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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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라는 단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인다. 할머니라는 단어가 주는 무력감에 대항하는 이미지라서 더더욱 좋게 느껴진다고 할까. 이 책은 SBS 스페셜 '퇴사하겠습니다'의 이나가키 에미코가 전하는 즐거운 인생 후반전을 꿈꾸는 중년의 피아노 정복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퇴사 후, 53세의 나이에 어릴 적 그만 두었던 피아노를 다시 배운 뒤 그야말록 폭 빠져버렸다. 물론 그 앞에는 난관히 무수히 많이 깔려 있었다. 의욕과 마음과는 달리 따라주지 않는 몸과 머리, 매일 마주하는 실력의 한계 등. 이 책에 담긴 피아노를 배우는 매일의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느낀 좌절과 슬픔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배우는 저자의 글에는 피아노를 배움으로 느끼는 즐거움과 희열이 듬뿍 담겨져 있다. 때로는 선생님의 칭찬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꿈의 곡을 연주하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며 말이다. 그런 그의 글을 따라 읽다보면 어느새 나도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피아노를 통해 깨달은 저자의 삶에 대한 통찰과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야겟다는 굳은 다짐들은 나에게도 앞으로의 삶에 대하여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지루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바이엘이나 체르니를 쳐야 했던 아이들, 한 번 연습하고 빈 사과 혹은 동그라미를 하나씩 색칠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저자 역시 어릴 적 피아노와의 인연이 그리 길지 못했다. 그러다 50세에 퇴사 후, 문득 마음 속 깊숙한 곳으로부터 피아노를 향한 마음이 솟는다. 그렇게 용기있게 저자는 40년만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다.


시작했지만 나이 들어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저자는 몸소 실감하게 된다. 건반의 무게에 새삼 놀라고, 이제는 암호와 같이 보이는 악보에도 다시금 놀라게 된다. 하지만 어릴 적 무시했던 손가락 번호를 필사적으로 읽으며 건반을 누르고, 노안이 찾아와 악보를 두 배로 확대 복사하는, 정말 경험한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웃을 수 만은 없는 저자의 에피소들은 저자만의 생생한 문체로 이 책을 담겨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어려움과 고생이 생생하게 담겨 있지만 즐거움과 희열이 곳곳에 존재한다. 어릴 적 깨닫지 못하던 어른이 되어 배웠기에 느낄 수 있는 그 희열과 즐거움은 피아노라는 상대를 아주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만든다.

피아노를 치며 저자는 역시 늦었구나 싶었을 때 반짝이는 성장의 순간을 맛보게 되고, 그 맛에 취할 무렵에 또 다른 고비를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저자는 깨닫는다. 인생 후반전에 누려야 할 즐거움은 이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결과에 이르지 못할 지라도 찰나가 될 매 순간 열정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앞으로의 인생을 즐겁게 만든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삶에서 '늙음'과 '노후'라는 단어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할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더 무력함을 상상하게 된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무기력하고 무력함만 존재하는 것일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피아노를 통해 비로소 즐겁게 나이를 들어갈 수 있다고 고백한 것처럼 나이드는 것이 그렇게 슬픈 일만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오늘도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듯이 우리는 인생의 후반전을 향해 즐거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즐거움과 풋풋한 사랑을 간직하며 산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별도의 페이지를 통해 본인이 그러하였듯이 늦게 피아노를 배우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어른의 피아노'를 시작하는 법>을 실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내 인생의 후반전을 함께 할 상대가 피아노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한번쯤은 도전해봐도 괜찮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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