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클래스 topclass 2024.6
톱클래스 편집부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월간지)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이슈의 주제를 보고 이게 뭔소린가 했습니다. ‘다능인들’이라니? 아닌게 아니라 에디토리얼에서 그 의미와 함께 주제어 선정의 고민을 발견하고 수긍의 끄덕끄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N잡러’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하나의 직장이나 직업만으로 경제적이던 심리적이던 이유에서 복수의 일을 해내는 이들을 일걷는 말이었습니다. 퇴근 후 부업을 하거나, 사업장을 오픈해서 수입을 증대하는 식에서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의 빠른 변화에 발맞춘 다양한 자신만의 삶의 반경을 확장, 다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그야말로 다수의 직종, 직업을 해내는 (혹은 해내려는) 이들이 제법 생겨났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슈의 ‘다능인들’은 N잡러를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꿈이 많은 사람들’정도를 포커싱해서 하나의 이슈로 묶어냈습니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차해리, 유튜버 드로우앤드류, 미스코리.특전사.카바디 국대 우희준,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치과의사 박창진 등이 그 다능인들입니다. 언론이나 책에서 이미 만나본 이들이라 인터뷰를 읽기 전부터 이미 심리적 친근함에서 시작된 이번 이슈는 그래서 제겐 종합선물세트 같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40페이지를 읽고 있는 중에도 41페이지가 궁금해지는 그런 이슈였습니다.

“그 앞에 하나를 더 붙여야 할 것 같아. ‘나와의’ 커뮤니케이션. 나와 대면을 잘 못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회피하거나 재떨이를 던져. 개가 짖지, 사자가 짖지 않거든. 두려우니까 던지는 거야. 안전한 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내겐 생의 과제야.”
<p.051_김호>

김호 대표와의 평어로 이루어진 인터뷰는 그 형식 자체로 신선했지만, 그의 생각에 공감한 바가 컸습니다. 여러 꿈을 꾸고 스스럼없이 도전해낸 그에게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의 소통’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주체인 자신이 그 꿈을 온전히 이해하고 설명해내야만 그걸 해낼 수 있다는, 그것이 욕망에 충실한 삶이 된다는 것.

“꿈이 이끈느 삶은 비효율적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길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낭비와 함정 역할을 하는 꿈이 인생을 다채롭게 만든다.”
<p.073_곽재식>

요즘에는 다양한 예능에 출연해서 많이 알려졌지만 그러기 한참 전부터 그의 책과 입담에 꽂혔던 곽재식 작가의 인터뷰는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맛있게 씹어 먹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주빈 배우, 변요한 배우, 데니스 홍 교수, 허연 시인까지. 이번 이슈, 정말 인터뷰이 큐레이션이 완전 미.쳤.다!

덧. 이번 이슈로 19주년을 맞이한 <탑클래스>,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괜찮은 인터뷰들 들려주길 기대합니다.

덧2. 표지의 ‘topclass’로고가 원래 무지개로 반짝였던건가 19주년이라 그런건가?! 🌈

《topclass》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topclass #탑클래스 #다능인들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란츠 카프카 :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
라데크 말리 지음, 레나타 푸치코바 그림, 김성환 옮김, 편영수 감수 / 소전서가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올해로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되는 프란츠 카프카의 삶과 사람들과 작품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라데크 밀리의 촘촘한 목소리와 레나타 푸치코바의 인상적인(!)인 그림으로 담고 있습니다. 책의 부제인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이 함축하고 있는 카프카라는 고유명사이자 일반명사가 우리들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꽤나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이 책은 카프카와 그의 작품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정보르 바로잡고, 불충분한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보충하고 있다. 특히 카프카의 계승자로 평가되는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추천의 말. 중>

<소송>, <성>, <변신>. 카프카의 이름의 익숙함에 비해 저의 독서목록에 남겨진 그의 작품은 일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작품들의 면면과 모호함, 그리고 다층적 함의와 표현의 독특함은 처음 접했던 그때를 떠올려만 봐도 꽤나 진한 여운과 함께 당혹감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보험공사으로 성실한 생활인이면서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힘겨운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합니다. 전업 작가의 꿈이 없지 않았으나 평생 그저 꿈일 수 밖에 없었던 카프카에게 어쩌면 그런 열악함이 창작의 끝까지 밀어붙여낼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제게 일자리는 저 자신의 유일한 갈망이자 유일한 직업인 문학과 모순되기 때문에 견뎌 내기가 힘이 듭니다. 저는 문학 외에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니며,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없으며, 다른 무엇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 1913년 8월 21일, 카프카의 일기 중

