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냅니다
김민지 지음 / 샘터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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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지 전 아나운서의 책이라서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책이지만 제목을 그냥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는다. 이 책은 김민지 전 아나운서가 처음으로 낸 에세이로 화려한 방송인의 삶을 내려놓고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나로 살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담아내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라는 타이틀보다 먼저 한 사람의 삶으로서 집중하려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많은 공감이 되었고 그런 모습들이 이 책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특히 화려하거나 극적인 문장 대신 꾸밈없이 쓰인 표현들이 오히려 진정성과 깊이를 더해 더욱 이 책과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특히 저자 소개 중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힘을 믿는 사람이며, 사람들이 서로를 아끼고 거두는 모습을 보면 별 수 없이 세상이 좋아하지는 사람이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저자에 대한 호감이 막 솟아났다. 진심을 바탕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조듬 더 따뜻하게 믿는 시선이 이 책의 문장 곳곳에 스며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집중해 읽었던 것 같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지상파 아나운서가 되기까지 3년간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깨달은 '언론인이 된다는 것은 말과 행동에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일이며, 반드시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는 부분이다. 말이 많고 수다를 좋아하던 소녀에서 수차례 탈락과 외면 속에서도 끈기 있게 방송 현장을 지켜내며 스스로의 무게를 알아간 저자의 성장 과정은 단순한 커리어 스토리가 아니라 깊은 성찰의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세상에 닿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겁이 났다는 고백과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사람으로서 먼저 단단해지려는 태도는 이 책의 진정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되었고 생각보다 저자가 훨씬 더 괜찮은 사람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엄마가 된 이후에야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 순간은 깊은 울림과 울컥한 감동을 가져다 준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는 운동회에도 못 오는 엄마가 야속했고 ‘꿈을 가지라’는 말이 엄마에게만 예외처럼 느껴졌고 고백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엄마는 매일을 트럭을 들어올리듯이 버텨냈고 허술해 보일 수 있는 그 하루하루가 결국은 온 힘을 다해 만든 사랑의 둥지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가 엄마의 고군분투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부분이라 나 또한 저자처럼 뒤늦게 엄마의 진심과 고군분투를 깨달은 어리석은 딸이라서 더욱 울컥해졌다.


그리고 저자가 결혼 후 처음으로 출연한 방송은 그를 친오빠처럼 아끼는 배성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다. 몇 년 만의 방송 출연에 긴장한 상태였던 저자는 인터뷰 도중 “자신만의 ‘부심’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는다. 예상치 못한 질문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혔고, 짧은 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전교 1등을 했던 순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했던 일, 힘든 준비 끝에 방송사에 입사했던 성취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망설임 없이 입 밖에 나온 대답은 바로 “제가 엄마라는 거요.”였다. 그 고백은 단순한 직업이나 역할의 자부심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서로 얼굴을 부비며 바다가 된 듯한 감정을 느꼈던 그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엄마로서의 삶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도 따뜻한 자부심이라는 고백은 누구보다 깊이 울림을 주었다. 나 역시 태어나 내가 가장 잘한 일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일이라 생각하기에 이 장면은 더욱 깊이 공감되었다. 세상이 여전히 분발하라 말해도 내가 아이들의 엄마로 살아내는 하루하루는 결코 작거나 하찮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어 큰 위안이 되었다.


책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제목 그대로, 반짝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풀어낸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김민지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듯 싶다. 유명한 축구 선수의 아내, 방송인이었다는 외적인 타이틀보다 그 속에 있는 ‘사람 김민지’의 진심과 꾸밈없는 시선을 통해 우리는 그가 보여주고 싶은 삶의 방향을 느끼게 된다.


특히 남편 박지성 선수가 책의 소개 글에 남긴 “민지가 쓴 글은 내가 아는 모습에서 가장 가깝다. 따뜻하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문장은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떠올릴 때 저자를 표현하는 가장 정확한 표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은 ‘반짝이지 않아도 잘 지내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빛나며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라 더 깊은 울림을 남기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빛은 거창하거나 눈부신 게 아니라, 조용하고 따뜻하고 단단해서 더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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