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직전, 맹자를 만났다 - 흔들리는 인생 앞에서 답을 찾는 53가지 지혜
판덩 지음, 유연지 옮김 / 이든서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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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큰 저력은 바로 나 자신이다

맹자가 가진 저력의 또 다른 원천은 바로 사람의 본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나쁜 사람이 많을까? 사람의 본성은 본래부터 선할까 아니면 악할까? 이것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당신은 어느 쪽을 믿을 것인지 선택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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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가 가진 저력을 생각하면서 <번아웃 직전 맹자를 만났다> 책을 읽었네요.

맹자의 성선설, 나 자신을 믿는 마음 ...

흔들리는 인생 앞에서 무엇보다 맹자도 '나 자신을 믿는 마음, 나의 선택, 나의 마음...'이 중요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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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라, 무엇을 '낙'으로 삼을 것인가?

맹자의 '초심'은 나는 대체 이 일을 왜 하려는 것인지, 나는 이 일을 맡을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네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낙'으로 삼을지 평생 고민을 해야 하잖아요. 그 고민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게 바로 맹자는 이 초심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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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조 학생들에게는 한 학기 동안 사진을 많이 찍을수록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고, 두 번째 조 학생들에게는 사진을 많이 찍을 필요 없이 가장 잘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점수를 주겠다고 말했다. ... 결과 우수한 성적을 받은 작품의 대부분은 첫 번째 조 학생들의 것이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

내면의 힘도 마찬가지에요. 이 실험의 결과를 보듯이 맹자는 행동을 변화시키는 '내면의 힘'은 연습을 많이 해 볼수록 그만큼 실력도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낫다.'

마음만 있어도 실천, 행동을 안하면 변화시킬 수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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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직전, 흔들리는 인생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생각만 할 뿐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는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럴때 아주 작은 습관처럼 움직여보는게 좋을꺼 같아요.



맹자도 '나'부터 챙겨야 한대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채워야 타인의 사랑도 채워진다.'

맹자의 또 다른 저력 성선설과 연결해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 '잘 사는 것'을 이해하게 되네요.

"인생을 살면서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바로 잘 사는 것이다. 내가 잘 살아야 남들도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과 함께 있고 싶고, 당신과 같은 모습이 되고 싶어 할 것이다."



살아감에 있어 '선택'이 참 중요하잖아요.

이 '선택'만 잘해도 우리는 인생을 잘 살 수가 있지 않을까요?!

번아웃 직전, 인생이 흔들릴 때 특히 더 이 '선택'이 중요해요!!!

선택의 지혜, 맹자는 말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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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반의 틈새 속 합을 찾아라

수많은 상황 사이에 꼭 대립만 존재하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꼭 모든 문제를 대립 구도로 놓고 볼 필요가 없다.

이분법의 함정을 피하기 위한 '중도'의 저력에 대해 맹자는 말해주네요.

그리고 정과 반의 틈새 속 합, 중도 만큼이나 중요한게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갈대처럼 흔들려라' 맹자의 말이 오래 남더라구요.



정과 반의 틈새 속 '합' , 적절히 조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는 물을 예로 보여주네요.

거친 바위 사이도 유연히 흐르는 '물'같은 저력!

멍 때리기 좋아하는데 특히 물 떨어지는 소리, 파도 멍때리면서 보는 뷰맛집 카페 자주 가요.

맹자가 말하는 물의 저녁은 보는 것만으로도 심신안정이 되네요. ㅎ



삶을 변화시키는 '긍정'의 저력 다들 아시죠. ^^

나를 성장시키고,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바로 '긍정'이다. 아무리 험난한 상황에 빠져 있어도 '긍정'의 언어로 기운을 주는 사람을 가까이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맹자가 말하는 본질은 시대를 막론하네요.

-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달라지려는 용기를 낼 수 있다.

- '불확실성이야말로 삶의 정상적인 상태다'

- 실수가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둔함

우리가 경계해야 할 기본 마음 가짐이 이런게 아닐까 싶네요.



