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는 낙관주의 - 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미 비링하 지음, 유동익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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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기묘한 강강술래를 떠올렸습니다.
보름달 아래 서로의 손을 맞잡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도는 사람들. 누구도 손을 놓지 못하고 발을 멈추지도 못한 채 회전은 점점 빨라집니다. 그 원은 어느 순간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둥근 모습과 겹쳐집니다.

기후위기, 전쟁, 극우화, 거짓이 범람하는 미디어와 빅테크.
우리는 서로의 손과 발에 상처를 내면서도 자신이 만든 거대한 원 안에서 계속 돌고 있습니다. 진물이 흐르고 죽음의 냄새가 짙어져도 멈추지 못하는 군무. 우리가 사는,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살아버리고 있는’ 지구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유토피아를 기대하던 종에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걱정하는 종으로 급속히 변했다. 미래를 상속받을 자손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루라는 섬에 갇힌 존재로.”
- p.72

그래서 작가가 말하는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이듯 희망찬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나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자는 이야기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절망도 함께 사라지고, 그제야 결과와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채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그런데 작가는 암울한 현실을 숫자와 철학만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문학은 이렇게 삶의 작은 장면 하나까지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p.17) 결국 거대한 세계의 위기 역시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에서 시작해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처럼 읽힙니다.

우리의 끔찍한 강강술래를 멈출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이 책의 대답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원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어도, 끝내 실패할지라도 내가 잡은 손만큼은 놓지 않는 것.
희망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없어도 행동하는 것.

이 책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절망적인 시대를 낙관하는 책이 아니라 절망할 권리마저 내려놓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묻는 책이다 싶습니다.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작지만 희망 없는 낙관주의는 당신을 강인하게 만들고 앞으로 닥칠 실망들에 면역되게 해준다. 그것은 저항과 전복의 원동력이다.”
- p.137

#희망없는낙관주의 #토미비링하 #어크로스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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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허기 - 암과 요리의 계절
캐런 바빈 지음, 이주혜 옮김 / 녹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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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나면 먹이고 감기에는 굶긴다는데, 그렇다면 암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희귀암에 걸린 어머니 앞에서 작가인 캐런 바빈이 찾아낸 답은 ‘요리’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채식주의자인 딸은 어머니가 먹을 수만 있다면 사골을 끓이고 고기를 굽고 포트로스트를 만듭니다.
<맹렬한 허기>는 그렇게 부엌에서 시작된 돌봄의 기록입니다.

암을 다룬 책인데 이상하리만큼 냄새와 맛과 온기로 가득합니다.
냄비와 프라이팬, 빵과 버터, 수프가 끓는 소리 사이로 항암치료와 죽음의 두려움이 불쑥 끼어듭니다.
작가에게 요리는 병을 고치는 치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 맞서는 가장 구체적인 행동인 듯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는 없어도 한 끼를 먹일 수는 있으니까요.

“우리는 더 이상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묻지 않는다. ‘오늘은 어때요?’라고 묻는다.”

암 앞에서 삶의 단위는 미래에서 ‘오늘’로 줄어들고,
식탁 역시 거창한 희망 대신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하는 장소가 됩니다.

그래서 제목의 ‘허기’는 음식에 대한 욕망만은 아니다 싶습니다.
알고 싶은,
살리고 싶은,
가족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 함께하고 싶은
맹렬한 생의 욕망이지 싶습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알고 싶은 것, 이해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죽음이 문밖에 서성이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장을 보고, 냄비를 불에 올리고, 함께 먹습니다.
어쩌면 돌봄이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상대가 삼킬 수 있는 것을 묻고 다시 부엌으로 향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맹렬한 허기>는 암에 관한 에세이이면서, 결국 먹인다는 행위로 사랑을 번역해내는 사람에 관한 책입니다.
그래서 슬픈데도 따뜻하고,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살아 있는 동안 더 많고 맛있는 것들을 몹시 먹고 싶어집니다.

#맹렬한허기 #캐런바빈 #녹스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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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안녕
도수영 지음 / 빈페이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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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자 작가의 손글씨가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거기 계신가요? 연결합니다.”

도수영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앤솔러지 <무성음악> 중 <겨울바다에 다녀오다>였습니다.
인물들 각각의 마음에 번갈아 빙의하듯 세 번이나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 소설집 <모두의 안녕>을 마주한 첫 마음은 무엇보다 ‘반가움’이었습니다.

<모두의 안녕>부터 <오늘의 기록>, <아이가 자라는 동안>, <R300>, <루틴을 지키기는 어려워>까지. 감염병과 기후위기, 인공지능과 통제라는 느슨한 듯 또렷한 SF의 세계 안에서 다섯 이야기의 사람들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립은 완전한 단절이 아닙니다.
혼자이고 싶다가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고, 멀어졌다가도 다시 목소리를 건넵니다.

도수영 작가의 소설이 여전히 제게 신기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보통 인물의 말과 행동을 보고 마음을 짐작한다면, 이 이야기들에서는 마음이 먼저 성큼 나서서 말과 행동을 끌고 가는 듯합니다.
그래서 낯선 미래의 이야기인데도 그 외로움과 그리움만큼은 너무나 현재의 감정입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사람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누군가가 곁들여졌을 때 더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한다.”(p.197)라는 작가의 말이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읽고 난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 소설집에서 ‘곁’은 반드시 따뜻하거나 안전한 장소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상처받고 어긋나더라도 혼자가 아닌 쪽을 향해 마음을 움직이는 것, 어쩌면 그것이 다섯 이야기가 공유하는 작은 희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이유를 지니고 때로는 드러내고 때로는 숨겨둔 채로.

