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대기를 찾습니다 사계절 아동문고 102
이금이 지음, 김정은 그림 / 사계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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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각각 들고서 무언가를 검색하는 아이들의 모습인 인상적인 표지가 눈길을 끈다. 이 책은 이금의 작가의 신작으로 오늘날 아이들의 모습을 정말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금이 작가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인물과 가상 인터뷰하기'라는 초등학교 숙제를 보고서 이 책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저자의 이름처럼 특별한 이름을 가진 어린이라면 분명히 숙제가 난처하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때 불연듯 '차대기'라는 이름이 불쑥 떠올랐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차대기'를 쳐 보았더니 뜬금없이 국어사전이 가장 먼저 나왔는데 '자루'의 전라도 사투리라 했다. 그러자 오직 이름뿐이었던 차대기에게 그 애만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하게 된 <차대기를 찾습니다>는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똥자루' 별명을 들킬까봐 노심초사하는 아이, 하지만 대기는 윤서를 좋아하며 자존감을 회복해가고 친구들과 가족들과 부대끼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차대기네 반은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반 친구 윤종현이 SNS 실검 1위를 기록한 개그맨 윤종현의 선행을 마치 자기 일인양 떠들어 댄 게 그 시작이었다. 종현의 라이벌 손홍민도 자기가 금메달리스트라면서 자랑을 해대자 아이들은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어 자기 이름을 검색한다. 차대기는 2G폰을 사용해서 검색할 수는 없지만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유명인이 누굴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이름으로 유명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1학년때 똥자루라는 별명이 생긴 대기는 부끄럽고 창피해서 정말 조용히 살아왔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의 기억에서 자신의 별명은 잊혀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와의 만남' 시간에 누군가 "똥자루!"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 순간 대기는 좋아하는 윤서에게 들킬까봐 조바심이 났다. 윤서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기는 인터넷 검색창에 '차대기'를 적었다. 가장 먼저 사전적 의미가 떴고 기대를 품고 클릭을 했다. '차대기는 자루나 포대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대로 산다더니, 정말 차대기는 똥자루가 되어버렸다. 열심히 찾아보지만 차대기라는 이름을 가진 본받을 만한 위인이나 유명인은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고서 더 실망이 커져버린 차대기. 영원히 똥자루라는 별명에 갇혀 살 생각을 하니 힘이 쪽 빠지고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 속 같았다. 그렇게 영원히 어둠 속에 갇혀있을 것 같았지만,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밝은 새 아침이 오듯이 차대기에게도 또 다른 하루가 찾아온다. 태권도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 담장 쪽에 혼자 있는 윤서를 발견하게 된다.


윤서는 새끼 고양이를 들여다보며 음식을 챙겨주고 있었다. 윤서의 말에 의하면 지난 밤 어떤 아이가 울먹이며 고양이를 품에 안고 엄마한테 혼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알고보니, 아이는 길고양이가 가여워 집으로 데려갔는데 엄마는 키울 수 없다며 도로 놓아주는 상황이었다. 이미 두 마리의 길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인 윤서는 새끼 고양이가 걱정되어 찾아왔다면 앞으로 대기에게 같이 새끼 고양이를 돌보아주자고 말한다.


사실 대기는 어렸을 때 고양이한테 할퀴인 기억이 있어서 두려웠지만, 작고 약한 고양이를  보자 지켜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용돈으로 고양이 통조림을 사서 먹이며 윤서와 함께 극진히 새끼 고양이를 돌본다. 그러던 어느날 새끼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에게 공격을 당해서 다치고야 만다. 윤서는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기로 마음먹고, 대기는 윤서를 도와 고양이를 구조한다. 그리고 윤서와 대기는 길고양이를 공원에 놓고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아이를 위해 새끼 고양이를 잘 지내고 있다는 매시지를 적은 전단지를 만들어 붙인다.