​

"선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이런 말 잘 쓰나요?

맹자는 선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기적이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실 선한 마음에 대해 맹자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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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측은지심의 저녁, 타인의 시선을 내치는 내면의 고요함이라는 저력, 인생의 풍요를 주는 존중의 저력, 주변을 변화시키는 공감이라는 저력, 좋은 사람으로 이끄는 선행의 저력, 내면의 당당함을 쌓는 치양지의 저력, 세상 어디든 존재하는 가치의 저력, 언제든 끌어낼 수 있는 내면의 즐거움이라는 저력 ┘



나는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까? 성장의 방향의 기준점은 어디에 둬야 할까?

번아웃 직전일 때, 인생이 흔들릴 때 늘 자신에게 질문하고 또 하는 질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럴 때 맹자가 말하고 있는 이 방향 어떨까요? ^^

┌ 복잡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유연함, 세상에 맞서 견디는 내면의 단단함,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꾸준함, 탄탄한 삶을 만들어 주는 근본, 무두에게 갖춰진 천부적 재능 노력, 1%의 가능성에도 도전하는 열린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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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좋은 말을 읽으면서, 읽고나서 어떻게 할까요?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와요.

┌ 사람은 특정한 방법을 따르면서 지식과 경험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배움으로 얻는 바가 생겨야 한다. 자기 내면에 지식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그 지식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

세상을 보는 식견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가 책을 읽는 것인데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려주는 문장이라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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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 미래의 나의 고민들에 대한 해답은 아니더라도 방향을 가르쳐주고 있어요.

그래서 <번아웃 직전, 맹자를 만났다>책 속 '마음'에 대한 지혜들이 더 나에게 와닿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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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내면이라는 커다란 무기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책을 읽고나니 한발자식 다가갈 수 있게 디딤돌이 생긴 기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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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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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를 구워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왜 빅터 프랭클을 읽어야 할까요?

시련은 운명이 던진 질문이며, 삶은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라면...

빅터 프랭클의 메세지는 지금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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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흔들림에도 통째로 무너지는 경우는 왜 일까?

빅터 프랭클은 그렇게 커다란 시련을 겪었지만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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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만 읽었는데도 '왜?'하면서 물음표가 굉장히 많아지네요.

스스로 구원이 되길 나도 바라니까 책을 쭉~~~ 읽어보리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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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말한다.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회사가 나를 지치게 했고, 가족이 나를 화나게 했고ㅡ 그 사람이 나를 망쳤다고. 자극은 분명히 외부에서 온다. 회사의 야근, 가좋ㄱ의 비교, 그 사람의 무책임,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자극이 내 안에서 어떤 반응으로 번역되는가, 그 번역의 권한은 결국 내게 남아 있다. ┘

나는 자극이 내 안에서 어떤 반응으로 번역하는지. 그 번역의 권한을 내가 쥐고 있을까?

해답을 찾지 못해도 질문을 하면서 조금씩 나를 알아가네요.

​

" 오늘 나를 흔들 자극은 무엇이었고, 나는 거기에 어떻게 응답했는가. 응답한 그 방식은 정말로 내가 선택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늘 해오던 자동 반응이었는가."

잠들기 전 3분만 생각해보려고 해요.

짧지만 나를 만나는 시간이네요.



┌ 프랭클은 수용소의 막사를 틈틈이 지나며 절망에 빠진 다른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빵 한조각마저 기꺼이 내어주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모두가 가스실의 공포에 떨며 환경과 운명을 탓하던 그 시기에, 그들은 다 한 번도 좀엄을 포기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통을 모르거나 둔감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참혹한 현실을 보고 있었다. 다만 그 현실 앞에서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수용소의 철조망을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곁에 쓰러진 동료에게 건넬 수 있는 온기는 무엇인가. 그들의 질문은 늘 자기 안쪽을 향해 있었다. 그가 특별히 강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태도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



태도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삶의 저자가 된다는 뜻이다.

