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 정재율 김선오 성다영 김리윤 조해주 김연덕 김복희
박참새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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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일곱 명의 사람을 만나 시가 아닌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은 모두 시 이야기로 돌아갔다. 대화하는 도중에는 조금의 지루함도 여유로움도 없었다. 나는 다 기억하면서 잘 질문하기 위해 바짝 긴장했고, 그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을 분명히 말하기 위해 매우 신중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시를 쓸 때 혹은 쓰지 않을 때 꼭 저런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 눈에는 그들이 시였다.”

<p.6. 들어가며-애호하기. >

 

박참새 시인이 만난 일곱 명의 시인과의 인터뷰르 모아놓은 책 <시인들>은 그렇게 인터뷰어의 긴장과 인터뷰이의 신중이 만난 덕에 질문들과 대답들, 그리고 말소리가 말글자가 된 문장들과 문장들 사이에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그야말로 시라는 멀찍이 떨어진 대상이자 모호함과 직유와 은유가 도사리고 있어야만 할 것같은 대상이 어떻게 그것을 지어내는 이들로 체화되고 또 세상에 출현하는지를 목도하는 묘한 체험을 선사하는 책입니다. 사랑함과 좋아함을 구분하는 것이 시임을 그렇게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양립해내는 것이 시임을 드러내고자 의도치 않았을 테지만 그렇게 시를 발견해내게 합니다.

 

“‘어떤 시인이라기 보다는... ‘어떤 사람이라고 바꿔 생각하고 대답해볼게요. 성실한 사람, 지금 생각나는 건 딱 이거예요.”

<p.50. 선에서 시작하는_정재율. >

 

시와 시인과 생활인이 혼재된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여전하고 분명한 방향성을 묻는 이야기에 시인들은 시인스럽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의외였지만 그래서 시와 시인이 훨씬 더 살가워졌고 땅에 발을 딛고 서있는 시인을 마주하는 느낌이라 반가웠습니다. ‘성실한 사람이라 답하는 정재율 시인의 답은 그중 가장 마음에 남았는데 어떤 분야에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스스로를 평가하는 미덕을 성실에서 찾는 이라면 후하게 점수를 주는 개인적인 이유에 기인하기도 하겠지만, 박참새 작가의 훅 들어온 질문에 조금 난처해하는 행간의 호흡과 이어져 나온 솔직함이 성실이어서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가 그렇게 담백했구나 싶어서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 쓰기가 절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 과정에 고통이 수반되기도 하겠지만,...(중략)... 사랑하는 마음, 이것은 너무나 잃기 쉬운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계속 갖고 즐겁게 쓰기만을 바랄 뿐이고요. 정말 진심으로...”

<p.97. 그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아주는_김선오. >

 

시인은 스스로가 창작하는 시와 묘한 줄다리기를 하는 듯합니다. 창작의 과정에서 만나는 시인 스스로의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고통 뿐만 아니라 즐거움이 도드라지길 진심으로 바라는 시를 향한 고백이 오히려 시가 되어버립니다. 그 모습에 조금 울컥하기도 하다가 엉뚱한 소리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귀여움에 도착하면 그만 피식 웃음이 세어 나오고야 맙니다.

 

김선오 시인의 엉뚱한 말처럼 박참새 작가의 인터뷰는 드러내지 않는 긴장이 곳곳에 서려있기에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대담장에 청중으로 초대되어 앉아있는 독자가 아니라 창작된 이야기로 만들어진 가상현실 게임 속에 들어가서 함께 플레이를 하고 있는 독자가 된 듯 책을 읽어내는 내내, 작가 들어가는 말에 드러낸 속셈처럼 조금의 지루함도 여유로움도 없었습니다.

재미있었습니다. 입담 때문이 아니라 마음들 때문에, 그 마음의 드러냄 덕분에.

