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죽인 여자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푸른숲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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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넷플릭스를 통해서 우연히 본 영화 <엘레나는 알고 있다>를 통해서였습니다. 인상적인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했지만, 내러티브가 익숙한 듯 새로운 것에 제법 흥미로웠기에, 원작소설이 있다하여 찾아보았는데, 보르헤스 이후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 출간 된 아르헨티나의 대표 작가였습니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얼마나 우리 문학시장이 영미, 일본 문학작품들에 편중되어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2020년 현지 출간되었고, 최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작품을 마주했습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적잖은 두께의 책이지만, 강렬한 붉은 색 표지만큼이나 펼치고 들어선 피녜이로의 문장들이 펼쳐내는 이야기의 숲은 처음부터 대단한 흡인력으로 읽는 이를 깊은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끌어들입니다. 인물들과 관계, 사건들, 그리고 이를 담아낸 배경에 대한 묘사들은 손에 닿을 듯 눈에 선하게 속도감 있게 페이지들을 넘나들며 바람이라도 일으키듯 종횡무진 합니다.

 

“하느님 없이, 저들만의 대성당을 짓는 이들에게”

<p.5>

 

책을 펼치면 등장하는 문구입니다. 그러고 보니, 책의 원제가 ‘CATEDRALES’인데, 스페인어로 ‘대성당’을 의미합니다. 충격적인 동생의 죽음 앞에서 신앙을 거부하는 리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만큼이 여러 소재주의적 충격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듯 하지만, 작가는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서사를 사회, 종교, 가족이라는 일상 위에 펼쳐내며, 마테오, 마르셀라, 엘메르, 훌리아, 카르멘을 거쳐 알프레도에 이르며 이야기의 진실을 드러내는 구조입니다. 구조적인 유사성으로 읽는 동안,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드러낸다기 보다는 그런 종교와 사회의 구조적 문제 속에 서있는 인물들, 특히 여성의 진실을 서서히 드러내고 밝혀내는 범죄소설에 가깝다 싶습니다.

 

“"하느님은 순수한 자비이시며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십니다. 살아 있는 동안 회개할 수 있는 것만 해도 행운입니다.”

<p.388>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신앙의 힘으로 용서하기 위해 면회를 자처하지만 이미 신에게 용서를 받았다며 평화로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종교로 정당화되는 범죄와 일순간 휘발되어 버리는 일방적 용서의 공포를 마주한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그렇게 피녜이로의 이야기 속 종교는 일상을 헤집고 인생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파괴해버리고선 또 아무렇지 않게 신앙을 강요하곤 합니다. 이를 악용하는 인간은 자신만의 욕망으로 대성당을 짓고 만족하며 신앙으로 극복한 양합니다. 이러한 부조리와 일상성의 양면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문체로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작가의 힘이 읽는 내내 느껴집니다. 분노와 어이없음으로 책은 쉬이 읽히지만, 어쩌면 빨리 그 어두운 숲을 빠져나가고 싶어서 달음박질 치듯 읽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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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 #스릴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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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 반상회 - 그림대본집
이지수 지음, 금호강 디디다 기획 / 생명평화아시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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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현 습지에 사는 동식물 주민들의 반상회 현장으로 대본집으로 꾸민 책입니다. 나뭇잎 출석부로 주민들의 이름들이 불리우고 각자의 형편과 이야기가 고개를 내밉니다.
첫번째 안건, 새로운 가족들을 소개하는 시간. 각자의 이유들로 이곳 팔현으로 이주해온 새로운 주민들 소개하는 시간과 그들의 면면을 나누고 보듬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안건은 얼룩새코미꾸리가 낸 장마 대비 안전 수칙. 금호강 범람 시 안전요령과 협조사항을 나누며 함께 잘 살아낼 궁리를 합니다.
막간을 이용한 바람 우체부의 우편물 배달로 웃음과 울음이 오가는 정다운 여기 팔현 습지!
마지막 안건은 생태교란종. 사람들이 들여와 어쩔 수 없이 살아남으려다 생태교란종이 되어버린 그의 하소연에 다들 화해하고 함께 살아보기로 합니다.

"왕버들군락 - 이제 우린 한 가족이다! 잘 지내보자꼬요! 그 머식 궁금한 거 있으면 어제든지 물어보고! 오늘도 궁금한 거 있으면 마카 다 얘기해도 됩니데이."
<p.50>

그리고 팔현 습지를 위협하는 자전거 다리 공사이야기로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가 되는데...

