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있는 리플리 리플리 5부작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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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를 포함한 그 누구라도, 인생의 한 구석은, 관계된 누군가에게는 실제 모습에 더하거나 감해진 모습과 일상을 전하며 살지 싶습니다. 톰 리플리처럼. SNS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인생의 부분만을 크로핑할 수 있는 요즘에는 더 쉽게 재능 있는 리플리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1955년에 처음 세상에 소개된 리플리 이야기는, 현재까지 합종연횡하며 그 생명력을 연장했고 여전히 생생한 그 캐릭터는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누리고 있고, 두 차례 영화화되어 리플리를 실체화하기까지 했습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이야기의 탄생은 그렇게 하이스미스의 삶의 궤적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톰은 기분이 좋았다. 내가 파리에 오다니! 파리의 유명 카페에 앉아 있는 것도 멋졌고, 디키 그린리프가 되어 내일, 또 내일을 생각하는 것도 근사했다. 커프 링크스, 하얀 실크 셔츠, 황동버클이 달린 낡은 갈색 벨트, 길이 든 갈색 가죽 구두 등의 손때 묻은 액세서리들, ‘펀치’라는 잡지에서 평생 소장 가능하다고 광고하는 물건들, 주머니가 처지고 해진 겨자색 코트 스웨터까지 모두 톰의 차지가 된 것이다.”
<p.109>

톰 리플리가 디키 그린리프가 되기 시작하며 디키의 소지품뿐 아니라, 디키의 인생과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소유가 되리라 스스로 최면을 걸 듯 시도되는 장면들은, 이미 알던 내용이지만 다시 봐도 소름끼치게 하는 면모를 충분히 잘 묘사해낸 하이스미스의 탁월한 문장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여기에 김미정 번역가에 의해
새롭게 번역되며 리플리 5부작 전체가 묶여서 나오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것과, 책의 말미에 포함된, 지금은 폐간된 유명한 씨네필들의 성지였던 월간 <키노>의 편집장이었던 김용언 편집장의 작품설명과 감각적인 표지디자인은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이야기를 더 풍성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그의 것이 되었다. 디키의 재산이 그의 것이 된 것이다. 게다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톰이 누리던 자유에 디키의 자유까지 더해지게 되었다.”
<p.248>

<재능 있는 리플리>가 지금껏 독자들과 평자들의 애정해마지 않는 최고의 범죄소설로 추앙받는 것은, 살풍경한 상황과 장면들을 묘사하는 중에도, 어쩌면 사이코패스일지 모르는 톰 리플리를 다각도로 매력적인 인물로 빌드 업 해내는 하이스미스의 힘 덕분이다 싶습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앤서니 밍겔라가 연출하고 맷 데이먼이 리플리를 연기한 <리플리>는 영화 내내 재즈가 흐릅니다. 맷 데이먼이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씬도 등장합니다. 배우로는 알랭 드롱의 리플리가 우위라 여기지만, 인물을 그려내는 연출은 앤서니 밍겔라가 우위다 싶습니다. 오롯이 그 재즈 덕분에 말입니다. 계획성과 우발성을 넘나들며 순간순간을 모면하고 헤쳐 나가는, 소설 속 리플리의 행적들은 마치 재즈의 즉흥연주를 즐기는 듯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톰 리플리, 그의 다음 여정과 비밀들이 담긴 나머지 네 권의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도서제공 #재능있는리플리 #퍼트리샤하이스미스
#을유문화사 #리플리북클럽 #북클럽책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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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보이
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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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보이 PAGE BOY>
엘리엇 페이지 | 송섬별 옮김 | 반비

‘먼저 온 모든 사람들에게’
<p.5>

알 듯 모를 듯한, 조금은 숭고한 문구로 책은 독자를 맞이합니다. 책의 커버의 사진과 저자 정보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내용일 거란 선입견(?)으로 앨런이었던, 이제는 엘리엇이 된 미스터 페이지의 자서전 <페이지 보이>를 열어봅니다.

아마도 이 책의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책 표지일 것입니다. 커버 디자인도 단번에 눈에 띄고 독특한 방식의 날개 디자인도 그야말로 유니크합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은 영악하다 싶을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사전적 의미의 ‘pageboy’는 ‘시동(侍童)’ 그리니까 결혼식에서 버진로드로 신부가 입장할 때 그 앞서 걸어가며, 때로는 꽃가루를 뿌리거나 하는 아이(들)을 말하며, 엘리엇 스스로가 생각한 자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Girl Page가, Boy Page가 되었다는 ‘선언적’이면서 ‘파격적’인 제목이다 싶습니다.

