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노이즈
김현철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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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의 씬에서 도드라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해온, 황금드래곤 문학상. 올해가 8회, 아직 젊은(?) 문학상의 본심 진출작을 모았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모음집으로 처음 만나는 작가들과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황금드래곤 문학상에 걸맞은 이야기들을 품은 멋진 여섯 편의 단편들, 이 여름에 더없이 적확한, 이었습니다.


<잔존의 신호>

“"네, 제가 사과받을 사람은 거기 있으니까요.”/ 이제 내가 정효석의 삶에 침입할 차례였다"
  - p.31

수록작 중 가장 현실적인 온도를 가진 작품이었습니다. 죽음과 상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후회를 다루면서도 단순한 추모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려는 집요함과 간절함, 미련 사이를 오가며 사건 혹은 타인의 삶에 깊숙이 침투합니다. 여름의 폐광 도시라는 배경은, 이미 사라진 줄 알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기억과 공포에 닿아 있는 듯합니다. 결국 제목의 '신호'는 죽은 자가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죄책감과 슬픔이 보내는 신호처럼 읽혔습니다.

그렇게 애써 미소 짓지만, 그들은 각자의 상처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태양신의 골렘>

  "나 에라기딘이 말하는데 피조물의 쓰임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
  - p.73

이 작품은 판타지 세계를 무대로 하지만 가장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삶의 목적은 정말 존재하는가. 골렘의 방황은 결국 지금 이곳의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사명'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묘한 해방감과 함께 허무함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펼쳐지는 신화적 서사는 오히려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들의 실존적 고민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습니다.


<소원>

  "그렇게 완등을 포기하면서도 끊임없이 맺었던, 다음을 향한 이글거리는 기약을 닮은."
  - p.95

묵직한 호러의 칼을 휘두르며 적막을 가르는 노이즈를 만드는 것 같은 이야기. 그 속에 베어 나오는 인간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듯 했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면서도 멈출 수 없는 심리,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희망이 서늘하게 도드라집니다. 무덤과 칼, 그리고 기묘한 힘이라는 소재들이 전형적인 괴담인 듯 일기지만, 읽고 나면 가장 무서운 것은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역시나 우리 인간들의 집착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신사기옥>

  "오직 자신의 자본(커피)과 타인의 목숨을 이용해..." (p.151)

제가 애정해 마지 않는 커피가, 형량과 교환되는 설정의 세계는 오싹(!)하면서도 우스꽝스럽지만, 읽을수록 섬뜩할 정도로 묘한 핍진성을 드러내는 듯 합니다. 자본이 자본을 낳고 위험은 약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는 공평한 척하지만 영원히 그럴 수 없는 우리네 세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디스토피아라는 장르적 장치를 통해 불평등과 착취를 비판하는데, 가장 괴랄한 설정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안경 역할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假稱: 가멋>

  "우리가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걸 특정 대상으로서 다른 것과 분리해내는 거죠."
  - p.187

언어와 인식의 문제를 다룬, 제게는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단순한 명명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라는 관점은, 성경의 창세기 속 에덴동산 같아서 꽤나 흥미롭습니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이번 작품집의 어떤 경향 혹은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싶었습니다. 부작용(?)이라면, 읽고 나면 익숙한 사물들의 이름조차 새롭게 느끼게 된다는 정도?


<케이준 라이스와 종말의 맛>

  "K씨는 점점 자신이 전능해졌다는 감각과 함께, 알 수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 p.239

개인적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가장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와 추천 알고리즘, 취향이라는 소재를 통해 현대인이 얼마나 선택이라는 벽에 갇혀있는지, 혹은 그기에 의존하며 살아가는지를 돌려 까는 듯 합니다.
무엇을 볼지 뿐만 아니라, 무엇을 좋아할지 하는 취향조차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지금을 손가락질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놓치지 않는 태도가 좋았습니다.
순서 상, 작품집의 마지막에 위치해서 더없이 괜찮았던 블랙코미디였습니다.


<한여름의 노이즈>는 장르도, 분위기도 서로 다른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독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현실에 숨어 있는 잡음들"을 꺼집어 내서 전시하는 기획전을 관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죽은 자의 흔적, 존재의 목적, 인간의 욕망, 자본의 논리, 언어의 한계, 알고리즘의 유혹까지.
여름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음처럼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지만, 일순 그것에 꽂혀 귓속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런 소음, 노이즈. 그렇게 세상을 향하는 시선과 태도 자체를 흔들어 놓을  만한 이야기들과 생각들이 구석구석 박혀있습니다.
그런 노이즈들이 어쩌면 우리가 애써 외면해 온 현실의 균열이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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