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의 카르테>는 꽤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으로 지방 소도시의 작은 병원을 배경으로 따뜻한 인간애의 기적을 보여주는 장편 소설이다. 도쿄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이 시리즈는 현직 의사가 그리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온 듯하다.


'24시간 365일 진료'를 내세운 혼조병원에서 근무하던 구히하라 이치토는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시나노대학 의학부에 들어간다. 소화기내과의로서 근무하며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도 진행해야 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전히 그에게는 환자가 끊이지 않았고, 환자의 수보다 의사의 수가 더 많은 대학병원에서도 변함없이 의사로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병원이란 참으로 신기한 공간이다.

일본 의료에서 기술과 지식, 인사의 정점에 군림하는 이 거대한 조직은 실로 기괴한 양상을 띠고 있어 갖가지 의미로 일종의 미궁을 형성한다.

일단 환자수보다 의사 수가 더 많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의료 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수, 준교수, 강사에 조교, 외국인, 대학원생, 레지던트, 비상근에 아르바이트까지. 직함만 해도 무수히 많은 위치에 저마다 대량의 의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중략)

한편 이렇게나 거대한 조직에 무수한 의사가 있으니 검사나 치료가 물 흐르듯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의사들은 오만 가지 상황에 휘둘려 부질없이 병원 안을 우왕좌왕하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과 도리와 명분과 긍지 따위가 그물코처럼 둘러쳐져 있고 거기에 얽매인 의사들은 매일같이 한숨과 욕설을 퍼부으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난폭한 초석 위에 부조리와 불합리와 모순이라는 세 개의 기둥을 세우고 권위라는 커다란 지붕을 얹은 곳이 대학병원이다. 애초에 기초도 기둥도 뒤틀렸는데 지붕만 유별나게 거대하니 곳곳이 비뚤어져 그야말로 일그러진 구조물이 되어버렸다.

- p35~p36

 제4내과의 3팀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치토는 정의감에 불타는 후배 의사들에게 공감하며너도 모순투성이인 대학병원이라는 조직에 나름 순응하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나노 대학병원에는 여러 종류의 의사가 존재한다. 사고방식이나 삶에 대한 태도, 가치관이 전혀 다른 의사들이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곳이기에 서로 간의 충돌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그러진 구조물, 권위의 틀이 견고한 대학병원이지만 이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각각의 사연으로 하루를 살아내며,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자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이치토는 의사라는 중압감이 넘치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의사라면 환자를 제일 중시여겨야 한다는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다.


"최선을 다해 환자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게 없어. 하지만 잘못되지 않은 것이 통하지 않는 세계가 확실히 있지."

 p87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제아무리 모순투성이인 대학병원이라 할 지라도 모든 가치의 중심에는 환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앞에 29세의 췌장암 환자인 후타쓰기 씨가 나타난다. 그녀는 췌장암 환자이기도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며 9살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녀는 원래 외과에서 치료받았지만 외과 교수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수술은 불가능 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서 구리하라 이치토에게 진료를 받기를 요청한다. 알고보니 구리하라 이치토가 혼조병원에 근무할 때 그녀의 아버지를 치료해 준 적이 있었고, 그녀는 그 때 구리하라 이치토가 좋은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의 주치의가 된 구리하라 이치토. 29세의 췌장암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힘겨운데, 그녀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환자를 중시하는 구리하라 이치토와 절차와 권위를 중시하는 대학병원의 여러 의사와 제도에 충돌이 자꾸 생기게 된다. 과연 구리하라 이치토는 어떻게 그 충돌들을 해결해갈까.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장담컨대 구리하라 이치토가 충돌들을 하나하나 처리해가는 과정은 꽤 감동적일 것이다.


 후타쓰기가 골수 억제 부작용이 나타나 딸인 리사는 엄마의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머물다가 구리하라 이치토와 잠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 때 리사는 구리하라 이치토에게 엄마가 나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9살인 아이의 눈에도 엄마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리사에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그 약속으로 리사는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두렵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예상처럼 후타쓰기의 치료는 순탄치 않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의 구리하라 이치토의 태도는 눈에 띌 정도로 감동적이다. 환자의 중심에서 생각하고, 그의 가족들이 더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의 태도에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대학병원에서 꼭 지켜야 할 절차와 규칙에 위배될 지라도 환자 중심에서 환자를 위해 그 절차와 규칙을 조금 벗어나 행동하는 구리하라 이치토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환자 중심 철학에 꽤 신뢰가 갔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꺼라는 것도 알고, 환자가 머지않아 죽을 꺼라는 것도 알지만 매순간 환자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울컥하면서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는 <신의 카르테>가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1~3권은 읽지 않았다. 구리하라 이치토의 그 전 이야기들을 모르지만 이 책에서의 그의 이야기만으로 나는 팬이 되고야 말았다. 의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모든 경우의 수를 환자에게 이야기하여 의사에게 책임이 되도록 덜 오도록 말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모든 환자를 처치함에 있어 생명을 다룬다는 중압감에 책임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지면 의사들이 너무 힘들다는 것은 알기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구나 싶어서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구리하라 이치토와 같은 의사가 존재한다면 나와 나의 가족이 아플 때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그가 이 책 내내 이야기하는 '환자 중심'이 더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남들이 뭐라 하든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는 구리하라 이치토의 이야기가 완전히 몰입하여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감동하고 또 감동하고, 구리하라 이치토의 왕팬이 되어버렸다.


 24시간 365일을 쉬는 시간 없이 돌아가야 하는 병원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각 에피소드별 주제와 소재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안에 각각의 인생이 담겨 있어서 훈훈하고 따스함이 가득하다. 그 따스함은 읽는 이에게도 진심으로 전해져 읽고 나서도 긴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