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팔도 지리 자랑
조지욱 지음, 염예슬 그림 / 사계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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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직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이 쓴 우리나라 남북한 곳곳을 한눈에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하는 지리 지도책이다. 우리나라 '전국'라고 해서 대한민국만 담은 것이 아니라 남북한 곳곳을 통틀어 담고 있다는 게 더 의미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먼저 북한의 함경북도부터 시작하여 9개의 도와 3개의 특별시와 직할시에 대한 정보를 먼저 담고 있고 그 다음 우리나라의 경기도에서 시작하여 9개의 도와 8개의 특별시, 광역시, 특별자치시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에는 남북한을 통틀어 우리나라 시도별 29개의 지도와 500개 가까이 되는 지역의 아이콘, 57장의 사진으로 각 지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마치 이 책 한 권을 통해 우리나라 곳곳을 여행을 간 것처럼 시각자료들은 쉽고 재미있게 우리나라 곳곳의 지리와 문화, 역사 등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한다.


 북쪽 지방에서 제일 처음 실린 함경북도, 중고생 시절 지리에서 배우고선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하다. 아마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함경북도라는 곳에 대해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지도 사진 한 장으로 함경북도에서 어느 곳이 유명한 지를 한눈에 알 수 있으며 유명한 곳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있어서 더 좋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함경북도가 우리나라 지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 지와 면적, 인구, 인구 밀도와 같은 지리 정보를 함께 실어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함경북도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데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함경북도의 날씨 정보다. 함경북도는 춥고, 안개가 자주 끼며 강수량이 다른 곳에 비해 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함경북도의 유명한 음식, 명태식해에 대한 설명도 실려 있다. 명태는 17세기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태'씨 어부가 처음 잡은 물고기라고 해서 '명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예부터 함경도 부근의 동해에서 명태가 많이 잡혔는데 함경도에서는 명태로 식해를 담가 먹는다고 한다. 생선에 약간의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음식이 바로 식해라는데, 그 맛이 어떠할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함경북도에 대한 지리 정보와 함께 함경북도의 자랑인 김책제철연합기업소에 대한 설명도 함께 실려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미지의 땅인 함경북도에 대해 이렇게 쉽고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참 좋다. 이 책을 통해 북한 곳곳의 지리 정보를 습득하게 되는 것도 참 유익할 듯 싶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 특별시에 대하여 나온 부분을 보면서 아이들과 가본 곳을 집어보고 그 곳에서의 추억을 되살려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 좋았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서울 곳곳의 추억들을 잘 기억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던 그 곳에서의 사진과 함께 보니 더더욱 좋았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전에 대하여 보면서 우리가 가본 곳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앞으로 가볼 곳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대전에 대하여 알지 못했던 정보들도 알 수 있어 아이들과 하나하나 집어가면서 열심히 봤다.

대전의 지형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만화로 표현하여 나타내어 주니, 아이들이 정말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대전이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대전시 괴정동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적은 한국식 청동 단검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라니 다시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전은 도시 전체 면적의 59퍼센트가 개발 제한 구역을 되어 있고, 전국에서 최초로 자연환경 보존 조례를 제정하고 대기, 수질, 소음 등에 대한 환경 기준을 설정하는 등 친환경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니, 괜시리 내가 대전에 살고 있는게 좋아지게 만들었다.


