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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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라는 단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인다. 할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무력감에 대항하는 이미지라서 더더욱 좋게 느껴진다고 할까. 이 책은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의 이나가키 에미코가 전하는 즐거운 인생 후반전을 꿈꾸는 중년의 피아노 정복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퇴사 후, 53세의 나이에 어릴 적 그만 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운 뒤 그야말록 폭 빠져버렸다. 물론 그 앞에는 난관히 무수히 많이 깔려 있었다. 의욕과 마음과는 달리 따라주지 않는 몸과 머리, 매일 마주하는 실력의 한계 등. 이 책에 담긴 피아노를 배우는 매일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느낀 좌절과 슬픔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배우는 저자의 글에는 피아노를 배움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희열이 듬뿍 담겨져 있다. 때로는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꿈의 곡을 연주하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며 말이다. 그런 그의 글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피아노를 통해 깨달은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과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야겟다는 굳은 다짐들은 나에게도 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지루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바이엘이나 체르니를 쳐야 했던 아이들, 한 번 연습하고 빈 사과 혹은 동그라미를 하나씩 색칠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저자 역시 어릴 적 피아노와의 인연이 그리 길지 못했다. 그러다 50세에 퇴사 후, 문득 마음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피아노를 향한 마음이 솟는다. 그렇게 용기있게 저자는 40년만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다.


