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재버워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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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특히 그의 인장을 여과없이 누릴 수 있는 미스터리 장르소설, 은 언제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보다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었는가’를 먼저 흔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신작 <굿바이, 재버워크>는 이러한 작가의 장기이자 특징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싶습니다.

  “남편은 죽었다. 죽어 있다. 지난달에 서른여섯 살이 되었는데 지금은 죽어서 쓰러져 있다.
그것만은 틀림없다.
내가 죽였다.”
  -p.10

이야기가 시작하고 마주하는 두번째 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살인 사건은 단순한 범죄 미스터리처럼 보이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현실과 기억, 음모가 겹겹이 뒤얽히며 독자의 추리를 끊임없이 배반합니다.

그렇게 독자를 단숨에 이야기 속 세계로 끌어당기고서는, 마지막 장에 도착할 때 까지 그야말로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야기의 힘으로 달려가고야 맙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사건의 진실보다도, 그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세계 자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데 있다 싶습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거울나라의 앨리스>와 <재버워크의 시>, 그리고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이자 방백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불안과 혼란을 압축해 보여줍니다. 맥거핀 인가 싶다가도 어찌보면 중요한 사건의 키가 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골든 슬럼버>가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한 인간의 결백을 추적하는 스릴을 보여줬다면, 이번 소설 <굿바이, 재버워크>는 현실 인식 자체를 뒤흔드는 심리적 미스터리에 더욱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또 <종말의 바보>가 종말을 앞둔 인간 군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다면, 이번 작품은 인간의 이성과 폭력성, 그리고 선택의 의미를 훨씬 날카롭게 파고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카 고타로 특유의 유머러스한 대사와 개성 넘치는 인물들 덕분에, 이야기의 긴장감을 중간중간 적절히 완화됩니다. 이런 숨구멍 같은 구석이 이 미스터리를 더욱 찰지게(!) 만들고요.

흩어져 있던 복선들이 마지막 순간, 하나로 커다란 열쇠가 되버리는 순간에는, 역시 ‘이게 이사카 월드지’하며 무릎을 탁 치며 절로 감탄의 탄성을 내지르게 됩니다.

데뷔 25주년 작품답게, 지금까지 쌓아온 그의 장기를 한 권에 응축한 듯한 소설이었습니다.
미스터리와 SF적 상상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질문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작품, 재미있는 작품을 간만에 만났습니다.

PS. 책의 부록 ‘작가 인터뷰’는 놓칠 수 없는 선물 같아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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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
남은주 지음 / 창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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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

남은주 지음 | 창비


한겨레신문사 기자로 18년을 살고, 스스로를 나이 50에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시킨 작가의 2018년 말부터 2025년 초까지의 자신과 가족(딸)의 시간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주자이자 독일 사회의 주변부 인간으로 지켜봤던 독일 사회의 변화들을, 전직 기자답게 직접 경험하고 취재하고 만난 사건과 사회와 사람을 문장으로 새겨냈습니다.


  “사건은 왜 항상 금요일 밤에 일어나는가. 금요일 밤은 공공 시스템이 닫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주자, 특히 피난으로 인한 이주자의 문제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공공업무에서 제쳐진다.”

  -p.7


기자가 사회복지사가 되는 길 위에서 마주하는 독일 사회의 명징한 단면들에서 대한민국의 어느 지점을 마주하기도 하고, 또 그 지점들에서 어떤 절망도, 어떤 희망도 발견합니다.

그렇게 그곳을 잠시 들렀다 떠나가는 기자가 아닌, 그 철문 안에 함께 있고 또 그들의 편에서 그들의 인권을 옹호해내는 것을 배워내는 광야와도 같은 시간을 독자에게 동행해보길 청합니다.


  “배움이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한번 들어본 일들을 알고 있다고 믿고, 모르는 문제는 알 필요가 없다고 믿게 된다.”

  -p.69


독일어도, 사회복지학도, 외국에서의 삶과 사람들, 그 문화의 차이들을 마주하며, 저자가 생각하고 깨닫고 복기하는 것은 배움으로 퉁쳐지며, 살아가는 방법으로 스스로에게 재장착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시 써나갑니다.


허우적거리며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수영장에서 마주했던 평범하고 편안한 미소들 속에서 느꼈던 그 차별과 무관심의 타자들을 향한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또 그 속에서 스스로는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여러 모양으로 존재하기 위해 살아내는 이주자들의 삶을 돌볼 사회복지사가 된다는 것이, 이토록 복잡다기한 세상에서 어떤 의미가 될까. 저자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살얼음판 같은 수갈래의 길들을 선택하고 또 즈려밟으며 전진해보입니다. 


