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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의 한국사 한 권 - 한 줄 코드로 재밌게 읽고 평생 기억하는
서경석 지음, 염명훈 감수 / 창비교육 / 2025년 7월
평점 :
얼마 전 방송인 서경석님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만점을 받고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익숙한 분이 자신의 전공 분야도 아닌 한국사에 성취를 이뤄내신 데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직접 쓴 한국사 책까지 출간하셨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호기심을 안고 펼쳐보게 된 책이 바로 이 책, <서경석의 한국사 한권>이다.
이 책은 단순히 연도와 사건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통적인 역사책과는 조금 다른 면모를 지녔다. 저자 특유의 이야기 전달력과 오랜 시간 축적해온 학습 노하우를 고스란히 담아 독자가 역사를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현대사까지 방대한 흐름 중에서도 꼭 알아야 할 장면만을 정제하여 담았으며, 그 안에는 저자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빛나는 설명과 비유, 그리고 핵심을 짚는 '한 줄 코드'를 더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또한 만화, 사진, 연표 등 다채로운 시각 자료가 함께 실려 있어 읽는 재미와 이해도를 높여준다. 한국사에 관심은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망설이던 사람에게 특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은 놓치지 않는 그야말로 한권으로 한국사를 정복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여느 역사책처럼 이 책 역시 구석기 시대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선사 시대 전문가'라는 다소 엉뚱한 선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 이어지는 설명을 보면 누구나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주먹도끼와 찍개, 한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그 유물 덕분에 구석기 시대는 왠지 친숙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그 지점에서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고대는 커녕 신석기 시대로도 넘어가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현실을 저자 특유의 유머로 유쾌하게 꼬집으면서 본격적인 역사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처럼 시작부터 재치 있는 문장과 현실감 있는 비유는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며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사를 누구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이끈다.
그리고 이어 구석기 시대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선사 시대의 구분부터 차근히 짚고 넘어간다. 도구의 발전을 기준으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로 나뉘며, ‘오래된 돌’의 시대인 구석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아직 옷을 만들 도구나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이용해 몸을 보호했고, 식사는 사냥과 채집을 통해 해결했다. 즉, 이동하며 살아가는 수렵·채집 생활을 했고, 동굴이나 막집 같은 임시 거처에서 생활했다. 도구는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를 주로 사용했으며, 대표적인 도구로는 주먹도끼, 찍개, 슴베찌르개가 있다. 이들은 사냥, 해체, 방어 등 다양한 목적에 활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연천 전곡리, 공주 석장리, 단양 수양개 등지에서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저자는 이 모든 내용을 위트 있는 표현으로 풀어내며 독자가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웃으며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각 장마다 핵심 내용을 ‘한 줄 코드’로 정리하여 오랫동안 기억에 남도록 이끌고 있다. 구석기 시대의 한줄코드는 구석기 시대로 시간 여행을 간 저자의 모습이 담긴 웃음이 절로 담긴 그림과 함께 실린 '월컴 구동막개'이다. ㅎㅎ
이 책에서 무령왕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인상 깊게 다가온다. 백제의 중흥기를 이끈 왕으로서, 무령왕은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행정을 정비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공주에 위치한 무령왕릉은 삼국 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과 조성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무덤이라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유산이다. 무령왕릉에서는 땅을 산 내용을 담은 ‘매지석’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도교적 사상과 결합된 종교적 행위로 해석되며, 백제가 당대 사상과 문화를 얼마나 폭넓게 수용했는지를 보여준다. 벽돌무덤의 형태는 중국 남조 양나라와의 교류를, 관재료로 사용된 일본산 나무는 왜(일본)와의 연결을 짐작하게 한다. 하나의 무덤을 통해 이처럼 다양한 국제적·문화적 연결 고리를 밝혀낼 수 있다는 사실은 문화재의 보존과 연구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저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 대전·충남 지역에서 무령왕릉으로 소풍을 갔던 기억을 회고하며, 당시엔 이러한 의미를 잘 몰랐던 점을 아쉬워한다. 이 대목에서 나 역시 깊이 공감했다. 실제로 문화재나 유적지를 마주했을 때, 그것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알고 바라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단순한 구경을 넘어 의미 있는 만남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배움이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깊이 남는다. 그렇기에 이 책이 어린이·청소년에게도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에 나 또한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단연코 저자만의 독창적인 암기법, ‘한 줄 코드’다. 복잡한 연도, 어려운 개념, 헷갈리기 쉬운 사건 이름들도 짧고 기발한 문장 하나로 정리해 주며 읽는 이가 자연스럽게 외우고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단순한 암기를 넘어 기억에 남는 체험을 누구라도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이 조선과 강제로 체결한 치욕적인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1876년)은 “칠욕(치욕)스러운 조약”이라는 말장난으로, 또 임오군란(1882년)은 “팔이(82) 밀린 월급 제대로 줘!”라는 생생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렇게 재치 있는 ‘한 줄 코드’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과 연도를 머릿속에 단단히 고정시켜 준다. 이렇듯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누구라도 단순한 역사 지식을 넘어 기억의 즐거움과 학습의 자신감을 함께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