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나눈 사이
방지언.방유정 지음 / 선비와맑음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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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뇌사판정위원회>를 쓴 자매 작가의 신작입니다.
처음 만나는 작가와 출판사의 소설이라 솔직히 별 기대 없이 펼쳐 들었는데, 이야기의 속도감에 휩쓸리듯 끝까지 내리읽었던 강렬한 기억에 차기작을 기다렸습니다.

핑크와 옐로 컬러가 감도는 책 표지는 몽환적이지만, 두 사람의 약지가 묘하게 닿으며 반짝이는 액체(?)가 흘러내리는 순간을 잡아내고 있습니다. 약속과 대가, 믿음과 배신…….

그런 느낌으로 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가족이라는 관계의 외피와 천차만별인 속내를 가감 없이 파헤쳐 보이는, 더욱 강렬한 이야기가 기다립니다. 역시나 손에서 놓칠 수 없게 하는 흡인력으로 종횡무진하며 독자의 목덜미를 쥐고 끝까지 하드캐리해냅니다.

“서울 강서구 발산동에서 이화진이라는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두 살 터울의 언니 이영진의 부차적 존재로서.”
- p.10

백혈병에 걸린 언니 영진을 살리기 위해 태어난 동생 화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세상에 나온 아이입니다. 조혈모세포를 나누어 언니를 살려냈지만, 정작 화진의 삶은 처음부터 언니의 그늘에 놓입니다. 아름답고 영리하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 언니와, 그런 언니를 위해 존재해야 했던 동생.

그리고, 이야기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영진은 연쇄살인범이 되고, 화진은 무려 25년 동안 언니의 범죄를 은폐하는 부역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이 살려낸 언니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설정부터 섬뜩하지만,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살인보다도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설정은 사실 개인적으로 너무 애정하는 영화들인 <네버 렛미 고>, <아일랜드> 같은, 누군가의 장기 이식용으로 태어나 자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운명이 정해진, 인생의 마지막이 결정된 사람들의 이야기.

더군다나, 가족은 선택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택하지 않은 관계를 이유로 너무 많은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요구합니다. 화진에게는 언니를 살릴 것인지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 숭고한 일이라면, 그 희생을 거부할 의무만 있는 희생이 과연 희생인건지.

더욱 기묘한 것은 두 자매의 감정이었습니다.
화진에게 영진은 증오의 대상이면서 동경의 대상이고, 두려운 존재이면서 누구보다 인정받고 싶은 사람입니다. 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언니의 세계에서 자신이 가장 특별한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어떤 관계에서든 원심력과 구심력은 공존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 나누기는 어렵다 싶습니다.
화진은 억압받는 동생이지만 동시에 언니의 범죄를 알고도 침묵하는 공범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겪은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 그가 저지른 선택에 책임을 묻는 일은 별개입니다.

가족이니까, 언니니까, 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되뇌는 말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선택을 가리는 핑계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런지.

여기에 조혈모세포의 ‘생착’이라는 의학적 개념이 묘하게 겹쳐집니다. 화진의 세포가 영진의 몸에 자리 잡아 새로운 피를 만들어내는 동안, 정작 화진의 마음에는 영진이라는 존재가 깊숙이 뿌리내립니다.ㅁㅁ

동생의 피가 언니의 생명을 지탱하고, 언니의 존재가 동생의 삶을 지배하는 관계.
제목의 <피를 나눈 사이>가 묘하게 인물 간의 관계와 오버랩되며, 이상한 기분이 들게 했습니다. 그래서 불편해지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영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반대로 화진 역시 평생 언니를 위해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모든 선택에서 면책될 수 있을까 싶고요.
두 자매 모두 자신의 삶을 온전히 선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삶을 침범할 권리까지 얻은 것은 아닐 듯 합니다.

작가들은 이러한 모순을 상당한 속도감으로 밀어붙입니다.
인물들의 심리를 조금 더 행동과 장면으로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야기의 추진력만큼은 전작보다 한층 거칠고 강렬합니다. 익숙한 가족 스릴러의 구도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방향을 틀어버리는 솜씨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표지 속 두 사람의 약지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향한 약속처럼 보였던 손끝이 이제는 서로를 놓지 못하는 집착처럼 보입니다.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액체 역시 생명을 이어주는 피인지, 씻어내지 못할 죄의 흔적인지 모호해집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관계가 어디까지 서로의 삶을 침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관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피를 나누었다고 해서 삶까지 나누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두 자매가 함께 써 내려간 두 자매의 이야기라는 사실도 책을 덮은 뒤 새삼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실제 자매 작가들은 서로의 세계를 얼마나 공유하고, 또 얼마나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상상 혹은 궁금증을 남기며 다음 소설을 기약해봅니다.