대기와 윤서가 직접 만든 전단지를 붙이는 것을 본 어떤 누나가 내용이 귀엽고 따뜻하다며 아이들에 허락을 받고 SNS에 대기와 윤서의 이야기를 올리고, 이를 계기로 반려 동물 소식을 담는 웹진 <펫플월드>기자들이 윤서와 대기를 취재하러 학교에 온다. 대기와 윤서는 그렇게 인터뷰를 하게 되고 기자들은 동영상 인터뷰를 지냉해 유튜브에 올리자고 말한다. 이 제안에 윤서는 거절하지만 대기는 수락을 한다.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 대기는 윤서와 함께 웹진에 기사도 나고, 유튜브에도 나오게 된다. 그리고 윤서와 대기는 '이달의 착한 어린이 상'도 받는다. 그렇게 차대기로 유명해지지만 여전히 대기를 똥자루라고 부르 애들은 있다. 게다가 윤서와 대기를 커플이라고 아이들이 놀리는 탓에 둘은 어색한 사이가 되버리고 그렇게 5학년은 끝나고 만다. 그렇게 해피엔딩이 아닌 결말로 이야기가 끝나면 다소 허무하겠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다. 6학년이 되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개학은 연기되고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다. 개학을 두번 연기된 다음에서야 온라인 수업이 시작된다. 바로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지금의 우리의 모습들이 이 책 속에 나온다.


이 책은 정말 현실의 아이들이 모습을 정말 잘 반영하고 있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현실의 답답함을 표현함으로써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대기를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속마음을 정말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로 그려내어 이야기 속에 폭 빠지게 만든다. 그렇게 이 책 속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은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러한 비밀은 제각각 아마 정말 다양할 것이다. 친구들에게 똥자루라는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은 차대기와 유명한 유튜버 언니 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이혼이 들어날까봐 걱정하는 강윤서은 자신만의 비밀을 가진 아이들이다. 대기는 자신의 별명으로 불려지지 않기 위해서 유명해져 하고, 윤서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조용히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을 위해서 용기를 내어 좋고 싫다는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내비친다. 타인이 정한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이를 표현하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기와 윤서는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이며 나다운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또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야 당당해질 수 있고, 더욱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대기와 윤서의 모습들에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은 비밀로 인해 상처받았던 마음을 위로 받기도 하고, 상처를 내딛고 한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으며, 그리고 나다운 것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차대기를 찾습니다>는 아이들에게 따스한 위로와 든든한 용기를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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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웃게 하는 것들만 곁에 두고 싶다 - 오늘의 행복을 붙잡는 나만의 기억법
마담롤리나 지음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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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하고 사랑스러움 표지의 그림과 제목의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책은 따뜻한 그림으로 위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마담롤리나의 첫 에세이다.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미워했던 저자가 스스로를 갉아 먹는 태도와 자신을 못살게 굴었던 기억들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웃게 만드는 것들을 수집하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하루 행복했던, 혹은 자신을 웃게 만들었던 것들을 자신만의 기억법으로 담아낸다. 이 책은 일상을 좋은 날로 만드는 저자의 다양한 다짐을 담고 있기에 바쁘고 똑같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으로 다정한 휴식을 선사한다.

과거를 돌아볼 때면 후회되거나 부끄러운 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분명 좋았던 일도 많았을 텐데 내 기억 체계는 짓궂게도 잊어버리고 싶은 일들만 남겨 둔다. 여러 번 봤던 영화를 더 구체적으로 떠올리듯이 안 좋은 일도 곱씹을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좋았던 순간을 되도록 많이 골라 보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저지른 실수 대신 들뜬 분위기와 무해하고 재미있었던 농담, 부드러운 표정, 맛있었던 음식 같은 것을 여러 번 떠올리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 살뜰하게 모은 기억들이 먼 훗날 나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p30

저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이 실수를 하거나, 안 좋았던 기억을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기억들이 응축되어 모여 트라우마로 선명한 자국을 남기기도 하고 말이다. 여러 번 봤던 영화를 더 구체적으로 떠올리듯이 안 좋은 일들을 곱씹는 것들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좋았던 순간을 많이 골라서 기억해야 한다는 말도 꼭 기억하고 싶다. 저자처럼 일상을 살아가며 좋았던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모으는 일을 하고 그 기억들을 떠올리다 보면 정말 지금보다는 더 행복한 나가 될 것 같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하루 중에는 "금세 잊고 말았지만 나를 미소 짓게 했던, 너무 일상적이라서 지나쳐버린 확실한 행복의 장면"들이 존재한다. 말이 잘 통하는 친구와 수다, 더위를 한 숨에 잊게 만드는 차가운 커피, 기대치 않았던 책 속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 나뭇잎 사이로 비춰지는 햇살,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등등 찾아보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 순간들은 존재한다. 불행의 순간도 행복의 순간도 모두 흘러가기 마련이니, 이왕이면 행복의 순간을 이 책의 저자처럼 단단히 붙잡아보면 어떨까 싶다. 그래서 일까. 이 책에 담긴 저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그 순간들을 담아낸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미소를 짓게 된다. 행복을 붙잡은 기억과 소소한 기쁨들을 찾는 태도는 먼 훗날 나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나의 하루에 보다 활기를 더 할 듯 싶다.

