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학교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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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로 인해 우리의 일상에 아주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 학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곳이 아닐까 싶다. 매일 똑같은 교실, 똑같은 책상과 의자에서 수업을 받았는데, 코로나 19로 인해 작년에는 한동안 학교에 가지조차 못했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등교 수업과 온라인 수업을 병행하여 작년처럼 학교에 아예 자지조차 못하는 일은 없다. 이제는 내 방과 교실이 모두 수업을 받는 장소가 된다. 그렇게 보면 우리집이 하나의 학교가 되기도 한다.

<일주일의 학교>에서 아이들은 매일 매일 다른 학교에 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학교와는 너무나 다른 학교들이 존재하는 <일주일의 학교>. 이 책을 통해 날마다 다른 학교를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나하였다.

이 책의 학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학교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다. 월요일의 학교에는 언제나 비가 오기 때문에 우선이 필수다. 운동장은 늘 반쯤 빗물에 잠겨 있어서 운동장에서 체육을 할 수는 없지만, 옥상 정원에서 구름을 만져 볼 수 있다. 그리고 화요일의 학교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체육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요일에 학교에 갈 때에는 반드시 운동화를 신고가야 한다. 나무 벽을 기어오르고 평형대를 통과해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고,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단 그 앞에까지 구르기를 해야 하며 정글짐을 통과해야지만 급식실에 갈 수 있다. 수요일의 학교에서는 잠긴 것들을 열어야한다. 그래서 수요일의 학교를 갈때는 반드시 열쇠 주머니를 들고 가야한다. 교문부터 교실 문, 책상 서랍에 급식 도시락까지 모두 열쇠로 열어야지 들어갈 수 있고, 사용가능하다. 목요일의 학교는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등교하는 밤의 학교다. 학교의 위치는 가끔 바뀌지만 가는 시간만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금요일의 학교는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지금 존재한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금요일의 학교는 아이들이 직접 지어야 하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다른 학교에 가는 '나'는 어느날 불쑥 나타난 전학생에게서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아이는 이제까지 매일 똑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지겨운 학교가 있었다니! 이때부터 주인공 '나'의 학교이야기가 시작된다. 언제나 비가 오는 월요일 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은 날 일어난 소동, 화요일의 학교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기 위해 벌어진 소동에서 수요일의 학교에서 교장선생님을 만난 일, 한밤중에 등교하는 목요일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신비한 일에 직접 만들어야 하는 금요일 학교에서 지붕이 날아간 사건까지 말이다. 학교에 그리 관심도 기대도 없고, 그저 엄마가 가라고 해서, 결석은 절대로 안된다고 해서 학교에 전학온 아이는 나의 학교 이야기에 점점 빠져든다.


매일 비가 내리는 월요일의 학교에서 비가 오지 않은 날 아이들은 옥상에 올라가서 구름을 만지게 된다. 구름을 실제로 만지면 어떨까라는 상상은 누구나 한 번은 해보지 않았을까. 이 책의 아이들이 저마다 구름을 만지고서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집 2호는 완전 이야기에 폭 빠져서 자신도 구름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며 아주 신나서 말했다. 2호가 차가운 액체 괴물과 같다는 의견을 마구 제시하자, 중 2인 1호는 아마 구름을 만지면 사람의 체온으로 인해 바로 녹을 꺼라는 나름 과학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그렇게 구름에 대해 한참의 논쟁을 하게 만든 월요일의 학교 이야기. 이 책은 이렇게 각 학교별 독립적인 에피소드들을 소재로 아이들과 무궁한 상상의 이야기들을 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다.

<일주일의 학교>에 등장하는 학교는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 학교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에 폭 빠지게 된다. 그리고 각각의 학교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 학교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각 학교가 지닌 매력에 폭 빠져서 책을 읽는 아이들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게 만든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에서 아이들이 펼치는 사건과 사고들의 이야기와 각 학교별 비밀이 궁금하신 분들은 꼭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추천해본다.