이처럼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그의 사후에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미출간 작품과 일기, 편지, 전기 등으로 출간되어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미할 마레시와 구스타프 야누흐로, 이 두 사람을 통해 이용당하며 카프카의 작품과 생애가 왜곡당하기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카프카 하면 떠오르는 가장 강렬한 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한 영화 <카프카>입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극중 카프카가 작품세계와 실제가 혼재한 공간과 사건들을 엮어내되 흑백과 컬러를 독특한 시점에 사용하면서 카프카라는 세계를 제법 잘 담아낸 영화였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싶습니다.

얇은 그림책 같은 첫인상을 주었던 이 책 <프란츠 카프카 :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은 꽤나 진지하고 심도깊게 카프카와 그의 작품과 생애를 다루면서 팀 버튼 감독의 이미지를 연상시킬 만한 약간은 괴기스런 일러스트로 더욱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카프카를 좋아한다면 아마도 보석 같은 책이 될 만합니다.

#프란츠카프카 #알려진혹은비밀스러운
#라테크말리 #레네타푸치코바
#소전서가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현대지성 클래식 57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20세기 초, 독일제국이 근대국가 독일로 성립되는 시기에 활동했던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정치와 학문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의 정의와 태도, 조건과 역사 등을 포함하는 두 개의 강연을 담고 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직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job이 아니라 독일어 beruf, 즉 신이 사람에게 정해준 직업인 천직 혹은 소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치 지망생이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을 금권주의적인 방식으로 충원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정치 지망생들이 정치 활동을 통해 정기적이고 확실한 수입을 얻어야 한다는 자명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p.33>


지금으로선 당연한 직업 정치가에 대한 이야기는 100년도 훨씬 지난 강연 시점을 생각한다면 어떤 개념을 확립하고 그에 따른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막스 베버의 빌드업은 실로 대단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명예직이 아닌 직업으로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것의 정당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한적이나마 언론인에 대한 소견도 피력하는데 현재의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언론인의 책임이 학자의 책임보다 훨씬 더 크고, 또한 모든 존경할 만한 언론인의 책임감이 평균적으로 결코 학자의 책임감보다 낮지 않고...(중략)... 무책임한 언론인의 활동이 종종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고,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능한 언론인은 평균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려 깊습니다. 물론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p.56-57>


소위 ‘기레기’라 불리기까지 모욕적인 직업군이 되어버린 기자를 포함하는 언론의 중요성과 그 힘은 그때는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 책임감과 그 파급력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내비치는데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언론인 외에 군주, 의회, 전문 관료, 정치 관료를 통해 직업 정치가에 대한 유형적 분류도 시도하고, 역사적 권력세력들을 통해, 그리고 근대 정당의 출현과 그 구조 그리고 영국과 미국, 독일의 캐이스를 통해 직업 정치가의 고찰을 시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직업 정치가의 내적 조건은 어떠해야 하며 그에 따른 윤리적 역설들로 직업 정치가의 모습을 돌아보며 결론에 이릅니다.


  “자신은 이 세계에 대단한 것을 주고자 하는데 그의 눈에 이 세계는 너무나 어리석고 형편없이 보일지라도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이 모든 상황에 맞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오직 그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p.132>


 다음은 “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는 제법 미국과의 비교를 통해 독일에서 학자의 길을 걷는 것의 상세한 과정과 그에 따라 도출된 문제점들을 공공연하게 제기함으로서 의식을 환기시킵니다.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열정과 영감, 개성과 체험, 학문과 예술을 논하며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한다함의 내적 조건을 고찰합니다. 그리고 직업에서 논했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학문에서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통해서 들여다 봅니다. 


