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을 읽었다 -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빅터 프랭클 지음 / 닻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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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를 구워할 수 없을 때, 스스로 구원이 되어라

왜 빅터 프랭클을 읽어야 할까요?

시련은 운명이 던진 질문이며, 삶은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라면...

빅터 프랭클의 메세지는 지금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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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흔들림에도 통째로 무너지는 경우는 왜 일까?

빅터 프랭클은 그렇게 커다란 시련을 겪었지만 무너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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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만 읽었는데도 '왜?'하면서 물음표가 굉장히 많아지네요.

스스로 구원이 되길 나도 바라니까 책을 쭉~~~ 읽어보리라.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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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말한다.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회사가 나를 지치게 했고, 가족이 나를 화나게 했고ㅡ 그 사람이 나를 망쳤다고. 자극은 분명히 외부에서 온다. 회사의 야근, 가좋ㄱ의 비교, 그 사람의 무책임,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자극이 내 안에서 어떤 반응으로 번역되는가, 그 번역의 권한은 결국 내게 남아 있다. ┘

나는 자극이 내 안에서 어떤 반응으로 번역하는지. 그 번역의 권한을 내가 쥐고 있을까?

해답을 찾지 못해도 질문을 하면서 조금씩 나를 알아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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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나를 흔들 자극은 무엇이었고, 나는 거기에 어떻게 응답했는가. 응답한 그 방식은 정말로 내가 선택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늘 해오던 자동 반응이었는가."

잠들기 전 3분만 생각해보려고 해요.

짧지만 나를 만나는 시간이네요.



┌ 프랭클은 수용소의 막사를 틈틈이 지나며 절망에 빠진 다른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빵 한조각마저 기꺼이 내어주던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모두가 가스실의 공포에 떨며 환경과 운명을 탓하던 그 시기에, 그들은 다 한 번도 좀엄을 포기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통을 모르거나 둔감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참혹한 현실을 보고 있었다. 다만 그 현실 앞에서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물었다. 수용소의 철조망을 당장 없앨 수는 없지만, 곁에 쓰러진 동료에게 건넬 수 있는 온기는 무엇인가. 그들의 질문은 늘 자기 안쪽을 향해 있었다. 그가 특별히 강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태도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



태도를 선택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삶의 저자가 된다는 뜻이다.

┌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었다. 그는 언제 풀려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어쩌면 영영 풀려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문임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그는 그 끝없음 자체를 인정한 위에서 의미를 세웠다. 언제 끝날지 모르므로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오늘을 산다, 그렇게 매일을 새로 시작했다. 그것은 낙관 아니라 직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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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사람, 배급된 빵을 담배와 바꿔 피우고 그대로 누워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은 며칠 안에 죽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노동도 추위도 굶주림도 아니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더 이상 자기 삶에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그 마음, 더 이상 내일을 향해 어떤 약속도 하지 않는 그 상태였다...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이런 동료들을 보면서 두려웠다고 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모습을 현대 사회에서 자주 마주치곤 하더라구요.

"모든 것을 빼앗겨도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남는다"

태도를 선택할 자유! 굉장히 오래 머리 속에 남는 문장이었어요.



프랭클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강한 사람의 신화가 아니다.

┌ 우리는 자주 정반대로 산다. 큰 이유를 찾기 위해 작은 이유들을 자꾸 지워나간다. 인생의 목적을 찾겠다며 오늘 해야 할 작은 일들을 미룬다. 거대한 의미를 발굴하겠다면 눈앞의 사람을 소홀히 대한다. 의미는 그렇게 오지 않는다. 의미는 작은 응답들이 쌓여서 형성된다. 발견하는 만큼만 만들어지고, 만드는 만큼만 발견된다. ┘

나를 발견하고 멈추게 되네요.

발견하는 만큼만 만들어지고, 만드는 만큼만 발견된다는 이 문장에서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오늘 해야 할 작은 일들 미뤘던 적이 꽤 있거든요.




우리는 종종 삶의 과제 앞에서 완벽한 때를 기다린다. 충분한 재력이 모이면, 상황이 더 안정되면 그때 진짜 내 삶의 몫을 감당하겠다고 유예한다. 그러나 프랭클은 그런 완벽한 조건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모든 것을 빼앗겨도 태도를 선택할 자유는 남는다" 앞에서 쓴 문장과 "운명은 바꿀 수 없어도 운명을 대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는 일맥상통 해요.

운명 앞에서 나는 무엇을 골랐는가. 거기에서 사람의 무늬가 결정된다.

나는 내 삶에서 어떤 태도로 임했는가? 나는 무엇을 골랐는가? 나라는 사람은 어떤 무늬를 지녔을까?

해답을 찾는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통해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네요.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상황이 나를 흔들도록 두는 대신, 내가 상황을 받아내는 방식을 바꾸는 것.

말은 참 쉬워요. 근데 잘 안된다는 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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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를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로 옮겨놓았네요. 태도는 결심이 아니라 반복이라는 말에 공감 200%!!!

태도를 바꾸겠다는 말은 결국 행동의 가장 작은 단위를 바꾸겠다는 말과 같아요.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고 아주 사소한 것부터 하나씩 하나씩 태도를 바꾸겠어요. 아니 반복된 행동으로 실천해보려구요.

┌ 거대한 무언가가 아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하루, 이 사람, 이 일이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응대하는 일, 오늘 내가 맡은 작은 일을 끝까지 마치는 일, 오늘 내가 쓴 한 문장에 거짓을 섞지 않는 일. 이것들이 모여 자아가 된다. 자아는 멀리 있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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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구원이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이 작은 전환을 끝까지 끌고 가는 일에 불과하다. 누군가 나타나 내 인생을 정돈해 주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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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더 정확한 질문 앞에 사람을 데려다 놓는 책이라고 에필로그에 적혀있어요.

<흔들릴 때마다 나는 빅터 플랭클을 읽었다>이 책이 저에겐 더 정확한 질문 앞에 저를 데려다 놓네요.

해답을 얻으려고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한 게 아니라 질문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고, 나 스스로를 찾고, 나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게 마음가짐을 다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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