이 책의 일주일의 학교는 특별하게 보이지만 어쩌면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전혀 다르지 않다. 장소는 매일 바뀌지만 현실에서처럼 <일주일의 학교> 이야기 속 아이들은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하고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어른들의 모습은 현실과는 달리 조금 특별하다. 책 속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누군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일과 학기 싫은 일이 무엇인지를 듣고, 존중하며 기다려준다. 그리고 가르치지만 평가를 하지 않는다. 우리 어른의 역할은 바로 아이들이 스스로 위험에 쳐하게 되면 미리 알려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실수를 하였을 경우 그 실수를 만회하거나 엉망이 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역할이 아닌가 싶다.

현실의 학교는 너무나 획일화된 곳으로 여겨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발휘하거나 상상력을 마구 펼치기에는 힘든 곳으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책 속의 일주일의 학교는 우리가 학교에 대하여 가졌던 고정관념들을 깨트린 곳으로 날마다 다른 학교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이야기 속 아이들도 자신과 다를바가 없음에 안심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야기 속 아이들이 실패에 주눅들지 않고 다시 해야할 일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도전하는 모습에서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용기를 얻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학교라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친구들이, 선생님이, 그리고 내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메세지를 아이들이 읽어내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있다는 것 말이다. 매일 다른 학교를 꿈꿔보고, 그 안에서 벌어질 사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난 <일주일의 학교>, 아마 많은 아이들이 아주 많이 좋아하는 책이 될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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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4 - 의사의 길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김수지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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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는 꽤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으로 지방 소도시의 작은 병원을 배경으로 따뜻한 인간애의 기적을 보여주는 장편 소설이다. 도쿄TV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한 이 시리즈는 현직 의사가 그리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받아온 듯하다.


'24시간 365일 진료'를 내세운 혼조병원에서 근무하던 구히하라 이치토는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시나노대학 의학부에 들어간다. 소화기내과의로서 근무하며 대학원생으로서 연구도 진행해야 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환자를 끌어당기는 구리하라'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전히 그에게는 환자가 끊이지 않았고, 환자의 수보다 의사의 수가 더 많은 대학병원에서도 변함없이 의사로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학병원이란 참으로 신기한 공간이다.

일본 의료에서 기술과 지식, 인사의 정점에 군림하는 이 거대한 조직은 실로 기괴한 양상을 띠고 있어 갖가지 의미로 일종의 미궁을 형성한다.

일단 환자수보다 의사 수가 더 많다.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의료 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수, 준교수, 강사에 조교, 외국인, 대학원생, 레지던트, 비상근에 아르바이트까지. 직함만 해도 무수히 많은 위치에 저마다 대량의 의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중략)

한편 이렇게나 거대한 조직에 무수한 의사가 있으니 검사나 치료가 물 흐르듯 진행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의사들은 오만 가지 상황에 휘둘려 부질없이 병원 안을 우왕좌왕하는 것이 현실이다. 상황과 도리와 명분과 긍지 따위가 그물코처럼 둘러쳐져 있고 거기에 얽매인 의사들은 매일같이 한숨과 욕설을 퍼부으며 뛰어다니기 바쁘다.

본디 의료라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터무니없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난폭한 초석 위에 부조리와 불합리와 모순이라는 세 개의 기둥을 세우고 권위라는 커다란 지붕을 얹은 곳이 대학병원이다. 애초에 기초도 기둥도 뒤틀렸는데 지붕만 유별나게 거대하니 곳곳이 비뚤어져 그야말로 일그러진 구조물이 되어버렸다.

- p35~p36

 제4내과의 3팀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이치토는 정의감에 불타는 후배 의사들에게 공감하며너도 모순투성이인 대학병원이라는 조직에 나름 순응하려고 한다.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시나노 대학병원에는 여러 종류의 의사가 존재한다. 사고방식이나 삶에 대한 태도, 가치관이 전혀 다른 의사들이 환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하는 곳이기에 서로 간의 충돌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그러진 구조물, 권위의 틀이 견고한 대학병원이지만 이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각각의 사연으로 하루를 살아내며,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자 한다. 이 책의 주인공 이치토는 의사라는 중압감이 넘치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의사라면 환자를 제일 중시여겨야 한다는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있다.