공장 폐수 등으로 오염되었다가 다시 살아난 금호강에 연결된 팔현 습지를 지켜내려는 활동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교육 활동지의 용도를 지닌 책입니다. 짧지만 다양한 야생동식물과 자연을 주인공으로 삼은 정감가는 그림대본집을 읽어내리자니 마음이 몽글몽글 순해지고 따스한 기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자연, 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인간들은 과연 어떻게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자연 속에 공존하는 우리모두는 스스로의 본분을 알고 한해살이풀 처럼 살다가면 될터인데, 인간의 욕심은 그리 살게 어렵도록 우리를 만들어버린 듯 합니다. 그래서 내내 이 한해살이풀의 말이 마음에 남습니다.

"한해살이풀 - 안녕하십니까! 저는 한해살이풀입니다. 팔현에서 예쁜 것, 좋은 것, 멋진 것 많이 보고 땅에 좋은 영양분이 되고 가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p.28. 한해살이풀의 소개인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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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빛들 - 앤드 연작소설
최유안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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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듯, 산란하며 뻗어나가는 빛, 빛들에서 소리라도 들리는 듯 하얀 책표지를 벗어나려는 빛의 이미지가 직사각형의 창에 갖혀버립니다. 빛은 파동이면서도 입자라고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디작은 무수한 빛 알갱이들이 직진해서 나아가는 듯 하지만, 그 빛은 또한 파도처럼 일렁이며 파형을 그리고 있다는 의미였던 거 같습니다. 이 모순의 진리를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어서 무척이나 고민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왠지 그 시간의 답답한 현실에 속한 저에게 미래를, 희망을, 꿈을 이야기하는 선배들과 어른들의 모순과 묘하게도 겹쳐보여서 키득였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젠 모두 흩어져버린 빛 알갱이, 수백 수천년 전에 발광체로부터 출발한 그 알갱이들이 과거를 품고 현재에 도착했다는 그 모순만큼이나 이곳 대한민국에도 모두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척 하고야 마는 현실이 모순처럼 버티고 서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싱그럽지 않기가 더 힘든 법이었다. 청춘의 시간을 켜켜이 쌓은 공간이 만들어 내는 공기, 젊음을 영양분처럼 섭취하며 살아가는 교직원들. 은경은 캠퍼스에 들어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숨을 깊이 들이쉬어 활기를 몸 안에 한껏 채워 넣곤 했다.”
<p.9. 여은경. 중>

“보이차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재성은 아침마다 차를 만들어 거치대에 끼워 두곤 했다. 재성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민선은 그것을 제대로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그걸 마신다고 안정될 거였다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안정되었을테지.”
<p.86. 최민선. 중>

“그러나 그 순간에, 단 한 사람 윤재가 두 사람 사이에 막 피어나기 시작한 시간의 형체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초희를 안심시켰다. 초희에게 그것은 용기였고, 의지였으며, 그런 마음이라면 괜찮다고, 초희는 생각했다.”
<p.213. 표초희. 중>

그 모순 속에, 여은경, 최민선, 표초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과 관계, 사건들로 작가는 연작소설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문화계라는 다소 특수한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 행정가, 실연자가 각 이야기의 꼭지를 차지하고 이야기를 이끌고 지연하며 나아갑니다. 그래서, 또 언젠가 어디선가 마주쳤을 것만 같은 이야기이고 그녀들입니다. 각자는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각자 떠돌다가 에필로그의 시간과 공간에서 스쳐가고 공존하게 됩니다. 빛의 알갱이가 파동으로 나아가듯 유영하며 그들 각자의 별에 살고 있는 듯 했지만 더 큰 우주에서 때로는 함께, 때로는 그저 멀리서 그렇게 말입니다.

#먼빛들 #최유안 #연작소설 #유리천장 #직장인여성 #여성소설
#넥서스앤드 #유영하는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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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힘이 없다는 착각 - 양심을 키우는 법은 어떻게 좋은 사회를 만드는가
린 스타우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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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과 예일에서 수학한 수재이자, 코넬 로스쿨의 교수였으며, 기업 집구조, 금융 규제, 법과 경제, 도덕적 행동 등에 주목해왔으며 다수의 책과 논문을 집필했던 저자 린 스타우트는, 특별히 양심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에 주목하고, 양심이 사람들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최초의 학자 중 한명이라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느끼게 되는 일감은, 양심을 그저 무형의 어떤 믿어줘야 하는 막연한 어떤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넘어서서, 양심 그 자체의 힘과 중요성을 ‘견고하고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풀어보여 주는 글의 힘이 대단한 책입니다.
책의 마지막 50여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우는 미주와 참고문헌 정보들은 그 대단함의 명징한 증거라 할 만합니다.