자신을 잘 살피고 보듬는 것은 하루하루를 버틸 힘을 기르는 일이다. 힘에 부쳐서 내가 나를 방관하고 내버려두면 잠깐은 편하긴 해도, 상황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들고 결국은 자학으로 빠지게 된다. 그때의 감각은 다수의 경험으로 뼈에 새겨져 있다..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동안 온몸으로 부딪히며 겪어온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 훌륭한 데이터가 되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스로를 돕는 작은 행동이 모이면 갑자기 커다란 구덩이에 빠지더라도 헤어 나올 수 잇다. 결국 나는 내가 돌보아야 한다.

p156

나자신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돌보아야 한다. 매일 운동하기, 식사 제대로 챙겨 먹기, 나를 기쁘게 하는 행동 하나씩 하기 등등 아주 사소한 습관과도 같은 행동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나는 어느새 단단해져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보살피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귀기울이고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나의 상태가 어떠한지, 나의 감정은 어떠한지를 잘 알아야 나에 대한 제대로된 보살핌이 가능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그 누구가 아닌 나의 목소리에, 나의 상태에, 나의 감정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살아야 할 듯하다. 다른 식구들 챙기느라 늘 내 것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버리는 나는 이점을 제일 먼저 기억해야 될 듯 하다.


10년 전 또는 20년 전의 나는 지금보다 미숙하고 서툴렀으며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다. 나이를 먹어 좋은 것이 있다면 적어도 젊은 시절보다는 노련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만약 크게 아프지 않고 노인이 된다면 일상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마음의 흠결들을 솜씨 좋게 보수할 수 있기를. 그래서 지금의 나보다 여러보로 더 나은 할머니가 되길 바란다.

늙어 가는 일이 쇠약해지는 일만이 아닌 '미흡한 나'를 '만족스러운 나'로 완성해 나가는 여정이라면 노화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p284

나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게 좋다. 어린 시절의 나보다, 작년의 나보다, 지난 달의 나보다, 지난 주의 나보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가 더 좋다. 불안하고 막막하며 무엇이든 서툴고 미흡하던 나 자신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좀 더 노련하며 좀 더 확신이 있어 가는 게 참 좋다. 그렇기에 나이를 먹는 일, 노화 또한 두렵지는 않다. 다만 제대로 나이 먹기를, 나이가 무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늘 깨어있도록 노력하자.


이 책은 우리에게 오늘의 행복을 붙잡는 나만의 기억법을 가지라는 말을 하고 있다. 저자가 따스하고 밝은 그림들로 오늘의 행복과 기쁨을 기억한 것처럼 나만의 기억법으로 너무나 작은 행복일지라도, 너무나 짧은 순간의 기쁨이라 할지라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도해보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나를 웃게 하는 것들만 곁에 두도'서 기쁨의 순간과 행복의 순간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것을 습관화 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좀 더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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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은재 사계절 아동문고 100
강경수 외 지음, 모예진 그림 / 사계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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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이후 평범하고 매일 똑같았던 일상에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다. 전국의 아이들이 새학기가 되어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입학과 개학이 미뤄졌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체온과 개인정보 체크를 해야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입장이 가능해졌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모임은 무기한으로 연기되거나 인원을 제한하여 모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날보다 온라인으로 수업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렇게 코로나 19로 인해 변화된 일상을 1년을 지나 2년째 맞이하여 살아가고 있다. 전세계가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달라진 일상에서 힘들어하고 있는 요즘, 우리 아이들은 어떠할까? 친구들과 열심히 뛰어 놀던 아이들의 대부분은 집에서 머물었다.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의 변화가 너무 커서 우리는 매일 똑같아서 지루하였던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사계절아동문고 100권과 101권을 준비하며, 어린이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님들께 물었습니다.