#피를나눈사이 #방지언 #방유정 #장편소설
#한국소설 #선비와맑음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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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기술
케빈 애슈턴 지음, 김하현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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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우리 생활 전반에 더없이 익숙해진 IoT, 그 ‘사물인터넷’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한 기술혁신가 케빈 애슈턴의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 이력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책과의 만남은, 스토리텔링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작금의 상황에서 그렇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인류사와 함께해 왔으며, 지금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돌아보고 내다 보게 합니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과 이야기가 인간에게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는 것은 제법 다른 일이다 싶습니다. 그동안 이야기를 문학이나 영화, 혹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용도 정도로 생각했다면, 저자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으로 시간여행을 제안합니다.

책에서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인간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왔다는 관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역시 그렇다 싶습니다.
누군가의 표정이나 짧은 말 한마디에도 그럴듯한 사연을 만들어 붙입니다. 혹은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존재들이고요.

  “이야기를 전달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생존에 유리했고, 그렇게 오늘날 우리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p.17

저자는 이런 성향을 인간의 진화에 이어붙입니다.
모닥불 주위에 모여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위험을 공유합니다. 그렇게 공동의 기억을 나누며 서로 협력했던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것인데, 이야기는 오락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기술이기도 했던 것으로 읽혔습니다.


또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술이 바뀔 때마다 우리 인간 사회도 함께 변화되어 갔다는 관점이었습니다.

벽화와 문자, 종이와 인쇄술, 전신과 방송, 인터넷과 스마트폰까지. 저자는 이야기를 담고 전달하는 도구들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따라 갑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는 조금 뜻밖이기도 했습니다.
이야기에 관한 책을 펼쳤는데 종이의 제조 과정과 인쇄 기술, 통신과 전자공학의 역사를 한참 동안 들여다 보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이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부분에 힘이 들어간 것이 이해되기도 했지만, 기술에 관한 설명이 지나치게 자세해서 이야기의 본류에서 멀어진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기술이 바뀔 때마다 단순히 이야기가 더 멀리 전달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말합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소유한 주체가,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권력의 구조까지 달라지게 만들었다 고찰합니다. 돌아왔지만 이해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독점하던 소수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누구나 이야기를 만들어 전 세계에 퍼뜨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책은 조금은 불편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믿는 능력이 뛰어난 인간이 반드시 진실을 잘 구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야기는 사람을 연결하고 협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혐오와 편견을 퍼나르고 때로는 거짓을 진실처럼 믿게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실관계가 정확한 설명보다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훨씬 빠르게 퍼지는 모습을 우리는 이미 매일 경험하고 있음이 그 증거겠지요.

더구나 생성형 AI는 그럴듯한 이야기에 이미지와 영상, 목소리까지 가세해서 입체감까지 부여합니다. 이야기의 생산과 유통에 필요한 노력은 점점 줄어드는데, 무엇이 진실인지 확인하는 일은 오히려 더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저자가 강조하는 비판적 자세는 단순히 이야기를 잘 읽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의심하되, 익숙한 믿음의 방식에서 벗어나 사실을 확인하려는 태도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은 비판적 문해력뿐이다…(중략)... 또한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사고하며,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그러리란 사실을 말이다.”
  -p.383

책의 마지막 문장과 두툼한 참고문헌들을 눈으로 훑으며, 문득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와 광고, 정치인의 말,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사연을 떠올렸습니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고 있었을까? 근거들을 찾아보고 검증하지 않는 게으름이 우리를 과연 어디로 이끌어갈까?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기술의 이름을 만든 사람이 이번에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해 온 가장 오래된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연결하는 능력만큼이나 그 연결을 잠시 끊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이고, 또 이야기를 잘 만드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어쩌면 이제는 이야기를 잘 듣고, 잘 의심하는 사람이 조금 더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관한이야기 #역사 #사피엔스 #오디세이
#케빈애슈턴 #KevinAshton #TheStoryofStories #사물인터넷 #IoT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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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아이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지음, 임현정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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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국내 개봉한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 양>의 원작소설인 <양과의 작별>을 포함해 13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영화 버전의 안드로이드 양이 멈춘 이후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더욱 담백하고, 제 입장에서는 더 살갑게 다가왔습니다. “마치 양이 나를 봐주는 것 같았다.” 라는 짧은 문장처럼, 사라지고 나서야 그 존재가 가족 안에서 차지했던 자리를 뒤늦게 더듬어보게 했습니다.

그런 바로 곁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SF적 상상력을 잔뜩 끼얹은 이야기들이 알렉산더 와인스타인이라는 창조자에 의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저 다른 소재의 13편 단편이지만 다 읽고 나서는 왠지 모르게 연결되어 있는, 헐거운 세계관을 공유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왜 그런 걸까 생각해보면, 미래의 시간 속에 있을 인간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 때문인 듯합니다.