┌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 풀려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어쩌면 영영 풀려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문임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 끝없음 자체를 인정한 위에서 의미를 세웠다. 언제 끝날지 모르므로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오늘을 산다, 그렇게 매일을 새로 시작했다. 그것은 낙관 아니라 직시였다. ┘

​

어느 날 갑자기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람, 배급된 빵을 담배와 바꿔 피우고 그대로 누워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은 며칠 안에 죽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노동도 추위도 굶주림도 아니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더 이상 자기 삶에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그 마음, 더 이상 내일을 향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 그 상태였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이런 동료들을 보면서 두려웠다고 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모습을 현대 사회에서 자주 마주치곤 하더라구요.

"모든 것을 빼앗겨도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남는다"

태도를 선택할 자유! 굉장히 오래 머리 속에 남는 문장이었어요.



프랭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강한 사람의 신화가 아니다.

┌ 우리는 자주 정반대로 산다. 큰 이유를 찾기 위해 작은 이유들을 자꾸 지워나간다. 인생의 목적을 찾겠다며 오늘 해야 할 작은 일들을 미룬다. 거대한 의미를 발굴하겠다면 눈앞의 사람을 소홀히 대한다. 의미는 그렇게 오지 않는다. 의미는 작은 응답들이 쌓여서 형성된다. 발견하는 만큼만 만들어지고, 만드는 만큼만 발견된다. ┘

나를 발견하고 멈추게 되네요.

발견하는 만큼만 만들어지고, 만드는 만큼만 발견된다는 이 문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오늘 해야 할 작은 일들 미뤘던 적이 꽤 있거든요.




우리는 종종 삶의 과제 앞에서 완벽한 때를 기다린다. 충분한 재력이 모이면, 상황이 더 안정되면 그때 진짜 내 삶의 몫을 감당하겠다고 유예한다. 그러나 프랭클은 그런 완벽한 조건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남는다" 앞에서 쓴 문장과 "운명은 바꿀 수 없어도 운명을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는 일맥상통 해요.

운명 앞에서 나는 무엇을 골랐는가. 거기에서 사람의 무늬가 결정된다.

나는 내 삶에서 어떤 태도로 임했는가? 나는 무엇을 골랐는가? 나라는 사람은 어떤 무늬를 지녔을까?

해답을 찾는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통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네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상황이 나를 흔들도록 두는 대신, 내가 상황을 받아내는 방식을 바꾸는 것.

말은 참 쉬워요. 근데 잘 안된다는 거 ㅜㅜ

​

태도를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로 옮겨놓았네요. 태도는 결심이 아니라 반복이라는 말에 공감 200%!!!

태도를 바꾸겠다는 말은 결국 행동의 가장 작은 단위를 바꾸겠다는 말과 같아요.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고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태도를 바꾸겠어요. 아니 반복된 행동으로 실천해보려구요.

┌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하루, 이 사람, 이 일이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응대하는 일, 오늘 내가 맡은 작은 일을 끝까지 마치는 일, 오늘 내가 쓴 한 문장에 거짓을 섞지 않는 일. 이것들이 모여 자아가 된다. 자아는 멀리 있지 않다. ┘



​

자기의 구원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 작은 전환을 끝까지 끌고 가는 일에 불과하다. 누군가 나타나 내 인생을 정돈해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

​

좋은 책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더 정확한 질문 앞에 사람을 데려다 놓는 책이라고 에필로그에 적혀있어요.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플랭클을 읽었다>이 책이 저에겐 더 정확한 질문 앞에 저를 데려다 놓네요.

해답을 얻으려고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한 게 아니라 질문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나 스스로를 찾고,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게 마음가짐을 다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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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혁명 : 알베르 카뮈 - 세상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된다 ㅣ 내면혁명 2
알베르 카뮈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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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외톨이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방인은 적이 아니다.

이방인은 단지 그 사회의 문법을 자동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그 사회의 사람들과 일하고, 식사하고, 대화한다.