 보통 지리라고 하면 지루하고 어려우며 무조건 외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지난 나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 책 속 전국 팔도 지리 정보는 재미와 흥미로움으로 가득차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으며 가시적으로 바로 지리에 대하여 알 수 있도록 사진과 그림, 만화로 표현하였기 때문인 듯 싶다. 게다가 간단하면서도 특징을 잘 살린 아이콘들은 지역을 한눈에 이해하도록 이끌어준다. 구지 외우려고 하지 않고 이 책을 자주 보는 것 만으로도 우리나라 지리 정보 박사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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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
설재인 지음 / 밝은세상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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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넘겼던 표지 속 그림이 책을 다 읽고 나니 한참 눈길이 머물게 된다. 책의 내용을 이토록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니. 이 책을 읽기 전에 표지의 그림만 보고서 무슨 내용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너와 막걸리를 마신다면>은 어느 날 도착한 평행세계에서 '남자'로 태어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평행세계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나 싶다. 지금의 나와는 다른 조건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상상해본적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이 책의 이야기에 폭 빠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뻔한 설정처럼 보이는 성별이 다른 평행세계에서 삶을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 고발하며, 똑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란 여자 엄주영과 남자 엄주영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환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주인공 주영은 엄마와 함께 것대산 끝자락에 위치한 잘 나가는 막걸리 집 옆의 가게에 산행을 마치고 배를 채우고자 들어간다. 청국장과 함께 막걸리까지 한잔 걸치고 난 뒤 화장실로 향한 주영. 그런데 다시 돌아온 주영의 앞에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엄마의 맞은편,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에 왠 남자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놀란 주영과는 달리 엄마는 너무나 태연한 얼굴이다. 주영은 눈치껏 옆자리에 앉아서 그들을 곁눈질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자리에 앉아 청국장을 먹던 남자는 엄마에게 묻는다. "아빠는. 오고 있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때 놀랍게도 다부진 체구, 까무잡잡한 피부, M자형 탈모 그리고 숯검정 눈썹의 아버지 엄용민 씨가 들어온다. 대체 어찌된 일일까. 왜 주영의 엄마도 아빠도 주용을 모른 척하며 엄마의 앞에 앉아 있는 저 남자는 누구란 말인가. 엄마는 남자를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갑자기 아빠 엄용민씨가 막걸리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쇠젓가락을 들어 테이블을 내리치며 "워닝" 이라고 말하다. 워닝이란 말은 아빠 엄용민씨가 화가 나면 언제나 모녀에게 보내던 그만의 경고였다. 비웨어(beware), 커션(caution), 워닝(warning). 그 워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급하게 마신 술의 취기 때문이었을까. 주영은 잠시 잃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니 옆 테이블은 비어있었다. 그런데 테이블 밑에 무언가가 빼꼼 보인다. 남성용 구찌 반지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서 주민 등록증을 꺼냈는데, 거기에는 아까 엄마가 아들이라도 불렀던 남자의 얼굴이 떡하니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적힌 이름은 바로 '엄주영'. 그것은 바로 주영이 33년간 써온 자신의 이름이었다.


같은 이름, 같은 주민등록번호, 같은 엄마와 아빠라니. 여기까지 생각에 미치자 주영은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혹시 아까 등산할 때 엄마에게 했던 말이 씨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 것일까. 어찌어찌 막걸리 집에서 나왔지만 이제 어디로 가야할지 주영은 복잡한 마음을 안고 방황하다 우선 지갑을 돌려 준다는 핑게로 남자 엄주영과 다시 마주하기 위해 용암지구대로 향한다 그리도 또 한번 머리를 부여잡게 되는데, 거기에는 '최은빈'이 있었다. 주영의 세계에서 최은빈은 그녀의 베스트프렌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의 싸움으로 한순간에 남이 되어버린 옛 친구가 경찰이 되어 있는 거다.

물론 최은빈 역시 주영을 알아보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남자 엄주영은 잘 알고 있었다.은빈의 입을 통해 들은 남자 엄주영의 정체는 주영을 충격에 빠지게 한다. 남자 엄주영은 호적에 빨간 줄은 없는 사람이지만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 패거리의 따까리였다. 잘 나가는 애들에게는 빌빌 기고, 망보며 기생하는 그런 존재이며 친구들의 힘이 자기 것인줄 아는 멍청이였던 거다. 그게 바로 남자로 태어난 주영의 모습이었던 거다. 똑같은 가정 환경에서 자랐는데, 남자 주영과 여자 주영의 모습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니. 이 책의 포인트는 바로 평행세계에서 너무나 다른 남자 주영과 여자 주영의 모습이다. 남자 주영을 통해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고발하고 여자 주영을 통해 자신의 눈에 자꾸 아른거리는 엄마 배중숙씨를 위해 남자 엄주영을 개과천선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리고 명랑하면서도 발랄한 설재인 작가의 문장도 읽는 재미를 톡톡히 증가시킨다.