 

#시인들 #인터뷰집 #박참새 #세미콜론

#시의계절은여름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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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클래스 topclass 2024.6
톱클래스 편집부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월간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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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슈의 주제를 보고 이게 뭔소린가 했습니다. ‘다능인들’이라니? 아닌게 아니라 에디토리얼에서 그 의미와 함께 주제어 선정의 고민을 발견하고 수긍의 끄덕끄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N잡러’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하나의 직장이나 직업만으로 경제적이던 심리적이던 이유에서 복수의 일을 해내는 이들을 일걷는 말이었습니다. 퇴근 후 부업을 하거나, 사업장을 오픈해서 수입을 증대하는 식에서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의 빠른 변화에 발맞춘 다양한 자신만의 삶의 반경을 확장, 다변화시키는 방법으로, 그야말로 다수의 직종, 직업을 해내는 (혹은 해내려는) 이들이 제법 생겨났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슈의 ‘다능인들’은 N잡러를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꿈이 많은 사람들’정도를 포커싱해서 하나의 이슈로 묶어냈습니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 차해리, 유튜버 드로우앤드류, 미스코리.특전사.카바디 국대 우희준,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치과의사 박창진 등이 그 다능인들입니다. 언론이나 책에서 이미 만나본 이들이라 인터뷰를 읽기 전부터 이미 심리적 친근함에서 시작된 이번 이슈는 그래서 제겐 종합선물세트 같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40페이지를 읽고 있는 중에도 41페이지가 궁금해지는 그런 이슈였습니다.

“그 앞에 하나를 더 붙여야 할 것 같아. ‘나와의’ 커뮤니케이션. 나와 대면을 잘 못하는 사람은 심리적으로 회피하거나 재떨이를 던져. 개가 짖지, 사자가 짖지 않거든. 두려우니까 던지는 거야. 안전한 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내겐 생의 과제야.”
<p.051_김호>

김호 대표와의 평어로 이루어진 인터뷰는 그 형식 자체로 신선했지만, 그의 생각에 공감한 바가 컸습니다. 여러 꿈을 꾸고 스스럼없이 도전해낸 그에게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의 소통’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주체인 자신이 그 꿈을 온전히 이해하고 설명해내야만 그걸 해낼 수 있다는, 그것이 욕망에 충실한 삶이 된다는 것.

“꿈이 이끈느 삶은 비효율적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길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하게 만드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낭비와 함정 역할을 하는 꿈이 인생을 다채롭게 만든다.”
<p.073_곽재식>

요즘에는 다양한 예능에 출연해서 많이 알려졌지만 그러기 한참 전부터 그의 책과 입담에 꽂혔던 곽재식 작가의 인터뷰는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맛있게 씹어 먹었습니다. 그 외에도 이주빈 배우, 변요한 배우, 데니스 홍 교수, 허연 시인까지. 이번 이슈, 정말 인터뷰이 큐레이션이 완전 미.쳤.다!

덧. 이번 이슈로 19주년을 맞이한 <탑클래스>,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괜찮은 인터뷰들 들려주길 기대합니다.

덧2. 표지의 ‘topclass’로고가 원래 무지개로 반짝였던건가 19주년이라 그런건가?! 🌈

《topclass》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topclass #탑클래스 #다능인들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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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
라데크 말리 지음, 레나타 푸치코바 그림, 김성환 옮김, 편영수 감수 / 소전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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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올해로 세상을 떠난지 100년이 되는 프란츠 카프카의 삶과 사람들과 작품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라데크 밀리의 촘촘한 목소리와 레나타 푸치코바의 인상적인(!)인 그림으로 담고 있습니다. 책의 부제인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이 함축하고 있는 카프카라는 고유명사이자 일반명사가 우리들에게 어떠한 존재인지, 그의 작품세계가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꽤나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이 책은 카프카와 그의 작품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정보르 바로잡고, 불충분한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보충하고 있다. 특히 카프카의 계승자로 평가되는 체코 작가 보후밀 흐라발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추천의 말. 중>

<소송>, <성>, <변신>. 카프카의 이름의 익숙함에 비해 저의 독서목록에 남겨진 그의 작품은 일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작품들의 면면과 모호함, 그리고 다층적 함의와 표현의 독특함은 처음 접했던 그때를 떠올려만 봐도 꽤나 진한 여운과 함께 당혹감을 남겼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는 보험공사으로 성실한 생활인이면서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힘겨운 창작활동을 이어갔다 합니다. 전업 작가의 꿈이 없지 않았으나 평생 그저 꿈일 수 밖에 없었던 카프카에게 어쩌면 그런 열악함이 창작의 끝까지 밀어붙여낼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제게 일자리는 저 자신의 유일한 갈망이자 유일한 직업인 문학과 모순되기 때문에 견뎌 내기가 힘이 듭니다. 저는 문학 외에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니며, 다른 그 무엇일 수도 없으며, 다른 무엇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 1913년 8월 21일, 카프카의 일기 중