‘여러 의미에서 이 책은 낸가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p.11. 작가의 말 중>

책은 자서전이지만, 다분히 영화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서 자체로는 즐거운 경험을 선사합니다.
폴라를 만나 사랑을 감정을 확인하고, <주노>로 유명세를 얻을 시점이자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옥죔의 시간에서 점프 컷해서, 행복했지만 불안하기도 했던 노바스코샤에서의 어린 시절로 포워드백 합니다.
그렇게 그 시간의 엉킨 실타래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쨌든 실타래의 처음과 나중을 찾아야 풀리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 실타래의 엉킴은 스스로를 스타덤에 끌어올려져 있지만 그곳인 벼랑 끝인 듯 애처로웠던 자신을 이야기하며 풀고, 만나고 헤어지며 위로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풀어냅니다.

“엄마, 나 아마 동성애자인 것-”
“세상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내가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어머니가 고함을 질렀다.
<p.194>

액션 피규어를 좋아하고 진지구축을 즐겼던 어린 시절의 ‘개인적인 놀이’를 하면서 누렸던 해방감도, 성장과 헐리우드 배우생활 속에서의 다른 짓을 시도하는 것으로 엉킨 실타래는 더 엉켜만 갔고, 스포트라이트 이면의 개인적인 삶은 피폐해져만 갑니다. 앨리엇의 출연작 중, 최고로 여기는 <슈퍼>의 시사회와 이어지는 장면을 읽으면서는 저도 따라 텅빈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쉽지 않은 만남과 상처들의 전시회.
그렇게 쌓여가는 필모그래피의 높이만큼, 인간 페이지로서의 삶은 침잠해들었을 거란 예상대로 힘겹게 시간을 이어가고 마침내(!) 결정의 시간을, 고통스럽지만 거뜬히 마주합니다. 속이 후련하면서도 걱정과 우려의 마음으로 그의 등 뒤를 따라가면 이야기를 지켜보는 제 마음도 아려옵니다.

“드디어 눈앞에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안으로 들어갈 때였다.”
<p.373>

LGBTQIA+ 정체성은 여전히, 어쩌면 지구 종말에 이르러서도 마이너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제 막 시작된 엘리엇 페이지의 시간이 쉽진 않을 테지만, 그의 용감하고 힘 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다른 의미로 소외되고 구별되었던 저를 위로하면 내미는 손의 감촉을 느낄 수 있을 듯 따스합니다.
책을 덮고, 표지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외양은 예전에 제가 기억하는 모습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의 눈만은 예전처럼 아름답고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구불구불한 길 위에 서 있지만 서로와 함께이고, 여러분과 이곳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p.394. 감사의 말 중>

ps. 포털 네이버와 다음에서 ‘앨런 페이지’를 검색하면 ‘엘리엇 페이지’로 검색결과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미지는 여전히 앨런의 모습입니다.

#페이지보이 #엘리엇페이지 #반비 #송섬별옮김 #pageboy #서평단도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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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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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피터 스완슨의 2016년 작 <죽어 마땅한 사람들> 출간 이후 7년 만의 후속작입니다. 열린 결말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지만, 신작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긴 기다림을 보상하기에 충분하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작의 헨리 킴볼은 경찰에서 파면되었고 사립탐정이 되어 등장합니다. 역시나 상대적 선악감별사 릴리 킨트너도 이야기가 쌓여갈 즈음 반전과 새로운 흥분을 제공하며 등장합니다. 뭔가 익숙한 분위기이지만, 범죄적 소재나 인물들의 심리묘사 등을 뽑아내는 재능이 정말 대단하단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예컨대 버터나이프로 그의 한쪽 눈을 도려내는 행위같은 상상에까지 나래를 펼쳤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한편으로 기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역겹기도 했다. 감정이 이상하게 뒤섞여버렸다. 조앤에게는 언제나 적이 생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p.51>


일상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인물이 품고 있는 마음 속 지옥도를 슬쩍 펼쳐보이고는, 악에 서사를 부여하되 공감보다는 섬뜩한 거울을 마주한 듯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은 전작에서도 만난 터이지만, 다시 마주해도 그 문장의 노련함은 익숙해지지가 않습니다. 악을 이용해서 범죄의 민낯을 밝히려는 헨리의 선택과 상황은 이제는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범죄 스릴러물의 클리셰가 되었지만,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릴리의 등장은 확실히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지였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도와줄 건가요?” 이제는 램프 불빛이 그녀의 얼굴 전체를 비추고 있어서, 나는 그녀의 두 눈을 전부 바라볼 수 있었다. 옅은 초록색 눈동자였다. “물론이죠.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당신을 도울거예요.”