그러나 그 사회의 가치관을 통째로 삼키지는 않는다. 한번 입에 넣고, 씹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부분만 심킨다. 나머지는 뱉어낸다. 이 씹는 행위, 이 분별의 시간이 한 사람을 이방으로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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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 <시지프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읽었던 책이라 반갑기도 하고, 내가 그때 물음표를 쳐놓은 부분의 이야기도 다시 읽게 되어 감격스럽네요.

알베르 카뮈 <내면혁명> 책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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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에서 검사가 가장 길게 추궁한 것은 그가 어머니의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살인보다 감정 문법의 위반을 더 무거운 죄로 다룬다.

...

뫼르소가 삼뜩한 인물로 다가오는 까닭은 결코 잔인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만적인 연기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슬프지 않을 때 슬픈 척하지 않는다.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답한다. 결혼하자는 제안에 원한다면 그러자고 말한다. 이 무미건조한 정직함이 사회를 격분시킨다. ┘



​

뫼르소는 우리에게 영웅이 아니다. 모범도 아니다. 그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 서서 한 사람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 내가 지은 표정 중 몇 개가 정말 내 것이었는가. 오늘 내가 한 말 중 몇 마디가 정말 내 입에서 나온 것이었는가.

┌ 뫼르소의 재판 과정을 떠올려 보자. 그는 거짓 눈믈을 흘리며 사회의 도덕적 판사들에게 이해받고 용서받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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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미래의 보상과 무관하게 오늘이 이미 충분한 자세

┌ 현대인은 결과에 집착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산출된 성과만을 맹목적으로 갈구한다. 과정은 견디는 것이고, 결과는 보상받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은 늘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결과는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 구조 안에서 삶의 대부분은 견뎌야 할 무엇이 된다. ┘

카뮈의 시즈프를 다시 불러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

현대인은 실패를 거대한 사건으로 만든다. 한 번의 탈락, 한 번의 거절, 한 번의 평가가 인생 전체를 정의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카뮈는 묻는다. 누가 그 한 번의 사건에 그토록 큰 무게를 부여했는가? 자신이다.

아무리 처참하게 한 골을 내어주더라도 골키퍼는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즉각 무릎을 굽히고 다음 공의 궤적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이 골키퍼의 자세를 보라.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다. 매번 일어서는 연습이다.

카뮈가 말하는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다.



​

카뮈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의 문장이 아니다. 명령의 문장이다. 그가 행복하다고 우리가 결론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왜인가? 행복은 결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 행복은 돌을 미는 그 근육의 긴장 속에 있다. 땀이 흐르는 등의 감각 속에 있다. 발바닥이 자갈을 누르는 그 압력 속에 있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거기에서만 발생한다. 정상에서가 아니라 산비탈에서. ┘

​

시즈프를 보면서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왜 하필 나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이 바뀌는 순간, 한 사람의 자세가 바뀐다. 자세가 바뀌면 행동도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카뮈는 이걸 보여주고 있어요.



​

'왜 하필 나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이 바뀌면 절대 바깥을 향한 눈빛을 보내지 않아요.

가장 오래된 노예의 자세에서 벗어나봐요!

외부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정작 그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흘러가 버리게 된다는 거. 현재을 살지 못하게 되네요.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걸 바꾸면 시지프는 산비탈을 오르는 그 순간, 그 현재를 살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

뫼르소가 끝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바깥으로 향하는 눈빛이 아니라 자기 자신 내부로 향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

​

​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장은 자주 인용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 문장이 위대한 이유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가 아니다. 그 행복이 어떤 종류의 행복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취의 행복이 아니다. 보상의 행복이 아니다. 미래의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굴러 떨어질 줄 알면서도 다시 손을 뻗는 자의 행복이다.

​

자기 안에 이런 의지를 세우려고 카뮈는 매순간을 노력했네요.

알베르 카뮈 <내면 혁명> 책을 통해 카뮈가 말하는 이방인과 시지프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흔들리는건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흔들릴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 자세를 오늘 책을 통해 배웠고, "그 자세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다. 매번 일어서는 연습이다." 이 말을 명심하며 매번 일어서는 연습을 반복해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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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온선(온라인선생님)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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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한 번쯤은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시대가 되었다.