사실 주영은 그냥 기분 나쁜 꿈이었다고 생각하고서 원래의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홀로 돌아가기엔 망나니와 같은 남자 염주영이 아들로 있으며, 자신을 아가씨라고 부르는 엄마 배중숙씨가 자꾸 생각이 났다. 내 세계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딸, 자신 때문에 고생했는데 이 세계에서는 그보다 더한 아들을 가지고 있다니, 배중숙 씨는 과연 어느 세계에서도 행복할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주영은 결심한다. 엄마를 위해 남자 엄주영을 개과천선 시키기로 말이다. 그리고 감히 자신의 이름을 달고서 망나니짓을 저지른 댓가도 치루게 하고 싶다. 탁구와 유도로 단련된 주영의 전완근이 불끈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이 평형 세계에서 혼자 힘으로는 무리인 일이다. 그런 주영에게 선택지는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한 사람, 최은빈에게 모든 것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주영은 은빈에게 자신이 평행세계에서 왔음을 고백한다. 믿지 못하는 은빈에게 주영은 자신의 세계에서 사는 은빈의 학창시절을 줄줄 읊는다. 장우혁에서 시작해 김동완을 거친 그녀의 유구한 덕질의 역사를 말이다. 반신반의하던 은빈은 엄마를 구하겟다는 주영의 확고한 마음에 흔들린다. 주영은 은빈과 함께 근무하는 박병옥 경사에게도 그들의 계획을 전하며 설득한다. 마침내 살기 좋은 청주시를 만들자는 명목 아래 세 사람은 의기투합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엄주영을 개과천선 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의 뒤를 밟던 주영과 은빈은 그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무려 띠동갑 연하인 연재와 말이다. 남자 엄주영으로 인해 한마디로 불행에 빠질 여자가 한 사람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배중숙 씨와 연재를 그냥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그들은 우선 연재부터 구하기로 한다. 연재의 절친인 다정까지 힘을 보탠 이 팀의 첫 번째 목표는 남자 엄주영 결혼 파토내기로 정해진다. 과연 주영은 은빈과 박병옥 경사와 함께 남자 엄주영을 개과천선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뒷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


나와의 반대의 성별로 태어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게 될 지는 누구나 한번쯤은 궁금해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이러한 호기심을 바탕으로하여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멈추지 않았다. 그를 기반으로 하여 평행세계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고발하고 있다. 두 엄주영은 같은 부모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둘 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남자 엄주영만이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모습으로 성장한다. 여자 엄주영은 남자 엄주영과는 달리 잘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남자 엄주영으로 인해 불행해질 여자들을 구하고자 하기까지 한다. 그 이유는 소설 전반에서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여자 엄주영을 비롯하여 배중숙, 최은빈, 심연재, 김다정과 같은 등장인물들이 걸어온 길을 통해 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나도 너랑 똑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너처럼 되지 않았어"라고 외치는 여자 엄주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더이상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읽는 내내 여자 엄주영을 응원하게 만들고, 남자 엄주영도 하루 빨리 정신 차리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성별이 바뀐 평행세계라는 어쩌면 뻔한 설정이 오히려 더 기발한 상상력처럼 다가오는 것도 이 책 전반에 깔린 적절히 발랄하고 명랑한 문체와 빠른 이야기 전개로 더더욱 이야기 속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설재인이라는 작가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왠지 막걸리 집 여자 화장실에 가게 되면 나도 혹시!!? 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 이 책, 생각보다 훨씬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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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 사계절 아동문고 103
이진하 지음, 정진희 그림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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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되어도 쉴 수 없는 우리 아이들. 요즘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오히려 더 바쁜 듯하다. 각종 학원에, 방학숙제까지. 게다가 방학 전에 만든 생활계획표와 엄마의 잔소리는 방학이 되어도 아이들을 쉴 수 없게 만든다. 