“양심-즉 비이기적인 친사회적 행동-은 매우 현실적이고, 매우 흔하고, 매우 막강하며, 나아가 매우 중요한 현상이라는 게 이 책의 제일 중요한 주제이다. 우리 인간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종이다.”
<p.34>

비이기적인 친사회적 행동을 일컫는 ‘양심’의 중요성, 그리고 그것을 유도하고 뒷받침하기 위한 학교, 종교, 공동체 조직을 비롯한 여러 사회 기관들의 일정 역할들에 대한 논의와 여러 역사학적, 사회학적, 법학적 고찰도 두루 섭렵하고 돌아다니는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딱딱한 논문류의 순서나 형식이 아니라 그 관심을 둘만한 이들이라면 손에 닿도록 펼쳐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이 양심의 문제에 대한 저자의 의지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래서 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막강한 힘과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상이며, 땅바닥에 발딛고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시민이라면 꼭 인식했으면 하는 간절함 때문이라는 느낌을 문장 곳곳에 드러내고 있습니다.

“양심은 분명 존재한다. 양심은 강력한 동시에 일상 곳곳에 퍼져 있는 힘이다. 양심이 망가지면 우리 모두는 큰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양심은 더욱 잘 키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법이다.”
<p.348>

법이 양심에 기대고, 양심이 법에 기대는 조화로움은, 인간에 대한 신뢰,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진 종인 그 인간에 대한 믿음 위에, 법이라는 시스템의 밸런스가 만들어내는 열매라고 웅변하며 마무리 짓습니다.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라는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며 달려온, 어쩌면 부실한 시스템의 현장에 무엇보다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에 도착한 제언이라 할만한 책이다 싶습니다.

#양심은힘이없다는착각 #린스타우트 #왕수민 #원더박스
#선한양심 #선한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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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참치마요
권은중 지음 / 쑬딴스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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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는 토마토만 넣어 버무린 파스타 한 그릇으로도 충분했다. 와인 값은 음식 값의 50퍼센트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충고가 마음에 깊게 새겨진 까닭이다. 한국에서는 와인 값이 음식 값의 곱절 이상일 때가 빈번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p.9>

정년이 보장된 언론사에 사표를 내고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 저자가 마주했던 벽들 앞에서 와인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고, 사람의 연애가 그러하듯 와인의 속속들이 모든 것을 알고 싶고 알아가고 신성이 깃들었다 믿기까지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와인은 신의 물방울이니까요!
그렇게 저자는, 사랑하는 와인과 이곳저곳 데이트를 다니 듯, 책표지의 그림과 제목에서 언급했듯 편의점 삼각김밥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들과 함께한 와인의 경험, 추억, 사랑을 담백하고 사랑스런 언어와 문장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와인을 잘 모르는 제 입장에서도, 한모금 와인을 입안에 머금고 책을 읽는 듯한 상상을 하게끔 하는 묘한 구석이 있는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장으로 나누어 구성되어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나를 구원해준 편의점 푸드와 와인”, 그리고 두 번째는 “일상에서 맛보는 ‘파리의 심판’”이 그것입니다. 그 아래 다양한 와인들과 음식들을 이야기 속에 품고 종횡무진하다 보면, 와인이라는 그저 어렵고 너무 다양한 브랜드와 천차만별의 가격들에 혀를 내둘렀던 과거를 청산하고, 내가 좋으면 되는 와인으로 친근하게 손내밀만해집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러저러한 유명 와인서적이나 와인입문서들과 달리, 지금 대한민국에서 비교적 손쉽게 구입해볼 수 있는 와인들과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요소요소마다 저자 본인의 취향과 맛리뷰를 배치해서 이야기를 풀어내서 일겁니다.

“일반 소비자들을 와인 비평가처럼 와인 선택에 많이 신경 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와인이 아니라 선택한 와인을 함께 즐길 멋진 음식과 사람이다. 좋은 와인과 함께 마주한 음식, 사람이 이루는 삼위일체는 이처럼 스토리 있는 와인의 울림을 더 크게 만든다. 이런 와인을 만나는 순간순간이 모이면 인생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p.194>

그래서, 와인이든 음식이든 함께 나누는 사람이든,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만이, 와인-음식-사람의 삼위일체가 오롯이 드러나고 마침내, 인생이 달라지는 경험에 까지 이르고야 말거라는 예언에 이르게 되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깊어가는 겨울, 아늑한 공간에 따스한 이들과 소박하게 담아낸 음식을 나누며 와인 한잔 함께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런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하는 이 책, 그래서 반갑고 고마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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