작가는 기술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안드로이드, 가상현실, 기억 이식, 신체에 접속된 네트워크까지 온갖 기술이 등장하지만 작가가 궁금해하는 것은 기술의 작동 원리가 아닙니다.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헤어지며, 무엇을 가족이라 부르게 될 것인가를 묻습니다. 그래서 양이 인간인가 아닌가보다, 양을 잃은 가족의 슬픔은 ‘진짜’인가라는 질문이 더 오래 남겨집니다.

또한, 작가는 연결될수록 외로워지는 인간을 바라봅니다.
기억까지 사고팔고 감정과 경험마저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인데 사람들은 좀처럼 서로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합니다. 기술은 거리를 지워주지만 마음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지워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사랑했다.”라는 단순한 문장이 가상세계의 가족에게서도 무겁게 읽히는 이유일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인간을 쉽게 비관하지 않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기후는 무너지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도 흐려지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인간의 자리는 자꾸 흔들립니다. 그런데 와인스타인은 그 미래를 내려다보며 ‘그러니까 기술은 위험하다’고 손쉽게 결론짓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곳에서도 사랑하고 후회하고 애도하며 어떻게든 서로에게 가닿으려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듯 합니다.

그래서 13개의 미래는 서로 달라도 이상하게 같은 곳으로 이어집니다.
어쩌면 이 책이 상상하는 것은 ‘신세계’가 아니라,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좀처럼 새로워지지 않는 인간의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먼 미래를 읽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지금 우리 곁의 사람들을 한번 돌아보게 되는 소설집이었습니다.


#신세계의아이들 #알렉산더와인스타인 #찬란
#애프터양원작단편소설수록
#AfterYang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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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호시스 ㅣ 슬라우 하우스
믹 헤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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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의 <슬로 호시스>는 한꺼번에 몰아보기가 아까워,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아껴가며 보는 드라마입니다. 그래서 2010년 영국에서 발표된 ‘슬라우 하우스’ 시리즈의 첫 작품인 원작소설을 펼치는 기분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이미 얼굴과 목소리까지 익숙한 사람들을 이번에는 활자가 만들어놓은 그들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며 다시 만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리버 카트라이트가 출세 가도에서 탈락해 ‘느린 말’들에 합류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p.7

MI5에서 사고를 치거나, 누군가의 눈 밖에 나거나, 더 이상 쓸모없다고 판단된 요원들이 밀려나는 곳, 슬라우 하우스. 멋진 슈트와 첨단 장비로 무장한 스파이 대신, 실패의 이력이 덕지덕지 붙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실패한 스파이들’이라는 역설적인 설정입니다.

그 중심에는 잭슨 램이 있습니다. 지저분하고 무례하고 독설을 입에 달고 사는 최악의 상사입니다. 드라마에서는 게리 올드만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먼저 눈이 갔다면, 소설에서는 그 불쾌한 언행 뒤에서 모든 것을 관찰하고 계산하는 램의 노회함이 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리버의 조급함, 캐서린의 상처, 루이자와 민, 로디 호까지. 화면에서 스쳐 지나갔던 표정들에 저마다의 과거와 내면이 덧붙여집니다.

두 번째 매력은 긴장과 웃음이 이상할 만큼 잘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청년이 납치되고 참수 영상의 생중계가 예고되는 끔찍한 사건인데도 믹 헤런은 끊임없이 비틀고 조롱합니다. 사람들은 실수하고, 조직은 책임을 떠넘기며, 첩보기관 내부에서는 국가안보만큼이나 자리와 체면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남는 것은 의외로 조직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입니다.
MI5라는 거창한 이름표를 떼어놓으면 승진하고 싶은 사람, 책임지고 싶지 않은 사람, 실패를 감추려는 사람과 다시 한번 기회를 얻고 싶은 사람들이 뒤엉킨 직장입니다. 유능한 사람만 살아남는 곳이 아니라 정치와 배신, 운과 실수가 사람의 자리를 결정합니다. 그 냉소가 제법 지독한데도 이상하게 웃깁니다.

드라마를 먼저 보았기에 반전의 상당 부분을 알고 읽었습니다. 그런데 재미는 별로 줄지 않았습니다. 문장과 문장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내달리는 이야기의 속도감과 입체적인 인물들이 찰진 재미를 매 페이지마다 끼얹어 대는 통에 페이지 터너라도 된 듯, 달리고 또 달리게 되는 독서적 쾌감!

그래서, 오히려 ‘무슨 일이 벌어질까’보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를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우습게도,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들을 읽다 보면 슬라우 하우스에 정이 붙습니다.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고 툭하면 헐뜯으면서, 막상 일이 벌어지면 각자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잘 달리는 말들의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믹 헤런은 굳이 뒤처지고 낙오한 ‘느린 말들’을 주인공으로 골랐습니다.