이 책의 주인공 준보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준보에게 날아든 엄마의 잔소리. 계획표를 제대로 안 쓰면 선생님에게 혼나니까 짝꿍인 우리반 1등 구경수 생활계획표를 베껴서 만들었는데, 그걸 보고서 준보 엄마는 방학 숙제는 언제 할 거냐며 잔소리를 한다. 


엄마 잔소리를 피해 방으로 들어와 준보는 가방 속을 헤집어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낸다. 그리곤 방학 숙제 안내문을 들고 하나하나 엑스 자를 치기 시작한다. 방삭 숙제 안내문도, 이 책의 아이들의 이야기들도 어찌나 현실적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제대로 몰입할 듯 싶다. 준보는 엄마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고 했는데, 그 순간 엄마는 준보의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한다. 여름 방학 숙제로 상을 받으면 준보가 갖고 싶어하는 거 뭐든지 하나 사준다는 엄마의 제안에  준보는 책상 앞에 앉는다.  그렇게 가지고 싶던 플레이스토리 게임기와 게임팩 세트를 받고 싶은 준보는 이제 여름 방학 숙제를 열심히 할 이유가 생겼다. 그리고는 절친 구봉이한테 이 사실을 신이 나서 알리지만 돌아오는 구봉이의 대답은 " 상을 받다니,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결국 준보와 구봉이는 반 1등이자 작년에 방학 숙제로 상을 받은 적이 있는 준보의 짝꿍, 경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방학 숙제 잘하는 법 좀 알려 달라는 준보의 부탁에 경수의 대답은 의외다. 이태껏 경수의 숙제는 아빠가 다 해줬으며, 인터넷에서 돈을 주고 숙제를 사기도 했단다. 숙제 사기는 좋은 아이디어 같지만 준보에게는 안타깝게도 모아둔 돈이 없다. 상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방학 숙제를 세 개는 해야 할텐데, 한 개도 아니고 세 개의 숙제를 살 돈은 준보에게는 없다. 그렇다고 숙제를 살 돈을 엄마에게 달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준보는 어쩔 수 없이 경수에게 매달리고, 아웅다웅 하다가 그렇게 준보, 구봉, 경수는 '여름방학 숙제 조작단'을 결성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되는 '여름 방학 숙제 조작단'의 파란 만장한 방학 숙제 상받기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과연 세 아이는 여름 방학 숙제를 멋들어지게 하여 모두 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의 파란만장한 여름 방학 숙제 이야기는 책을 통을 확인해 보시길. 


준보, 구봉, 경수는 숙제를 한다고 모여 어울리고 다투기도 하고, 웃었다가 울기도 하면서 타인과 어떻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지, 나와 생각이 다른 이는 어떻게 배려하여야 하는지, 친구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학원이나 숙제, 공부보다 정말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이렇게  아이들은 함께 한다는 것과 진정한 친구가 무엇인지, 진짜 숙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배우면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된다. 어쩌면 너무 뻔한 주제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너무나 현실적이면서도 재밌게 잘 담아서 누구라도 이 책에 공감하고 자신도 모르게 여름방학 숙제 조작단을 응원하며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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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 - 지구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가장 쉬운 기후 수업
김백민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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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이변, 지구 온난화 등등 지구의 오염으로 인한 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당면해있는 현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기후 변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런 탓에 기후 변화에 대한 뉴스를 보고서도 기후 변화로 인한 심각한 자연재해만 눈에 들어올 뿐 기후 변화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이 책은 기후변화의 역사와 과학을 아주 명쾌하고 담고 있다. 일방적인 기후 변화의 증거만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과학자의 실수와 과학의 한계까지 이야기하여 균형잡힌 시각으로 기후 변화를 바라보게끔 한다.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는 극지전문가이자 기후학자인 김백민 작가가 지구의 기후를 둘러싼 모든 의문을 과학과 사실에 입각하여 꼼꼼하게 파헤치고, 나아가 지구와 인류의 공존을 모색하는 책이다. 먼저 지구 형성기부터 시작하여 아주 먼 옛날부터 일어났던 자연적인 기후변화와 오늘날 인간이 일으킨 기후변화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두 요인 간의 차이를 토대로 우리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가 왜 위험한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심각한 기후 변화에 대비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와 왜 대비해야 하는지도 상세하게 담고 있다. 기후 변화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해하게 쉽고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함께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포유류의 시대에도 급격한 기후 변화의 위협은 늘 존재했습니다. 가장 극적인 이벤트는 지금으로부터 5,500만 년 전 지구 평균기온이 갑자기 5~6도 상승한 것이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현재까지 약 1도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정말 엄청한 기온 상승이죠. 과학자들은 이 시기를 '팔레오세-에오세 최대 온난기'라고 부릅니다. 영어로 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 줄여서 'PETM'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온도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다가 갑자기 떨어지는 이 특이한 현상은 많은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급격한 온도 상승과 하강으로 또다시 많은 생물이 멸종했습니다.