"최선을 다해 환자 한 명 한 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게 없어. 하지만 잘못되지 않은 것이 통하지 않는 세계가 확실히 있지."

 p87


 주인공 구리하라 이치토는 제아무리 모순투성이인 대학병원이라 할 지라도 모든 가치의 중심에는 환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의 앞에 29세의 췌장암 환자인 후타쓰기 씨가 나타난다. 그녀는 췌장암 환자이기도 하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며 9살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녀는 원래 외과에서 치료받았지만 외과 교수의 무표정한 표정으로 수술은 불가능 하다는 말에 충격을 받고서 구리하라 이치토에게 진료를 받기를 요청한다. 알고보니 구리하라 이치토가 혼조병원에 근무할 때 그녀의 아버지를 치료해 준 적이 있었고, 그녀는 그 때 구리하라 이치토가 좋은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의 주치의가 된 구리하라 이치토. 29세의 췌장암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힘겨운데, 그녀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어한다. 그러다보니, 환자를 중시하는 구리하라 이치토와 절차와 권위를 중시하는 대학병원의 여러 의사와 제도에 충돌이 자꾸 생기게 된다. 과연 구리하라 이치토는 어떻게 그 충돌들을 해결해갈까.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장담컨대 구리하라 이치토가 충돌들을 하나하나 처리해가는 과정은 꽤 감동적일 것이다.


 후타쓰기가 골수 억제 부작용이 나타나 딸인 리사는 엄마의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머물다가 구리하라 이치토와 잠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그 때 리사는 구리하라 이치토에게 엄마가 나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9살인 아이의 눈에도 엄마의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리사에게 진심을 다해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그 약속으로 리사는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이 두렵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예상처럼 후타쓰기의 치료는 순탄치 않다. 그렇지만 그 과정 속의 구리하라 이치토의 태도는 눈에 띌 정도로 감동적이다. 환자의 중심에서 생각하고, 그의 가족들이 더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의 태도에 어찌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쩌면 대학병원에서 꼭 지켜야 할 절차와 규칙에 위배될 지라도 환자 중심에서 환자를 위해 그 절차와 규칙을 조금 벗어나 행동하는 구리하라 이치토의 모습이 눈에 거슬리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환자 중심 철학에 꽤 신뢰가 갔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꺼라는 것도 알고, 환자가 머지않아 죽을 꺼라는 것도 알지만 매순간 환자 중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울컥하면서 인상적이었다.


 사실 나는 <신의 카르테>가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1~3권은 읽지 않았다. 구리하라 이치토의 그 전 이야기들을 모르지만 이 책에서의 그의 이야기만으로 나는 팬이 되고야 말았다. 의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모든 경우의 수를 환자에게 이야기하여 의사에게 책임이 되도록 덜 오도록 말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모든 환자를 처치함에 있어 생명을 다룬다는 중압감에 책임이라는 무게까지 더해지면 의사들이 너무 힘들다는 것은 알기에 그렇게 밖에 할 수 없구나 싶어서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래도 현실에서 구리하라 이치토와 같은 의사가 존재한다면 나와 나의 가족이 아플 때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그가 이 책 내내 이야기하는 '환자 중심'이 더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남들이 뭐라 하든 그대는 그대의 길을 가"는 구리하라 이치토의 이야기가 완전히 몰입하여 단숨에 읽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감동하고 또 감동하고, 구리하라 이치토의 왕팬이 되어버렸다.


 24시간 365일을 쉬는 시간 없이 돌아가야 하는 병원을 배경으로 하다보니 각 에피소드별 주제와 소재가 무거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에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안에 각각의 인생이 담겨 있어서 훈훈하고 따스함이 가득하다. 그 따스함은 읽는 이에게도 진심으로 전해져 읽고 나서도 긴 여운과 감동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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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사계절 동시집 19
박혜선 지음, 백두리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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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jinick77/222321073962


<바람의 사춘기>라는 제목과 표지 속에 흐날리는 민들레 꽃씨들이 내 마음도 같이 흔들리게 하는 책이다. 딱히 이유는 없지만, 왠지 답답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하루 종일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 이 책의 시들이 위로를 보내는 듯하다.