  “아아, 나는 결국 실습 기간 6개월 동안 단 한건의 출생신고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났다.”

  -p.164


그리고, 당연히 실패하고 실수하고 낙담하고 포기하면서.


그럼에도 그길에서 만나는 어떤 격려와 기대, 그리고 아름다움은 그 공간에 함께 했으면 좋았겠다 싶을 뭉클함도 전합니다. 보고 듣는 것이 낯설지만 어느 지점에선가 만국공통의 공감에 닿았을 때. 그 치열하고 지독한 토론과 경청의 시간이 남기는 그 지극히 당연한 순간이 만들어내는 감격말입니다. 


  “낮은 수군거림도 그치고 조용한 집회장엔 수없는 손바닥들이 팔랑거렸다. 나무에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한꺼번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것 같았다. 감히 숨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저 아름다웠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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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초콜릿 도넛 그늘 단편선 5
백수연 지음 / 그늘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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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SNS에 지금의 나를 남기기 보다는,
십수 년 전 부터, 몇 해 전 까지의 나와 우리의 모습이 담긴 게시물을 열어보고
그걸 다시 게시하며 셀프 감상을 남기는 것이 더 잦아졌습니다.

나와 너가, 우리가 되고 또 우리가 가족이 되는 사이, 그렇게 울고 웃던 이야기들이 쌓여만 가고 있습니다. 예전 사진 속의 나와 너는 그랬었구나, 그때는 그때만의 깊은 고민도 상처도 또 다행도 공존했었구나 하면서.

이 책은 백수연 작가라는 존재를 처음 만나는 단편집입니다. 그리고 작가가 들려줄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단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 책에는 가장 익숙한 관계인 사랑, 우정, 가족 속에서 관계의 이면과 그 너머에서 자신들을 마주하는 이야기들, 짧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단편소설 세 편이 담겨 있습니다.

표제작 <레인보우 초콜릿 도넛> 은 오랜 친구이자, 결혼을 앞둔 연인이 함께 마주하는 현실의 어려움이, 함께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사건, 상처와 겹쳐지고 또 분리되며 펼쳐집니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반전.
우리라는 관계는 뭐고, 또 결혼은 우리에게 뭘까, 를 애두르지 않고 독자에게 송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을.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건, 그렇게 숨겨놓았던 자기의 얼굴을 찾아내는 일인 것 같았다."
- p.31

두번째 단편 <백설공주와 마녀 이야기>는, 독사과-백설공주-마녀 라는 동화 속 이야기를 묘하게 현실 속의 우리네 이야기와 겹쳐내는, 읽는 맛이 있는 단편이었습니다.
비교와 열등감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균열과,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어떤 흔적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나아갑니다. 이해와 반목, 선함과 악함이 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결혼은 학업이나 취업 같은 것과는 성격이 완 전히 다른 일이었다. 경화의 무기인 끈기와 성실 만으로는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를 손에 쥔다는 보장이 없었다.
-p.61

“운으로 결정하면 정말 공평한가?.... (중략)
아무래도 실력으로 결정되는 게 공평하지.”
- p.74

"운이고 실력이고 간에 이제 더 이상 그런 건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걸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했고 때로는 구질구질하기까지 했다."
- p.77

여전히 관계에 서툰 우리들, 그렇게 쌓여만 가는 열등감이 벌여놓은 관계들을,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만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페이지>는 권태로움에 익숙해져버린 부부의 관계를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소프트 스릴러 형식으로 빨리감기와 되감기를 반복하며 찾아내 보려는 이야기입니다.
시간과 관계를 그저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 이들에게, 어쩌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일련의 상황들이 헤집어놓는 삶의 싱크홀 같은 순간들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니. 그런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은주는 입속으로 사랑이라는 두 글자를 되뇌었다. 마치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듯 그저 막연하기만 했다."
- p.102

그들은 과연 어떤 이야기로 밤새 술에 취해 갈까 싶으면서도, ‘어쩌면’ 또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기게 되는. 새로운 에피소드의 ‘첫 페이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서서, 소실점 너머로 사라지는 그녀의 자동차 빠알간 뒷쪽 라이트를 바라만 보고 있게 됩니다.

하얀색 플라스틱 약통 - 레인보우 초콜릿 도넛.
소홍로초 - 백설공주 드레스.
만장굴 - 서재.

