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노이즈
김현철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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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의 씬에서 도드라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해온, 황금드래곤 문학상. 올해가 8회, 아직 젊은(?) 문학상의 본심 진출작을 모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모음집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들과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황금드래곤 문학상에 걸맞은 이야기들을 품은 멋진 여섯 편의 단편들, 이 여름에 더없이 적확한, 이었습니다.


<잔존의 신호>

“"네, 제가 사과받을 사람은 거기 있으니까요.”/ 이제 내가 정효석의 삶에 침입할 차례였다"
  - p.31

수록작 중 가장 현실적인 온도를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죽음과 상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후회를 다루면서도 단순한 추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집요함과 간절함, 미련 사이를 오가며 사건 혹은 타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합니다. 여름의 폐광 도시라는 배경은, 이미 사라진 줄 알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기억과 공포에 닿아 있는 듯합니다. 결국 제목의 '신호'는 죽은 자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죄책감과 슬픔이 보내는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그렇게 애써 미소 짓지만, 그들은 각자의 상처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태양신의 골렘>

  "나 에라기딘이 말하는데 피조물의 쓰임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 p.73

이 작품은 판타지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삶의 목적은 정말 존재하는가. 골렘의 방황은 결국 지금 이곳의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사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묘한 해방감과 함께 허무함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지는 신화적 서사는 오히려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들의 실존적 고민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습니다.


<소원>

  "그렇게 완등을 포기하면서도 끊임없이 맺었던, 다음을 향한 이글거리는 기약을 닮은."
  - p.95

묵직한 호러의 칼을 휘두르며 적막을 가르는 노이즈를 만드는 것 같은 이야기. 그 속에 베어 나오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면서도 멈출 수 없는 심리,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희망이 서늘하게 도드라집니다. 무덤과 칼, 그리고 기묘한 힘이라는 소재들이 전형적인 괴담인 듯 일기지만, 읽고 나면 가장 무서운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역시나 우리 인간들의 집착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신사기옥>

  "오직 자신의 자본(커피)과 타인의 목숨을 이용해..." (p.151)

제가 애정해 마지 않는 커피가, 형량과 교환되는 설정의 세계는 오싹(!)하면서도 우스꽝스럽지만, 읽을수록 섬뜩할 정도로 묘한 핍진성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자본이 자본을 낳고 위험은 약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는 공평한 척하지만 영원히 그럴 수 없는 우리네 세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디스토피아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불평등과 착취를 비판하는데, 가장 괴랄한 설정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안경 역할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假稱: 가멋>

  "우리가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걸 특정 대상으로서 다른 것과 분리해내는 거죠."
  - p.187

언어와 인식의 문제를 다룬, 제게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단순한 명명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라는 관점은, 성경의 창세기 속 에덴동산 같아서 꽤나 흥미롭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이번 작품집의 어떤 경향 혹은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싶었습니다. 부작용(?)이라면, 읽고 나면 익숙한 사물들의 이름조차 새롭게 느끼게 된다는 정도?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K씨는 점점 자신이 전능해졌다는 감각과 함께,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 p.239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가장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와 추천 알고리즘, 취향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이 얼마나 선택이라는 벽에 갇혀있는지, 혹은 그기에 의존하며 살아가는지를 돌려 까는 듯 합니다.
무엇을 볼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좋아할지 하는 취향조차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지금을 손가락질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놓치지 않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순서 상, 작품집의 마지막에 위치해서 더없이 괜찮았던 블랙코미디였습니다.


<한여름의 노이즈>는 장르도, 분위기도 서로 다른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독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현실에 숨어 있는 잡음들"을 꺼집어 내서 전시하는 기획전을 관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죽은 자의 흔적, 존재의 목적, 인간의 욕망, 자본의 논리, 언어의 한계, 알고리즘의 유혹까지.
여름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음처럼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지만, 일순 그것에 꽂혀 귓속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런 소음, 노이즈. 그렇게 세상을 향하는 시선과 태도 자체를 흔들어 놓을  만한 이야기들과 생각들이 구석구석 박혀있습니다.
그런 노이즈들이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현실의 균열이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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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
루피 소프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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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페닝, 미셸 파이퍼,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현재 시점, 따끈따끈한(!) 8개의 에피소드로 시즌1을 마무리한 동명의 애플TV 시리즈의 원작 소설입니다.

두번째 에피소드까지 보고 났는데, 국내 원작소설 출간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두, 동작그만!