시작했지만 나이 들어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저자는 몸소 실감하게 된다. 건반의 무게에 새삼 놀라고, 이제는 암호와 같이 보이는 악보에도 다시금 놀라게 된다. 하지만 어릴 적 무시했던 손가락 번호를 필사적으로 읽으며 건반을 누르고, 노안이 찾아와 악보를 두 배로 확대 복사하는, 정말 경험한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웃을 수 만은 없는 저자의 에피소들은 저자만의 생생한 문체로 이 책을 담겨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어려움과 고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지만 즐거움과 희열이 곳곳에 존재한다. 어릴 적 깨닫지 못하던 어른이 되어 배웠기에 느낄 수 있는 그 희열과 즐거움은 피아노라는 상대를 아주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피아노를 치며 저자는 역시 늦었구나 싶었을 때 반짝이는 성장의 순간을 맛보게 되고, 그 맛에 취할 무렵에 또 다른 고비를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인생 후반전에 누려야 할 즐거움은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결과에 이르지 못할 지라도 찰나가 될 매 순간 열정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앞으로의 인생을 즐겁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삶에서 '늙음'과 '노후'라는 단어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할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더 무력함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무기력하고 무력함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피아노를 통해 비로소 즐겁게 나이를 들어갈 수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나이드는 것이 그렇게 슬픈 일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듯이 우리는 인생의 후반전을 향해 즐거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즐거움과 풋풋한 사랑을 간직하며 산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별도의 페이지를 통해 본인이 그러하였듯이 늦게 피아노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어른의 피아노'를 시작하는 법>을 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내 인생의 후반전을 함께 할 상대가 피아노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한번쯤은 도전해봐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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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 - 20세기 한국사의 가장자리에 우뚝 선 이름들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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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워낙에 역사를 좋아하는 데다가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이라는 제목을 가지게 한 인물들이 궁금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스물여섯 명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띠며 평생을 살고 그랬기에 역사에 밤하늘의 별빛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사람들이다. 역사에 큰 획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시련을 꿋꿋이 견뎌내고, 약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삶을 기억하는 건 참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세상이 빛날 때는 구지 눈에 띄지 않으려 하지 않지만, 세상이 어둠에 잠겼을 때 한 줌의 빛이라도 되고자 했던 이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참기 힘든 일을 잘 견대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0세기 한국에서는 그들을 괴짜 혹은 별종으로 불렸다. 정립된 세계 질서에서 빗겨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지키며 미래의 시간을 앞서 살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입신양명의 가치관으로 그들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정돈하면서 타인을 위해 희생과 헌신한 존재들, 척박한 길을 개척하며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 자들,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 본인만의 빛을 내며 반짝이던 그들을 더이상 모른 체할 수 없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저자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들을 다시 들여다 보길 바래본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스스로 빛난 찬란한 별들을 소개한다. 세계 최고이자 조선 제일의 무용수 최승희를 비롯하여 한국의 영원한 마돈나, 김추자. 그리고 뮤지컬계의 대모이자 영원한 피터팬, 윤복희, 새롭지 않은 걸 부끄러워하는 음악가, 김창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약자들의 편에 선 자들의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불의와 횡포에 맞선 한국 야구계의 영원한 불꽃, 최동원. 흥남부두에서 9만 8천명을 피난시킨, 현봉학,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라 불리는 '훈맹정음'의 창시자, 박두성, 끝끝내 지켜야 할 아름다운 이름, 전태일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시련을 견뎌낸 존재들이 주를 이룬다. 조선 최고의 대부호이자 문화재 수집가, 간송 전형필, 한국 프로레슬링계의 풍운아, 김일, 현대바둑의 패러다임을 바꾼 바둑의 신, 이창호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스물여섯 명의 인물들 중 내가 알고 있는 인물들도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인물들도 있다. 그 중 정종명에 대한 존재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게 죄송했다. 가난한 여성들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여성지도자이자,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며 한 목소리를 내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배짱 넘치는 큰언니를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지금의 사회는 여성이 살기에 아직도 갈길이 멀지만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정종명과 같은 여성들의 오랜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시각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읽고 셈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던 박두성은 '훈맹정음'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떠올린 이상과 목표를 동일하게 반영하여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과학적 원리를 점자 체계에 그대로 적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시각장애인의 교육과 점자 보급 활동에 전력을 하던 박두성은 말년에 접어들며 시력을 잃게 된다. 시력을 읽고서도 점자 보급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박두성. 그렇기에 그는 '시각 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우는데 평생을 걸친 그의 삶을 보면 그 명칭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일평생을 살면서 우리는 대부분 빛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빛나는 삶인지는 이 책에 담긴 스물 여섯명의 삶에서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의 일생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용기와 위안을 받는 것은 그들의 삶 속에는 자신만의 빛이 있기 때문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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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어른의 하루 - 날마다 새기는 다산의 인생 문장 365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
조윤제 지음, 윤연화 그림 / 청림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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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시대 '어른'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냥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어른이라면 늘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 깨어있는 시선으로 늘 자신을 다잡아야 하지 않을까? 어른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마음을 다스려주면서 어른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 태도, 지혜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책을 발견하고서 늘 곁에 두고 읽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여느 책과는 달리 독특한 형식을 지녔다. 30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다산의 마지막' 시리즈에서 명문장들을 뽑아 365일의 만년 일력 형식으로 담아내었다. 그리하여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각 달을 대표하는 사자성어 테마와 함께 하루에 한 장씩 다산의 문장을 한 문장씩 음미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하루에 한 문장씩 매일 다산의 명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정말 어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12달을 각 달을 대표하는 사자성어 테마로 나누어 두었다. 다양한 고전에서 다신이 남겼던 성찰을 바탕으로 삼아 고전 연구가 조윤제가 오늘날의 감각에 맞도록 다시 정리하였다. 다음의 가이드에 따라 일력을 음미하다보면 다신이 실천했던 공부와 수양을 몸과 마음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먼저, 1월부터 12월까지 각 달을 대표하는 사자성어 테마를 상기한다.

그리고 두번째, 위쪽 큰 글자로 실린 다산의 문장을 읽으며 오늘의 성찰을 새긴다.

세번째, 아래쪽에 작은 글자로 쓰인 원전의 한자 명구 및 해석을 읽으며 그 의미를 생각한다.

네번째, 계절에 따라 각 월에 알맞게 수놓아져 있는 동양화 꽃들을 감상한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노트에 다산의 문장을 써내려가며 그 문장을 새기고, 일상의 호흡을 가다듬는다.