  “학문은 지적 정직성이라느 미덕만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언자가 되려 하지 말고,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린다고 해도 학문에 주어진 소임을 매일매일 해나가면서 일상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p.239, 해제. 중>


책 말미에 역자의 해제는 두고두고 다시 읽어도 좋을 이 책의 요약이자 괜찮은 이생의 지침서가 될 만합니다. 아무쪼록 인생에 주어진 소명을 대하고 성취해나감에 막스 베버의 혜안이 내내 내 안에도 머물길 기대해봅니다. 



#직업으로서의정치 #직업으로서의학문 #막스베버 #박문재옮김

#현대지성 #현대지성클래식 #인문고전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 이눔! 잊히는 것에 매달리지 마라.”

- p.27, <그 봄>

 

<아폴론 저축은행>은 책표지에 선포(!)한대로 삶과 죽음과 관한 단편집입니다. 첫 작품 <그 봄>은 산사에 맡겨진 어린 두 형제의 시선으로 슬픈 봄을, 매년 찾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 반전이 대단합니다. 숨이 턱하고 막히고 먹먹한 가슴에 한참을 멈춰버렸습니다. 잊히는 것과 잊는 것의 애닲음은 이리도 매번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덕분에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데 제법 시차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차무진 작가는 이름은 왠지 익숙한데 이번 단편소설을 통해 처음 작품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인 더 백>이라는 작품과 동시에 번갈아 가며 읽으면서 작가의 언어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에 반하고야 말았습니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지만 가려 뽑아 사용된 단어들과 낭비되지 않는 문장들이 인물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오랜만에 만나는 그런 작품들이었습니다.

 

지네트 느뵈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 20, 라벨의 치간이 들려오는 거실 공간의 무겁고도 홀가분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읽어내려 가는 <아폴론 저축은행>의 도입부는 읽기를 멈추고 싶은 충동을 매 문장과 문장들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느꼈습니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의 등을 움켜잡은 아내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가느다란 아내 빗장뼈에 코르 박고 숨을 들이켰다. 이렇게는 죽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죽음이란 사는 것이다. 살아서, 살아가는 것이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것이 다 되어야 죽는 것이다.”

-p.129, <아폴론 저축은행>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고에 가족 동반자살, 아니 살해 후 자살을 계획하는 아이 둘을 둔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폴론 저축은행>은 표제작답게 그 이야기의 맵기가 남다릅니다. 그리고 임영웅이 부르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들으며 기다리고 희망을 품습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긴장을 놓을 수가 없고 뒷목이 뻣뻣해지게 합니다. 대단합니다. 몸서리치게 대단합니다. 단편소설들이지만 아득하게 심해의 바다 속으로 한없이 그렇게 한없이 내려만 가는 기분입니다.

 

차무진 작가의 작품들을 더 찾아보게 싶게끔 하는 단편들로 큐레이션된 단편소설집 <아폴론 저축은행>의 여덟 작품들은 고르게 장르 문학적 쾌감 함량이 거의 치사량에 근접하는 균질함을 보였습니다. 단연 눈으로 그려지는 묘사적 표현과 정련된 단어들이 지어내는 문장들과 줄바꿈의 속도감이 형식적 재미도 갖추고 있어 읽는 재미만으로도 대단했습니다. 왜들 차무진, 차무진 하는지 조금 알 듯 했다고나 할까요?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작가가 한명 더 생겼다는 뿌듯함으로 책의 마지막에 닿았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고 인간의 삶은 곧 미스터리니까요.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만들겠습니다.”

-p.452, ‘작가의 말

 

그럼 다음 층계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아폴론저축은행 #차무진 #라이프앤드데스단편집 #요다

#그믐 #박소해의장르살롱 #박장살 #시즌2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지음, 김윤하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소설은 1886년에 나온, 그러니까 137년 전에 이 세상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 소설은 문예영화의 독보적 거장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연출하고 저 유명한 원조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 버네사 레드그레이브, 매들린 포터가 주연했던 1984년 작 <보스턴 사람들>의 원작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미시시피 출신의 보수주의 변호사 베이질 랜섬과 여성의 그의 먼 친척인 여성 참정권 운동가 올리브 챈설러의 논쟁과 성장의 이야기이자, 랜섬이 우연히 만나 호감을 갖게 된 급진 연설가 버리나 태런트와의 사랑 이야기이며 또한 올리브와 버리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랑과 시대에 대한 헨리 제임스의 마음이 각각의 인물들과 분위기에 녹여낸 704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면서도 베스트 드라이브의 조수석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창 너머의 풍광도 즐길 수 있는 가독성 장착한 이야기입니다.