(중략)

PETM 시기의 온도 상승 현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바로 빠른 온도 상승 속도입니다. 인류가 화석연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최근 약 200년을 제외하고 가장 단시간에 급격하 온도가 상승한 것이 바로 이 PETM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PETM 시기에 이루어진 5~6도 온도 상승은 약 2만 년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지질학적 시간 규모로 보면 매우 짧고 인간의 수명과 비교하면 매우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가 약 1도 상승하는 데는 200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PETM 때와 비교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인류가 온도 상승의 주범이라고 하면 이 놀라운 메탄 폭탄 이벤트에 비해 무려 20배나 빨리 지구를 덥히고 있는 것입니다. (p47~p49)

이 책은 우선 45억년 전 지구가 탄생한 이후부터 시작하여 아주 먼 옛날의 지구 기후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된다. 지구가 생성되고부터 지구는 아주 드라마틱한 기후 변화를 겪어 왔다. 특히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PETM 시기에는 아주 단기간에 급격하게 온도 상승이 이루어졌다. PETM 시기는 200 만년 동안 약 5~6도의 온도 상승이 이루어진 시기로 이 시기에 온도 상승에 대한 요인으로 메탄 얼음덩어리인 메탄하이드레이트의 대폭발로 인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리고 인간이 산업화혁명 이후 화석연료를 사용한 후 200년 동안 지구의 온도는 1도가 올랐다. 겨우 1도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PETM시기의 온도 상승은 200 만년이라는 시간을 두고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인간이 화석연료를 사용한 200년동안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한 것은 아주 큰 변화로 PETM시기보다 무려 20배나 빨리 지구를 덥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윌 스테판과 연구진이 연구한 '대가속 그래프'는 인류가 지구 온난화의 범인임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가 된다. 그래프들을 잘 살펴보면 모든 지표들이 1950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증하였고, 산업혁명 이후 대부분의 지구 온도 상승이 1970년대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인류가 지구온난화의 범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인구 증가의 경향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경향이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연적인 기후 변화와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의 차이를 뒤짚어 보면 지구의 급격한 기후 변화의 범인은 바로 인간이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지구의 기후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게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이다. 이 책에서 제시되는 여러가지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우리가 탄소를 줄이는 노력과 함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미래의 지구는 지금보다 더 안 좋은 결과를 우리에게 되돌릴 수도 있겠구나하는 위기 의식이 생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참담한 미래를 우리는 정말 100% 믿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있다. 넘처나는 기후 정보 중에 혹시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선동한 가짜 기후 정보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려다 일부 주장에 오류를 실거나, 혹은 논리적인 비약을 하여 기후위기 불신론을 촉발시키거나 회의주의자들의 먹잇감이 된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마이클 만의 '하키 스틱 기후 그래프' 조작 사건이나, 원하는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데이터를 과장하여 해석한 앨 고어의 다큐멘타리 <불편한 진실> 등이 바로 이런 사례 중의 하나다.