나를 깨닫는 과정은

나를 아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 끝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일 처음으로 만나는 문장은 1월의 '위학일익'의 사자성어 테마의 가장 첫번째 문장으로, '나를 깨닫는 과정은 나를 아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 끝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배움이란 매일 채워도 끝이 없다는 뜻의 1월의 사자성어 '위학일익'에서 가장 첫번째 문장으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메세지를 남기는 이유는 모든 공부의 시작은 나 자신을 아는 것이며, 그 밑바탕은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보통 남들이 새워놓은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다들 하니까 따라가는 공부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나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배움이 아닐까. 그렇기에 공부는 학교를 졸업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평생에 걸쳐 지속되어지는 것이다. 여기서의 공부는 비단 지식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력의 밑부분에 적혀 있는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알고 어진 자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문장도 음미해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을 알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명심해야지.


흔들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중심이 있다.

마음에 중심을 곧게 세운 사람을

어른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올바른 것인지, 늘 염두에 두며 마음에 중심을 곧게 세운 그런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다. 


기적은 힘차게 내디딘

첫걸음에서 시작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내디딘

마지막 걸음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은 '기적은 힘차게 내디딘 첫걸음에서 시작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내디딘 마지막 걸음에 완성된다.'이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하는 태도는 참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발걸음을 내딛는 다면 우리는 이루고 싶은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휘리릭 읽는 책이 아니다. 만년 일력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만큼 책상에 늘 두고 앞서 언급한 다섯가지 방법에 따라 몸과 마음에 다산의 문장들을 새기는 것을 추천해본다. 나 또한 2023년 1월 1일부터 1년동안 매일 한문장씩 읽고 새기며 필사까지 하여 그 문장들을 나에게 새길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보고 배울만한 어른이 없다. 하지만 어른이라 할지라도 삶의 모델에 따라 어른으로서의 발자국을 한걸음씩 쌓아올릴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진정한 어른인 다산의 365문장을 이 책을 통해 한 문장씩 쌓아올리며 삶 속에서 실천한다면 어른으로서 삶에 조금은 가까워지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소장해도 좋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해도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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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부터 지적이고 우아하게 - 품위 있는 삶을 위하여
신미경 지음 / 포르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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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지적이고 우아하게'라는 표현이 너무 마음에 들어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소제목이기도 한 '품위 있는 삶'이란 과연 어떤 삶일까? 이 책은 품위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지적 취향, 일상 취미에 대한 에세이를 담고 있다. 


책 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에 눈길이 절로 간다. 더 나다운 내가 되기 위해 취미에 가까운 지적 생활을 한다는 저자의 소개글에 깊은 공감이 간다. 취미를 안다는 것은 바로 '나'를 알아가는 것과 같기에 말이다. 나를 알아가기 위한 취미 생활이야말로 더 나다운 삶을, 나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게 아닐까.


저자는 시간표라 이름 붙인 일정표에 따라 곳곳에 지적인 취미 생활을 배치하고서 틈틈이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 번에 몰아서 많은 양을 하는 것은 아니다. 느리게 가더라도 멈추지지 않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 채운 시간표는 그 자체로만으로도 행복의 지름길이 아닐까. 늘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이 내가 딱 원하는 삶의 자세이기에 이 책의 대부분의 이야기에 나는 무척 공감이 간다.


누군가는 왜 나에게 그토록 많은 책을 읽느냐고 묻는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해 나는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이 주는 즐거움, 그리고 책을 통해 알아가는 지혜와 지식으로 인해 삶이 윤택해지는 그 행복을 고스란히 느끼기 때문이다. 시험을 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성적을 위해 얻기 위한 목적성이 아니라 단순히 앎의 즐거움, 문학 작품이 주는 그 즐거움이 나는 참 좋다. 그 즐거움들로 쌓아올린 지식과 소양은 저자의 말처럼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밑바탕이 된다. 진통제를 하나 삼키더라도 이부프로펜과 나프록센의 차이 정도는 알고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미묘하고, 구지 그런 것까지라는 생각을 할지 몰라도 그 미묘한 차이는 매 시간을, 그리고 나의 매일을 소홀하게 여기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정말 소소한 것에 행복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더 단단해질 수 있는 듯하다. 