이런 맥거핀 인가 했다가 어느 순간 이야기를 관통하더니, 다시 그들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소재들을, 담백하지만 속도감을 붙여서 읽는 이로 하여금 옴짝달싹 못하고 페이지를 넘기고야 말게 하는 문장에 버무린, 그 힘이 분명한 글빨(!)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레인보우초콜릿도넛 #백수연 #그늘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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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노이즈
김현철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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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의 씬에서 도드라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해온, 황금드래곤 문학상. 올해가 8회, 아직 젊은(?) 문학상의 본심 진출작을 모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모음집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들과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황금드래곤 문학상에 걸맞은 이야기들을 품은 멋진 여섯 편의 단편들, 이 여름에 더없이 적확한, 이었습니다.


<잔존의 신호>

“"네, 제가 사과받을 사람은 거기 있으니까요.”/ 이제 내가 정효석의 삶에 침입할 차례였다"
  - p.31

수록작 중 가장 현실적인 온도를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죽음과 상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후회를 다루면서도 단순한 추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집요함과 간절함, 미련 사이를 오가며 사건 혹은 타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합니다. 여름의 폐광 도시라는 배경은, 이미 사라진 줄 알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기억과 공포에 닿아 있는 듯합니다. 결국 제목의 '신호'는 죽은 자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죄책감과 슬픔이 보내는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그렇게 애써 미소 짓지만, 그들은 각자의 상처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태양신의 골렘>

  "나 에라기딘이 말하는데 피조물의 쓰임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 p.73

이 작품은 판타지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삶의 목적은 정말 존재하는가. 골렘의 방황은 결국 지금 이곳의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사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묘한 해방감과 함께 허무함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지는 신화적 서사는 오히려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들의 실존적 고민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습니다.


<소원>

  "그렇게 완등을 포기하면서도 끊임없이 맺었던, 다음을 향한 이글거리는 기약을 닮은."
  - p.95

묵직한 호러의 칼을 휘두르며 적막을 가르는 노이즈를 만드는 것 같은 이야기. 그 속에 베어 나오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면서도 멈출 수 없는 심리,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희망이 서늘하게 도드라집니다. 무덤과 칼, 그리고 기묘한 힘이라는 소재들이 전형적인 괴담인 듯 일기지만, 읽고 나면 가장 무서운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역시나 우리 인간들의 집착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신사기옥>

  "오직 자신의 자본(커피)과 타인의 목숨을 이용해..." (p.151)

제가 애정해 마지 않는 커피가, 형량과 교환되는 설정의 세계는 오싹(!)하면서도 우스꽝스럽지만, 읽을수록 섬뜩할 정도로 묘한 핍진성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자본이 자본을 낳고 위험은 약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는 공평한 척하지만 영원히 그럴 수 없는 우리네 세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디스토피아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불평등과 착취를 비판하는데, 가장 괴랄한 설정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안경 역할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假稱: 가멋>

  "우리가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걸 특정 대상으로서 다른 것과 분리해내는 거죠."
  - p.187

언어와 인식의 문제를 다룬, 제게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단순한 명명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라는 관점은, 성경의 창세기 속 에덴동산 같아서 꽤나 흥미롭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이번 작품집의 어떤 경향 혹은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싶었습니다. 부작용(?)이라면, 읽고 나면 익숙한 사물들의 이름조차 새롭게 느끼게 된다는 정도?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K씨는 점점 자신이 전능해졌다는 감각과 함께,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 p.239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가장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와 추천 알고리즘, 취향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이 얼마나 선택이라는 벽에 갇혀있는지, 혹은 그기에 의존하며 살아가는지를 돌려 까는 듯 합니다.
무엇을 볼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좋아할지 하는 취향조차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지금을 손가락질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놓치지 않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순서 상, 작품집의 마지막에 위치해서 더없이 괜찮았던 블랙코미디였습니다.


<한여름의 노이즈>는 장르도, 분위기도 서로 다른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독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현실에 숨어 있는 잡음들"을 꺼집어 내서 전시하는 기획전을 관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죽은 자의 흔적, 존재의 목적, 인간의 욕망, 자본의 논리, 언어의 한계, 알고리즘의 유혹까지.
여름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음처럼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지만, 일순 그것에 꽂혀 귓속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런 소음, 노이즈. 그렇게 세상을 향하는 시선과 태도 자체를 흔들어 놓을  만한 이야기들과 생각들이 구석구석 박혀있습니다.
그런 노이즈들이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현실의 균열이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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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
루피 소프 지음, 보탬 옮김 / 열림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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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페닝, 미셸 파이퍼,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현재 시점, 따끈따끈한(!) 8개의 에피소드로 시즌1을 마무리한 동명의 애플TV 시리즈의 원작 소설입니다.