반면, '지구 온난화는 과학자들의 거짓'이라고 주장한 BBC 다큐멘타라 <위대한 지구온난화 대사기극>에 나온 논리를 하나씩 팩트 체크하며 그 주장을 과학적으로 모두 반박하기도 한다.

저자는 자신이 기후 위기의 주범이 인간임을 밝히고 함께 공존할 만한 대안을 모색하는 게 목표인 97%에 해당하는 기후학자이지만, 이 책에서는 기후위기에 회의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3% 과학자들을 함께 다루어 균형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들을 토대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현 기후 상황을 좀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면서도 현재 과학의 한계와 불확실 수준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 가능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꽤 의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후 모델를 기반으로 점진적인 기후 변화를 예측 가능하지만 급진적인 기후변화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에게는 분명히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메세지이다.


전 세계적 흐름인 그린 뉴딜에 동참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지만 탄소 감축에만 정책의 초점이 맞추어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데는 경부고속도로가 큰 역할을 했듯이, 신재생에너지원에서 생산된 전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스마트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너지 인프라의 확충에 신경써야 합니다. 스마트 그리드 인프라 확대를 통한 전기 저장소와 전기에너지의 지능적인 분배, 그리고 재생에너지로 완전히 전환하기 위한 중간 단계를 버텨낼 수 있는 보완 에너지에 관한 고려가 태양광, 풍력 설비 인프라를 한없이 늘리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 기상 현상에 맥없이 무너지는 신재생 에너지의 민낯을 보게 될 것이고, 한 방에 무너진 후 다시 시작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 설비 증량 위주 정책에서 탈피해 탈석탄 사회로 전환하기 위한 전기 인프라 확충에 힘쓰고, 전기를 저장하는 데 유용한 수소 연료전지 등 저장 인프라를 확대해야 합니다. 또 징검다리로서 원자력을 보다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등 전방위로 에너지 정책을 검토해야 할 시점입니다. p306~p307

산업혁명 이후 계속해서 증가해 온 인구수는 화석연료 사용량을 꾸준히 늘렸다. 최근 2년 사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7%나 줄였지만 이 역시 화석연료 사용량 증가 추세를 막지는 못했다. 교토의정서, 파리기후협약 직후 오히려 인류는 안타깝게도 이산화탄소 사용량을 늘렸다.


그러나 이렇게 인류 에너지 사용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화석 연료도 고갈되기 시작했고, 이로서 화석연료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저자는 이제는 기후위기와 에너지 위기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한 예로 무분별한 태양광 개발은 영화 <인터스테라>처럼 극심한 식량난을 불러 올 수도 있다고 말하며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소이 메탄 방출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이를 바이오 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는 메탄 백팩 기술, 이산화탄소를 돌로 만드는 탄소 포집 기술, 영화 <설국열차>에 나오는 냉각물질과 비슷한 지구 공학 기술 등 새로운 재생 에너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탄소 배출량 감소와 함께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은 현재 기후위기를 전공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명쾌하고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과학자들이 인류와 지구의 공존을 위해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는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 않고 기후위기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는 통찰력을 조금이나마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우리 스스로 행동을 옮길 수 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희망적인 대안을 제시하여 기후위기 시대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ESG경영, RE100 등 기업이 해야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깨달음을 준다.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죄책감에만 시달릴 것이 아니라 , 본격적이고 보다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미래 대안을 모색하고 이를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책임감과 실천의지를 북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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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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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세랑 작가의 첫 에세이인 이 책은 정세랑 작가의 팬이라면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고 할까.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가 발간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예약까지 걸어놓고 기다렸던 책인지라 읽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 비로소 정세랑 월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느낌이랄까. 이 책을 통해 정세랑 작가에 대한 팬심은 더 굳어졌으며 인간 정세랑을 조금씩 알아간다는 것에 대한 행복의 전율을 마구 느끼면서 정말 아껴가며 읽었다.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아껴 먹는 아이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그녀를 알아간다는 게 이토록 큰 행복이라니.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완전 추천하고, 그렇지 않고 정세랑 작가의 작품을 모른다 할지라도 문장 하나 하나에 그녀만의 따스함과 다정함이 듬뿍 담겨서 좋아도 너무 좋다.