'지금, 오늘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사람, 어떤 시간, 어떤 시공간이 자신을 이전과 다른 '나'로 만드는 계기가 될까요?'

그에 대한 응답으로 사계절아동문고 100권과 101권을 내놓았습니다. 이 두 권에 모인 열세 편의 동화를 통해 ,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내일을 가늠해 보면 좋겠습니다.

p2~p3

 사계절아동문고 100권을 기념하여 두 권의 작품집 <정의로운 은재>와 <다이너마이트>이 발간되었다. 두 권의 책에는 총 13명의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바라본, 어린이의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순간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것으로는 사건, 공간,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존재들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지금 전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코로나 19가 아닐까 싶다. 사계절 출판사는 팬데믹의 한 가운데에서 오늘날 어린이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이 <정의로운 은재>와 <다이터마이트>에 실린 작품들을 통해 답을 하고 있다.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공감과 위로의 메세지를 보낸다.


 <정의로운 은재>는 이 책의 표제작이자 제일 먼저 수록된 작품으로 하루 세 번, 나쁜 아이들에게 투명 양동이로 물을 끼얹을 수 있는 모임 '정의의 양동이' 회원이 된 은재와 승연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상에 착하고 좋은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내 눈 앞에서 저건 아닌데 싶은 행위를 한다고 해서 나에게 정의를 어긴 사람에게 벌을 내릴 만큼 힘이 있거나 신비로운 능력이 있지 않는 한, 내 눈 앞에서 나쁜 짓을 하거나 누군가를 괴롭혀도 말로써 그러지 말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이 작품 속 은재도 마찬가지다.


 어느 쉬는 시간 아이 둘이 몸싸움을 하고 아주 심한 욕을 주고 받았다. 은재는 그냥 무시하고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부반장인 은재가 아이들을 말리지 않았다고 혼이 났다. 자기보다 덩치도 훨씬 큰 아이들을 무슨 수로 말릴 건지 답답한 은재에게 은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태명 언니가 양동이 모임의 가입을 권유한다. 양동이 모임은 일명 정의의 양동이로 하루 세번, 나쁜 짓을 하는 아이에게 투명 양동이로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남을 밀치고 위협하는 아이, 악담을 하는 아이, 시비 거는 아이... 남을 괴롭히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지만 은재는 나쁜 아이들로 정의를 내리고 그 아이들을 단호하게 응징한다. 그런 은재가 친구의 옷차림에 대해 진심으로 '충고'를 한 순간, 정의의 양동이는 은재를 향한다. <정의로운 은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의란 과연 무엇인지를 묻는다.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과 외모를 평가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양동이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해 보지도 않은 은재처럼 스스로 자신만이 정의롭다고 자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다. 은재가 투명 양동이를 맞고서야 정의의 양동이가 불공평하다고 느낀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자부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이 작품은 묻는다.


 그리고 옛이야기를 어린이의 현실에 절묘하게 투영시킨 <그날 밤, 홍이와 길동이>. 선녀의 딸인 홍이는 함께 하늘 나라로 가자는 엄마의 제안을 마다하고 친구 길동이를 찾아간다. 그런데 길동이 아버지는 툭하면 길동이를 구박하고 이번에는 광에 가두었다고 한다. 홍이와 선녀 엄마가 홍이를 보호주라고 하여 홍이 곁에 머무는 잔소리 쟁이 사슴과 떡을 너무나 좋아하는 호랑이는 과연 길동이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엄마를 따라 하늘 나라로 가지 않고 홀로 남은 홍이와 사슴, 호랑이의 도움으로 과연 길동이는 아버지의 구박과 횡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까.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