저자가 어릴 때부터 부단한 노력을 자기 자리를 만든 사람의 서사를 좋아한 것처럼 나 또한 그러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성공한 이들의 태도를 모두 배워 내 것으로 만들어 나도 성공해야지라며 마음을 다잡지는 않았다. 그들이 성공한 그 서사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감탄하며 읽으며 그들의 성공에 진심으로 같이 기뻐했다. 가진 것은 별로 없어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옛날 이야기들을 즐겨서 일까. 저자처럼 나는 열심히 배우는 그 행위가 참 좋다. 어릴 때는 그 강약을 조절하지 못해 너무나 치열하게, 나자신을 갉아 먹으면서까지 달렸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나에게 맞는 속도로, 내 스타일 대로 조금씩 천천히 배우는 태도로 살아간다. 그 삶 속에, 매순간 열심히 하는 내 모습 속에 조금씩 끼어져있는 여유를 즐기며 배우는 모습들은 바로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깨달은 건은 내가 생각보다 지적이고 우아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거다. 그동안 내가 미쳐 깨닫지 못했을 뿐이였다. 물론 저자의 생활과 나의 생활의 루틴은 다르다. 왜냐 나는 결혼을 했으며 챙겨야 할 아이가 둘이나 있고, 직장을 다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일상 곳곳에는 저자와 같이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나를 위한 시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늘 하는 공원의 산책도. 주말이면 늘 들리는 도서관. 가끔씩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하는 박물관과 미술관, 수목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나의 지적 호기심들을 충족해 가면서 멈추지 않고 느리게라도 늘 이어가면 될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삶의 품위라는 게 그리 거창하지 않음을, 지금 이대로 사는 나도 꽤 괜찮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좋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법은, 그리고 나다운 삶을 사는 법은 그리 멀지 않다. 바로 내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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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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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 기억되는 사람들 중에는 위인들도 있지만 악인들도 늘 존재한다. 그 중 세상을 뒤흔든 악인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섬뜩하기도¹ 하고,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요즘 영화, 드라마, 소설 또는 다큐멘타리 등등에서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꽤 많이 나오고 있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범죄에 대하여 역사의 변곡점에서 펼쳐졌던 범죄의 그 뒷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세계와 한국을 막론하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범죄라는 '사회적 거울'을 통해 우리의 현재 그리고 인류의 역사 단면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범죄에 대처하는 자세를 가다듬어 보고자 했다. 이 책에 실린 50가지 거울을 통해 범죄와 범죄자의 사연들을 들여다 보는 시간은 충분히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2부 8장으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세계사 속 범죄자의 면면을 들여다본다. 1장은 역사를 바뀐 범죄이야기로 제1차 세계 대전의 불씨가 된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 사건', 인권 존중의 전범이 된 '미란다 원칙' 등이 이에 해당된다. 2장은 만들어진 괴물의 사연을 전한다. 목적없는 범죄를 일으킨 연쇄살인범 '헨리 하워드 홈스', 900여 명의 동반 자살을 이끈 사이비 교주 '짐 존스' 등의 이야기다. 3장에서는 야만적인 범죄자를 들여다본다. 노동자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았던 철강왕 '카네기', 황당무계한 면죄 조건의 면죄부를 팔았던 종교사기꾼 '요한 테첼' 등이 그들이다. 4장은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죄 없는 마을 주민들을 몰살시킨 '마리아 학살' 관련자들, 아내 살해 누명을 쓰고 12년간 옥살이를 한 의사 '샘 세퍼드'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한국사를 뒤흔든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장은 나쁜 놈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복싱 세계 챔피언 타이틀 전에 가짜 복서를 데려오는 파렴치한 일을 저지른 이들, 중동 건설붐 때 독버섯처럼 가정의 평화를 깨트린 제비족들의 이야기등이 이에 해당된다. 2장에선 시대가 낳은 범죄자를 재발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민족차별의 모멸감에 정신줄을 놓고 무차별 살인을 저질렀던 '이판능', 각박하고 혹독했던 한국 현대사에 빈번하게 등장했던 '고려장' 사건 등은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장은 범죄를 통해 한국사의 풍경을 되짚고 있다. 밀수꾼, 도굴꾼, 보물찾기, 보험 살인, 스토킹 등등 다양한 범죄들이 들끓었던 시절을 말이다. 마지막 4장은 간첩이야기다. 남파 간첩, 고정 간첩, 이중 간첩, 그리고 간첩을 만든 애국적 버러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오랫동안 아동은 보호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한시바삐 키워 노동력을 써먹어야 할 사육의 대상이었고, 힘센 어른들의 범죄의 제물이자 빗나간 학대의 희생자 일때가 많았다. 정말 안타까운 사건 들 중 하나인 '메리 엘렌 윌슨'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동물 보호소는 있어도 학대 받는 아동이 갈 곳은 없었고, 고아원에서 친부모 행세를 하며 아이를 데려워 가학성의 제물로 삼아도 제지할 수 없었다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가. 다행히 컴컴한 아파트 벽장에 갇혀 매 맞고 불로 지져지고 가위로 찔리며 시들어 가던 소녀 메리 엘린은 구원받았고, 에타 휠러의 가족품에서 새 삶을 찾았다고 한다. 그 일을 계기로 세계 최초 아동보호기관인 '뉴욕아동학대방지협회'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한 인간을 구하는 건 우주를 구하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경구를 인용하며 이웃집 소녀의 비명을 듣고 도움을 청한 이웃과 이에 분노하며 눈물을 흘린 에타 휠러와 그녀와 손잡고 메리 엘렌을 구한 헨리 베르그를 칭찬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도 때로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냘픈 비명, 애타는 호소 하나에 호응하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며 한 우주를 구하는 일이기에 말이다.