“올리브는 10분쯤 있으면 내려올 거예요. 선생님께 그렇게 말해달라더군요. 10분쯤이라니, 정말 딱 올리브다워요. 5분도 아니고 15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확히 10분인 것도 아니라 9분도 11분도 될 수 있죠. 기쁠지 아닐지 모를 일이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되는 상황에 절대로 처하고 싶지 않아서죠. 아주 정직한 사람, 그게 올리브 챈설러예요. 정직의 화신이죠. 보스턴에서는 그 누구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요. 나로서는 이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뭐, 어쨌든 전 선생님을 봬서 무척 기쁘답니다.”

<p.9, 소설의 첫 문단>



창작자도 그러하겠지만, 저에게 소설의 첫 문장이나 첫 문단은 굉장히 중요하게 받아들여집니다. 몇 번을 다시 읽기도 하고 작품 전체를 이해하거나 방향을 잡는데 어떤 기준이 되거나 징크스 같은 것이 됩니다. 이 소설 <보스턴 사람들>의 첫 문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설의 주요한 두 인물이 만나기 직전에 제3자의 입을 통한 소개입니다. 뒤에 따라올 실제 인물이 정말 그러할지 혹은 이런 인물이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풀어갈지를 기대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첫 문단이었다 싶습니다. 뒤이어 지는 올리브와 랜섬의 첫 만남으로 시작하는 멋들어진 열쇠가 됩니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과 또 다른 한 여성 버리나와 엮어내는 이야기는 현재 독자의 시선으로도 전혀 예스럽지 않은 과정과 대화들이어서 솔직히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오가는 시점의 변화라는 리드미컬함이 주는 힘이 짧지 않은 이야기의 분량임에도 나름의 긴장과 해소를 오가고 독자의 이해를 문장에서 오롯이 해낼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싶었습니다. 게다가 미스 버즈아이와 닥터 태런트의 존재감이 스며내는 연극적 진행도 지금으로도 신선한 감각을 일으켜주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열정과 진지함인가, 그야말로 거룩한 대의에 자신을 바친, 오점 하나 없는 처녀가 전율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은, 이것만 봐도 분명하다, 두 사람은 모두 안전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버리나를 엄청나게 부당하게 취급한 것이다. 그년 천천히 버리나에게 다가가 두 팔로 감싸서 그대로 가만히 끌어안고는 살며시 입맞춥했다. 그것으로 버리나는 그녀가 자신을 믿게 되었음을 알았다.”

<p.470>



그럼에도 19세기 말의 문학작품에 대놓고 등장하는 동성커플의 애정행각(?)은 논란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으리란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얼마 전에서야 겨우 공공연히 예술분야에서 드러내놓을 수는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커다란 간극과 논란의 여지가 존재하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이면에는 분명히 작가 헨리 제임스 본인의 이야기가 녹여진 것일테고 이를 통해 당시 겪었을 작품에 대한 여론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의 힘은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유효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어쨌든 소설은 작가가 단어로 직조한 문장과 문장들이 엮어낸 이야기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지금부터 그녀가 들어가려고 하는, 화려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두 사람의 생활을 생각하면, 지금 흘리고 있는 눈물이 그녀가 흘려야 할 마지막 눈물은 아닐 우려가 있다.”

<p.704, 소설의 마지막 문장>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전혀 다른 결이지만 감정적인 면에서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과 유사한 향취를 남깁니다.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전진한다, 뭐 이런 희망의 향취 같은 것 말입니다. 그녀들의 눈물들이 만든 우리가 사는 지금을 떠올리면 조금 뭉클하고 조금은 안쓰러운 것 또한 사실입니다.



#헨리제임스 #보스턴사람들

#클래식클라우드 #아르테 #은행나무

#김윤하옮김 #북스타그램 #헨리제임스콜라보

#도서제공 #리뷰단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