표제작인 <바람의 사춘기>는 지금 사춘기에 빠져있는 아이들도, 사춘기를 겨우 지나온 아이들도,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된 사람들도 모두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사춘기 때 마음이 바로 딱 이렇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그냥 누워서 자고만 싶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던지 다 잔소리처럼 들린다.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한 비난 같다. 짜증이 난다. 하지만 뭐 하나 하기가 귀찮은... 그 마음들을 어쩜 이리도 잘 표현했는지..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 없어서 더 답답한 그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렇게 그 마음들을 너무 잘 표현해서, 나무에 누워 있는 아이의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받는 듯하다. 그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그 마음을 어루어 만져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그리고 <집에만 있으려니>는 코로나로 인한 가정에서의 모습이 딱 이렇지 않을까 싶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지치고 힘들다. 올해는 그나마 작년에 비해 나아진 것에 오히려 감사해지는 요즘, 언젠가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지 하고 희망의 끈을 잡아 본다.


힘들고 외롭고, 속상한 나의 마음을 위로하는 <나에게 사과하기>. 선생님께 혼나서 속상하고, 오답 노트 쓰느라 팔 아프고, 피구에서 공을 맞아 아프고, 친구들한테 비난 받아 속상하고, 학교에 혼자 가고 혼자 와서 외로고 힘든 나의 마음에게 누구를 원망하거나 자신을 탓하기 보다는 먼저 사과하고 위로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는 나 자신을 다독인다. 이 시를 통해 나도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사과해본다. 그렇게 나를 같이 다독여본다.



<나는 세탁소에 간다>에서처럼 구겨진 마음을 다리고, 쫄아든 가슴을 펴고, 얼룩덜룩 묻은 눈흘림을 닦아내고, 여기저기 달라 붙은 말 먼지를 털어내며, 깊어진 한숨과 늘어난 걱정을 맡기는 세탁소가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하다. 그 곳이 어디든 나의 마음을 세탁해 줄 수 있다면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을까. 괜찮다는 말로 포장하며 구겨진 체로, 쫄아든 체로, 한숨과 걱정을 마음 속에 쌓아두지는 말자. 


맨날 밟기만 하던 신발이 다른 신발에게 찍힌 자국을 이야기한 <세상의 쓴맛>. 그 사람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다른 이의 입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이 바로 그 입장에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싶다. 신발 등에 선명하게 찍힌 자국이 왠지 도장 같아서 더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는 아이의 말에 마음에 맴돈다. 혹여라도 내가 다른 이에게 그 도장을 찍은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바람의 사춘기>는 십여 년간 어린이들이 직접 쓴 시를 읽고, 동시 교실을 운영하며 어린이와 시로 소통해 온 박혜선 시인이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을 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시기이지만 모두가 같은 마음이지는 않다. 각기 다른 이유의 이야기를 시인은 잘 담고 있으며 가르치기 보다는 소통하며 불안정하고 힘들고 외로운 그 마음들을 다독여준다. 소리내어 말하지 않지만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 누구에게도 하기 싫은 말들, 마음 속에 간직한 그 말들을 이 책은 시로 하나씩 하나씩 담고 있다. 그렇게 마음 속에 담겨진 말들이 시가 되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마음의 어루만짐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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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된 아이 사계절 아동문고 99
남유하 지음, 황수빈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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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푸른 머리카락>으로 제5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은 남유하 작가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동화집이라고 한다. 총 6편의 동화가 실려 있는 이 책 속의 아이들은 제각각 마음 속에 그림자를 드리고 있다. 어쩌면 기묘하기도 하고, 어쩌면 신박하기도 하며 감동적이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이 책에 나는 폭 빠져버렸다. 물론 우리집 아이들도 함께.


남들과 똑같아 지기 위해 나의 일부를 없애고자 하는 아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교실 한가운데에서 차라리 나무가 되어 버린 아이, 원통 안에 분홍색 뇌만 남은 엄마와 함께 춤추기를 꿈꾸는 아이, 마녀의 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에게 불타버리는 아이, 아빠와 엄마의 불화로 아빠, 엄마의 가슴에 난 구멍을 발견하고 점점 커져가는 구멍을 감추어주고 싶어하는 아이, 가장 사랑받는 단 한 명이 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아이. 총 6편의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참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아이들 마음 속에 숨은 외로움과 불안, 편견, 그리고 간절한 소망을 남유하 작가는 특유의 상상력과 예민한 시선을 바탕으로 독특한 환상 동화로 만들어내었다. 차별과 혐오가 나은 참혹한 현실을 비극적이면서도 서늘하게 묘사하여 더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하며 놀랄 만큼 아름답게 이어가는 이야기가 위로가 되기도 한다. 6편의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무서운 것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편견과 차별, 혐오들로 만들어지는 현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6편 모두 신박하면서도 정말 인상적인 이야기지만 그 중 제일 가슴에 콱 박혀버린 <온쪽이>와 <나무가 된 아이>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오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습관처럼 거울 모서리에 서서 오른쪽 반만 비춰봤다.