이 더할 나위 없이 밀도 높은 드라마를 제가 아껴 보던 이유를, 이제는 소설에서도 하나 더 발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드라마로 만들었겠다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 드라마 제작자가 느꼈을 그 마음처럼, 또 끝나지 않을 시즌들을 기대하며 다시 느린 말들의 삶 속을 들여다봅니다.
사건의 다음이 궁금해서라기보다 이 형편없는 사람들과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서 말이죠.

#슬로호시스 #믹헤런 #비채
#애플TV #SlowHorses #슬라우하우스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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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당의 살인
김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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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지는 않은데, <휴가 좀 대신 가줘>라는 단편으로 처음 만난 김영민 작가는, 이후 <계간 미스터리>에 실린 단편들과 여러 앤솔러지를 통해 만나왔었습니다.


한 작품, 두 작품 따라 읽다 보니 어느새 나름의 ‘내적 친밀감’ 같은 것도 생겼고, 이야기를 확장하고 추리를 주도하는 캐릭터도 갖게 되더니, <수상탑의 살인>으로 제41회 한국추리문학상 대상까지 거머쥔 명실상부 추미스계의 든든한 자리매김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라는 어마어마한 영화를 내놓고 그 인기와 지지 덕분에, 스타워즈의 나머지  뒷이야기, 앞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의 세계관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확장에 확장을 거듭해 마침내 스타워즈 유니버스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렇게 김영민 작가도 자기만의 유니버스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미 존재했던 혹은 대과거롤 향한 작가의 시선이 만들어낸 작품들을 거슬러 찾아 읽는 기분으로 읽는 건 묘한 재미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작가를 만든 흔적들을 시간을 거슬러 하나씩 발견하는 듯한.

“섬은 죽기 딱 좋은 날씨였다.”
- p.9 <해신당의 살인> 中

세 편의 이야기는 모두 시작부터 공간을 닫아버립니다.
죽으려고 찾아간 외딴섬, 머리가 잘린 용왕신과 그 앞의 시체. 통신마저 끊기고 배도 뜨지 못합니다.

<회색 장막 속의 용의>에서는 천식 환자들이 모인 산속 별장을 화학공장 폭발로 발생한 유독성 스모그가 에워쌉니다.

“아는 사람과도 어울리지 못하는데 모르는 사람과 깊은 산속 별장에서 2박 3일을 보내라니 썩 내키지 않았다.”
- p.130 <회색 장막 속의 용의> 中

섬과 스모그. 하나는 바다가, 다른 하나는 공기가 사람들을 가둡니다.

여기에 <불온한 손>은 미술관이라는 일상의 공간을 또 하나의 밀실로 바꿉니다.

“활약상을 보고 싶은데 아쉽네. 우리 갤러리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날 거 같진 않으니까.”
- p.251 <불온한 손> 中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바로 비명이 들립니다.

세 편의 이야기를 더듬어가며 읽노라니, 스멀스멀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저 초자연의 영역으로 도망쳐버리지는 않겠단 작가의 고집.

용왕신의 저주처럼 보이는 사건도, 누구도 나갈 수 없는 밀실도, 잘린 손목만 남기고 사라진 예술가도 결국 단서와 논리의 세계로 끌려옵니다.
범인을 ‘맞히는’ 재미도 있지만, 도무지 설명되지 않던 일이 하나의 논리 안에서 가능해지는 순간의 쾌감이 더 큽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공간이었습니다.
외딴섬과 스모그 속 별장, 미술관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범행을 가능하게 하고 동시에 범인을 옭아매는 장치가 됩니다.
섬에서는 기괴하고 음습했다가, 스모그 속에서는 답답하고 불안해지고, 미술관에 이르면 조금 더 경쾌하게 퍼즐을 가지고 노는 듯 합니다.

그래서 인지, 같은 캐릭터가 이끄는 이야기를 따라다녔는데, 물론 모두 각각의 이야기들이지반, 세 번의 다른 추리소설을 읽은 기분입니다.
그럼에도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 서있는 규현이라는 탐정을 향하는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의 구심력이 끝까지 힘있게 뻣어나갑니다.

작가의 데뷔작인 <회색 장막 속의 용의>에서 시작해 이후의 작품을 거쳐 <수상탑의 살인>까지 이어지는 시간을 생각하면, 사건을 해결하는 재미와는 별개로 한 명의 탐정과 한 명의 미스터리 작가가 조금씩 자기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맛도 있다 싶었습니다.

그 성장의 정직한 발걸음이 만들어낸, 화려하게 속이는 것보다 차근차근 단서를 놓고, 마지막에 그것들을 하나씩 회수하며, 도무지 불가능했던 사건들을 가능한 이야기들로 마침내 바꾸어 내는 것이야 말로,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가 동물적 후각으로 재미를 발견해내게 하는 힘이다 싶습니다. 

탐정 규현의 활약을 펼치는 그 다음 이야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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