시리즈로 소설이 주는 상상력을 제한 당할 수는 없지, 하며 세번째 에피소드 이후는 완독이후를 기약했습니다. 그리고…

루피 소프의 <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의 원제는 ‘마고에게 돈 문제가 생겨버렸다.’ 정도로 번역될텐데, 이 소설 속 이야기와 인물들 참으로 독특하다 못해 독보적입니다.

얼핏 보면 돈 때문에 궁지에 몰린 한 젊은 싱글맘의 생존기입니만, 완독 후 책장을 덮고 나면 이것은 돈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청년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삶의 비용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도유망(!)하던 주인공 마고는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 학업 중단, 불안정한 노동시장이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부투하며, 또 선택합니다.
예전 한 기사에서 이 작품을 “가난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설”이라고 하는가 하면,  “청년 세대의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실제로 마고가 겪는 문제들은 미국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기시감 마저 듭니다.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일자리, 양육 부담은 한국의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마고의 베이비 샤워는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주인인 테사가 열어준 것이었다… 아마도 마고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19살이며, 술을 마실 수 없기도 하거니와 마고를 임신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의 교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p.008

언제나 버릇처럼,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눈여겨 보곤 합니다. 대개의 경우, 이것도 뭐 선입견 같은 걸테지만, 이런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으로 소설의 시작을 삼고는 하는데, 작가는 저 같은 독자의 기대를 뻥 날려버리고, 그 다음 페이지에서야 시작스러운(?) 문장을 내놓습니다.

자신의 교수 덕분에 미혼모가 된 마고의 지난한 여정의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시리즈에서는 원작과 달리, 그저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저는 역시나 소설의 이런 시작이 꽤나 맘에 듭니다.)

그렇게 임신과 출산, 육아를 온 몸으로, 때론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하지만 세상의 못되먹은 시스템과 싸우며, 마고는 그저 앞으로, 아마도 어쩌면, 나아갑니다. 살아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입니다. 부모 세대는 때로 무책임하고 서툴지만, 동시에 마고를 끝내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세대 간 갈등을 선악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고,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가진 상처와 한계를 보여줍니다.

고민의 벽들에 갇혀만 있는 우리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책과 제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함께 할 어른임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시간을, 문제를, 관계를, 그렇게 그들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도록 지지하는 것. 믿어 주는 것. 곁에 있어 주는 것…

  "그리고 나는 이 세상이 여성이 아기를 낳기에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곳'인지 미처 이해하지 못했어. 보육 시스템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수준이야. 말하자면, 그게 삶을 통째로 무너뜨리는거야.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선택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이 그걸 하게 할 수도 없어."
  -p.399


이 모든 상황과 문제들을, 핑계대지 않고, 웅변하듯 살아내는 소설 속 마고의 모습에서, 저는 결국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보다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마고의 고군분투는 한 개인의 성장담을 넘어,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처럼 읽히는 구석이 있고요.
굶주린 유령처럼, 현실이라는 깜깜하고 꽁꽁 언 얼음이 그녀를 둘러싸고 갈라지게 해도 말입니다.

지금 이곳과 사뭇 다른 분위기와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이지 웃기고, 씁쓸하면서도,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의 아무 곳이라도 케이크 처럼, 칼로 잘라내면 아마도 그 단면이 이러할 듯 포착한 소설이다 싶었습니다. 



PS. 올라오는 기사들에 따르면 애플TV에서 시즌2 제작을 결정했다고 하니, 소설의 이야기를 적어도 16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서 들려줄 듯 합니다. 이제 다시 시즌1의 에피소드 1편부터 정주행 해봐야 겠습니다.