어쩌다가 여행 에세이를 9년째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종종 소설보다 뒤에 붙은 '작가의 말'이 재밌다는 말을 들어서 에세이도 쓸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예상과 달랐다. 쓰다가 멈추고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고치면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 지난 여행의 기록들은 사실 여행 그 자체보다는 여행을 하며 안쪽에 축적된 것들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러 멀리 가서 맞닥뜨린, 이야기보다 더 이야기 같았던 순간들을 마음속 거름망에 걸러내 정리해두고 싶었다. p8

이 책은 정세랑 작가의 첫번째 에세이로 친구의 도시를 걸으면서 정세랑작가가 만난 이야기보다 더 이야기 같았던 순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정세랑 작가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친구가 너무 보고 싶어서 뉴욕까지 날아가게 되고, 남자친구를 따라 독일에도 가게 되고, 이벤트에 당첨되어 런던에도 가게 되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여행기가 무려 9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고, 누구나 여행을 그리워하는 지금 이 때에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정세랑의 소설들이, 정세랑이라는 작가가 어떻게 탄생하고 만들었는지 '정세랑 월드'에 관한 숨은 비밀과 같은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녀의 작품을 모두 읽은 나로서는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정세랑 월드의 퍼즐을 한 조각 한 조각 맞추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투덜대면서도 결국에는 좋아하는 그 조각 조각과 같은 순간들을 다정한 시선으로 담아놓은 사랑스러운 지구 여행객, 정세랑 작가의 모습이 담겨져 있어서 읽는 내내 나도 그녀처럼 다정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말도 안 돼'와 '무슨 소리야'가 수십 번쯤 오가는 동안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메신저에서 네 번쯤 싸운 것 같다. 실제 대화에선 물음표와 느낌표가 훨씬 많았다. 눈싸움하는 아이들이 눈 뭉치를 던지는 것처럼 물음표와 느낌표를 수십 개 주고받았고, 따지고 보면 서로를 위한 대립이었는데도 꽤 뜨거운 설전이 되고 되어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L의 집에서 그렇게 길게 지내는 것은 민폐인 것 같아 이기고 싶었는데, 관계의 주도권이 L에게 있다 보니 끝내 졌다. 숙소 예약을 강행하면 L이 진심으로 화를 낼 것 같아서 마지막 순간에 포기한 것이다. 지고도 실감이 안 났다. 내가 맞는 것 같은데 왜 졌지? 친구야, 너는 정말 멋진 아이지만 이상한 데서 격하게 고집이 세구나....... 어쨌든 많이 보고 싶었으므로 여행을 크게 즐기지 않으면서도 뉴욕까지 날아갔다. 웬만큼만 가까운 친구라면 스리슬쩍 변명하고 가지 않았을텐데, 누군가를 좋아하면 확실히 무리하게 된다. 아끼는 마음의 척도를 얼마나 무리하느냐로 정할 수 있지 않을까? p12

친구 L을 만나기 위해 어디에서 머물 것인지에 대해 몇번이나 싸웠다는 정세랑 작가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저자와 친구가 얼마나 서로를 아끼는지가 보이는 장면 같아서 말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의 척도는 얼마나 무리하느냐로 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는 저자의 말에 완전 동감을 표하고 싶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어떤 장애와 무리 따위는 보이지 조차 않더라. 너무나 보고 싶고, 너무나 생각나서 그냥 아무것도 생각치 않고 무리하게 그냥 마구 달려가던 그 순간의 그 설레임과 그 무모함이 나는 참 좋다. 그렇게 좋아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삶의 큰 행복이 아닐까 싶다.