이처럼 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그의 사후에 그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미출간 작품과 일기, 편지, 전기 등으로 출간되어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미할 마레시와 구스타프 야누흐로, 이 두 사람을 통해 이용당하며 카프카의 작품과 생애가 왜곡당하기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카프카 하면 떠오르는 가장 강렬한 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연한 영화 <카프카>입니다.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극중 카프카가 작품세계와 실제가 혼재한 공간과 사건들을 엮어내되 흑백과 컬러를 독특한 시점에 사용하면서 카프카라는 세계를 제법 잘 담아낸 영화였는데,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싶습니다.

얇은 그림책 같은 첫인상을 주었던 이 책 <프란츠 카프카 : 알려진 혹은 비밀스러운>은 꽤나 진지하고 심도깊게 카프카와 그의 작품과 생애를 다루면서 팀 버튼 감독의 이미지를 연상시킬 만한 약간은 괴기스런 일러스트로 더욱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카프카를 좋아한다면 아마도 보석 같은 책이 될 만합니다.

#프란츠카프카 #알려진혹은비밀스러운
#라테크말리 #레네타푸치코바
#소전서가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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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정치·직업으로서의 학문 현대지성 클래식 57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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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세기 초, 독일제국이 근대국가 독일로 성립되는 시기에 활동했던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정치와 학문을 직업으로 한다는 것의 정의와 태도, 조건과 역사 등을 포함하는 두 개의 강연을 담고 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직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job이 아니라 독일어 beruf, 즉 신이 사람에게 정해준 직업인 천직 혹은 소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치 지망생이나 정치 지도자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을 금권주의적인 방식으로 충원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정치 지망생들이 정치 활동을 통해 정기적이고 확실한 수입을 얻어야 한다는 자명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p.33>


지금으로선 당연한 직업 정치가에 대한 이야기는 100년도 훨씬 지난 강연 시점을 생각한다면 어떤 개념을 확립하고 그에 따른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는 막스 베버의 빌드업은 실로 대단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명예직이 아닌 직업으로 정치를 하는 이들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것의 정당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한적이나마 언론인에 대한 소견도 피력하는데 현재의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습니다.


  “언론인의 책임이 학자의 책임보다 훨씬 더 크고, 또한 모든 존경할 만한 언론인의 책임감이 평균적으로 결코 학자의 책임감보다 낮지 않고...(중략)... 무책임한 언론인의 활동이 종종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고,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능한 언론인은 평균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려 깊습니다. 물론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p.56-57>


소위 ‘기레기’라 불리기까지 모욕적인 직업군이 되어버린 기자를 포함하는 언론의 중요성과 그 힘은 그때는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 책임감과 그 파급력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내비치는데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언론인 외에 군주, 의회, 전문 관료, 정치 관료를 통해 직업 정치가에 대한 유형적 분류도 시도하고, 역사적 권력세력들을 통해, 그리고 근대 정당의 출현과 그 구조 그리고 영국과 미국, 독일의 캐이스를 통해 직업 정치가의 고찰을 시도합니다. 뿐만 아니라 직업 정치가의 내적 조건은 어떠해야 하며 그에 따른 윤리적 역설들로 직업 정치가의 모습을 돌아보며 결론에 이릅니다.


  “자신은 이 세계에 대단한 것을 주고자 하는데 그의 눈에 이 세계는 너무나 어리석고 형편없이 보일지라도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고, 이 모든 상황에 맞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오직 그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p.132>


 다음은 “직업으로서의 학문”. 막스 베버는 제법 미국과의 비교를 통해 독일에서 학자의 길을 걷는 것의 상세한 과정과 그에 따라 도출된 문제점들을 공공연하게 제기함으로서 의식을 환기시킵니다.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열정과 영감, 개성과 체험, 학문과 예술을 논하며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한다함의 내적 조건을 고찰합니다. 그리고 직업에서 논했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학문에서는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통해서 들여다 봅니다. 