AI 시대, 갑자기 더 많은 게 가능해진 시대가 맞아요.

AI가 시간을 줄여둔다는 말은 틀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 속에서 지금 잘 쓰고 있는 걸까?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 걸까? 쓰긴 쓰는데, 잘 쓰는지는 모르겠다 ... 이런 생각들이 항상 있다는 걸요.



​

왜 그럴까요?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멈춰야 할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AI 도구를 사용하는 현대인들에게 멈춰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이죠.



멈추면 '나는 어떤 조건에서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든대요.

그리고 꼭 필요한 나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네요!

내가 어떤 조건에서 오래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인지 말이죠.

좋아하는 일이라서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할 때, 비로소 지속할 수 있는 일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네요.

무조건 다 하면서는 '나'가 어떻게 오래 갈 수 있는 사람인지, 나에게 맞는 방식이 무엇인지 인식을 못할꺼 같아요.


중요한 부분이 바로 여기인 것 같아요.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가도 중요했다."

요즘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있잖아요.

무엇을 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느냐도 중요하네요.



그렇다면 AI와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와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네요.

저도 AI 도구를 제법 사용중이거든요.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AI를 어떻게 써야할지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 같아요.

"AI가 대신 준 것은 완성된 능력이 아니었다. AI가 낮춘 것은 능력 그 자체가 아니라, 능력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문턱이었다."

이 문장에 공감이 되네요.

AI는 그 모든 것을 대신 완성해 주지 않거든요. 다만 처음부터 잘하지 않아도, 일단 꺼내볼 수 있는 자리까지 데려다줘요. 작은 문 하나를 열어본 셈인데 만들어보는 데까지 가본다는 것은 크잖아요.

AI가 보장해 주는 것은 성공이 아니에요. 이전 같으면 시작도 못 했을 일을 만들어보는 데까지 가볼 수 있게 해준다는게 얼마나 커요.



​

AI가 낮춘 문턱 너머에는 더 많은 일이 아니라, 오래 미뤄둔 마음들이 있었다.

지금 나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

AI는 시간을 줄여주는 도구인데 나에게는 시간을 붙잡는 도구가 되고 있진 않은가?

AI를 쓰는 기준을 정할 때, AI를 사용하지 않기, 덜 쓰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작가는 "언제든 열어둘 수는 없다."라고 딱 한마디로 정리해줘요.

앞에서 말한 "시간이 갈수록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할 수 있느냐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가도 중요했다."이 말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

AI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졌지만 이상하게도 작가는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더 많이 해내는 쪽이 아니래요.

"AI 덕분에 무엇을 다시 해볼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다시 해보고 싶었을까?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봐요.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 시대에, 나는 모든 것을 다 해내는 사람이기보다는 이런 사람이고 싶어요.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어렵다는 이유로, 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이유로 접어두었던 것들, 이제는 그런 것들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시대에요.


​

​

​

<더 많이 할 수 있지만, 다 하지 않습니다> 책을 통해 AI시대, 나의 일과 시간을 다시 고르는 법을 배웠네요. ^^

"더 많이 해내는 삶이 아니라, 조금 더 나답게 살아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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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ㅣ 세계문화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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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두 거장이 숨긴 가족사를, 처음으로 나란히 놓다.

​

인류를 사랑하라 쓴 대문호 '톨스토이'

가장 행복한 얼굴을 그린 환희의 화가 '르누아르'

​

르누아르의 작품 좋아하는 편인데 르누아르의 집요하게 그린 여자아이 그림을 보면서 이렇게 슬펐던 적이 처음이네요.

이 이름을 알고 나서 부터였어요.

'잔 마르그리트 트레오', 르누아르와 리즈 트레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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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책 첫머리에 소개하고 있는 클래식이 찰떡이네요.

