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혁명 - 세상의 부조리를 직시하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된다
알베르 카뮈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꺼이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외톨이가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방인은 적이 아니다.

이방인은 단지 그 사회의 문법을 자동으로 따르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그는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그 사회의 사람들과 일하고, 식사하고, 대화한다.

그러나 그 사회의 가치관을 통째로 삼키지는 않는다. 한번 입에 넣고, 씹어보고, 자신에게 맞는 부분만 심킨다. 나머지는 뱉어낸다. 이 씹는 행위, 이 분별의 시간이 한 사람을 이방으로 만든다.

​

​

카뮈의 <이방인>, <시지프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읽었던 책이라 반갑기도 하고, 내가 그때 물음표를 쳐놓은 부분의 이야기도 다시 읽게 되어 감격스럽네요.

알베르 카뮈 <내면혁명> 책을 읽다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

​

┌ 이방인에서 검사가 가장 길게 추궁한 것은 그가 어머니의 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회는 살인보다 감정 문법의 위반을 더 무거운 죄로 다룬다.

...

뫼르소가 삼뜩한 인물로 다가오는 까닭은 결코 잔인해서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만적인 연기를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슬프지 않을 때 슬픈 척하지 않는다.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답한다. 결혼하자는 제안에 원한다면 그러자고 말한다. 이 무미건조한 정직함이 사회를 격분시킨다. ┘



​

뫼르소는 우리에게 영웅이 아니다. 모범도 아니다. 그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 서서 한 사람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오늘 내가 지은 표정 중 몇 개가 정말 내 것이었는가. 오늘 내가 한 말 중 몇 마디가 정말 내 입에서 나온 것이었는가.

┌ 뫼르소의 재판 과정을 떠올려 보자. 그는 거짓 눈믈을 흘리며 사회의 도덕적 판사들에게 이해받고 용서받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

​

​

알베르 카뮈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미래의 보상과 무관하게 오늘이 이미 충분한 자세

┌ 현대인은 결과에 집착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산출된 성과만을 맹목적으로 갈구한다. 과정은 견디는 것이고, 결과는 보상받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은 늘 빨리 끝났으면 좋겠고, 결과는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 구조 안에서 삶의 대부분은 견뎌야 할 무엇이 된다. ┘

카뮈의 시즈프를 다시 불러낸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

현대인은 실패를 거대한 사건으로 만든다. 한 번의 탈락, 한 번의 거절, 한 번의 평가가 인생 전체를 정의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카뮈는 묻는다. 누가 그 한 번의 사건에 그토록 큰 무게를 부여했는가? 자신이다.

아무리 처참하게 한 골을 내어주더라도 골키퍼는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다. 그는 절망하는 대신 즉각 무릎을 굽히고 다음 공의 궤적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이 골키퍼의 자세를 보라.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다. 매번 일어서는 연습이다.

카뮈가 말하는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다.



​

카뮈는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 문장은 위로의 문장이 아니다. 명령의 문장이다. 그가 행복하다고 우리가 결론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왜인가? 행복은 결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 행복은 돌을 미는 그 근육의 긴장 속에 있다. 땀이 흐르는 등의 감각 속에 있다. 발바닥이 자갈을 누르는 그 압력 속에 있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거기에서만 발생한다. 정상에서가 아니라 산비탈에서. ┘

​

시즈프를 보면서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왜 하필 나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이 바뀌는 순간, 한 사람의 자세가 바뀐다. 자세가 바뀌면 행동도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

카뮈는 이걸 보여주고 있어요.



​

'왜 하필 나인가'가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이 바뀌면 절대 바깥을 향한 눈빛을 보내지 않아요.

가장 오래된 노예의 자세에서 벗어나봐요!

외부를 두리번거리는 동안, 정작 그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흘러가 버리게 된다는 거. 현재을 살지 못하게 되네요.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걸 바꾸면 시지프는 산비탈을 오르는 그 순간, 그 현재를 살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

뫼르소가 끝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바깥으로 향하는 눈빛이 아니라 자기 자신 내부로 향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

​

​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 문장은 자주 인용된다.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 문장이 위대한 이유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가 아니다. 그 행복이 어떤 종류의 행복인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취의 행복이 아니다. 보상의 행복이 아니다. 미래의 행복이 아니다. 그것은 굴러 떨어질 줄 알면서도 다시 손을 뻗는 자의 행복이다.

​

자기 안에 이런 의지를 세우려고 카뮈는 매순간을 노력했네요.

알베르 카뮈 <내면 혁명> 책을 통해 카뮈가 말하는 이방인과 시지프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흔들리는건 어쩌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흔들릴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그 자세를 오늘 책을 통해 배웠고, "그 자세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반복이다. 매번 일어서는 연습이다." 이 말을 명심하며 매번 일어서는 연습을 반복해보려구요.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