  <p.259>


거의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튼실한 덩치의 소설책이지만, 피터 스완슨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문장들과 페이지를 넘나드는 눈동자가 충분한 속도로 따라가지 못하는 내 인생의 곤고함과 쉬이 지쳐버리는 육신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주인공 시점의 전환’이라는 절묘한 타이밍의 절묘한 테크닉이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가불기 (가드 불가 기술!) 였습니다. 헨리의 시선에서 시작해서, 릴리의 시선으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사랑스런 범죄 스릴러가 되고야 맙니다.


  “나는 비록 살인을 저질렀지만 인생에는 전혀 후회가 없었다. 내게는 언제나 그런 일을 할 이유가, 그래야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만약 헨리가 그 언덕 위의 공동묘지에서 죽었다면 내가 저지른 일을 후회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그저 내 기분을 좀 나아지게 하려는 거짓말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p.469>


이야기는 전작보다 훨씬 자상하게 마무리되었고, 헨리도 릴리도 여전히 서로엑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피터 스완슨 작가는 후속 이야기를 부지런히 지어서 다시 나타나주길, 너무 오래 걸리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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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밍거스 - 소리와 분노 현대 예술의 거장
진 샌토로 지음, 황덕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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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은 찰스 밍거스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소싯적에 재즈라는 상대적 우월감을 나름 즐겼던 지인들과 함께 모여 밍거스와 그의 음악을 기억하며 그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했었습니다그리고올 가을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을유문화사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찰스 밍거스소리와 분노>라는 굉장한 분량의 책으로.

원작은 20여 년 전에 발간된 <MYSELF WHEN I AM REAL: THE LIFE AND MUSIC OF CHARLES MINGUS>입니다책의 원제인 연주곡 찾아 플레이하며 저자의 서문부터 읽어나갑니다유명 베이시스트인 밍거스가 작곡한 <Myself when I am real>은 의외로 그가 연주한 피아노곡입니다격랑에 일렁이는 파도와 그 위를 유랑하는 작은 보트그리고 비바람과 파도소리에 뭍혀 들리지 않는 더블 베이스를 연주하는 밍거스가 보이는 듯한 유려하게 넘나드는 피아노 연주입니다어쩌면 그래서 책의 저자인 진 샌토로는 밍거스 전기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어쩌면 소리와 분노라는 한글판 부제는 그 연장선에 있는 듯 보입니다.

 

그의 음악은 나를 끌어당겼지만 사람들과 장소들은 나를 사로잡았다나는 밍거스의 가족친구또래동료사이드맨막후의 사람들그에 대해 정통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책의 버팀목이 되어 준 수백 차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또 미국 의회 도서관과 러트거스대학교 재즈연구소의 밍거스 자료들을 탐사하고 여기저기 있는 기초 자료들을 뜯어보았다이렇게 만난 결과들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에 등장하는 경찰 곤봉처럼 나를 후려쳤다.” <p.6,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거의 1,0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이 책의 분량은 이 격정적 인물의 생애를 담기에 턱없이 부족하지만성실과 선의로 가려 뽑은 저자의 노력과 필력 덕분에 읽는 내내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즐거운 독서의 시간이었고, ‘진실할 때의 밍거스 자신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경건의 시간이라고 까지 할만한 경험이었습니다무엇보다 찰스 밍거스의 음악들을 램덤 무한반복 플레이한 채로 그 공간에 갇혀서 읽어내는 밍거스의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격랑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조니 미첼 그는 매우 폭력적이고 고약한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었어요하지만 난 그런 사람을 좋아했는지도 모르죠나는 항상 저 밑에 매우 예민한 심장이 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그게 사실로 밝혀진 거죠밍거스는 감정의 폭이 넓었고 우리 관계는 매우 다정다감했죠.” <p.841>

 

밍거스가 존경할 만한 인물이란 데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그 인생의 뜨거움에 있어서는 비근한 예를 쉽게 찾기 어려운 인물이라는데 강하게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재즈나 음악에 문외한이라 할지라도그 인생을 관조하거나곁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인생의 진폭과 격랑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합니다더불어어쩌면 필연적이겠지만,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재즈 문화와 미국 사회의 풍경그리고 여러 다양한 음악인과 유명인들의 공유한 시간과 그들의 증언을 듣노라면어느새 그 시대 속에 푹 침잠하게 되는 타임슬립을 경험하게 됩니다물론, BGM은 너무나도 넓은 스팩트럼의 밍거스의 음악이어야 합니다.