 
무증상 장티푸스 보균자였던 '메리 멜런'의 이야기를 아는 이들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메리 멜런의 이야기에 대한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 있다. 메리 멜런은 무증상 보균자였다. 그 당시 다른 남자 보균자들, 귀부인 보균자들은 강제 격리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감호 처분에만 그쳤다. 하지만 아일랜드계 하류층 여성이라는 이중 핸디캡이 메리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라는 혐의를 씌워 종신 격리형을 선고받게 한다. 그녀가 수십 명을 감염시키고 몇 명을 사망에 이르한 한 장티푸스 보균자임은 확실했지만 악의적인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고, 먹고 살기 위해 법을 어겨야 했음을 고려해 볼 때, 그리고 다른 보균자와는 너무나 다른 차별적인 처우를 볼 때에도 메리의 호소와 그녀의 일생은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중의 하는 김유정 작가가 스토커였다는 사실이다. 김유정 문학관에 갔을때 김유정이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박록주를 소개하길래 그런가보다 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다. 김유정은 명창 박록주에게 첫눈에 반해 대쉬를 하지만 박록주는 재력가의 소실, 결혼한 몸이었던 거다. 하지만 김유정의 대시는 지속되었고, 박록주가 김유정을 받아들이지 않자 지금 들어도 소름 끼치는 행동을 한다. 1974년 한국일보에 연재되었던 박록주의 <나의 이력서>에서 소개된 김유정 편지의 일부는 그야 말로 소름 끼친다.  그 후 김유정은 갈수록 더더 심하게 스토킹을 했고 급기야 혈서까지 보냈다고 하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싶다. 지금도 스토킹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마음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멋대로 행동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혹은 협박을 하는 건 범죄라는 사실을 많은 이들인 인식하길 바래본다.

이 책을 통해 본 50가지 범죄 이야기는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끔찍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 아프기도 하였다. 범죄와 범죄자들의 사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범죄는 딱 우리의 사회적 모습들 투영한 결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부디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이 범죄들을 줄일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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