  “학문은 지적 정직성이라느 미덕만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에,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언자가 되려 하지 말고,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린다고 해도 학문에 주어진 소임을 매일매일 해나가면서 일상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p.239, 해제. 중>


책 말미에 역자의 해제는 두고두고 다시 읽어도 좋을 이 책의 요약이자 괜찮은 이생의 지침서가 될 만합니다. 아무쪼록 인생에 주어진 소명을 대하고 성취해나감에 막스 베버의 혜안이 내내 내 안에도 머물길 기대해봅니다. 



#직업으로서의정치 #직업으로서의학문 #막스베버 #박문재옮김

#현대지성 #현대지성클래식 #인문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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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 저축은행 - 라이프 앤드 데스 단편집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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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눔! 잊히는 것에 매달리지 마라.”

- p.27, <그 봄>

 

<아폴론 저축은행>은 책표지에 선포(!)한대로 삶과 죽음과 관한 단편집입니다. 첫 작품 <그 봄>은 산사에 맡겨진 어린 두 형제의 시선으로 슬픈 봄을, 매년 찾아오는 엄마를 기다리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그 반전이 대단합니다. 숨이 턱하고 막히고 먹먹한 가슴에 한참을 멈춰버렸습니다. 잊히는 것과 잊는 것의 애닲음은 이리도 매번 익숙해지질 않습니다. 덕분에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는데 제법 시차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차무진 작가는 이름은 왠지 익숙한데 이번 단편소설을 통해 처음 작품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 <인 더 백>이라는 작품과 동시에 번갈아 가며 읽으면서 작가의 언어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에 반하고야 말았습니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지만 가려 뽑아 사용된 단어들과 낭비되지 않는 문장들이 인물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전진시키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오랜만에 만나는 그런 작품들이었습니다.

 

지네트 느뵈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 20, 라벨의 치간이 들려오는 거실 공간의 무겁고도 홀가분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읽어내려 가는 <아폴론 저축은행>의 도입부는 읽기를 멈추고 싶은 충동을 매 문장과 문장들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느꼈습니다.

 

둘은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의 등을 움켜잡은 아내의 주먹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가느다란 아내 빗장뼈에 코르 박고 숨을 들이켰다. 이렇게는 죽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죽음이란 사는 것이다. 살아서, 살아가는 것이 쌓여서 죽음이 되는 것이다. 사는 것이 다 되어야 죽는 것이다.”

-p.129, <아폴론 저축은행>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고에 가족 동반자살, 아니 살해 후 자살을 계획하는 아이 둘을 둔 부부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아폴론 저축은행>은 표제작답게 그 이야기의 맵기가 남다릅니다. 그리고 임영웅이 부르는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들으며 기다리고 희망을 품습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긴장을 놓을 수가 없고 뒷목이 뻣뻣해지게 합니다. 대단합니다. 몸서리치게 대단합니다. 단편소설들이지만 아득하게 심해의 바다 속으로 한없이 그렇게 한없이 내려만 가는 기분입니다.

 

차무진 작가의 작품들을 더 찾아보게 싶게끔 하는 단편들로 큐레이션된 단편소설집 <아폴론 저축은행>의 여덟 작품들은 고르게 장르 문학적 쾌감 함량이 거의 치사량에 근접하는 균질함을 보였습니다. 단연 눈으로 그려지는 묘사적 표현과 정련된 단어들이 지어내는 문장들과 줄바꿈의 속도감이 형식적 재미도 갖추고 있어 읽는 재미만으로도 대단했습니다. 왜들 차무진, 차무진 하는지 조금 알 듯 했다고나 할까요?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작가가 한명 더 생겼다는 뿌듯함으로 책의 마지막에 닿았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고 인간의 삶은 곧 미스터리니까요. 앞으로도 그런 것들을 만들겠습니다.”

-p.452, ‘작가의 말

 

그럼 다음 층계참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아폴론저축은행 #차무진 #라이프앤드데스단편집 #요다

#그믐 #박소해의장르살롱 #박장살 #시즌2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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