'이 책을 읽을 때 곁들이면 좋은 클래식 - 톨스토이의 소설이 되고 르누아르의 그림이 된 음악'

전 먼저 그냥 르누아르의 작품을 먼저 보고, 클래식을 들어보고, 책을 다 읽고 클래식을 들으면서 르누아르의 작품을 다시 봤어요.

넘 슬펐어요~~~!!!

샤를 구노 <<아베 마리아-1859>> 들으면서 르누아르의 여자아이 그림 전율이~~~ 찌릿! 찌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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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 화가의 가족 1896' 작품이에요.

이 이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르누아르 가족 그림 속에 비밀이 담겨 있어요.

이 비밀을 책을 다 읽으면 밝혀집니다.

아름답고 행복해 보이는 이 가족 그림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참 슬픈 그림이 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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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사람'은 톨스토이에게만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톨스토이에게는 티모페이 예르밀로비치 바지킨 또 다른 아들이 있었고,

르누아르에게는 잔 마르그리트 트레오 또 다른 딸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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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던 인류를 사랑하라 쓴 대문호 '톨스토이'와 가장 행복한 얼굴을 그린 환희의 화가 '르누아르'잖아요.

사생아의 이야기가 등장하니 좀 달리 보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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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이야기를 하자만 톨스토이는 사생아 아들을 철저히 외면했고, 르누아르는 사생아 딸을 끝까지 책임졌어요.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정말 이렇게 단정 내려도 될까?' 싶어요.

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재단할 만큼 정말로 완전 무결한 삶을 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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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작품이 '주인과 일꾼', '악마', '크로이체르 소나타'까지 3개 나오는데 그 중에 '악마'와 '크로이체르 소나타' 작품이 대박입니다.



특히 '크로이체르 소나타' 작품은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그대로 가져왔어요.

소설에도 이렇게 적혀있어요.

┌ 어느 저녁, 두 사람이 손님들 앞에서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첫 프레스토를 들으며 포즈드니쇼프는 음악의 무서운 힘에 사로잡힙니다. ┘



르누아르 <<비밀 이야기>> 작품인데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소설 속 주인공들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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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가정 밖의 욕정과 살의를 그렸고,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가장 내에서 벌어진 살인을 그렸어요.

톨스토이가 1889년 한 해동안 쓴 이야기 가정의 안과 밖 양쪽에서 결혼을 응시하는 두 서설입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들을 통해 무얼 말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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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앞둔 대문호가 십 년에 걸쳐 연달아 쓴 '악마', '크로이체르 소나타', '부활' 이렇게 세 편의 소설을 두고, 이 책의 작가는 톨스토이의 그늘 3부작이라고 부르고 싶대요. 한 편의 거대한 참회록이 세 구너으로 나누었다고 해도 좋대요.

젊은 날 욕정으로 무너뜨린 여성들, 그들에게 진 빚, 평생 갚지 못한 죄의식!

톨스토이는 그것을 사과 편지가 아니라 소설로 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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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평생 소설을 쓴 사람입니다. 그가 사생아 아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이나 경제적인 후원, 친밀한 편지를 남겼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자신이 가장 잘하고, 평생 해왔던 일 - 소설 쓰기 -을 통해 티모페이를 향한 바람과 진심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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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책을 읽기 전과 책을 읽은 후가 확실히 나눠집니다.

톨스토이 가족 사진과 르누아르 가족 그림을 보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감정이 들쑥날쑥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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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책을 다 쓰고도 아직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적었어요.

두 사람은 문학과 미술, 각자의 분야에서 앞으로 인류가 영원히 기억할 거정이에요. 동시에 끝끝내 실패한 아버지였네요. 아마 제 감정도 모순 앞에서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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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레프 톨스토이가 사람아혹 이십여 년 뒤 티모페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교롭게도 르누아르의 첫딸 잔도 그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4년.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난 두 사생아는 그곳에서 각자 자신의 아버지를 만났을까요. 그리하여 생애 받지 못한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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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티브 출판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3권 중에 하나인 <거장의 사생아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앞선 두 권도 잘 읽었는데 이번 책도 좋았어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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