#마고가돈문제에대처하는법 #루피소프 #열림원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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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트백 억만장자 - 성공의 방식을 바꾼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삶과 경영
데이비드 겔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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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연, 파타고니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뉴욕 타임스의 기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데이비드 겔러스는 이 책 <더트백 억만장자>를 단순히 성공한 기업가의 전기가 아니라, “기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 한 인간의 삶, 지독하고도 강박적으로 무형의 철학을 삶이라는 유형의 결과로 만들어낸, 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가지 정도로 정리되는 관점은, 이 책을 통해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이며, 생각대로 산다는 것의 고단함과 부작용까지 들여다 보는 코스가 될 듯 합니다. 첫째, 이본 쉬나드는 전형적인 억만장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둘째,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를 마케팅 수단이 아닌 기업 존재의 이유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셋째, 이 책은 창업주를 무조건 미화하지 않고 그의 모순과 한계까지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 책을 “기업 경영서이자 환경운동의 역사”,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평전”이라 여겨질 구석이 다분한 책입니다.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에서 마주하는 인상 깊었던 문장들을 꼽자면… “우리는 우리만의 사업 방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좀 특이한 방식이긴 했지만, 확실히 효과가 있었어요.” -p.95 “이딴 걸 써야 한다면 사업을 때려치우겠다.” -p.209 “이 정부는 악하다. 나는 뒤로 물러앉아 악이 승리하는 꼴을 보지 않을 것이다.” -p.317 결론을 위해 과정을 정당화하는 비겁함을 거부하고, 그 대상이 정부이고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굽힘 없이 내질러 버리는 기세 혹은 허세가 작렬하는 인생의 단면들을 보고 있자니,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참으로 무모하기 이를데 없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독단적인 스타일은, 각 분야에서 도드라졌던 CEO들이 그러했듯, 거부반응을 낳기도 하고 거절을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어떻게든 그 방향성과 지속성을 추앙하는 이들을 끌어내는 선지자적 면모를 분명히 드러내기도 했다 싶습니다. 마침, 몇 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일정에 모든 언론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삼겹살에 소맥을 먹었네, 잠실 야구장에서 시구를 했네, 유퀴즈에 출연을 하네 등등. 그러면서 함께 동반하는 한국 대표적 기업의 CEO 등의 모습과 그간의 여정들이 떠오르며, 누구라도 아쉬움과 부러움 같은 묘한 감정이 생겼을 듯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한국 사회의 기업 문화도 계속 떠올랐습니다. 단기 실적과 주주가치가 모든 판단 기준이 되는 시대에, 이본 쉬나드는 환경과 노동, 미래 세대를 경영의 중심에 두려고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물론 그 역시 수많은 모순을 안고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방향성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명의 억만장자 이야기라기보다 ‘어떤 기업이 좋은 기업인가’에 대한 긴 질문처럼 읽히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평소 즐겨 입고 사용하던 파타고니아 제품들에 담긴 창업주의 철학과 가치관을 알게 되면서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지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파타고니아의 로고를 볼 때마다 단순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실천하려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더트백억만장자 #데이비드겔러스 #파타고니아창업주 #이본쉬나드 #흐름출판 #서평단리뷰 #도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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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트리거 - 넛지에서 AI까지 당신의 선택을 결정짓는 행동 유도 디자인
윤재영 지음 / 안그라픽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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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라픽스의 책들은 디자인을 닿을 내리고 있되, 돛에 들이닥치는 바람이 이끄는 곳이 어디라도 닿아보고야 마는 소재들을 아름다운 모양새에 담아내는 결과물로, 제게는 특별한 소감이 매권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디자인 트리거>는 홍익대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 전공의 윤재영 교수의 저서입니다. 

책의 프롤로그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 극심한 두통,가 어떻게 현재의 자신의 삶, 그래서 이 책의 출간까지 이어졌는지도,에 이르렀는지 들려줍니다.


  “사람은 알아도 행동하지 않고, 의지가 있어도 지속하지 못한다.

이 책이 더 나은 행동을 이끄는 디자인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p.15, 프롤로그 中


저자의 주 연구 분야인, 사용자 경험(UX), 인터렉션 디자인(HCI), 행동 변화를 위한 디자인을, 최대한 실례를 들어 비전공자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펼쳐보여주는데, 문과지향 공대 출신이 읽어도 흥미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제법 흥미롭게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의 캐릭터 듀오의 사망 소식 관련한 꼭지에서는, 감정을 소구하는 UX라이팅을 아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웨어러블 기기와 AI를 통해 스스로를 기록해서 규정하는 셀프 트래킹은 이미 저의 일상이 포개어져 있는 현재형이고, 보상 알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치는 현대인에게 매번 다른 모습으로 시도되는 다양한 앱들은 한참 동네 공원에 모여든 사람들의 포인트 쌓기의 습관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이런 결론적 마지막 문장은 그저 수긍이 갔습니다.


  “결국 보상의 설계가 행동을 결정하는 셈이다.” 

  -p.74, 기대가 습관을 만든다 中


그외에도, 가치연결, 커뮤니티, 재미, 권위, 비교, 캐릭터, 손실 회피를 통해 어떻게 디자인은 우리 삶을 자극하고 끌어들이고 소비하고 생산하게 하는지를 흥미롭게 들려줍니다.