눈 하나, 귀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나. 그제야 나도 남들처럼 보였다.

"수업 시작한다. 자리에 앉아."

반장이 내 옆에 지나가며 말했다. 한 다리로 바닥을 짚는 소리가 통통, 경쾌하게 울렸다. 반장은 오른쪽 반만 있는 사람, 오른사람이다. 나는 두 개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저벅저벅 두 다리로 걸어 창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 무리 지어 떠들던 아이들도 콩콩, 가볍게 걸어 착지하듯 자리에 앉았다. 우리 반 아이들은 열일곱 명, 나를 제외한 열여섯 명의 아이들은 둘씩 짝을 지어 앉아 있다. 짝이 없는 나는 항상 뒷자리에 앉는다. 그래서 내 책상은 교실 뒤편에 떠 있는 섬 같다.

p8

<온쪽이>속 세상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눈 하나, 귀 하나, 팔 하나, 다리 하난. 반쪽만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인공 수오는 윰쌍둥이로 태어나 양쪽이 다 있는 온쪽이다. 그래서 늘 수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달리기는 잘하지만 반쪽이 아니라 온쪽이라서 결코 '한 쌍'이 될 수 없고 결혼도 할 수 없다. 그런 수오를 아무런 편견없이 그저 수오로 바라보는 사람은 오직 엄마뿐이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아빠는 수오를 특수학교에 보내길 주장하지만 엄마의 주장으로 수오는 일반학교에 다니게 된다. 하지만 수오는 없는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했다. 어쩌다 생긴 친구마져 멀어져 버리고 혼자로 생활하는 수오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반쪽을 잘라버리는 수술을 결심한다.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게 된 수오. 정작 오른손 잡이지만 심장이 왼쪽으로 치우쳐 있기에 왼쪽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 앞에 수오는 이상했다. 엄마 처럼 오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아빠나 형처럼 왼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그것은, 슬픔이었다. '정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깊은 슬픔을 느꼈다. 남들에게 비정상으로 느껴지는 내가 내게는 정상이었다. 수술을 통해 남들에게 정상으로 보이는 내가 된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비정상이라고 느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왼쪽도 오른쪽도 잘라 내고 싶지 않다. 
p23

다른 사람들 눈에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반쪽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니. 수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정상으로 보일지 모르나 스스로 자신을 비정상으로 느낄 생각할 하니 수오는 너무나 슬프다. 과연 수오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 자신의 반을 잘라내고 정상으로 사는 게 수오의 최선이었을까. 결론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반쪽이 세상에 온쪽인 사람이 비정상이라는 이야기의 설정이 뒷통수를 팍 때리는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수오가 겪게 되는 그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너무나 세밀하게 담고 있어서 수오 마음 속의 외로움과 슬픔이 절절하게 전해졌다. 그래서 수오가 정상을 생각할 때마다 슬펐다는 말이 자꾸 울컥하게 만들고 마음에 오래 남는다.


필순이가 나무가 됐다.

2반 현오는 무당벌레가 되어 날아갔고,

3반 수아는 청설모가 됐다던데,

우리 반 필순이는 나무가 된 것이다.

p26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무가 된 아이>에서 화자인 나는 준서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필순이가 교실 한가운데에서 나무가 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의 기이한 변신은 오직 아이들의 눈에만 보인다. 어른들은 변신한 아이들의 존재마저 잊은 듯이 생활한다.


안 그래도 하얀 준서의 얼굴은 하얗다 못해 연노란 빛이 돌 정도였다. 나는 가늘게 떨리는 준서의 턱을 보았다. 하지만 곧 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패거리를 보며 말했다.

"진짜 센스없네. 나무라니."

"코끼리로 변하지 않은 게 다행이잖아."

패거리 중에서도 준서와 특히 친한 도윤이가 말했다.

"차라리 코끼리면 밖으로 내보내면 되게."