황선미의 작가의 <골목이 열리는 순간>은 주인공 리나가 두발로 걷는 고양이와 마주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친구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리나는 그 마법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가 생기길 바라게 된다.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에게 왜 이야기가 필요한지를 너무나 매력적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과연 리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만 머물러야 하는 현실을 너무 잘 녹여낸 전성현 작가의 <살아있는 맛>.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아이들은 학교도 놀이터도 갈 수 없게 되었다. TV에서는 바이러스의 숙주가 어떤 동물인지 추측하고, 온라인 수업에서는 식용 동물들은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인터뷰가 나왔다. 주인공 민재는 형을 찾으러 나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파트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층층이 갇힌 공간에 갇혀 있는 사람들 모습이 사육장의 동물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보이다. 사람들이 동물들을 우리에 가두니 거꾸로 동물들이 사람들을 집에 가둔 게 아닐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장년층과 노년층의 갈등을 편견없는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야기, 최나미 작가의 <손톱 끝만큼의 이해>. 늘 투닥거리는 아빠와 할머니는 할머니가 나라를 위해 집회에 나가면서 더욱 나빠졌다. 그러다 할머니가 집회에 나가서 다치고 돌아오자, 아빠는 할머니 친구분들께 따지겠다고 집을 나간다.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아빠와 할머니 사이에서 주인공 주홍은 너무 답답하다. 이해를 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어느 누구도 주홍을 도와주지 않는다. 손톱 끝만큼도 서로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집에서 주홍은 더이상 애쓰고 싶어지지 않는다. 편견없는 아이의 시선에 서로를 이해하기는 커녕 자신의 의견만 말하고 날을 세우는 어른인 게 부끄러워진다.


마지막은 어느날 좀비가 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강경수 작가의 <바이, 바이>. 아침에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던 나는 어느 순간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매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다 강아지 한마리와 친구가 되지만, 금세 이 강아지가 왜 자신의 곁에 있는 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말과 행동은 점점 더 느려지고, 강렬한 배고픔만이 느껴져서 단 하나의 친구인 강아지마져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나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좀비가 된 소년이 다시는 인간이 될 수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소년이 지켜주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신 분은 책을 통해서 확인해 보시길.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강경수 작가 작품 답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책에 실린 6편의 작품 각각은 우리가 익숙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정의는 무엇인지, 새로운 세계로 떠날 용기가 있는지, 인간이 동물을 가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으로 우리가 가두어진 것은 아닌지, 좀비가 되어서라도 끝까지 지키고 싶은 무엇이 있는지.. 등등을 묻는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익숙한 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계로 떠날 용기를 주며 새롭게 다가올 미래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메세지를 준다. 사계절아동문고 100권을 기념하여 각각의 세계관이 뚜렷한 6명의 작가들이 이 책을 통해 전하는 그 공감 가득한 위로의 이야기들이 그래서 더 가깝게 다가오는 듯하다.

* 사계절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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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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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에 아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 학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곳이 아닐까 싶다. 매일 똑같은 교실, 똑같은 책상과 의자에서 수업을 받았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작년에는 한동안 학교에 가지조차 못했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여 작년처럼 학교에 아예 자지조차 못하는 일은 없다. 이제는 내 방과 교실이 모두 수업을 받는 장소가 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집이 하나의 학교가 되기도 한다.

<일주일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매일 매일 다른 학교에 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학교와는 너무나 다른 학교들이 존재하는 <일주일의 학교>. 이 책을 통해 날마다 다른 학교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나하였다.

이 책의 학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월요일의 학교에는 언제나 비가 오기 때문에 우선이 필수다. 운동장은 늘 반쯤 빗물에 잠겨 있어서 운동장에서 체육을 할 수는 없지만, 옥상 정원에서 구름을 만져 볼 수 있다. 그리고 화요일의 학교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체육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요일에 학교에 갈 때에는 반드시 운동화를 신고가야 한다. 나무 벽을 기어오르고 평형대를 통과해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고,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단 그 앞에까지 구르기를 해야 하며 정글짐을 통과해야지만 급식실에 갈 수 있다. 수요일의 학교에서는 잠긴 것들을 열어야한다. 그래서 수요일의 학교를 갈때는 반드시 열쇠 주머니를 들고 가야한다. 교문부터 교실 문, 책상 서랍에 급식 도시락까지 모두 열쇠로 열어야지 들어갈 수 있고, 사용가능하다. 목요일의 학교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등교하는 밤의 학교다. 학교의 위치는 가끔 바뀌지만 가는 시간만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금요일의 학교는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지금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금요일의 학교는 아이들이 직접 지어야 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다른 학교에 가는 '나'는 어느날 불쑥 나타난 전학생에게서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아이는 이제까지 매일 똑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지겨운 학교가 있었다니! 이때부터 주인공 '나'의 학교이야기가 시작된다. 언제나 비가 오는 월요일 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은 날 일어난 소동, 화요일의 학교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벌어진 소동에서 수요일의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만난 일, 한밤중에 등교하는 목요일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신비한 일에 직접 만들어야 하는 금요일 학교에서 지붕이 날아간 사건까지 말이다. 학교에 그리 관심도 기대도 없고, 그저 엄마가 가라고 해서, 결석은 절대로 안된다고 해서 학교에 전학온 아이는 나의 학교 이야기에 점점 빠져든다.