소싯적 손바닥 반정도 되는 알모양 장난감 안에서 키우던(?) ‘다마고치’의 현재형인, 스마트폰 안에서 살아숨쉬는 디지털 반려동물과 그들이 집사들을 어떻게 조종하는지를 듣다보면, 사람의 원형은 그대로인데 그 방향과 방법이 이렇게나 확장되고 성장하였구나 싶어 놀라기도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 뒤에는 다각도로 연구된 결과물이 반영된 설계된 의도가 당연히 존재한다는 것.


  “행동 유도 디자인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이러한 유동성과 가능성이 바로, 다양한 행동 유도 디자인 전략을 소개하되 그 부작용과 윤리적 고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AI기반 전략까지 폭넓게 다룬 이유다.”

  -p.216, 에필로그 中


그렇게 고민은 끝이 없고, 변용은 제한이 없다 싶었습니다. 각자의 눈높이와 선호에 따라 디자인에 호불호가 달라지 듯,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디자인 트리거는 그러기에 끝없이 연구되고 적용되고, 등장하고 또 사라지는 분야일 듯 합니다. 

무척 흥미로운 이야기꾼을 소개받은 기분, 이 책을 완독하고 느끼는 마음이었습니다.


#디자인트리거 #윤재영 #안그라픽스

#행동유도디자인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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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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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페이토의 두번째 장편소설인, <빅토리안 사이코>는 표지의 강렬한 붉은 색 위에 고운 꽃무늬 패턴과 아래쪽의 진흙 혹은 혈흔(!)이 흩뿌려진 듯한 그 시대의 복장이 먼저 시선을 잡아 끕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크림슨 피크>가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그래서 인지, 이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와 고딕 호러의 형식의 드레스를 걸치고 성큼 독자의 뇌리 안에 걸어들어옵니다. 하지만, 그 두르고 있는 외피는 읽어나가는 내내 도덕과 문명이라는 허울 아래 감춰진 인간의 본성, 위선과 폭력,을 단도직입적으로 들여다보는 느낌도 감지됩니다. 


제목이 만들어 내는 예상치도 있지만, 충격적이면서 불편한데 구석이 다분함에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향으로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게 하는 중독성이 대단합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위니프레드 노티가 가정 교사로 앤저 저택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오롯이 화자인 위니프레드의 시선과 그녀가 듣고 말하는 정보만으로 진행되는, 1인칭 시점의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형식이라, 그녀의 모든 전횡이 독자 스스로의 전횡으로 받아들여지며 때로는 묘한 쾌감에, 어느 순간에 수치스럽기도 하고 또 무뎌져 버린 도덕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위니프레드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악인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분노와 계급적 모순의 열매 같은 괴물에 가깝다 싶습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 사회가 겹쳐지는 장면들도 종종 만났습니다. 


경제는 불안하고, 청년들은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며, 정치권은 서로를 향한 적대만 키우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정상적인 척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광기는, 의외로 지금 우리의 현실과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품위와 질서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노와 불안이 언제 터질지 모를 정도로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죽음은 어디에나 있다.”

 -p.11, 서막 中


그래서 이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처럼 읽혔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펼쳐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이 되어버린 빈부의 불균등으로 내몰린 죽음들이 그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모든 선한 사람, 모든 악한 사람. 모두 다 환희를 누릴 자격이 있는 거 아냐?

 -p.247


섬뜩해 하다가 키득이며 그녀의 악행에 서사를 부여하고픈 유혹을 느끼는 몇 몇 장면에서는, 묘한 카타르시스마저 찾아 옵니다. 이래도 되나 싶은 묘한 마음으로 읽기를 멈출 수 없는 순간들.

픽션이라는 가면을 쓰고 화려한 예절과 제도의 인간사를 조롱하는 길티 프레져.


<빅토리안 사이코>는 단순한 스릴러도, 단순한 고딕 소설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의 시대를 살아내는 현대인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검은 거울 (Black Mirror)에 다름 아닙니다. 불황과 양극화, 정치적 피로감 속에서 읽고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이 소설이 겨누고 있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는 생각. 그래서 독자는 웃으면서도 불편하고, 공포를 느끼면서도 자꾸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매력 혹은 마력. 


아마, 버지니아 페이토의 신작 소식을 자꾸만 검색하게 될 것 같습니다. 


#빅토리안사이코 #버지니아페이토 #배지은옮김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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