“누군가 이 책을 펼쳐 손쉽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다면”(p.199)이라는 작가의 바람처럼 잠시 다섯 개의 낯선 세계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책을 덮으니 첫 문장이 다르게 들립니다.

“거기 계신가요? 연결합니다.”

그것은 인사라기보다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보내는 시그널이고, <모두의 안녕>은 이야기를 만나는 독자들 모두에게 닿기를 바라는, 작가의 안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의안녕 #도수영 #소설집 #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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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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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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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이 아니고, 연작소설이라고?
처음에는 읽어나가노라니, 그저 서로 무관한 14편의 단편처럼 보입니다.
강에서 목욕하는 여자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들,
여러 명의 ‘나’,
희귀해진 남자들,
초능력을 지닌 존재들….

그런데 이야기를 건널수록 흩어진 조각들이 서로 얼기설기 이어지며, 이 소설이 그저 단편소설집이 아님을,
아득한 미래의 인류사를 그린 하나의 거대한 연작소설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는 장면들이 하나의 느슨하지만 분명한 또아리를 트는 장면이 머리 속에 그리게 됩니다.
그렇게 그 순간부터 이 기묘한 소설의 진짜 매력이 시작됩니다.

작가는 ‘존재’와 ‘소멸’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장착한 안경으로, 때로는 쌍안경으로는  인간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한쪽 렌즈로 보면 인간은 지구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하나의 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다른 렌즈를 들여다보면 사랑하고 미워하고,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밀어내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려는 애처로운 생명체가 보입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상상력의 비거리를 절감한다.”(p.419)라는 해설의 문장처럼 그 각기 다른 렌즈들이 보여주는 시간과 공간은 실로 아득합니다.

더 섬뜩한 것은 이 소설의 종말이 요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류는 거대한 재앙 한 번으로 ‘절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이어가며 조금씩 스스로를 ‘소멸’시킵니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시점이 미래인 SF인데도 읽는 내내 자꾸 지금의 우리, 지구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인류가 만든 인공지능마저 인간을 돕고, 인간은 다시 인류를 만들며 인류의 역사는 론도처럼 반복됩니다.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p.289, <사랑> 中

그럼에도, 가와카미 히로미 작가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p.426)
결국 그 ‘다른 길’은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경계를 넓혀가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멸망을 이야기하면서 이토록 고요하고, 쓸쓸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다니.
연작소설집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끝을 상상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먼 곳에서 되비추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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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는 미술사
이지호 지음 / 한경arte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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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찾아봤던 한경아르떼의 칼럼들이 하나의 물리적 형태를 갖춘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선 반가웠습니다. 어떤 내적 친밀감이랄까?


언젠가부터, 국내나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출장 일정 전 혹은 후에 미술관, 박물관 등을 방문하는 일정을 꼭 잡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쉽지 않게 혹은 다시 못올지도 모를 그 지역, 국가의 인상적인 추억을 남기는데 이만한게 없다는 판단이었고, 꽤나 의미있고 즐거운 일탈이 되어주었던 기억입니다.

그렇게 그저 일정이 맞아서 찾아간 미술관. 언제나 그림을 먼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 <선 넘는 미술사>를 읽고 나니, 이제는 그림보다 먼저 그 시대나 화가의 삶을 미리 예습하거나 챙겨 보면서, 작품이 어떻게 예술가의 손끝에서 탄생하며 또 어떻게 세상과 충돌하는지 생각해보게 될 듯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명화를 소개하는 미술 교양서는 아닙니다.
'왜 어떤 예술은 외설이 되고, 어떤 예술은 걸작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며 예술과 검열의 경계가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미술 인문학 책입니다. 스토리텔링이 함께 하는.

저자인 이지호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와 USC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과 국내외 전시 프로젝트를 경험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사를 연대기처럼 나열하지 않고, 큐레이터가 전시의 기획의도를 안내하듯 혹은 도슨트가 작품과 시대, 사회와 인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며 관람객에게 이야기하듯 독자를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이끕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이전 여행에서 직접 만났던 그림들이 다시 떠올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비엔나의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빛 세계와 에곤 실레의 불안하고도 도발적인 선, 뉴욕과 스위스의 전시장에서 감상했던 마네와 로트레크, 그리고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이 책 안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당시에는 교과서에서만 봤던 화가들, 그들의 아름다운 명화로만 보였던 작품들이, 사실은 외설과 검열, 사회적 금기와 치열하게 맞섰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기억과 책 속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작품은 더 이상 미술관의 전시품이 아니라, 시대를 바꾸려 했던 예술가들의 선언으로도 읽혔습니다.

책은 시작부터 강렬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이는 움트는 생명을 살해하는 것입니다."(p.14)라는 에곤 실레의 말은 예술이 왜 자유로워야 하는지를 단번에 보여줍니다. 또 "예술의 역할은 의무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p.38)라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문장은 아름다움은 때로 저항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책의 말미에 남겨진 작가의 에필로그는 마침표가 아니라, 제게는 어떤 접속부사 같았습니다.
저자는 예술과 포르노의 경계는 시대마다 달랐지만, 결국 그 기준을 세우고 허무는 주체는 언제나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검열받았던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더 자유롭게 인간과 예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들이 열어놓은 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263

미술사를 다시 쓰는 책이 아니라,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그리는 책으로, <선 넘는 미술사>는 명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서로를 변화시켜 왔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썩 괜찮은 애피타이져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메인디쉬는 미술관을 찾아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을 만나는 것이 될테지요.
그렇게 이 책은, 그림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 아닌, '보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같은 책이 되어 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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