에 도착하며 펼쳐진 J시의 풍경은 주인공 나를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주인공 나가 회상하는 과거의 시간 속 아버지는 그 시절의 아버지들처럼 힘든 가정형편에도 자식들이 가난을 느끼지 못하도록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 또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여느 아버지와 다른 점은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친정 아빠를 오버랩시켰다. 딸을 유독히 아끼는 모습이 너무 닮아서.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아버지가 가만가만히 말하는 말씀들에 자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하는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자다가 자꾸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예전의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에 자꾸 나는 과거를 회상하고 아버지의 서사를 깊이있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주인공의 딸 이야기. '매일 죽을 것 같아도 다른 시간이 오더라.'라는 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혀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삶 역시 고되고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가 외출한 틈에 발견하게 된 폐가 방안 상자 속의 편지들. 특히 리비아로 파견하게 된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와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이 이 작품 속에 나와 있는데, 그 시절의 장남의 무게와 또 한 명의 아버지인 큰 오빠의 이야기가 자꾸 자꾸 뇌리에 남는다.


그 눈 내리는 겨울밤,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엄마가 내놓은 구운 김에 밥을 싸서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차례로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여러번 글로 썼다. 그때그때마다 비유가 달랐겠지만 우리는 무슨 참나무 숲의 딱따구리 새끼들처럼 아버지가 싸준 김밥을 쏙쏙 받아먹었다고. 그때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김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으나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겨울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김에 싸준 밥을 받아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큰오빠가 그 글이 실린 지면을 패널로 만들어 내게도 보내주고 여기에도 가져와 작은방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아버지가 읽고는 그때 행복했냐?고 물었다.

- 예, 아버지.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 무서우셨어요? 뭐가요?

내가 의아해서 묻자 아버지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 그것이 설명이 되냐?

아버지가 말을 거두려 하자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 너그들이 먹성이 얼매나 좋으냐. 양식 걱정 없이 살 게 된 지가 얼마나 되간? 오늘 저녁밥 먹음서 내일 끼니 걱정을 하며 살었는디. 밥 지을라고 광으로 쌀 푸러 갈 때 쌀독 바닥이 보이는 때도 있었는디. 그 가슴 철렁함을 누가 알겄냐. 쌀독은 점점 바닥을 보이는디 먹성 좋은 자식 여섯이 마구 달려들어봐라, 안 무서운가......

아버지가 삼킨 말을 대신하는 동안 무거워진 생각을 털어내듯 엄마는 곧 생기를 되찾곤 했다.

- 무섭기만 했으믄 어찌 매일을 살겄냐. 무섭기도 하고 살어가는 힘이 되기도 허고......

<p194~p195>

먹성 좋은 6남매를 모두 키워내기 위해 농사짓고 소를 키우던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절절히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당신의 자식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했다는 그 말이 부모라면 다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끼니 걱정은 이제 하지 않지만 부모로 온전한 한 인간을 키워내는 일은 늘 무섭고 두렵지만 그 아이로 인한 행복과 뿌듯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아버지가 6명의 자식 한명 한명에게 남기는 말들에 나는 결국 펑펑 울고야 말았다. 당신 삶의 마지막이 오는 것을 체감한 아버지의 그 마지막 말들이 그 동안 자식들을 한명 한명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는지를 너무 잘 표현해서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아버지를 개별적인 한 명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의 늙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라는 이 책 속 큰 오빠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고 나 또한 부모가 되어서야 당신들의 마음을 그제서야 이해하고 그 시절의 고됨과 힘듦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그 어리석음이 당신들의 자식으로 우리를 살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국의 근현대사에 걸쳐 인간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그 고난과 상실을 같이 경험하고서도 그 순간순간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에 누구라도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나의 아버지를 자꾸만 생각나게 하여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온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오래 동안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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