스물아홉 살의 내가 몰랐던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잇다 사랑 때문이었다. 천 부도 겨우 팔렸지만 그때도 강렬하게 지지해주는 독자분들이 계셨다. 책 한 권 없이 몇 편의 단편뿐이었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해주시던 분들이...... 독자와 작가 사이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랑과도 달랐다. 어떨 때는 커다란 방패고, 또 어떨 때는 완전연소하는 연료라서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그것 없이 살 수 없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선택해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이 의기양양하실 수 있게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p21~p22

이 책의 날개에는 유명인의 추천사가 아니라 이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의 추천사가 실려져 있다. 정세랑 작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수식어가 바로 '독자들이 만든 작가'다. 정세랑 작가를 향한 독자들의 사랑은 각별하다고 할까. 나 또한 그 독자 중에 한 명이길 희망한다. 비록 조금은 늦게 그녀를 알게 되었지만 정세랑 작가를 향한 팬심은 누구보다 깊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제는 저자가 살아남기를 떠나 유퀴즈에도 나오는 국민 작가가 되셔서 너무 흐뭇하고 좋다.


C와 사흘 연달아 만나서 좋았는데, 그날 밤 마음이 헛헛해지고 말았다. 역시 초능력을 얻는다면 순간 이동이 좋겠다. 친구들이 있는 도시의 커피 체인점에서 한 시간씩만 만나고 올 수 있도록. 그래도 며칠에 한번 씩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수 있어 행복하다. 서로의 안녕을 바라고 감미로운 잠과 이어질 다음 날을 기원해주는 사이인 것만으로도 계속해나갈 수 있다. p290

지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과 홀로 떨어져있다. 물론 남편과 아이들이 내 곁을 충만히 지키고 있지만, 가끔은 친구들이 무척이나 보고싶고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그럴때 정세랑 작가의 말처럼 나에게도 초능력이 허락되어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해본다. 한 시간씩만이라도 그녀들을 한 명씩 만나 커피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듯 싶다. 그래도 이렇게 물리적인 거리는 떨어져 있어도 늘 전화와 카톡, 문자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나를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그녀들이 있기에 나도 하루 하루를 나아갈 수 있음이 감사하다.


서로 평소 궁금하던 거리를 함께 걷곤 했는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한참을 만나지 못하고 있어 애틋하다. 만나고 싶은 마음,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길고 어두운 시기를 지낼 각오를 한다. 오래전의 여행을 꺼내어 보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당연히 여기고 누려왔는지 새삼스럽다. 쑥스럽지만 어떤 날, 우리가 함께 보냈던 짧은 낮과 길게 붙잡았던 밤이 나를 구했다고 C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다. p292

나를 이해하는 사람과 함께라서 우리가 함께 빛날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은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줄 몰랐다. 지나고 나서야 내가 그녀로 인해 빛날 수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제서야 그녀의 소중함이 더 깊어진다. 그렇게 인간은 지나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어리석은 존재인 것이다. 오늘도 그녀를 만나고 싶은 마음,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려 본다. 기나긴 이 어둠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한달음에 그녀에게로 가서 그녀와의 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하였다고, 그녀가 전해준 그 밟음이 혼자인 나를 웃게 만들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 때까지 잘 견뎌보자. 우리.


이 책을 통해 정세랑 작가가 무엇 하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정한 시선을 건네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어서 기뻤다. 사랑하는 이들의 세상이 갑자기 무너지지 않기를, 어디선가 다정한 대화가 계속 되기를, 이 어둠의 시간을 모두가 무사히 지나길 바라는 지구 구석구석 모든 이들의 안녕을 바라는 그녀의 다정한 사랑이 읽는 내내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녀는 형편없는 사진이라고 말하지만 책 사이 사이의 정세랑 작가 시선으로 바라보고 찍은 사진들이 무엇보다 좋았다. 따스함이 가득 담기고, 다정함이 붙어있는 그녀만의 사진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나는 또 힘을 내어본다. 오늘을 버터낼 힘을, 그리고 내일을 맞이할 힘과 용기를 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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