 

"음악적으로 비타협적이었으며 다혈질의 성격으로 오케스트라 혹은 밴드를 지휘했고 오십대에 생을 마감했던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음악을 소재로 사용하며 계속해서 그것을 확대발전시켜나갔다... 혼돈으로 가득찬 밍거스의 음악은 세상의 다양한 음악을 그 소재로 끌어당겼다그의 음악의 복잡함은 경계인이었던 밍거스 자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 <p.945-946. 옮긴이의 글>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가 번역했다는 것일 텐데책 말미의 옮긴이의 글에서 밍거스를 구스타프 말러와 비교하며그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꾀나 흥미롭고음악과 인생을 이해하는 폭을 좀 더 확장시키는데 꽤나 도움이 됩니다마치마블영화의 마지막 쿠키영상’ 처럼이 책을 덮고서 그의 음악으로 나아갈 제법 괜찮은 선물 받은 느낌입니다어쩌면 재즈는 가을의 음악인 듯합니다그리고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이 책은 더할 나위없는 가을의 책이라 해도 무방하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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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의 작은 서점
프리다 쉬베크 지음, 심연희 옮김 / 열림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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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스웨덴 작가 프리다 쉬베크의 2019년 작품은, 익숙한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분주한 일상에 정신없이 일에 파묻혀 살던 주인공의 삶에 균열이 생기고 정신적인 균열까지 찾아올 즈음,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이모가 죽으면서 런던 템스강의 작은 서점을 유산으로 남겼고, 어렵게 시간을 내서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 서점을 방문하는데...
언뜻 생각나는 이런저런 영화들과 소설들이 떠오릅니다. 그 중에는 동물원도 있었고, 식당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주한 다른 상황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사랑에 빠지고, 인생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어 그 유산을 상속받기로 하고 새로운 인생을 기꺼이 맞이하게 된다는 해피엔딩.
큰 틀에서 <템스강의 작은 서점>도 그런 익숙한 이야기들의 궤를 쫓아가는 듯합니다.

“테를 두른 묵직한 유리문은 수십 년은 족히 닦지 않은 것 같았다. 샬롯테는 손 소독제를 다시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일단 안에 들어간 순간, 위생 따위는 싹 잊고 경건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모든 게 묘하게도 낯익어 보였다. 동시에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천장까지 솟은 어두운색 책꽂이들은 책 무게 때문에 판자가 휘어졌다. 바닥에는 널따랗고 모양이 제각각인 마루판을 맞춰 깔아놓았고, 닦지도 않은 창문 너머로 비쳐드는 햇빛을 받으며 먼지 입자가 춤을 추었다.”
<p.31-32, 9월 4일 일요일 중>

그렇게 찾은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187번지. ‘단호하게 거대한 서점 손잡이에 손을 뻗은’ 순간, 그 안에서 맞이하는 공간과 그 묘사들은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애서가라면, 그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져있던 간에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되고야 마는, 서점이라는 대상만의 빛깔과 분위기에 매료되고야 말았습니다. 클리쉐 덩어리일 듯하단 경계심과 선입견은 무너지고, 샬롯테의 등뒤를 따라가며 서점을 둘러보고 숨을 들이키고 눈을 감고...

“아아, 크리스티나. 이런 일이 다 일어나다니, 정말 미안해.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텐데. 너랑 이야기하면서 다 설명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네가 날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대도 난 이해해. 부디 언젠간 날 용서해주길 바라. - 사라가”
<p.63>

새롭고 낯선 환경에서 제한된 시간 머무르면 만나는 상황들, 사람들, 고양이 그리고 미스터리. 이 이야기의 매력은 그 익숙한 것들의 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이 미스터리입니다. 목차를 보다가 발견한 특이점이 그 미스터리에 대한 단서들인 40여 년 전의 날들입니다. 주인공의 엄마와 자신에게 서점을 유산으로 남긴 존재조차 몰랐던 사라 이모와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와 40년 전을 교묘히 오가며 이야기가 쌓이고 비켜가는 것을 긴장감이 묘하게 매력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결국 마주하는 진실과 주인공의 결심. 600페이지를 살짝 넘기는 분량의 이야기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맛이 상당히 흡족합니다. 나에게도 이런 서점 하나 유산으로 남겨줄 익명의 이모님 어디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 서점은 홍콩 섬이 건너다 뵈는 침사추이 어디쯤이면 좋겠다,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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