은우는 준서보다 도윤이와 더 친하다.

"여러 명이 들어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지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말했다. 그런 필순이의 발은 이미 바닥을 뚫고 단단히 뿌리를 내린 뒤였다.

p30

차라리 코끼리로 변하면 밖으로 내보내면 되지만 나무가 된 필순이는 교실에 뿌리를 내린다. 그 모습이 더욱 못마땅한 아이들은 가지를 꺾지만 나무는 핏빛 진액만 흘리면서도 무럭무럭 자라 창문과 천장을 뒤덮는다. 햇빛조차 들지 않는 교실에는 어둡고 붉은 그림자만이 드리우게 된다.


<나무가 된 아이>에서 아이들이 나무를 훼손하는 장면은 세밀하면서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 그동안 필순이가 겪었을 아픔과 외로움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그렇게 필순이의 아픔과 외로움을 더욱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화자이자 관찰자의 나가 필순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단지 호기심이 아니라 필순이를 돕지 못한 슬픔이 담겨서가 아닐까.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유없는 폭력과 다른 아이들의 방관과 동조의 모습들은 아이들을 지켜야 할 존재가 아무도 없음이 안타깝게 만든다. 화자인 나는 아마 다음 폭력의 대상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저 지켜보기만 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면서 작은 힘이라도 필순이를 돕고자 한 나의 행동에 필순이가 '고마워'라고 말한 것처럼 느꼈다는 마지막 부분이 외로운 아이에게 있어 자기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단 한 명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아이들 마음 속에 담긴 그림자들을 판타지 동화로 만들어 낸 이 책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어른들과 똑같은 감정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6명의 아이들 마음속에 담긴 그 그림자들은 때로는 가슴 아프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분노를 유발하기도 하며, 너무나 가슴 아파 안아주고 싶다가, 같이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 속의 세상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면서 앞으로 우리 어른과 아이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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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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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정하는 신경숙 작가의 신작. 창비 사전 평가단으로 선정되어 가제본판으로 만나니 더 뜻깊다. 꽤 두꺼운 두께의 이 책에 며칠동안 나는 폭 빠져 있었다. 아버지와 꽤 가까운 딸이라서 더더욱 주인공의 마음에 이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상실을 통해 비로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그 과정들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는 내내 신경숙 작가의 삶에 대한 통찰력과 철학, 그리고 가족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가 자꾸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내가 아버지에게 당신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응수하자 아버지는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살아 냈을 뿐이라고.

<아버지에게 갔었어>에서..

책을 넘기자 마자 나오는 이 글귀 중 '살아냈을 뿐이라고'라는 아버지의 말이 책을 읽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야 말았다. 살아냈을 뿐이라는 그 말에 왠지 아버지의 고된 인생이 담겨 있는 듯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이 책은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J시에 홀로 남게 된 아버지를 보러 가게 된 주인공 '나', 헌이가 5년 만에 기차에 오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나는 자신의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딸을 잃었다. 그 이후 나는 가족과도 거리를 두고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엄마를 배웅하고 나서 울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아버지의 안위에 대한 염려와 그리움이 겹쳐서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속의 아버지는 보통의 한국 아버지가 가진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아니다. 앞선 형제들을 전염병으로 모두 잃고나서 장손이 된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사서삼경을 손수 가르쳤으며 한국전쟁에 장손이 아버지가 전쟁에 참가해 혹여라도 목숨을 잃을까봐 아버지의 작은 아버지는 아버지의 손가락을 잘라내어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다. 그 트라우마는 아버지를 괴롭혔으며 친구들보다 일찍 결혼을 하고서 당신이 책임을 져야할 자식들을 보며 간혹 무섭기도 했지만 그것이 도리어 살아갈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셋 아들 뒤에 처음으로 태어난 딸이 너무 좋아서 가족 사진을 찍고 유독 예뻐하였고 6남매 모두를 한명 한명 사랑으로 대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의 대학 졸업 사진을 하나씩 전시해 놓고서 바라보며 자신의 인생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이 책 속의 아버지 인생의 서사는 한국 전쟁부터 돈을 벌기 위해 서울에서 보게 된 4.19혁명, 자식 여섯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소 값이 폭락하자 그 소를 타고 참여했던 80년대 소몰이 시위까지, 그 자체로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몇 년만에 J시에 도착하며 펼쳐진 J시의 풍경은 주인공 나를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한다. 주인공 나가 회상하는 과거의 시간 속 아버지는 그 시절의 아버지들처럼 힘든 가정형편에도 자식들이 가난을 느끼지 못하도록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 또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여느 아버지와 다른 점은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이다. 한없이 다정한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친정 아빠를 오버랩시켰다. 딸을 유독히 아끼는 모습이 너무 닮아서. 그래서일까 이 책 속의 아버지가 가만가만히 말하는 말씀들에 자꾸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하는 주인공 나는 아버지가 예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는다. 자다가 자꾸 어디론가 사라지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예전의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에 자꾸 나는 과거를 회상하고 아버지의 서사를 깊이있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주인공의 딸 이야기. '매일 죽을 것 같아도 다른 시간이 오더라.'라는 아버지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혀버리는 것은 아버지의 삶 역시 고되고 힘들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가 외출한 틈에 발견하게 된 폐가 방안 상자 속의 편지들. 특히 리비아로 파견하게 된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와 큰오빠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이 이 작품 속에 나와 있는데, 그 시절의 장남의 무게와 또 한 명의 아버지인 큰 오빠의 이야기가 자꾸 자꾸 뇌리에 남는다.