매일 비가 내리는 월요일의 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은 날 아이들은 옥상에 올라가서 구름을 만지게 된다. 구름을 실제로 만지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은 해보지 않았을까. 이 책의 아이들이 저마다 구름을 만지고서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집 2호는 완전 이야기에 폭 빠져서 자신도 구름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며 아주 신나서 말했다. 2호가 차가운 액체 괴물과 같다는 의견을 마구 제시하자, 중 2인 1호는 아마 구름을 만지면 사람의 체온으로 인해 바로 녹을 꺼라는 나름 과학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게 구름에 대해 한참의 논쟁을 하게 만든 월요일의 학교 이야기. 이 책은 이렇게 각 학교별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을 소재로 아이들과 무궁한 상상의 이야기들을 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일주일의 학교>에 등장하는 학교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 학교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 폭 빠지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학교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 학교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각 학교가 지닌 매력에 폭 빠져서 책을 읽는 아이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게 만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에서 아이들이 펼치는 사건과 사고들의 이야기와 각 학교별 비밀이 궁금하신 분들은 꼭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추천해본다.

이 책의 일주일의 학교는 특별하게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장소는 매일 바뀌지만 현실에서처럼 <일주일의 학교> 이야기 속 아이들은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하고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어른들의 모습은 현실과는 달리 조금 특별하다. 책 속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누군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과 학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를 듣고, 존중하며 기다려준다. 그리고 가르치지만 평가를 하지 않는다. 우리 어른의 역할은 바로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에 쳐하게 되면 미리 알려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실수를 하였을 경우 그 실수를 만회하거나 엉망이 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역할이 아닌가 싶다.

현실의 학교는 너무나 획일화된 곳으로 여겨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발휘하거나 상상력을 마구 펼치기에는 힘든 곳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일주일의 학교는 우리가 학교에 대하여 가졌던 고정관념들을 깨트린 곳으로 날마다 다른 학교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이야기 속 아이들도 자신과 다를바가 없음에 안심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야기 속 아이들이 실패에 주눅들지 않고 다시 해야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도전하는 모습에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용기를 얻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학교라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친구들이, 선생님이, 그리고 내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메세지를 아이들이 읽어내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있다는 것 말이다. 매일 다른 학교를 꿈꿔보고, 그 안에서 벌어질 사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난 <일주일의 학교>, 아마 많은 아이들이 아주 많이 좋아하는 책이 될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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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아르테 오리지널 9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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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의 카르테>는 꽤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으로 지방 소도시의 작은 병원을 배경으로 따뜻한 인간애의 기적을 보여주는 장편 소설이다. 도쿄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이 시리즈는 현직 의사가 그리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온 듯하다.


'24시간 365일 진료'를 내세운 혼조병원에서 근무하던 구히하라 이치토는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시나노대학 의학부에 들어간다. 소화기내과의로서 근무하며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도 진행해야 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전히 그에게는 환자가 끊이지 않았고, 환자의 수보다 의사의 수가 더 많은 대학병원에서도 변함없이 의사로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병원이란 참으로 신기한 공간이다.

일본 의료에서 기술과 지식, 인사의 정점에 군림하는 이 거대한 조직은 실로 기괴한 양상을 띠고 있어 갖가지 의미로 일종의 미궁을 형성한다.

일단 환자수보다 의사 수가 더 많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의료 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수, 준교수, 강사에 조교, 외국인, 대학원생, 레지던트, 비상근에 아르바이트까지. 직함만 해도 무수히 많은 위치에 저마다 대량의 의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중략)

한편 이렇게나 거대한 조직에 무수한 의사가 있으니 검사나 치료가 물 흐르듯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의사들은 오만 가지 상황에 휘둘려 부질없이 병원 안을 우왕좌왕하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과 도리와 명분과 긍지 따위가 그물코처럼 둘러쳐져 있고 거기에 얽매인 의사들은 매일같이 한숨과 욕설을 퍼부으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난폭한 초석 위에 부조리와 불합리와 모순이라는 세 개의 기둥을 세우고 권위라는 커다란 지붕을 얹은 곳이 대학병원이다. 애초에 기초도 기둥도 뒤틀렸는데 지붕만 유별나게 거대하니 곳곳이 비뚤어져 그야말로 일그러진 구조물이 되어버렸다.