두번째 에피소드까지 보고 났는데, 국내 원작소설 출간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두, 동작그만!

시리즈로 소설이 주는 상상력을 제한 당할 수는 없지, 하며 세번째 에피소드 이후는 완독이후를 기약했습니다. 그리고…

루피 소프의 <마고가 돈 문제에 대처하는 법>의 원제는 ‘마고에게 돈 문제가 생겨버렸다.’ 정도로 번역될텐데, 이 소설 속 이야기와 인물들 참으로 독특하다 못해 독보적입니다.

얼핏 보면 돈 때문에 궁지에 몰린 한 젊은 싱글맘의 생존기입니만, 완독 후 책장을 덮고 나면 이것은 돈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청년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삶의 비용에 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도유망(!)하던 주인공 마고는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 학업 중단, 불안정한 노동시장이라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부투하며, 또 선택합니다.
예전 한 기사에서 이 작품을 “가난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설”이라고 하는가 하면,  “청년 세대의 현실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봤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실제로 마고가 겪는 문제들은 미국에서 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기시감 마저 듭니다.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일자리, 양육 부담은 한국의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마고의 베이비 샤워는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의 주인인 테사가 열어준 것이었다… 아마도 마고가 결혼도 하지 않았고, 19살이며, 술을 마실 수 없기도 하거니와 마고를 임신시킨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의 교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p.008

언제나 버릇처럼, 소설을 읽을 때는 그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눈여겨 보곤 합니다. 대개의 경우, 이것도 뭐 선입견 같은 걸테지만, 이런 주인공을 보여주는 것으로 소설의 시작을 삼고는 하는데, 작가는 저 같은 독자의 기대를 뻥 날려버리고, 그 다음 페이지에서야 시작스러운(?) 문장을 내놓습니다.

자신의 교수 덕분에 미혼모가 된 마고의 지난한 여정의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시리즈에서는 원작과 달리, 그저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저는 역시나 소설의 이런 시작이 꽤나 맘에 듭니다.)

그렇게 임신과 출산, 육아를 온 몸으로, 때론 친구들과 가족들과 함께, 하지만 세상의 못되먹은 시스템과 싸우며, 마고는 그저 앞으로, 아마도 어쩌면, 나아갑니다. 살아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성세대와 청년 세대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입니다. 부모 세대는 때로 무책임하고 서툴지만, 동시에 마고를 끝내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세대 간 갈등을 선악의 문제로 단순화하지 않고,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가진 상처와 한계를 보여줍니다.

고민의 벽들에 갇혀만 있는 우리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책과 제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함께 할 어른임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시간을, 문제를, 관계를, 그렇게 그들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도록 지지하는 것. 믿어 주는 것. 곁에 있어 주는 것…

  "그리고 나는 이 세상이 여성이 아기를 낳기에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곳'인지 미처 이해하지 못했어. 보육 시스템 전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수준이야. 말하자면, 그게 삶을 통째로 무너뜨리는거야.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선택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이 그걸 하게 할 수도 없어."
  -p.399


이 모든 상황과 문제들을, 핑계대지 않고, 웅변하듯 살아내는 소설 속 마고의 모습에서, 저는 결국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보다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마고의 고군분투는 한 개인의 성장담을 넘어, 불확실성과 불안정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초상처럼 읽히는 구석이 있고요.
굶주린 유령처럼, 현실이라는 깜깜하고 꽁꽁 언 얼음이 그녀를 둘러싸고 갈라지게 해도 말입니다.

지금 이곳과 사뭇 다른 분위기와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이지 웃기고, 씁쓸하면서도,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의 아무 곳이라도 케이크 처럼, 칼로 잘라내면 아마도 그 단면이 이러할 듯 포착한 소설이다 싶었습니다. 



PS. 올라오는 기사들에 따르면 애플TV에서 시즌2 제작을 결정했다고 하니, 소설의 이야기를 적어도 16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서 들려줄 듯 합니다. 이제 다시 시즌1의 에피소드 1편부터 정주행 해봐야 겠습니다.

#마고가돈문제에대처하는법 #루피소프 #열림원
#도서제공 #서평단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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