그 눈 내리는 겨울밤,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엄마가 내놓은 구운 김에 밥을 싸서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차례로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여러번 글로 썼다. 그때그때마다 비유가 달랐겠지만 우리는 무슨 참나무 숲의 딱따구리 새끼들처럼 아버지가 싸준 김밥을 쏙쏙 받아먹었다고. 그때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김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으나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겨울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김에 싸준 밥을 받아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큰오빠가 그 글이 실린 지면을 패널로 만들어 내게도 보내주고 여기에도 가져와 작은방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아버지가 읽고는 그때 행복했냐?고 물었다.

- 예, 아버지.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 무서우셨어요? 뭐가요?

내가 의아해서 묻자 아버지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 그것이 설명이 되냐?

아버지가 말을 거두려 하자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 너그들이 먹성이 얼매나 좋으냐. 양식 걱정 없이 살 게 된 지가 얼마나 되간? 오늘 저녁밥 먹음서 내일 끼니 걱정을 하며 살었는디. 밥 지을라고 광으로 쌀 푸러 갈 때 쌀독 바닥이 보이는 때도 있었는디. 그 가슴 철렁함을 누가 알겄냐. 쌀독은 점점 바닥을 보이는디 먹성 좋은 자식 여섯이 마구 달려들어봐라, 안 무서운가......

아버지가 삼킨 말을 대신하는 동안 무거워진 생각을 털어내듯 엄마는 곧 생기를 되찾곤 했다.

- 무섭기만 했으믄 어찌 매일을 살겄냐. 무섭기도 하고 살어가는 힘이 되기도 허고......

<p194~p195>

먹성 좋은 6남매를 모두 키워내기 위해 농사짓고 소를 키우던 아버지의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절절히 느껴지게 하는 대목이다. 당신의 자식들이 무섭기도 했지만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했다는 그 말이 부모라면 다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끼니 걱정은 이제 하지 않지만 부모로 온전한 한 인간을 키워내는 일은 늘 무섭고 두렵지만 그 아이로 인한 행복과 뿌듯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아버지가 6명의 자식 한명 한명에게 남기는 말들에 나는 결국 펑펑 울고야 말았다. 당신 삶의 마지막이 오는 것을 체감한 아버지의 그 마지막 말들이 그 동안 자식들을 한명 한명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며 살았는지를 너무 잘 표현해서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아버지를 개별적인 한 명의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버지의 늙음을 마음 깊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라는 이 책 속 큰 오빠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가고 나 또한 부모가 되어서야 당신들의 마음을 그제서야 이해하고 그 시절의 고됨과 힘듦을 제대로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그 어리석음이 당신들의 자식으로 우리를 살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한국의 근현대사에 걸쳐 인간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그 고난과 상실을 같이 경험하고서도 그 순간순간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의 인생에 누구라도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을 듯하다. 나의 아버지를 자꾸만 생각나게 하여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온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오래 동안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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