- p35~p36

 제4내과의 3팀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치토는 정의감에 불타는 후배 의사들에게 공감하며너도 모순투성이인 대학병원이라는 조직에 나름 순응하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나노 대학병원에는 여러 종류의 의사가 존재한다. 사고방식이나 삶에 대한 태도, 가치관이 전혀 다른 의사들이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곳이기에 서로 간의 충돌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그러진 구조물, 권위의 틀이 견고한 대학병원이지만 이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각각의 사연으로 하루를 살아내며,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자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이치토는 의사라는 중압감이 넘치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의사라면 환자를 제일 중시여겨야 한다는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다.


"최선을 다해 환자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게 없어. 하지만 잘못되지 않은 것이 통하지 않는 세계가 확실히 있지."

 p87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제아무리 모순투성이인 대학병원이라 할 지라도 모든 가치의 중심에는 환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앞에 29세의 췌장암 환자인 후타쓰기 씨가 나타난다. 그녀는 췌장암 환자이기도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며 9살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녀는 원래 외과에서 치료받았지만 외과 교수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수술은 불가능 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서 구리하라 이치토에게 진료를 받기를 요청한다. 알고보니 구리하라 이치토가 혼조병원에 근무할 때 그녀의 아버지를 치료해 준 적이 있었고, 그녀는 그 때 구리하라 이치토가 좋은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의 주치의가 된 구리하라 이치토. 29세의 췌장암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힘겨운데, 그녀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환자를 중시하는 구리하라 이치토와 절차와 권위를 중시하는 대학병원의 여러 의사와 제도에 충돌이 자꾸 생기게 된다. 과연 구리하라 이치토는 어떻게 그 충돌들을 해결해갈까.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장담컨대 구리하라 이치토가 충돌들을 하나하나 처리해가는 과정은 꽤 감동적일 것이다.


 후타쓰기가 골수 억제 부작용이 나타나 딸인 리사는 엄마의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머물다가 구리하라 이치토와 잠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 때 리사는 구리하라 이치토에게 엄마가 나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9살인 아이의 눈에도 엄마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리사에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그 약속으로 리사는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두렵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예상처럼 후타쓰기의 치료는 순탄치 않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의 구리하라 이치토의 태도는 눈에 띌 정도로 감동적이다. 환자의 중심에서 생각하고, 그의 가족들이 더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의 태도에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대학병원에서 꼭 지켜야 할 절차와 규칙에 위배될 지라도 환자 중심에서 환자를 위해 그 절차와 규칙을 조금 벗어나 행동하는 구리하라 이치토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환자 중심 철학에 꽤 신뢰가 갔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꺼라는 것도 알고, 환자가 머지않아 죽을 꺼라는 것도 알지만 매순간 환자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울컥하면서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는 <신의 카르테>가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1~3권은 읽지 않았다. 구리하라 이치토의 그 전 이야기들을 모르지만 이 책에서의 그의 이야기만으로 나는 팬이 되고야 말았다. 의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모든 경우의 수를 환자에게 이야기하여 의사에게 책임이 되도록 덜 오도록 말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모든 환자를 처치함에 있어 생명을 다룬다는 중압감에 책임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지면 의사들이 너무 힘들다는 것은 알기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구나 싶어서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구리하라 이치토와 같은 의사가 존재한다면 나와 나의 가족이 아플 때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그가 이 책 내내 이야기하는 '환자 중심'이 더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남들이 뭐라 하든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는 구리하라 이치토의 이야기가 완전히 몰입하여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감동하고 또 감동하고, 구리하라 이치토의 왕팬이 되어버렸다.


 24시간 365일을 쉬는 시간 없이 돌아가야 하는 병원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각 에피소드별 주제와 소재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안에 각각의 인생이 담겨 있어서 훈훈하고 따스함이 가득하다. 그 따스함은 읽는 이에게도 진심으로 전해져 읽고 나서도 긴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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